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소식] 제4차 두승산 탐사 보고: 문안공 유적지
- 일시: 2019년 7월 6일(토) 07:10~
- 장소: 감냉기(옹골) - 동골(문안공 생가 터) - 피내골 - 망제동 석불입상(대암리) - [중식] - 염수재 - 산소 - 용곡 - 망제동 석불입상 - 효열비 - 선조님 신도비 & 세천비 - 대종회관
- 참석: 1.종수 서울종친회 명예회장, 2.일동 편집위원장, 3.영식 대종회장, 4.형수 사무총장, 5.종민 병판회장, 6.동수 문안회장, 7.재갑 종친(33문안), 8.종열 종친(34문안), 9.봉환 서울종친회 감사, 10.민석 이사, 11.세환총무
- 협찬: 종수 명예회장, 봉환 감사, 민석 이사
- 1. 동골: 문헌20세 종(자) 근(자) 선조님 묘소, 문안 탄생지, 종수 명예회장 & 일동 위원장 생가 터
- 2. 피내골
- 3. 대암리 갓 전설 전라북도 향토문화재 118호(망제동 석불입상)
===>> 중식!
- 4. 염수재
- 5. 문안 희(자) 맹(자) 파조 산소
- 6. 용곡(동골) 문안 생가 터, 종수 명예회장 생가 터, 일동 위원장 생가 터
- 7. 망제동(대암리) 미륵 석불입상(문안공 갓 전설)
- 8. 효열비
- 9. 선조님 신도비 & 세천비 - 대종회관
■ 흑암리 설서 종중 지나 -> 상흑암리 염수재 오후 탐사
□ 의정부에서 05:00시 신새벽에 출발한 봉환 감사께서 산본에서 민석 이사와 조우하고.. 부천에서 전철 첫차를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두승산 탐사' 여행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06:50 종수 명예회장님과 일동 편집위원장님을 만나 귀한 문안공 자료를 건네받고..
07:10 정읍행 중앙고속버스 탑승. 문안공 유적지를 답사하는 제4차 두승산 탐사를 시작합니다. 문안공파 충주문중 재석 총무이사(38문안)께서 갑작스런 회사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해 무척 아쉽지만.. 충주 유적지 답사는 다음을 기약하고.. 동골 20세 종(자) 근(자) 선조님 묘소와 피내골 그리고 대암리(망제동) 석불입상 답사; 오후 염수재 - 문안공파 산소 - 동골 문안공 생가 터 - 효열비 - 대종회관(천년사 기획회의) 탐사 일정을 두 분과 상의하여 정합니다.
08:45 예정보다 15분 연착하여 정안휴계소 도착. 1시간 넘게 기다린 선발대와 합류합니다.
10:30 정읍역 인근 서울공구마트에서 영식 대종회장 등 6분의 종친과 합류하여 3대의 승용차로 문안공 유적지 답사를 시작합니다.
1. 고부군 덕천면 용전마을에 위치한 20세 종(자) 근(자) 선조님 묘소. 희맹(문헌21세) 문안공께서 3년의 시묘를 하셨던 곳입니다.
2. 유인전주이씨효열비. ㅇㅇ세 재민 선조님의 부인이신 효부로 정려를 받으셨습니다.
3. 문안공파 가족묘지
4. 동곡중앙길 70 동곡노인당. 이름하여 '동골', 고부이씨 문안공파 세거지로 마을 전체가 우리 이문의 집성촌이었던 마을이 지금은 모두 경향 각지로 떠난 마을..
5. 수령 250년이 넘는 동골 마을의 정자나무인 팽나무. 동수 문안종회장(35문안)의 증조부 재식(32문안) 선조께서 심으신 전라북도 문화재입니다.
6. 언덕 너머 천곡마을(시암실, 시암재)이 보입니다.
7. 동골마을 우물터.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터만 남았습니다.
8. 대나무가 우거진 문안공 탄생지.
9. 문안공 생가터 옆에 위치한 종수 명예회장 생가터. 명예회장께서 11살 때까지 살으셨고, 정읍으로 이사하여 19살 때까지 사시다가 6.25가 끝나던 1954년에 상경하셨다 합니다.
10. 피내골. 일제 잔당들로부터 몰살당한 우리 선조님들의 피가 들판을 이루어 '이사들'로도 불린 곳입니다. 일제에 항거한 우리 선조들의 의병 봉기가 사전에 발견되어 몰살당했다는 곳.. 일설로는 당시 고부이씨 대종회에서 각파 종친 문중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일본에 항거하는 반란을 도모한다는 빌미로 몰살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우리 이문 전체의 '똑똑한 선조님들은 이곳에서 모두 돌아가시고 잔챙이들만 남았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사진의 하얀 ㅇㅇ꽃들이 언덕 숲으로부터 천( )을 이룬 골짜기가 곧 우리 충열사 선조님들의 피로 천을 이룬 피내보입니다. 이 피내골을 깊이 파보면 기왓장이 나온다 합니다.
□ 상흑 염수재..
15세 중시조 궐(闕)의 아들 16세 서(瑞)는 진사요 여판삼사(麗判三司)인데, 그의 차남 관(寬)은 판도판서(版圖判書)이며, 그의 아들 18세 익장(益長)은 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이었고, 그의 아들은 19세 윤명(允明)으로 승지(承旨)였다.
그의 아들 20세 종근(從根)은 가선대부 병조판서로 세 아들을 두셨는데 차남 21세 희맹(希孟)은 경기 충청 전라 감찰사를 역임하고 사후 예조판서로 추증되어 문안(文案)의 시호를 받았고, 문안공파조(文案公派朝)가 되었다.
문안공파는 충청북도 충주와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동곡리에 세거하였으며 평안북도 영유(永柔), 양덕(陽德), 영변(寧邊)에도 널리 퍼져 산다고 한다. 전북 정읍군 소성면 흑암리 시람산 아래 염수재(念修齎, 정읍시 현암1길 162[흑암동])가 있고, 충북 충주시 소태면에 모선재(慕先齋, 소태면 별묘길 21-14)가 있다.
한편 20세 종근의 삼남 21세 희삼(希參)은 진원현감(珍原縣監)이며, 진원공파조(珍原公派朝)가 되었다(이준, '아름다운 가문 고부이씨'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