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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강화 교동도 교동평야를 호령하는 喬桐邑城[교동읍성]과 연산군의 扶芹堂[부근당]..........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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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강화 교동도 교동평야를 호령하는 喬桐邑城[교동읍성]과 연산군의 扶芹堂[부근당]..........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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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제 강화도 뿐만 아니라 석모도, 교동도 역시 더 이상의 섬이 아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배
를 타고 들어갔던 교동도, 지금은 連陸橋[연륙교]가 만들어져 수시로 들어갈 수가 있고, 차량의 통행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교동도에 들어갈 땐 民統線[민통선]지역인 만큼 군인들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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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이란 민간인 출입 통제선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남쪽에서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정한 경계선이다. 다시 말해서 민간인출입통제선은 군사 분계선의 즉 DMZ[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이남 10
~12km 범위 이내에서 지정할 수 있으며, 군사작전이 집중되는 접경 지역의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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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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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군시절 0사단 민통선 안쪽 DMZ 내에서도 철책을 관장하는 GOP에서 근무했다. 이 중에서도 GP에서…. GP란
한반도 비무장지대 내부에 존재하는 남과 북의 최전방 감시초소. GP는 감시초소라는 뜻의 Guard Post의 앞 글자를 딴 것
이다. 허구한 날 통문을 따고 들어가 MDL[군사 분계선] 넘나들며 수색과 매복을 일삼으며 위험천만한 경계근무를 했던 그
시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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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DMZ란 국제 조약이나 협약에 의해서 무장이 금지된 비무장 지역을 말한다. 군대의 주둔, 무기의 배치, 군사 시
설의 설치 등이 금지되고,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주로 적대국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는
데 우리나라는 155마일[약 250km: 1마일은=1.609344킬로미터(km)]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의 안전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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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은 둘레 430m 높이 6m의 규모로 세 곳(남ㆍ동ㆍ북)에는 망을 보기 위해 문루(門樓)를 세웠으며, 문루는 2017년
에 복원한 유량루(庾亮樓)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은 통삼루(統三樓)ㆍ북문은 공북루(拱北樓) 등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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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조선 후기 읍성이자 수영성(水營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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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읍성 남문 비석 받침석(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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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민통선 지역은 출입 통제로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생태계 연구의 학술 가치가 높다.
1954년 2월 휴전선 남쪽 전 지역에 설정이 시작됐고, 허가 없는 일반 민간인의 출입과 통행이 제한되어 신분증 제시와 검
문 절차가 필요하다. 하여 교동도에 들어갈 때 역시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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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통선은 지역적으로는 강원도 5개 군과 경기도 3개 군이 포함된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은 1954년 2월 미8군
사령관 직권으로 전방에 배치된 군사 시설을 보호, 보안하고 군사작전을 용이하게 수행할 목적으로 확정된 선이며, 비무장
지대는 국제연합[UN]군의 담당하에 놓여 있으나,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에 대한 통제권은 한국군에게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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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남문인 유량루(庾亮樓)와 홍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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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행정권 역시 한국군에게 있다. 민간인이 민통선 내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군에서 발행하는 민간인 출입 허가증이 필
요하다. 여기에서 한가지 오해가 있는데 흔히 GOP 철책이라고 하면 군사 분계선 자체를 철책이라고 생각해 남북한의 육군
장병들이 마치 영화 JSA처럼 바로 코 앞에서 서로 마주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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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규정은 위 도식에서 보듯 MDL 기준 남북 2km가량 떨어진 곳에 남북한이 각자 철책을 세우고 이곳에서 경계근무
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무장지대[DMZ]가 생기게 되는데, 이 MDL 주변으로 형성되는 약 폭 4km 북으로 2km, 남으로 2
km 이내의 剩餘[잉여] 구간을 지칭하는 用語[용어]가 되겠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에 양측의 간격이 가장 가까운 곳은 공동
경비구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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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의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정묘호란을 겪은 뒤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1629년(인조 7)에 남양부 화량에 있
던 경기 수영을 교동으로 옮겨 설치하면서 진영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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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교동도를 지도상으로 보면 섬의 동쪽은 강화도, 그리고 북
쪽과 서쪽은 북한의 황해도이다. 교동도와 북한의 거리는 불과 4~5㎞. DMZ의 남북 거리가 4㎞이니 말 그대로 북한이 코
앞이다. 섬의 중앙에 솟은 화개산에서 바라보면 바다. 건너 빤히 북한의 연백평야가 눈에 들어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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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인지 북한 땅에서 교동도로 헤엄쳐와 귀순하는 인민군들이외 기타 사람들이 간혹 있을 정도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큰 섬임에도 불구하고 隱遁[은둔]의 섬으로 남아있었다. 이렇게 숨어있었던 덕분에 교동
도에 가면 아직도 70년대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멈추어버린 채로 남아있는 듯 어딘지 낯익
은 풍경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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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둥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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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인조 11)에 경기 수영이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으로 확대 · 개편되면서 교동읍성은 통어영의 본거
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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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풍경들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유랑자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섬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
물론 2014년 7월 1일에 개통된 喬桐大橋[교동대교]가 크게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교동 대교는 연장 3,440m, 왕복 2차로
인 사장교다. 공사비는 총 904억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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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려시대 원나라 침입으로 강화도가 임시수도가 되자 입주민들을 위해 강화도를 비롯한 주변섬들을 간척하기 시작
하였다. 계속된 간척사업으로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 현재의 해안선과 비슷한 형태의 간척지가 확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도 산미증식의 수단으로 간석지의 농지화를 추진하였고,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지하수를 이용한 관정과 저수지의 설치
로 관개농업을 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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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인조 7)에 경기 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이설되면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성과 일반 읍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으로 조선 후기 강화와 교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 및 도성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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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교동도는 섬 전체가 비옥한 농지로 둘러싸여 있다. 교동도는 원래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려~조선 숙종
때에 이르기까지 수정도 와 화개도 고구도를 잇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오늘날 교동도가 만들어 졌다. 이때부터 만들
어진 喬桐平野[교동평야]가 드넓게 펼쳐지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한 들녘이다.
마치 드넓은 호남평야 같은 들녘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교동평야는 여의도의 3배가 넘는 넓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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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면적이[윤중로 안] 2.9km² *3.0=8.7km²[약 2.661.000평], 이렇게 작은 섬에 이토록 넓은 平野[평야]가 있다는 것
이 놀라울 정도다. 아무튼 오늘 유랑자가 찾은 교동도에 있는 교동읍성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 성으로 도읍 전체를 둘러싸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고 3곳에 문을 내어 바깥과 통하도록 만들었으며, 1995년에 인천광역시 시도 기
념물 제23호로 지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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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에 새겨진 남루(南樓) 글씨, 성문의 성격과 이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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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三道)~~ 문(門)이라 새겨진 글씨, 여기서 삼도는 삼도 통어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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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邑城[읍성]이란 말 그대로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교동도는
오늘날 비록 강화군에 속한 일개 面[면]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독립된 군현인 喬桐縣[교동현], 喬桐府[교동
부]였다. 그 교동 현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城[성]이 교동읍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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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城[성]이라고 하면 튼튼한 방패, 즉 철벽을 연상시킨다. 지금은 무너져 내려 초라한 모습의 성으로 일부 흔적만 남
아있으며, 일부 복원도 해 놓았다. 본시 이 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 교동에 京畿水營[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
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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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는 430m, 높이 6m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統三樓[통삼루], 홍예문만 남아있던 남문은 庾
亮樓[유량루], 북문은 拱北樓[공북루]라 하였다. 교동 읍성은 예전부터 꾸준하게 정비되어 왔었는데 영조 29년[1753] 女
牆[여장: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 위에 낮게 덧쌓은 담] 을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에는 남문을 다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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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남문은 1921년 폭풍우로 무너져 홍예문만 남아있었다. 1975년에 훼손된
남문과 인접 성벽에 대한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2018년에는 홍예만 남아있던 남문의 육축부와 함께 문루를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복원하였다. 1974년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로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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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둘레 끝에 연산군과 폐비 신씨의 혼을 기리는 부근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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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읍성을 구경했다면 마을 앞을 지나면 언덕 아래에 조선 10대 국왕이었던 ‘燕山君[연산군]의 流配地[유배지]’로 추정
되는 장소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곳은 화개산 아래와 달리 텅 빈 터로 남아있는데 볼거리는 없다. 그런데 연산군의 유배
지라서일까? 교동읍성 둘레 끝에 가면 오동나무 그늘 아래 연산군과 폐비 신씨의 혼을 기리는 扶芹堂[부근당]이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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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부근당은 연산군이 1506년 11월 30일 교동도에서 생을 마감한 뒤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오늘날까지도 제사가 이어
지고 있다. 또한 부근당은 교동도 무속인들의 오래된 기도 터 중 한 곳으로 왕이나 장군을 모시는 신당으로 초봄의 최초 먹
거리인 미나리를 신당에 바치는 풍습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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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화상으로 추정되는 탱화가 걸려있다. 부근당은 왕이나 장군을 모시는 신당으로 초봄의 최초
먹거리인 미나리를 신당에 바치는 풍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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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룡 우물은 조선 태종 18년에 황룡이 출현했다고 전해오는 우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황색 대룡(大龍)이
교동 수군의 군영 앞에 있던 우물안에 가득 차게 보였는데 허리의 굵기가 기둥과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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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는 자물쇠를 달았는데, 연산군이 병들어 죽은 집터에 지은 것이라 한다. 사당인 부근당 안을 살펴보면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화상으로 추정되는 탱화가 걸려있음을 볼 수 있다. 하여 교동 주민들은 연산군이 죽음을 맞이한 11월 격년으
로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당굿을 벌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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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에는 연산군 謫居地[적거지]로 추정되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화개정원 내에 있고 한 곳은 이곳 읍성 내에 있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산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화개정원 내 연산군 유배지 터에서 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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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212번길 24-4
-구(지번) 주소: 교동면 읍내리 391
*상 세 문 의: 강화군 문화재과 032-930-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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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연산군 유배지 터 부근당 찾아가기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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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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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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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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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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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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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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