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장 11 - 18절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13.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18.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13절에서 16절까지를 보면 솔로몬 시대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한 사건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한 성읍이 있었는데 큰 왕이 쳐들어 와서 그 성을 에워싸며 위협을 하게 됩니다.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성읍이었지만 그 성읍 안에 살고 있던 사람 중에는 가난하지만 지혜가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있던 지혜를 가지고 결국 그 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너무도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에 살던 사람들이 성을 구한 가난한 영웅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솔로몬이 얻은 교훈은 지혜가 힘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고, 17절에도 보면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 21장 22절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 외적으로 아무리 강해 보여도 내적으로 강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교훈해 주시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기독교를 반대하던 세력들에 의해서 기독교 박해를 허용하는 국법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에 나가는 것은 금지가 되었고 특히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범죄로 간주될 정도였습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 피를 좋아하고 피를 기념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예식 중 하나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가다가 보초를 서고 있던 군인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군인은 소녀를 잡자마자 ‘어디를 가냐’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이때 소녀는 마음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하나님 앞에서 선의의 거짓말까지도 하고 싶지 않은 순결한 마음 때문에 그 자리에서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때 하나님께서 이 소녀에게 지혜를 주셔서 소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의 큰 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늘 저녁 가족들이 다 모여서 큰 오빠의 유언장을 읽기로 했어요. 오늘은 큰 오빠를 기념하기로 작정한 날이에요.” 이 말을 들은 군인은 빨리 가보라며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이 소녀가 말한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자신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촌수를 따져보면 예수님이 큰 오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큰 오빠가 돌아가셨고, 큰 오빠의 유언장은 바로 성경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큰 오빠를 기념하기로 작정한 것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성만찬을 통해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거짓말 없이 그 위기를 지혜롭게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호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거짓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만 있다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혜를 달라고 날마다 간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설사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외적 부족함 때문에 우리의 지혜를 기억해 주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때문에 가정이나 교회나 동료들이 위기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적 구원을 통해 천국인이 될 수 있다면 이 일은 우리가 인생을 통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빠른 경주자가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때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용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때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지혜가 풍성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것 또한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명철이 있으면 재물을 더 많이 얻어야 할 것 같고, 지식이 있으면 은총을 더 많이 입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보다는 심히 연약하고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겸손함으로 생각하고 처신을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지혜의 풍성함이 우리를 교만함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고, 우리의 지혜만 믿다가 괜히 실족하고 낙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에서 정의하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혜로운 사람이겠지만 전도서의 관점은 그런 사람일지라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믿고 따르면서 사는 것이 참된 지혜자의 모습이라고 정의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겸손해 질 수밖에 없고 지혜롭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지혜자의 모습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지혜의 바른 모습도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를 소유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진정한 지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않아도 우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혜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오늘도 가장 겸손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