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야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 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이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탕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 1994)
[작품해설]
우리는 늘 ‘구두’에 의지해 살아간다. ‘구두’에 몸을 싣고 일상을 살아가는 삶, 그것은 바로 현실에 얽매어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구두’는 ‘새장’이며 ‘작은 감옥’이다. 우리의 삶이 시간을 따라 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구두’란 우리를 실어 나르며 삶을 완성시키는 ‘한 척의 배’가 된다. ‘구두’가 ‘새장’이 될 수 잇는 것은 ‘새’를 ‘새장’속에서 기르듯, 인간의 삶이 바로 ‘구두’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새장’이 ‘새’의 자유로운 비상을 제한하는 부자유의 표상인 것처럼 ‘구두’역시 우리의 삶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감옥’이 된다. 결국 ‘구두’는 우링를 ‘감옥’속에다 가둬둔 채 삶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새장’은 ‘새’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를 지상적(地上的) 삶에 고착시킴으로써 현실적 삶에 순응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새장’이요 ‘감옥’인 ‘구두’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는 행위는 현실적 삶을 벗어나려는 작은 몸직이긴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새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자’나 ‘구름’ 같은 초월적, 천상적 삶이 아니라, ‘먹이통’이나 ‘구멍’ 같은 제한적, 지상적 삶이며, 바로 그런 것들이야말로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시인은 ‘덜그럭거리는 감옥’, ‘헐거운 구두’를 버리고 ‘새 구두’를 장만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름’ 위에 올려놓는다. 구름은 어떤 장애나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 하늘을 오갈 수 있는 존재이다.
전에는 ‘구두’속에다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고 초월에의 소망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는 ‘구름’에다 ‘구두’를 올려놓는 적극적인 행위로써 지상에서의 현실적 삶을 벗어나 천사에서의 초월적 삶으로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은 내적 갈망을 구상화하고 있다. 그것은 ‘아직 물에 젖지 않은’ 순수한 소망이다.
때론 속박을 표상하기도 하고, 때론 장에의 의지를 표상하기도 했던 ‘구두’, 그러나 그 ‘구두’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완성시켜 나가든 간에 ‘삶’은 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오래도록 육신을 담아내는 기능만을 반복하다가 낡아 버린 ‘목욕탕’ 같은 ‘구두’를 벗어 던지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는 과감한 행동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ㄱ비록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라고는 하나, ‘새’를 ‘새’로 존재하게 하는 힘은 날개에 있다. 그러므로 ‘새의 육체’에댜 자신의 ‘발’을 집어넣는 행위를 통해 무한한 자유의 공간, 끝없는 초월의 세계로의 비상을 다시 한번 꿈꾸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는 ‘가죽 구두’를 ‘새장’에 비유하여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작가소개]
송찬호(宋粲鎬)
1959년 충청북도 보은 출생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에 시 「변비」 등을 발표하며 등단
2000년 제2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및 제13회 동서문학상 수상
시집 :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9),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 『붉은 눈, 동백』(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