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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6일 오후 2:02
추적 프로필: 주제 무리뉴 By John Carlin
‘무리뉴를 처음 만났을 때, 유순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Sofia Moro
주제 무리뉴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는 아닌 척 하는 거다. 그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 등장하는 악당처럼 거칠게 행동한다. 그러나 악당들도 사랑받아야 한다. 이 포르투갈인 감독은 분명 전 세계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유쾌하게도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그게 바로 무리뉴가 이번 여름 스페인에서 잉글랜드로 자리를 옮긴 이유고, 전혀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첼시 FC로 이적하며 화려함과 무조건적인 헌신을 맞바꾼 이유이다.
그는 5월, 레알 마드리드와 비참한 마지막을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잉글랜드에서 나는 사랑받았었다,” 그가 말했다. “나를 사랑한 몇 구단들이 있었다. 특히 하나.” 그리고 그가 하나의 스페셜 클럽, 첼시에 도착했을 때 두 팔을 벌려 환영해준 팬들에게 키스를 날리며 이렇게 외쳤다: “난 너희들의 일원이다!” 이후 그는 첼시 TV에 출연해 3년간 함께 한 클럽에게 “돌아와서 다시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말들에는 속뜻이 있는 법이다. 무리뉴는 첼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본인 스스로를 표현한 유명한 말이 있다. “스페셜 원”. 이제, 그는 “해피 원”이라 불리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미소 짓고, 미소 지었지만 조커의 마스크 뒤에는 실망감이 숨겨져 있었다. 사실 그는 이전 몇 주간, 몇 달 동안 그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치욕적인 조롱을 견뎌와야 했었다. 그는 유럽의 빅 클럽들에게 바람맞았고, 과거 그의 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높게 평가받을 이유들을 항상 보여주었던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지난 10년간 무리뉴는 엄청난 기록들을 세워왔다. 그는 2003년과 2004년 포르투에서 포르투갈의 챔피언이 되었고; 2005년과 2006년 첼시에서 잉글랜드의 챔피언이 되었고; 2009년과 2010년 인터 밀란에서 이탈리아의 챔피언이 되었고; 2012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스페인의 챔피언이 되었다. 그가 우승한 수많은 트로피들 중에는 축구 클럽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포상, 유러피안 챔피언스 리그의 트로피도 2번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무리뉴의 성과는 그의 주가를 순식간에 뛰게 했던 자국 포르투갈의 빅 클럽이지만 유럽의 강호들에게는 피라미와도 같았던 포르투의 2004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이후 인터 밀란에서 현시대 최고의 팀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를 4강에서 격파하며 차지한 두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 내내 그가 빅 클럽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첼시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실은 명백했으나 실제 첼시에서는 접촉도 없었을뿐더러 처음에는 첼시가 무리뉴를 원하지 않았다. 이후 그가 돌아오면서 엄청난 환대를 받았으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무리뉴가 첼시의 감독직에서 차순위였다는 명백한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더욱 환호를 했던 것이다. 첼시의 억만장자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가장 선호했던 감독은 무리뉴 숙명의 라이벌인 과거 바르셀로나 감독 펩 과르디올라였으나, 그는 첼시의 오퍼를 거절하고 그 대신 바이에른 뮌헨으로 행선지를 옮겼다.
만약 펩이 첼시를 원했다면, 무리뉴의 런던 복귀가 무산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가 첼시행을 원했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스페인의 정통한 언론이 밝힌 바에 따르면,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는데 마음을 굳혔으며, 최소한 그 자리에 대한 오퍼는 있었을 거라 전했다. 그러나 무리뉴는 유나이티드의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그들은 그 대신 적은 돈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에버튼의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를 감독직에 앉혔다. 오일 머니를 등에 업고 유럽 축구계에서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 또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그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명백한 사실은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고 싶어했다는 점과, 그가 바라는 높은 연봉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 클럽, 그리고 최고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클럽들 중에서는 첼시밖에 선택권이 없었다. 무리뉴는 깊은 상처를 받고 그가 말을 하기 보다는 능력으로서 입증해야 하는 상태에서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그가 기쁨을 이곳 저곳 뿌리고 다니는 행동이 오랫동안 가지 못할 것이고 첼시에서 다시 자신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뼛속에서부터 분노를 품고 있다 – 이것이 바로 승리를 갈구하는 원동력이 된다 – 그리고 우리가 이미 이번 시즌 첫 라운드부터 봤듯이 그는 그것을 숨길 수가 없다. 이미 그는 공공연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향해서 가시 돋친 말들을 뱉어내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를 향해서도 헐뜯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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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포르투에서. 감독 바비 롭슨의 어시스턴트 코치.
흥미로운 점은 무리뉴의 성격은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소리 지르는 책략가의 성격과 항상 일치해왔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아주 유순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FC 바르셀로나에서 당시 감독 바비 롭슨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일을 하고 있었다. 무리뉴는 2002년 바비 롭슨이 스포르팅 리즈본으로 팀을 옮기기 전까지 5년간 함께 일했으며, 초기에는 그의 통역관으로서 일했다. 1990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준결승까지 끌고 올라갔던 롭슨은 당시 어린 포르투갈인에게서 축구에 대해 분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았으며, 그를 바르셀로나로 데리고 가 무리뉴는 차츰 바르셀로나에서 본인의 입지를 넓혀갈 수 있었다.
필자는 롭슨을 알고 있었다. 그와 나의 가족간에는 연결고리가 있었고 1997년 5월 그에 관한 잡지기사를 썼다. 6개월 후 나는 바르셀로나에 갔다. 나는 롭슨, 무리뉴, 그리고 그의 부인 마틸드와 함께 일요일 점심 식사를 2번 가량 함께 했었다 – 그들은 1989년 결혼했다 – 열댓 명의 친구들도 함께 말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농담도 하고 웃으면서 대화가 흐르고 있는 동안 무리뉴가 그 3시간 동안 찍소리 하나 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테이블의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아서 좋은 기분도 아니고 나쁜 기분도 아닌 상태에서 듣고만 있었다. 내게는 그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좀 따분하고, 약간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회고해보면, 아마도 그는 그 자신 스스로를 파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원으로 생각했던 것 같고 나머지는 멍청이들이라고 여겼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리뉴는 롭슨이 떠나고 난 후에도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면서 전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임자 네덜란드 감독 루이스 반 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서 일했다. 2000년에는 무리뉴가 최초로 팀 코치로 격상이 되면서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이후 두 클럽을 거쳐 2002년 포르투의 감독이 된 후 2년 뒤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였다. 그 트로피를 들어올린 뒤 나는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무리뉴는 그가 롭슨과 반 할에게 지고 있는 빚에 대하여 겸손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무리뉴는 그들에 대해 겸손하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멘토라고 묘사했다. 롭슨으로부터는 동기 부여의 기술을 배웠으며; 반 할로부터는 섬세한 전략적인 포인트들을 배웠다. 그 때 내가 몇 년 전에 만났던 조용하고 겸손한 무리뉴는 이미 전략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나의 뇌리에 박혔다.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그보다 나은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공손하지만 긴 스페인식 점심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로 그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들을 미래에 놓여질 위대한 일들을 준비하면서 조용히 정보를 흡수하는 시간들로 여겼던 것이다.
무리뉴가 기대했던 것들은 위대한 일들임을 입증했고 그와 함께 보상 또한 많이 받았다. 그는 가난한 적이 없었고, 그의 아버지는 프로 축구선수였으며 한 때 포르투갈 국가대표의 골키퍼였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제는 첼시에서 무리뉴가 매년 버는 돈은 천만 유로에 달하고 아디다스로부터 받는 스폰서십을 더한다면 천만 유로가 넘어간다. 또한 그는 잘생긴 외모로 인해 브라운 전기 면도기 광고로 인한 생각지도 못한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축구계의 할리우드라고 여겨지는 레알 마드리드에 몸을 담았다는 사실은 그가 세계적으로 입지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마드리드에서 그는 실패했다. 그 자신 스스로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과거에는 순조롭게 상승세를 타던 무리뉴의 모터가 처음으로 덜덜거렸다는 걸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Action Images/Cordon Press
1999년 바르셀로나, 루이스 반 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서 일하다.
다국적 건설 엔지니어링 회사의 회장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인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무리뉴에게 결정타를 날려줄 사람이라는 많은 기대를 걸고 고용했다: 전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존경 받는 팀인 바르셀로나를 그들의 왕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도 많이 흘렸고, 총도 많이 쏘았지만 바르셀로나를 왕좌에서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와 동시에 바르셀로나의 적수인 과르디올라와 비교되면서 고통을 받았고, 그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때도 더 이상 가장 인기 많은 감독이 아니라는 지점에까지 이르면서 본인의 명성도 해쳤다.
2010년에서 201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3년 동안, 2012년 리그 챔피언에 등극했고 2011년 스페니쉬 컵을 우승시켰으며, 리그에서는 2위를 차지했으며,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전세계를 제패하기를 갈망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바르셀로나보다는 잘하기를 꿈꾸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면서 스페인 리그 2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내면서 무리뉴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보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무리뉴는 본인이 기대치대로 잘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실제로 그는 그랬다. 바르셀로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훨씬 더 축구를 잘하는 팀이고 그로 인해 그의 실질적인 평가는 게릴라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것이다. 그가 바르셀로나에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낸 전술 중 하나는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끊임 없이 바르셀로나의 승리는 심판의 편파판정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며 적수의 업적을 하찮게 여김으로써 그들을 심리적으로 무력화시켰다.
과르디올라와 시기가 겹쳐 재임했던 첫 번째 2년 동안은 레알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태프들에게 잔디를 길게 기르도록 내버려두고 건조하게 유지하도록 요청하여 바르셀로나의 패싱 게임을 방해하기 위해 힘을 썼다. 또한 비싼 몸값을 지닌 선수들의 재능으로 바르셀로나와 경기하려 하기 보다는 바르셀로나를 질식시키려는 전술을 개발하면서 추하게 경기했다. 마키아벨리나 리처드 3세의 전술을 축구에 도입했다. 결과가 모든 수단과 방법들을 정당화 시킨다. 아마 이런 전술을 도입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접근 방식이라는 생각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결국은 레알 마드리드의 임기 말에 바르셀로나가 20, 3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팀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페인 언론과 축구를 좋아하는 대중들의 대부분은 그의 개인적인 매너와 그의 경기 방식을 싫어했다. 스페인 스포츠 원로 언론인이자 스페인의 명성 높은 스포츠 잡지 AS의 편집장인 Alfredo Relaño는 매일 칼럼을 개제한다.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다. 지난달에, 그는 본인의 마드리드 동료들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면서 쓴 부분이 있다: “사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망했다. 도전에 응할 사람이 아니었다. 세계를 먹어 치우려 나타났고 다른 것을 먹어 치우며 끝났다.”
마드리드 언론 중에서 무리뉴에 혹독한 비판을 가한 다른 사람들처럼, Relaño는 선수들로부터 대부분 힌트를 얻었다. 무리뉴의 재임 기간 동안, 특히 마지막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탈의실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이 새어 나왔다. 심지어 어떤 신문에서는 무리뉴와 선수들이 서로 비방하는 내용의 대화까지도 기사화되었다. 논쟁은 대체로 선수들의 무리뉴가 그들을 비하한다는 감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3가지의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바르셀로나와 경기할 때 무리뉴는 선수들에게 너무나 조그만 팀이 큰 팀에 맞서 싸운다는 느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무리뉴의 레알이 역습 이외에는 확립된 경기 시스템이 없었는데, 그보다 약한 팀들을 상대할 때도 그 대목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세 번째로, 실패의 원인을 심판에게 돌려서 비난하거나 본인의 경기방식을 옹호하는 형태의 우회적이지만 정교한 대본의 형태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스페셜 원’, 첼시와의 첫 결별. 존 테리 (좌), 프랭크 램파드 (우)와 함께
그러나 선수들은 무리뉴의 선전적인 계략에 따르는 것을 종종 거절했고 정정당당함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거나 그의 전술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모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무리뉴의 반응은 – 심지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월드컵 우승 국가 스페인의 선수들인 이케르 카시야스, 세르히오 라모스 같은 선수들 마저도 – 다음 경기에 결장시키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탈의실에서의 감정을 점화시켰다.
잉글랜드의 시점으로서는 이 내부 불만들이 당황스러웠다. 첼시에서 무리뉴의 재임기간 동안은 선수들이 그에게 맹목적인 신앙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잉글랜드의 국가대표인 프랭크 램파드, 존 테리와 같은 선수들은 항상 무리뉴에 대해 숭배와 애정이 담긴 말들로 그를 표현했다. 인터 밀란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심해지는 악감정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고, 무리뉴와 레알의 스타 플레이어인 호날두와의 사이가 벌어졌다고 아주 오랫동안 의심되었던 일이 대외적으로 노출 되었을 때에도 전혀 반감이 줄어들지 않았다. 무리뉴는 호날두에 대해서 험담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그를 자극하여 이와 같이 대응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에 관해서 관심 없다. 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관해 익숙하다 … 나는 나와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에게는 침을 뱉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리뉴의 편집증적인 “세계와 맞선 우리”라는 접근 방식이 레알에서는 실패했으나 첼시에서는 놀라움을 자아냈고, 1955년 이래로 3시즌 간 2번의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던 클럽을 유럽 무대의 상위 클럽들과 경쟁시킬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했다. 왜 첼시에서는 통했고 레알에서는 그렇지 못했는가? 무리뉴는 그의 선수들이 첫째로 군인이 되기를 바랐고, 차순위가 축구선수였다. 개인적인 재능보다는 투지나 노력, 순종을 더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방식은 스페인보다는 잉글랜드의 선수들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잘 통했다. 잉글랜드에서는 파이팅 정신이 더 큰 진전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스페인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에스펙타쿨로 (쇼)”라고 불리는 기교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
무리뉴는 잉글랜드에 손상된 물건처럼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그 스스로 맨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건 아닐지라도, 그의 명성을 다시 재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를 지지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의분을 좋아하는 스페인 언론보다는 잉글랜드 언론이 그의 익살스러운 행동에 대해 더 유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서 레알의 선수들보다 더 겸손함을 가지고 있는 순응적인 첼시 선수들은 무리뉴의 전술이나 축구 경기장 밖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에 대한 지시사항들과 잘 어울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탕자가 첼시로 복귀한 후부터 투사하고자 노력해왔던 그의 이미지에 의해 희롱당해서는 안된다. 그의 태도는 아마 팀이 잘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완전히 변한, 더 젠틀한, 더 좋은 무리뉴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악명높은 눈찌르기
그가 과거에 했었던 충격적인 것들 중 일부를 반복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이 감독은 첼시에 몸을 담았던 기간 동안 Anders Frisk라는 스웨덴의 심판에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가 첼시의 적수들과 챔피언스 리그 경기 동안 한 통속이 되었다고 비난하며 조기 은퇴시켰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의지했던 감독이자, 과거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였고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자였던 호르헤 발다노를 팀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하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어 그 또한 일을 관두게 만들었으며; 바르셀로나의 어시스턴트 코치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뒤따라가 눈을 찌르고선 은폐하기 위해 재빨리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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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에서는 그런 행동들이 아직 시작이 안되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원한적으로 경쟁적인 본성이 요구하는 오랫동안 지속될 피의 복수를 위해 씨를 뿌리며 시작의 문턱에 와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무시당한 것에 분개하며 리그에서 가장 큰 라이벌이 될 그들의 빅네임 플레이어 웨인 루니를 영입하려는 열망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교란시키기 위해 프리시즌을 보냈다. 자신은 한 번도 오퍼받은 적 없었던 자리의 감독인 데이비드 모예스와 관련하여 그는 그 감독이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는데 반해 본인은 108경기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고서 본인의 적수는 유럽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여 무리뉴 본인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시즌에도 유나이티드를 향해 몇 년 그가 이끌었던 첼시가 훨씬 더 가치 있는 프리미어 리그 우승자였다고 이야기하며 대체적으로 비꼬는 모습을 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작년에 우승한 이유가 아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팀이었기 때문에 우승했다고 생각하나? 난 안 그런데,” 그가 말했다.
이 발언은 모예스가 부임하기 전인 이번 년도 5월에 언급했던 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승리했을 때, 공손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더 나은 팀이 패배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진솔하게 말했다며 그에 동의했지만, 이런 발언은 레알에서의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었다. 레알의 선수들이 훨씬 더 강했지만, 베테랑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스쿼드에서 가장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어 고전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첼시의 소속으로 선 유럽무대에서는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
숙명의 라이벌: 펩 과르디올라
결국 삐딱하게도 운명의 장난인지 8일 뒤 펩 과르디올라와 UEFA 슈퍼컵 대결에서 피할 수 없는 대면을 펼치게 되었다. 무리뉴의 11명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놀라움은 없었다. 그들은 바이에른에게 공을 내주었고, 압박 당했으며, 상대방의 뒤꿈치를 꺾거나 패널티 라인에서 털끝 차이로 역습에 당하고 말았다. 첼시도 시즌을 앞두고 있는 몸들 치고는 굉장히 잘했다. 그러나 폭력적인 플레이로 인해 본인의 선수가 퇴장 당하고 경기가 끝나고 난 뒤 그는 심판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항상 내 선수들은 펩에 대항하여 10명의 선수들로 싸운다고 UEFA에 적히지 않은 규칙이 있다,” 고 그가 불평하며 “순수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선수들은 소박맞았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복잡한 이유는 바로 심판이 법조문에 명시된 중요한 결승전의 “열정”을 망쳐서는 안된다고 언급했다. 이건 솔직하지 못했고 완전 미친 발언이었다. 그의 팀이 과르디올라와 맞붙을 때 상대를 위협하여 퇴장 당해 더 적은 인원으로 경기한다는 UEFA의 음모가 아니라 해명에 훨씬 더 가까웠다. 하지만 축구에서 모든 것이 다 공정하지는 않다. 전쟁과 같이 팔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심판이 위험 요소들을 중재시킨다.
행복하고 부드럽고 젠틀한 무리뉴 이후 한 달 이내에는 이미 마스크가 벗겨진 그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세계를 위해 평화를 유지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바리케이드가 다시 한 번 쳐진다. 외적으로는 악마의 모습을 유지하고; 내적으로는 첼시의 성곽 속에서 그가 간절히 원하던 사랑을 미친듯이 할 것이고, 팬들과 램파드, 테리 같은 늙은 전사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개새끼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본인들의 개새끼인데.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차이점은 바로 잉글랜드는 무리뉴가 사실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자가 아니라는 걸, 축구팀 감독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축구계에서는 그의 과장된 액션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봐왔던 모습대로 무대의 악당처럼 항상 행동할 것이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스페인보다 그에게 덜한 의분을 가지고, 무언의 재미와 함께 야유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잉글랜드에서 더 행복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믿으려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리뉴를 더 사랑하고, 덜 싫어하니까.
존 칼린은 “White Angels: Beckham, Real Madrid and the New Football” (블룸즈베리)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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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공공연한 사실이엇죠. 펩 뮌헨행 결정되고 나서 무리뉴 첼시 복귀가 급물살 탄 것도 사실이고요
추석 프로필로 봤음 :)
음........
좋은 기사네
상처가 됐을거라니 무리뉴 마음을 읽는 독심술이라도 썼나 ㅋㅋㅋ 그저 추측이네
갓리뉴 무간디 화이팅 !!
???
무리뉴 실망이네..
ㄷㅅㅂㄱ
재밋당~
무리뉴 도플갱어가 글을 썼나. 안비꼬는듯 비꼬기 안까는듯 까다가 대놓고 까다가 훈훈한척 마무리 했다가,
무리뉴에 대해 잘 알긴 아는 사람이네요.
무리뉴가 맨유한테 오퍼 못받아서 안달났다가 첼시와서 분풀이하는거라고 생각하네ㅋㅋㅋㅋㅋ
그나마 이런류의 기사중에서는 무리뉴를 잘 아는 사람이 쓴 칼럼같아보이네요ㅋㅋ 저쪽 계의 사람들에게도 펩이 첼시의 1순위였다 등은 공공연한 사실로 보여지고.. 실제 오퍼내용만보더라도 펩이 은퇴했긴했었지만 무리뉴보다 펩에게 먼저 다가갔으니
직접 번역하셨다면 대단한거임.. 파이낸셜타임스 주말지에 실린 기사인데 풀로 2페이지임;;;
장난아니네요... 저는 첫문장 사랑받는 무리뉴 읽고 ㅈㅈ침ㅋㅋ
이분 우수회원드려야할듯
좋은기사와 번역 감사합니다
번역 수고 하셨습니다
첼시의 1순위가 펩이었던건 기사로도 유추할수있으니
잘봤습니다!! 감사드려요
무리뉴 엄청 비꼬네 ㅋ 안티가 쓴 글인데... ㅎ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ㅎㅎㅎㅎ
정말 잘봤습니다. 정독했네요. 감사합니다.
그럴듯 하지만 결국 자기 추측
안티인듯ㅋㅋㅋ
이렇게 고퀄리티한 까기는 처음봄
번역 감사합니다
번역 재밌게 잘하셨네요ㅎ
번역 수고하셧습니다
다시와서 읽고가네요 ㅎㅎ. 번역 정말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번역 감사합니다 덕분에 재밋는 글 잘 봤네요
그러고 보니 다 읽고나서 감사의 말을 못드렸네요
잘읽었습니다^^
미리감사해요
나중에 읽어봐야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9.10 08:02
퍼거슨이랑 무리뉴랑 경기 끝나고 와인 나눠마시는 사이일 정도로 친했음
무리뉴도 맨유 좋아했고 은근 감독자리 기대했는데
2010년 전후에 감독설 뜬적도 있고
무리뉴를 깐다기 보단 애증이 느껴지는데..? 저는 이 글을 보고 더 무리뉴가 좋아졌네요. ㅎㅎ 엄청 강인해보이지만 무리뉴도 사람임. 잘 읽었습니다.^^
나중에 읽어야겟당
멋지다 ! 무리뉴가 내 삼촌이었으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