카테고리 이동강호형 수필
소산
늙어서 좋다.
젊은 시절에는 늙으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늙어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 젊어서는 미처 몰랐던 즐거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한가해서 좋다.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도 빠듯하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바삐 사는 젊은이들 보기가 미안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젊었을 때보다 더 바쁘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에 자가용차를 몰고 다녀도 괴나리봇짐에 집신 매달아 지고 한양 천리를 걸어서 다니던 시절 사람들 보다 몇 배 더 바쁘다. 세상이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단골 음식점이나 술집에 가면 들어설 때는 “어서 오세요.”하고 ‘오세요’ 앞에 ‘어서’를 붙여 반가움을 강조하지만 나올 때는 거두절미하고 “가세요.”한다. 바쁜 세상에 거래도 끝났으니 ‘안녕히’, 혹은 ‘잘’ 따위 수식어를 붙이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용어들도 ‘남(여)친’, ‘멘붕’, ‘빼박’, ‘깜놀’ ‘강추’ 등 축약어 일색이라 한국어로 글을 쓰는 나도 못 알아들을 말이 수없이 많지만 시간이 넉넉한 나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다.
둘째, 돈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 젊어서는 자식들 건사하고, 늙으신 부모님 모시려니 아무리 말 갈 데 소 갈 데 다 뛰어다녀도 형편 필 날이 없었는데, 자식들 다 독립해 나가고 나니 돈이 없어도 크게 쪼들릴 일이 없다. 식사나 술을 마셔도 구태여 고급 음식점을 찾을 일이 없어 쌈짓돈만 가지고도 친구들 만나 소주 한잔 할 수 있고, 단돈 1400원이면 막걸리 한 병 사다가 집에서 독작을 할 수도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나마 먹는 양도 식사는 예전의 삼분의 일, 주량은 오분의 일로 줄어서 돈 들 일도 그만큼 줄었다. 게다가 봉양해야 할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시고, 어려서는 날마다 돈 달라고 손 내밀던 자식들이 오히려 주기까지 히니, 무거운 등짐 지고 백리길 걸어온 황소가 짐 내려놓고 한가로이 누워 되새김질하는 기분이다.
얼마 전에는 오른쪽 귀가 먹먹하기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비1500원 내고 처방전 받아들고 약국에 갔더니 약값은 1000원이었다. 왜 이리 싸냐고 물으니, 65세 이상의 환자는 약값이 만 원 미만이면 1000원만 부담하면 된다고 해서 속으로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외치고 나왔다.
셋째,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던 병이 없어져서 좋다. 나보다 좋은 옷 입고 좋은 학용품 쓰는 친구를 시샘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강남에 빌딩을 가진 친지, 벼락출세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이웃, 생면부지라도 고급 외제 자동차 타고, 명품 옷 입고 영화배우 같은 미인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 하다못해 로토에 당첨된 사람만 봐도 배가 아프던 못된 심보가 사라졌다. 그게 다 부질없는 욕심이라는 걸 어떻게 깨달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남 잘 되는 거 배 아파하지 않으면 마음이 이렇게 편한 줄 몰랐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해서 즐겁다.
넷째, 이성과의 교유가 자유로워져서 좋다.
음양의 이치가 묘해서, 낯선 동성(특히 남성)끼리 만나면 경계심부터 발동하기 마련이지만 이성을 만나면 묘한 인력이 작용한다. 이런 현상은 동물의 세계가 더 심하다.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암컷들은 정글의 법칙 아래서 새끼를 무사히 길러내려면 힘 센 수컷의 씨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 수컷들의 싸움을 지켜본다.
나는 너무 일찍 서당에 다니면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배운 터라 또래의 이성을 가까이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도 수컷답지 못하게 날마다 만나는 여학생에게는 말 한 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영화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 아니면 엄앵란이나 짝사랑했다. 이렇듯 수컷다운 야성이라고는 없는 내가 짝을 만나 아들 딸 낳고 사는 건 순전히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정한 나라에 태어난 덕이다.
이제 씨를 뿌릴 나이도 지나고 보니 이성과의 교유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지금 내 전화기에는 전화를 걸면 반겨줄 여성의 전화번호만도 수십 개가 저장되어 있다. 만나자고 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절하지 않을 여성들도 여럿이다. 나이도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해서 급변하는 세상에 두루두루 배울 게 많다.
어느 모임의 식사자리에서 내가 백 한 살 되는 해에 새 장가를 들기로 아내의 허락까지 받았는데 시집올 여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허풍을 떨었더니 동석했던 40대 여성이 손을 번쩍 들며 “제가 갈게요!” 해서 한바탕 웃었다. 저 영감이 설마 백한 살까지 살아있기나 하랴 싶어 웃기려고 한 말일 테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설마가 사람 잡지 않을까 걱정이나 안 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약혼자가 된 셈인 나는 이 모임 저모임 가는 곳마다,
“약혼은 해 놨는데 세월이 이렇게 더디 가서야 언제 백한 살 먹어서 새장가 갈지 막막해!”
하고 투덜거려서 웃기곤 한다.
어제는 30대 처녀 J양에게서 문자가 왔다.
“할아버지, 백신 2차 접종까지 완료했으니 우리 올해는 망년회 해요,”
J양은 몇 해 전 유럽여행에서 알게 된 친구로, 처음 만났을 때 호칭대로 지금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녀와 동행이던 K양까지 셋이 가끔 만나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며 교분을 쌓아오고 있다. 이 모두가 ‘아저씨’나 ‘오빠’때는 누려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