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양대 산맥이다. 두 나라에선 한류 열풍이 뜨겁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대중 연예인 위주의 ‘문화 한류’가 강세라면 카자흐스탄에서는 한국식 온돌 아파트 등 ‘경제 한류’가 인기다. 또 두 나라 모두 세계적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방식은 다르다. 카자흐스탄은 개방 속도를 줄이고, 우즈베키스탄은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현지 모습을 전한다.
3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고려인문화협회에 개설된 한글학교에서 우즈베키스탄 10학년 여학생들이 한글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 [타슈켄트=강병철 기자]
우즈베크 드라마 주몽·바람의 화원 인기에 한글 열풍
3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고려인문화협회에 개설된 한글학교. 우즈베키스탄 10학년 여학생(고2)인 모히체히바, 틸도와, 나조카트, 마르조카가 열심히 한글 시험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한국의 초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를 읽은 뒤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쓰는 시험이었다. 네 명은 거침없이 빈칸을 채웠다.
리마리나(25) 교사는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 고려인 3·4세보다 우즈베크어를 하는 우즈베키스탄인들이 더 빨리 한글을 배운다”며 “러시아어는 ‘주어+술어+목적어’ 구조로 한글과 어순이 다르지만 우즈베크어는 한글처럼 ‘주어+목적어+술어’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글을 배우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네 명은 동시에 “한국 드라마를 원어로 보고 싶어서”라며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 ‘주몽’의 주인공 송일국을 만나 한국어로 얘기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불어닥친 것은 한국 드라마 때문이다. 방송 콘텐트가 부족한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독립 이후 꾸준히 한국 드라마를 방영해 왔다.
‘겨울연가’ ‘대장금’ 열풍에 이어 한동안 뜸했던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지난해 ‘주몽’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우즈베키스탄 국영방송은 주몽이 워낙 인기가 높자 올해 다시 재방영하고 있다. 올해는 문근영 주연의 ‘바람의 화원’이 서서히 인기를 모으며 새로운 한류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의 이명숙 우즈베키스탄 통신원은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남자 아이 이름을 ‘주몽’이라고 지을 만큼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라며 “한류를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는 ‘주몽’의 송일국,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처럼 대형 스타의 방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에서도 중앙아시아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자밀라 에브둘레바와 구잘 투르수노바 등 우즈베키스탄 출신 연예인이 한국 방송가에서 활동하고 있고, 광고에도 출연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연예인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지난달에는 한국의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대표가 타슈켄트를 1주일간 방문했다. 그는 ‘제2의 자밀라’와 ‘제2의 구잘’을 찾기 위해 현지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고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식당과 클럽에 돌아다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정숙 책임연구원은 “한국·중앙아시아 간 문화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쌍방향 교류가 중요하다”며 “한류 열풍에만 신경 쓰지 말고 중앙아시아 문화를 한국에 적극 소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크로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다.
현지의 한국 여행사 스카이114의 조상식 대표는 “그동안 중앙아시아 관광은 골프 관광객이 절반이 넘었지만 최근에는 실크로드 관광이 90%를 웃돈다”고 말했다.
타슈켄트·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강병철 기자
카자흐 현지 금융사들, 한국식 투자 기법에 관심
지난달 27일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의 대통령 공원 옆. 한국 건설업체 우림건설의 애플타운 모델하우스가 있는 곳이다. 모델하우스 안에선 고급 BMW 7시리즈를 타고 온 30대 부부가 애플타운이 선보인 한국형 난방시스템인 온돌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알렉세이예프 부부는 “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때문에 알마티 시민들은 난방에 관심이 많다”며 “최근 카자흐스탄 젊은이의 꿈은 독일 BMW 자동차를 타고 온돌이 있는 한국식 최첨단 아파트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 아스타나에서도 한국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가 인기다. 이곳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대통령궁 옆에 있는 동일하이빌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주차장을 모두 지하에 만들어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아스타나의 혹한을 견딜 수 있게 했다.
금융 분야에서도 한류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말 알마티에 문을 연 신한은행 카자흐스탄 법인은 고객에게 대여금고를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카자흐스탄 은행들은 돈을 맡기고, 돈을 빌려주는 단순한 은행의 역할밖에 못 했기 때문이다.
한국식 증권 투자 기법에 대해서도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관심이 많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다른 카자흐스탄 증권사들의 펀드 평가액이 투자액의 20~25%로 떨어졌지만, 한화증권의 합작법인 세브리버스캐피탈(SRC)의 수익률은 비교적 선방했기 때문이다. 윤영호 SRC 대표는 “한국식 투자 기법을 배우기 위해 카자흐스탄 증권사들의 자료 요청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