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천 내린 눈이 인수봉 중턱에 희끗희끗 남아 있다. 눈 위로 아버지의 얼굴을 덮었던 하얀 비누 거품이 겹친다. 어릴 때 날 세운 면도기로 수염을 미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곤 했다. 일찍 세상 떠난 할아버지를 대신해 동생 넷을 혼인시켜 각기 자리 잡아주고, 한밤중에 들어와 창문 밖 쇠창살을 자르던 도둑을 호통 쳐 내쫓았던 아버지는 산처럼 크고 든든 했다. 봄비가 내린다. 화단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비에 젖은 풀냄새 가 올라온다. 지나는 바람이 담벼락을 덮은 등나무 잎을 스친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연보라색 등꽃을 떠올리면 아픈 기억 하나가 따라온다.
오래전 어느 봄날,
아버지가 수술 받으셨다. 한쪽 눈 밑 광대뼈 부위를 전부 도려내는 수술이었다. 얼굴 통증이 몇 달간 계속됐음에도 고향집 근처 병원에서는 원인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서울 큰 병원에 와서야 상악암上顎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흔치 않은 암이 코 옆 상악동 깊숙이 생겨 있었다. 까다로운 부위라 수술해도 재발 가능성이 컸다. 진단결과를 알려 주던 의사가 왼쪽 눈까지 함께 수술하길 권했다. 환한 낮 시간이 끝난다고 느끼셨는지 아버지는 단박에 거절했다. 깔끔한 성품에 늘 패드로 어깨 각을 세운 양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던 아버지였다. 짐작조차 힘든 곤경을 겪을지언정 한쪽 눈이 없는 삶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수술 전날,
입원을 위해 모시고 들어가던 병원 앞에서 등나무 꽃향기를 만났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등꽃의 그윽한 향기가 우리를 감쌌다. 수술이 끝나면 이제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게 될 아버지, 마지막이라는 안타까움에 끝내 꽃향기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다 장작개비처럼 깡마른 아버지가 알코올 냄새 가득한 병실에 맥없이 누워 계셨다. 삶의 뒷면에 가려진 상처의 옹이가 그림자처럼 따라와 함께 있었다. 창밖 하늘에 머문 아버지의 막막한 눈길에 애처로운 마음이 들불 처럼 거세게 일렁거렸다. 그나마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아버지 얼굴을 맘 속에 담아두고 싶어 내내 곁을 지켰다. 아버지와 그 봄에 대한 기억은 가시지 않는 등꽃 향기로 아릿하게 남아 있다.
오래전 일이다.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우리 집 생계는 어머니가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낙찰계 계주를 하는 등 이리저리 꾸려갔다. 시장 상인 하나가 겟돈을 탄 다음 날 야반도주해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채권자 중에서 피해가 가장 큰 어머니가 그가 운영하던 여관을 맡게 됐다. 한여름을 빼고, 저녁이면 그날 손님 수를 예상해서 연탄을 갈아 넣었다. 햇수로 3년, 날마다 대여섯 개의 방을 데우는 일이 아버지 몫이었다. 그 이후로 어지럽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의사도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연탄가스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