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을 밑천 삼아 30년을 일한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받은 돈으로 길가 모퉁이에 자그마한 편의점을 차린 나는 생각보다 어려운 현실에 점점 처음 시작할 때의 의욕은 사라지고 낮에는 아내가, 밤에는 내가 교대해가며 일그러진 얼굴로 살아가던 그날도 땅거미 진 거리를 잔뜩 움츠린 두 어깨를 저어가며 편의점으로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수고했어?” “여보... 그럼 수고해요”
기계음처럼 습관적으로 내뱉는말들로 인사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 풀썩 주저앉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였는데요.
“오늘도 삼각 김밥 드려요?"
말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연신 고개만 끄떡이던 할머니가 내가 내민 삼각 김밥 하나를 들고 귀퉁이 자리에 가 앉아 오물오물 드시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삼각 김밥 비닐도 잘 벗기지도 못하면서 왜 맨 날 저것만 드신대...“
제 투정의 이유는 할머니가 나가신 식탁엔 서툰 손놀림으로 떨어진 김 부스러기 들을 치우는 게 짜증이 났기 때문 이었는데요,
그러는 사이 딸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컵라면 한 개를 재빨리 가져오더니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김밥만 드시지 말고 여기 컵라면과 함께 드세요“
자기가 먹을 걸 산 줄 알았던 제눈에 비친 아이의 마음 씀에 들고 있던 바코드를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내게로 다가온 아이는 “저기 저 할머니 여기 편의점에 자주 오세요?“라고 물었다.
“매일 이 시간이면 오셔서 삼각 김밥 하나를 드시는데 왜 묻니?“
“그럼 잘 됐네요.”라고 말한 아이는 편의점 안쪽으로 뛰어가더니 컵라면 하나를 꺼내 들고 오는 게 아니겠어요.
“이걸로 열 개만 주세요.”
“열 개씩이나?”
“세배 드리고 받은 이 돈을 어디에 쓸까 고민했었는데 오늘 쓸 곳을 찾았어요.“라며 손지갑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놓고 있었는데요.
의아하게 생각하며 계산을 마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여자아이는 그 컵라면을 도로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게 아니겠어요.
“아저씨께서는 이 시간에 매일 계셔요?“
“이 시간 땐 언제나 내가 근무 한단다.”
“아저씨... 그럼 부탁 하나 해도 되죠?“
“뭔데? 들어줄 만하면 들어줄 게“ 귀찮다는 듯 내뱉는 내 표정을 마치 고쳐주기라도 하려는 듯 해맑은 아이의 음성이 어느새 내 귀에 들려오고 있었는데요.
“제가 산 컵라면을 저 할머니 오실 때마다 하나씩 주시면 안 돼요?“
“응... 그럴게“
얼떨결에 튀어나온 내 말에 금방 핀 꽃처럼 환하게 인사를 건넨 아이가 파란 하늘을 솜털 구름 밟고 가듯 뛰어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