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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카페 게시글
광주사태의 진실탐구마당 칼럼 12.12-5.18 재판의 패자는 518 단체들
역사학도 추천 0 조회 135 08.06.08 08:47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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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6.09 11:38

    첫댓글 님께서는 힌츠펜터의 알리바이를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 그가 5-20일 오후부터 취재하다가 21일 아침에 광주를 떠났다는)-- 님의 주장에 대해서

  • 작성자 08.06.09 11:54

    광주여 무등산님, 혹시 힌츠페터가 5월 21일 아침 광주를 떠났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시지요? KBS의 "푸른 눈의 목격자" 동영상 전체를 보셨는지요? 보시면 위의 동영상 다음 장면이 힌츠펜터 일행이 빠르게 광주를 빠져나가 서울에서 비행기타고 일본으로 가는 장면입니다. 26일 오후에야 다시 광주로 왔습니다. 힌츠펜터기 5월 21일 오전 11시 이후부터는 광주에 없었다는 사실은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518단체에 문의하여 확인해 보세요. 만약 끝까지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라면 시인할 것입니다.

  • 08.06.16 05:45

    이곳에 지금 제가 댓글을 다는 내용은 상기 논의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역사학도의 거짓말은 제가 이글 본문 바로밑에 새로이 덧글로 본문을 달아놓았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라구요. 당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글 본문의 첫번째 동영상을 봐달라는 겁니다. 그 동영상을 보시면 역사학도가 얼마나 가증스럽게 조작을 해대고 있는가를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첫번째 동영상은 KBS일요스페셜 "푸른눈의 목격자"라는 프로그램의 일부분입니다. 역사학도가 따온 부분은 힌츠페터가 5월 20일 광주에서 촬영한 부분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1분 54초쯤에서 갑지기 5월 21일 오후 장면으로 건너뛰는군요.

  • 08.06.16 05:14

    5월 20일 장면과 5월 21일 오후 장면을 이어붙여 놓고 마치 5월 20일부터 시민들이 총기를 들고 있었던양 사기를 치는 후안무치한 역사학도가 불쌍하게 느껴지네요. 다음 검색창에 "푸른눈의 목격자"를 치시고 엔터 누르시면 제일 상위에 제시되는 곳에 들어가시면 "푸른눈의 목격자" 전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학도가 얼마나 어이없게 속이려고 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08.06.09 15:44

    역사학도님 님의 주장이 맞다면 5-18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당연히 도출됩니다.. 공수대가 발포하기전 부터 그러니까 20일 이후부터 시민군이 무장한게 힌츠펜터의 동영상에 의해 확실히 증명된다면 말입니다... 관련 증빙기록( 힌츠펜터의 알리바이를 확실히 해줄 확실한 증거)를 올려 주세요...

  • 08.06.09 15:45

    확실한 증거를 제시못하면 역사학도님의 논리는 100 % 성립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 08.06.09 16:25

    저만 그런 것인지 요즘 다음 카페 접속하려면 수십 분 걸리네요. 저는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무기가 나주경찰서에서 탈취된 날자는 5월 19일이며, 5월 20일 시민군에게 지급되었습니다. 드라마 5공화국에서도 5월 20일에 광주 시내에 총기 5천정이 돌아다닌다는 대사가 나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기고가 털린 경찰서 기록에는 5월 19일로 기록되어 있고, 31사 상황병은 보고일과 실제 탈취일을 혼동하여 5월 20일로 기록하였는데, 518측에서는 5월 21일이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김대중이 (나주경찰서 금성동 파출소 ) 앞 인도에 세워진'민중항쟁 사적비 1호'가 증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 작성자 08.06.09 17:08

    당시 인구 80만의 광주 시민 중 대다수는 21일에야 뭔가 심상치 않다 느끼고, 시민군이 경찰을 지배하며 도청 궐기대회가 소집되는 5월 22일 이후의 해방구 시절에야 비로서 광주사태를 몸으로 겪기 시작하였지만 나주에서는 시민군이 경찰서에서 무기를, 그리고 주민에게서 김밥을 탈취해간 19일부터 철시하였습니다. 지금도 나주 분들 중에는 5월 19일 낳모르는 청년들이 몰려와 무기, 탄약 등을 약탈해갔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날 이 5월 19일이었다는 당시 신문사 나주지사 기자 증언은 그날 나주경찰서 무기 탈취후 영암으로 가 무기탈취한 후 남긴 항쟁사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물론, 영암항쟁사는 518측 자료입니다.

  • 작성자 08.06.09 19:41

    http://www.friendsofliberty.com/modules.php?name=News&file=article&sid=612 에 가시면 KBS가 나테이션을 위해 인용한 힌츠펜터의 기록 원문이 있습니다. 보시면 KBS 나레이션이 518측에 불리한 것은 쏙 빼놓았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힌츠펜터의 광주방문기 한국 사이트들도 있지만 여기 원본에 보시면 한국 사이트들에서 빠뜨린 내용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월 21일 무장시민군이 시민군 사령부로 사용하기 위해 전남도청을 점령한 장면. 힌츠펜터는 전투 총성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도청이 시민군에 점령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언비어 대로 오천 명이 죽었거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처럼 집단 발포가 있었다면 못들었을리가

  • 작성자 08.06.09 17:14

    힌츠펜터가 5월 20일 아침 광주를 떠나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한국을 빠져나갔기 때문에 5월 26일 오후 다시 한국에 오기 전까지에는 광주는커녕 한국에도 있지 않았고, 광주사태를 목격한 적도 없음은 명명백백한 사실입니다.

  • 작성자 08.06.09 19:54

    이준형님더러 힌츠펜터의 입국일자와 출국일자를 알아보아 달라고 하시면 전남대 518연구소같은 곳에 문의하여 정확하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이준형님도 힌츠펜터의 영상물에 대해서는 해박하게 알고 계시니깐 그분에게 물어 보세요.

  • 08.06.16 05:35

    우선 제가 반박한 아래 새 글을 보시구요. 이 곳 댓글에는 간단하게만 적겠습니다. 역사학도가 확실한 증거라고 드는게 드라마 5공화국 대사라는게 웃기고, 그것 또한 거짓말이 확실합니다. 또한 역사학도는 31사단 상황병이 날짜를 혼동했네 마네 하는 개소리를 하는데 31사단 기록에는 19일은 물론 20일에도 무기탈취 사실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무기탈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전교사 작전상황일지"에 있습니다. 거기에 21일 새벽 2시 세무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칼빈 17정이 탈취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단, 실탄은 그곳에서 보관하지 않고 31사단에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2군 계엄상황 일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08.06.16 06:39

    즉, 21일 새벽에 탈취된 칼빈 17정에는 실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역사학도가 나주경찰서 무기고에서 총과 실탄이 최초 피탈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맞습니다. 다만, 육군본부가 81년에 80년 5월 당시의 모든 부대 기록을 토대로 작성한 "소요진압과 교훈"이라는 책에 나주경찰서는 21일 오후 2시 30분경 무기고 피탈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민중항쟁사적비가 19일 무기 탈취를 증언하고 있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는데 민중항쟁사적비 내용 그대로 옮겨드립니다.

  • 08.06.16 05:41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시민학살 사실이 알려지자 이에 격분한 다수의 시민들이 군용차량을 이용하여 무기고에 보관 중이던 M1소총, 칼빈소총 그리고 다수의 수류탄등을 획득하여 무장하고 획득한 무기의 상당수를 광주로 이송하여 광주항쟁에 큰 도움을 주었던 곳이다."===>이것이 비문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19일이 아니라 21일이라고 명백히 젹혀 있습니다. 또한 동아일보사 발간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08.06.16 05:43

    "1980년 5월 20일 이전에 나주 무기고 탈취는 없었다는 전남 경찰국 주상섭 통신과장 증언" 전남 경찰국 주상섭 통신과장을 만나 그때의 상황을 들어보았다. "20일 밤 시위대원의 무기탈취 사건은 없었습니다. 특히 나주에서 있었다는 것은 그때 통신을 맡고 있었던 나로서는 전연 알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당시 나주경찰서장도 광주에 와 있었는데 서장이 모를리 있겠습니까? 만약 있었다면 나주경찰서뿐 아니라 경찰국 전체가 비상이 걸릴 만큼 큰 사건이었지요. <== 이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조금 파악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해드린 내용들은 이미 제가 예전에 이 곳 까페에 글로 다 남긴 내용들입니다.

  • 작성자 08.06.16 05:57

    비문 내용은 소설이고, 5월 21일이 처음이 아니라, 19일에 나주에서 1차로 무기 탈취 사건이 있었기에 김대중이 세운 그 기념비가 오히려 5월 19일의 무기 탈취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날자를 21일로 적다 보니 비문의 내용은 소설입니다. (1) 5월 20일 시민군 버스에 경찰 4명이 깔려죽은 사건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2) 5월 21일 도청광장 충돌 때 죽은 시민군 4명 모두 시민군 총기 오발 사고로 죽었습니다 [한 명은 군인들을 시민군 장갑차로 깔아죽이다가 일어난 사고로] (3) 21일에도 나주로 무기를 탈취하러 간 폭도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그날의 도청 충돌 때 광주에 없었습니다.

  • 작성자 08.06.16 06:04

    그 무장폭도들은 계엄군이 광주에서 철수한 후에야 도청에 도착하였습니다. 더구나, 21일 그 폭도들은 도청광장 충돌이 있기 전에 나주로 출발했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대로라면 시민군 대장 박남선씨가 도청광장에서 시민군을 지휘했어야 하는데, 그는 계엄군이 광주에서 철수한 후에야, 즉 그날 저녁 늦게서야 도청에 도착하였습니다.

  • 08.06.16 06:13

    세워진'민중항쟁 사적비 1호'가 증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라고 역사학도 니 입으로 씨부려놓고 이제 그게 소설이라고? 아침부터 가지가지로 웃겨주시는구나. 그리고 뒤에 왠 헛소리를 장황하게 써놓았니? 왜 거짓말한 것이 들키니까 당황스럽니?

  • 08.06.15 19:03

    역사학도야 진짜 이토록 뻔뻔하게 거짓말을 줄창할 수 있는 너의 뻔뻔함이 부럽구나. 니가 나에게 물어보라며 글을 남겼으니 그 부탁을 들어주마. 니가 거짓말 한 사건에 대해 또 이야기를 이곳에서 다시 해야겠구나. 밑에 새로 댓글로 니가 전에 했던 거짓말에 대해 다시 써줄테니 눈 씻고 잘 쳐보세요. 귀찮기는 하다만 니가 백번 거짓말을 하면 백번 내가 바로 잡아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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