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자병차 속의 숫자보이차
‘숫자보이차’의 어려움은 상품포장지 그 어느 곳에도 숫자에 관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지 않는데 있다. 사실 숫자보이차의 탄생은 해외 시장인 홍콩을 겨냥한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차의 포장은 357g×7편을 한 통에 담아, 12통을 대광주리에 담는 것이 전통포장법이다. 이때 상품의 출처를 알리는 전지를 만들어 대광주리에 한 장 넣은 것이 당시 유통의 관리 형태였다. 보이차 시장에서 이 전지를 가리켜 지비(支飛)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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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지비 내용. | |
지비(支飛)에는 차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데, 상품명칭, 출고공장, 중량 특히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소위 칠자병차의 레시피 즉 7572, 7542 등과 같은 문구가 바로 이 ‘매두'란에 적혀있다. ‘매두’라는 단어는 중국의 표준어가 아닌 홍콩, 광동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 즉 영어인 ‘Mark’의 홍콩식 표현이다. 지비에서 매두(Mark) 문자의 삽입은 칠자병차의 출생이 홍콩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였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칠자병차에 관한 정보는 결국 광주리를 통째로 구매하지 않는 한 개별포장으로 된 보이차의 포장지만으로는 그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는 차에 관한 정보는 도매상들에게만 알려줄 뿐 소비자들은 상인들의 입에만 의지하는 이상한 유통구조로 변질되어 결국 ‘짝퉁 보이차’가 창궐하는데 일조하게 된 것이다.
보이차의 정보 부재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일부 보이차 애호가들, 특히 타이완의 마니아들이 칠자병차의 포장지들을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수 십 종에 달하는 포장지의 재질, 인쇄명도, 글자의 차이점 등을 정리해 이를 토대로 소비자들에게 칠자병차의 진위에 관한 판별법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부분은 아래와 같다.
칠자병차의 포장지에는 둥근 원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 영어병기)’ 중앙에는 ‘팔중차(八中茶)’ 로고 그리고 하단에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中國土産畜産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 영어병기)’ 등의 글자가 적혀 있다. 인쇄에서 판별할 수 있는 자료로는 상단 ‘운남칠자병차’에서의 ‘운(雲)’자와 ‘차(茶)’자의 상이점, 하단 ‘중국토산’부분에서 인쇄된 ‘중(中)’자의 크기 그리고 ‘팔중차’ 로고의 ‘차(茶)’자의 색상, 내비(內飛)에 인쇄된 ‘서쌍판납태족자치주맹해차창출품’라는 문구에서 ‘주(州)’자와 ‘출(出)’자의 차이점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내표(內票)의 대소(大小) 크기와 ‘인진배방(認眞配方)’라는 문구를 특별히 추가하여 편집한 내표 등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차성(茶聖)이라 불리는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무릇 차의 좋고 나쁨은 오직 구전비결에 있다(茶之臧否存於口訣).” 그는 750년대에 “표피적이 아닌 차의 장ㆍ단점을 함께 논하고 감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차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이에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구전비결에 따라 부단히 지식을 연마해야만 진정한 차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전한 바가 있다.
보이차의 지식과 정보를 공부하는데 있어 첩경 즉 지름길은 없다. 진정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부단히 보이차의 과학, 역사를 연마 그리고 연구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말은 보이차의 진위 판별법에 있어 포장지에서 나타난 여러 사안들은 결국 곁가지에 불과한 참고사항이라는 뜻이다. 육우의 일침은 오늘날의 보이차에도 유효하며 보이차 애호가들에게 많은 것을 사색케 하는 대목이다.
현대보이차의 정의
보이차의 명성이 1990년대 해외에서 떠오르자 생산지인 중국 운남에서도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참여 아래 학자들이 움직였고 보이차의 역사, 과학들이 속속 밝혀진 것이 20세기 말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짝퉁 보이차’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보이차의 명칭에 대한 왜곡 또는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2002중국보이차국제학술연토회’에서 각국 차전문가들이 모여 “보이차는 세 가지 선결 조건들이 뒤따라야만 ‘보이차’라 부를 수가 있다”는 결론을 지었다. 즉 보이차에 관한 지역, 원료 그리고 가공법에 관한 정의다.
1) 운남지역(雲南地域)
보이차의 찻잎 원료는 반드시 운남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어야만 한다. 보이차의 주요 산지는 오늘날 서쌍판납(西雙版納)과 사모지구(思茅地區)에 있으며 특히 란창강(瀾滄江) 유역이 그 중심지이다. 서쌍판납의 차밭은 란창강(瀾滄江) 양쪽의 고산구릉(高山丘陵)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은 찻잎 속의 화학물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는 보이차의 역사과 정통의 맥이 바로 운남지역에서 비롯되는 것을 시사한다.
란창강 유역의 대엽종 찻잎.
2) 운남대엽종(雲南大葉種)
운남차과학연구소(雲南茶科學硏究所)에서 운남대엽종과 소엽종의 내용물의 함량에 대해 비교 측정한 자료에 의하면 대엽종에서의 차침출물(茶浸出物)은 소엽종보다 3%가 높으며, 특히 폴리페놀(Polyphenol)은 소엽종보다 5~7%, 카테킨(catechins)의 측정은 소엽종보다 30~60% 높게 나타났다. 이는 곧 대엽종으로 만든 보이차가 오래 묵으면 묵을수록 묵은 향기가 배어날 수 있는 원인으로 규명되었다.
3)쇄청모차
보이차의 1차 공정은 녹차와 같다. 단 건조방법은 일광건조를 통해 말린 쇄청차이어야 한다. 보이차의 원료인 쇄청모차는 다른 녹차와는 달리 함수량이 일반표준보다 높아 약 9~12%에 달한다. 쇄청모차는 장시간의 햇볕을 이용한 건조로 인해 녹차의 클로로필(엽록소) 성분 중의 마그네슘 이온이 떨어져 페오피틴으로 변하게 되어 엽색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또한 10% 이상의 높은 함수량은 산화 효소들이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결과가 초래되어 보이차의 후발효(後醱酵) 중 성분변화가 일어나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곧 찻잎이 산화되지 않도록 단시간 내에 건조품으로 만들어낸 초청법(炒靑法)이나 홍청법(烘靑法)에서 얻어질 수 없는 효과이기에 보이차의 건조는 필히 햇볕을 통해야만 진정한 보이차 맛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쇄청차는 엄밀히 말해 다른 녹차와는 달리 찻잎의 상당부분이 산화되어 있는 녹차이다. 물론 쇄청모차는 직접 우려 마실 수도 있으나, 녹차로서의 상품가치가 별로 없기에 주로 정제 후 재가공하여 1차적으로 미생물을 통해 만든 숙차(熟茶)를 만들거나 혹은 재차 압제하여 숙병(熟餠)으로 만들다. 또는 쇄청차를 원료로 하여 곧 바로 긴압차인 청병(靑餠)을 만들어 저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론은 소엽종 찻잎 원료로는 보이차를 만들 수 없으며, 운남 이외 지역의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는 역시 ‘짝퉁 보이차’로 분류되는 것이다. 특히 건조부분에 있어 햇볕 아닌 방법으로 찻잎을 건조할 경우 보이차의 후발효 작용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에 보이차의 건조는 필히 햇볕을 통해야만 훗날 바른 보이차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의 허식 ①
아프리카에서 재배한 보이차도 보이차일까?
맹해 교목형 차나무.
디지털 혁명으로 시작되는 21세기를 가리켜 ‘지식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세계는 정보중심 세계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가정과 직장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해 손쉽게 지식을 접하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인터넷 정보의 확산은 접근성이 쉬워졌다는 순기능과 함게, 난무하는 악식(惡識)과 허식(虛識)이라는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보이차에 관한 지식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보이차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 그 정보는 어느 정도 믿을만하며 깊이가 있는가?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을 정보라 믿고 자신의 판단을 위태롭게 만든다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2002년에 제정된 보이차의 정의에 대한 키워드는 산지, 원료, 가공법이다. 산지에 대해 누군가가 “운남 대엽종 종자를 아프리카나 미주에서 재배한다면 그것은 보이차가 아니란 말인가?”되묻곤 한다. 이에 대해 필자의 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왜 안 된다는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운남 지역은 차나무의 원산지로 지금도 야생 차나무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다. 이곳은 빙하기일 때도 생태계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을 정도도 야생식물들이 원시상태로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우리가 보이는 차나무의 형태는 교목형, 반교목 그리고 관목형으로 나뉘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종류의 차나무들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으나 연구에 따르면 교목형이든 관목형이든 차나무의 세포 속에는 모두 30개의 염색체가 있다. 이는 곧 두 가지 형태의 차나무일지라도 하나의 종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학문적으로 차나무 형태 중 교목은 원시형, 관목은 진화형, 반교목은 과도형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목형 차나무들은 모두 교목형에서부터 진화된 차나무라는 것이다.
위도가 낮은 남쪽 열대지방에서는 잎으로 전달된 아미노산 성분이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로 전환되기 때문에, 감칠맛이 부족하고 떫은맛이 강하다. 이러한 원료로 녹차를 만들 경우 품질이 떨어지기에 발효차를 만드는 것이 적합하다. 이와 반대로 온도가 낮은 북쪽 한랭지역의 차나무는 질소화합물의 합성과 축적작용이 유리하기에 아미노산, 카페인등 질소함유물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에 차나무의 뿌리에서 흡수된 아미노산 성분이 줄기를 통해 잎에서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어 차의 맛 중 감칠맛이 많아져 녹차를 만드는데 적합하다.
연구에 따르면 같은 품종의 차나무일지라도 위도에 따라 화학성분의 함량도 차이가 난다. 이런 시험이 행해진 적이 있다. 운남성 맹해에서 자란 저엽종을 절강성 항주에 심었더니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사(凍死)했다. 그러나 주위의 사천(四川)지역에서 일정 기간 심어 추위에 대한 내성을 기른 후 다시 항주에 옮겨 심었더니 동사되지는 않았으나 나무와 잎들이 왜소화(矮小化)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같은 뿌리의 차나무에서 자란 찻잎일지라도 맹해와 항주에서 자란 찻잎의 성분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위도가 낮은 남쪽 맹해의 찻잎에서는 폴리페놀, 카테킨 등 내용물들이 항주에 비해 월등이 높았고, 이와 반대로 아미노산과 카페인 등 질소화합물들의 함유량은 항주의 찻잎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보이차의 원료로는 맹해의 찻잎이 적합한 반면 항주의 찻잎은 녹차를 만드는데 적합하다는 과학적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이 왜 같은 차나무일지라도 다른 지역에서 자란 찻잎으로 보이차를 만들 수 없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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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병은 녹차인가?
햇볕에 말리는 쇄청모차.
필자가 다니던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면 보이차에 관한 수업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국차는 보이차에 관한 것 일색이다. 지식은 양식(良識), 곧 좋은 지식과 나쁜 지식인 악식(惡識) 그리고 좋은 지식처럼 위장하는 허식(虛識)으로 나눠진다. 보이차는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넘치고 있는 보이차에 관한 악식과 허식들이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일정한 장애로 작동하고 있기에 보이차에 관한 지식은 더욱 혼돈한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21세기 초 전통가공법으로 만든 보이청병의 재등장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학문적으로 청병을 녹차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병은 녹차인가? 이에 대한 이해의 키워드는 살청(殺靑), 쇄청, 발효(醱酵)라는 용어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누군가 보이차의 산지, 원료, 가공 등 3가지의 정의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를 물어본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가공법인 ‘쇄청법’을 꼽을 것이다. 살청과 쇄청은 모두 차의 가공법의 하나이나 별개의 가공과정에서 이루어진 각기 다른 공정이다.
녹차로 예를 든다면, 첫 번째 덖음 즉 고온을 통해 찻잎 속에 산화효소의 활성을 파괴하여 발효를 억제하는 공정을 ‘살청’이라 한다. 그리고 살청 덖음 후의 건조방법 중에서 찻잎을 솥으로 건조시킨 것을 ‘초청(炒靑)’, 건조기계를 통해 말린 것을 ‘홍청(烘靑)’, 햇볕을 통해 건조한 것을 ‘쇄청’이라 한다. ''쇄''는 햇볕에 쬐어 말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학문적으로 차의 초기가공에서 생산된 반제품을 가리켜 모차(毛茶)라고 한다. 이는 곧 한국에서 말하는 초벌차이기도 하다. 녹차계열에 속해있는 보이차의 초벌차가 햇볕을 통해 말렸기에 녹차건조법의 용어인 ‘쇄청모차’를 쓴다. 그렇다면 보이숙차가 후발효차(後醱酵茶)라면 보이생차 즉 청병은 녹차인가? 이에에 대한 필자의 답은 아니다 쪽에 서있다.
이러한 학문과 배치되는 대답의 근저에는 지속적으로 개발된 신차(新茶)의 등장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차에 관한 현대용어는 20세기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용어들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또한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용어들은 그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천 ㆍ확장되어 전혀 다른 개념으로 새로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보이차가 등장함으로써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학문적으로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용어들이 상당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쇄청’과 ‘발효’에 관한 용어다.
오늘날 차의 용어개념에 관한 정의는 60년대 중국 제차학(製茶學)의 최고 권위자였던 안회농업대학(安徽農業大學) 차학과(茶學科) 故 첸촨(陳椽) 교수에 의해 최초로 정립됐다. 그의 학문적 논거에 따라 제작된 <제차학(製茶學)> 교과서에서는 쇄청 건조법을 녹차의 가공법으로 귀속하고 있으며, 이 교과서에서는 ‘햇볕을 통해 말린 쇄청모차는 모두 악퇴(渥堆)라는 공법을 거쳐 만든 후발효차인 흑차(黑茶)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는 정의를 두고 있다.
그 동안 쇄청녹차는 녹차의 일종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의 유통되지 못하고 대체로 반제품인 모차 즉 초벌차인 상태로 거래되고 있는 것은, 쇄청녹차의 대부분이 흑차의 원료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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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청(殺靑)은 몇 번 할까
일반인들이 가장 많은 혼란을 느끼는 용어가 바로 ‘살청(殺靑)’이라는 것이다.
차나무의 신선한 찻잎을 가리켜 선엽(鮮葉)이라고 한다. 찻잎을 차나무에서 채취하는 순간 선엽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기 시작한다. 산화효소의 활성을 잃게 하는 동시에 산화의 진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가공을 통해 단시간 내에 선엽의 온도를 80℃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학문적으로 ‘살청’이라고 한다.
녹차를 처음 덖을 때 즉 1차 덖음에서 왜 솥의 온도가 뜨거워야 하는 지에 대한 해답을 바로 살청이라는 화학반응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선엽의 산화효소는 열에 의해 일으키는 변성온도(變性溫度)가 80℃다. 이는 곧 ‘살청’을 하는데 있어 선엽의 온도 즉 엽온(葉溫)을 최저 80℃ 이상으로 잡아야만 단시간 내에 산화효소의 활성을 잃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살청은 한번이면 그 효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 녹차의 살청은 최초의 덖음 즉 고온을 통한 첫 번째 덖음이 살청공정이며 이후 행하는 저온을 통한 덖음은 횟수와 관계없이 모두 건조공정에 해당된다.
차의 분류에 있어 살청의 유무 또는 살청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발효(산화)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첫 번째 가공공정을 살청으로 택한 것이 녹차며 이를 비발효차(非醱酵茶)라고 한다. 반발효차(半醱酵茶)로 불리는 오룡차는 일정한 발효를 거친 선엽을 살청공정을 가해 산화를 중지시켜 만든 차를 말하며, 우리가 흔히 보는 15%~60%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바로 선엽을 몇 퍼센트의 발효상태에서 살청을 했느냐를 알려주는 것이다. 오룡차 중의 경발효차(輕醱酵茶), 중발효차(中醱酵茶), 중발효차(重醱酵茶)라는 용어가 바로 이러한 논거에 따라 붙여진 용어다. 완전한 발효를 통해 맛을 내는 홍차는 산화효소의 도움이 절대적이기에 살청공정을 행하지 않으며, 때문에 홍차를 완전발효차라고 한다.
그럼 선엽의 산화효소를 중지시키는 살청공정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을까? 대체로 살청의 방식은 덖어서 하는 것과 증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증기를 통한 살청방식은 주로 녹차에 적용되는 반면 덖음 방식의 살청은 모든 종류의 차에 이용되고 있다. 덖음 방식의 살청에는 솥에서 덖는 수제식과 로울링 방식인 기계식이 있다.
살청을 증기방식을 통해 만든 녹차를 증청녹차(蒸靑綠茶)라고 부르는 반면 살청을 덖음 방식을 통해 만든 녹차는 건조방법에 따라 이름 또한 달리한다. 예를 들어 살청과 건조의 공정을 모두 솥에서 행한 것은 ‘초청녹차(炒靑綠茶)’라 하며, 건조공정만을 기계를 통해 말린 것을 ‘홍청녹차(烘靑綠茶)’ 그리고 햇볕을 통해 건조한 것을 ‘쇄청녹차(쇄靑綠茶)’라고 부른다.
필자가 강의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여러 번한 적이 있다. “녹차의 가공법에서 살청은 몇 차례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대체로 3번 혹은 4번 또는 9번이라는 답들이 많았다. 9번이란 답은 아마 구증구포(九蒸九曝)라는 녹차가공법에서 비롯된 발상일 것이다.
차의 가공법에서 살청의 공정은 단 한번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답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원인은 우리말의 가공용어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볼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녹차를 덖음차 또는 볶음차라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살청과 덖음을 같은 공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녹차를 3번 덖었다는 것을 살청을 3번 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이차는 살청을 한 번하고 우리의 작설차는 구증구포로 하니 작설이 보이차보다 좋다”는 말이 인터넷에서 정보로 떠돌고 있다. 보이차와 작설차의 우열을 덖음의 회수로 단순 비교하는 잣대는 살청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허식(虛識)이다. 이러한 정보의 오류는 보이차에 대한 지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홍청녹차가 보이차일 수 없는 까닭
녹차의 품질은 녹차가공 중 첫 번째의 공정인 살청에서 결정된다. 살청공정에서 산화효소를 얼마나 잘 파괴했느냐에 따라 녹차의 질이 달라진다. 보이차가 녹차와 등식이 될 수 없는 것은 살청공정에서부터 그 개념이 다르게 쓰이기 때문이다. 사실 보이차의 원료로 쓰인 찻잎은 살청공정을 하기 전에 이미 산화된 것이 보통이다.
찻잎은 차나무에서 채취한 후에도 호흡을 계속한다. 호흡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찻잎을 두껍게 쌓아 놓을 경우 무산소호흡으로 인한 산소의 결핍과 호흡으로 통해 생산된 열량에 의해 찻잎이 산화된다. 심할 경우 암모니아 냄새 같은 악취마저 풍긴다. 그래서 찻잎의 시들이기 작업을 할 때는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일정한 두께로 찻잎을 쌓아놓아야 한다.
그렇다면 보이차는 어떤가? 차 소작농들은 찻잎을 쌓아 놓는 두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마음에 가는대로 찻잎을 쌓아둔다. 그래서 살청공정을 하기 전 대부분의 잎은 이미 산화 변질된다. 녹차를 만들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보이차 만드는 과정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녹차의 경우 살청공정은 철저히 산화효소를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보이차의 경우 산화효소와 관계없이 찻잎을 보다 쉽게 비비기 위해 숨을 죽기는 것이 살청의 목적이다. 이것이 보이차의 살청 개념이 녹차의 살청과는 다른 까닭이다. 또한 산화효소 파괴에 의미를 두지 않는 과정에 과연 ‘살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도 타당한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분분하다.
보이차의 선엽(鮮葉)은 살청과 관계없이 대부분 산화된 상태로 존재되고 있다. 물론 비비기 과정에서도 산화는 계속된다. 보이차는 산화를 좋아한다. 산화효소가 살아있어야 훗날 후발효작용에 의한 바른 보이차의 맛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보이차를 햇볕에 쬐어 건조시켜 마무리하는 것도 산화효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비롯된 작업이다. 보이차의 살청이 비록 녹차의 살청과 다르더라도 고열을 통한 숨죽기기 공정에서 상당한 산화효소가 실활(失活) 또는 혼미상태에 놓이게 된다. 녹차의 경우 살청공정에서 찻잎의 온도 즉 엽온(葉溫)이 90℃ 이상으로 올라가면 산화효소는 단시간 내에 활성을 잃어버리거나 파괴된다. 또한 단시간 내의 고온쾌속건조방법인 초청(炒靑) 또는 홍청(烘靑)의 건조온도는 대체로 120~140℃이므로 산화효소는 더 많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완성된 녹차의 수분 함수량이 4~6% 사이이기에 추후의 산화작용을 차단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산화효소의 철저한 소멸공정은 녹차가 묵힐수록 맛이 없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반대로 고열과정에서 실활 또는 혼미상태에 놓인 산화효소 중 특히 폴리페놀 옥시다젠은 햇볕에 쬐여 말리는 과정에서 산소와 수분의 참여 그리고 저온환경에서 산화효소의 회생은 추후 보이차의 후발효공정에서 결정적 산화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화학반응은 보이생차 뿐만 아니라 소위 미생물발효이라 불리는 보이숙차에도 적용된다. ‘악퇴발효(渥堆醱酵)’ 공정이란 폴리페놀물질들이 미생물의 작용 아래 발생되는 극렬 복잡한 생물들의 전화(轉化)와 촉매작용에 의한 일렬적인 화학반응이기 때문이다.
햇볕을 통해 말린 찻잎 즉 쇄청법의 찻잎에는 강한 햇빛 냄새(日晒味)가 배어난다. 이는 햇빛 속의 자외선이 공기 중의 일부 산소를 악취로 변환시키는 작용과 이러한 악취가 찻잎속의 일부 물질들과 산화작용을 일으켜 발생되는 냄새다. 예를 들어 시스테인(Cysteine, 아미노산의 하나)이라는 물질이 빛의 작용아래에서는 Ethyl mercaptoacetate로 전환되어 강력한 햇빛 냄새가 생겨나고, 찻잎의 Heptadiene, Pentenol, Hexanol 등의 물질들이 햇볕에 쬐이게 되면 거칠고 비린 냄새의 성분들이 다량으로 증가되어 쇄청모차로 하여금 악취를 풍기게 한다.
이러한 휘발성 냄새들이 녹차에 적용되면 녹차의 질을 저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보이차일 경우 보이차의 진위를 판별하는 잣대로 한 몫을 하고 있다. 홍청법으로 말린 녹차가 보이차로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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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발효
보이차를 이야기할 때 흔히 듣는 용어가 미생물발효와 자연발효다. 미생물발효와 자연발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보이차라는 상품이 학문의 영역에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차의 발효’에 관한 정의는 미생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차의 과학 즉 차의 제조법에서 말하는 ‘발효’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생물에 의한 발효가 아니라, 찻잎 속에 함유된 주성분인 폴리페놀(Tea polyphenols)이 폴리페놀옥시다젠(Polyphenoloxidase)이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어 황색을 나타내는 데아플라빈(Theaflavin)과 적색의 데아루비긴(Thearubigin) 등으로 변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성분의 복합적인 변화에 의해 독특한 향기와 맛, 수색(水色)을 나타내는 작용을 말한다. 즉 찻잎을 가공할 때 카테킨을 위시한 여러 종류의 화학성분의 산화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그동안 차류(茶類)의 영역 밖에서 별로 취급받지 못한 차, 혹은 새로이 발견되어 연구 대상으로 오르는 차들의 발효에 미생물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것을 기존의 제조법에서 말하는 발효와 구별할 필요가 있어 이를 ‘미생물발효차’라 명명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이차다.
문제는 보이차 시장에서 청병과 숙병이라는 두 가지 상품을 우리가 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효에 대한 이해부족의 상태에서 보이차를 접근하다보니 자연히 미생물발효와 자연발효의 의미를 헷갈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생물이란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생물의 총칭으로 세균, 곰팡이, 효모, 남조류, 바이러스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지구상에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할 만큼 미생물은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찻잎은 차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미생물로부터 오염되는 것이 보통이며, 고온을 통한 살청공정에서 대부분 소멸되나 비비기의 유념공정에서 또 다시 오염되는 것이 미생물의 실체다. 이후 여러 차례의 열처리 공정을 거쳐 찻잎이 완전히 건조되었을 때 비로소 대부분의 미생물들이 찻잎에서 사라진다. 이는 곧 어느 차류의 가공이든 미생물의 관여가 불가피하며, 그 관여의 정도가 주류가 아닐 경우 우리는 이를 ‘미생물발효’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차의 과학이다.
이와 반대로 숙병보이차의 발효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미생물을 대량 키워 차의 산화를 가속화시키는 방법이므로, 차의 가공과정에서 주된 역할이 미생물이었기에 이를 ‘미생물발효’라고 한다.
그렇다면 차의 미생물발효 과정 중에는 자연발효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가? ‘자연발효’란 산화효소가 전혀 참여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직 산소를 통해 이루어진 차의 산화를 말한다. 공기 중에는 늘 20% 가량의 산소가 존재한다. 산소는 다른 원소와 친화력이 강하여, 비활성기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원소와 반응을 일으켜 산화물을 만든다. 차의 화학물질 중 폴리페놀, 아스코르빈산(비타민C), 알데히드, 케톤, 유지질 등 화학물들이 모두 산소를 통해 자연 산화될 수가 있다. 물론 온도, 습도, 광선, 산소 등 산화인자의 폭에 따라 자연산화의 진행도 정비례로 빠를 수가 있다.
정상적인 차의 가공에서 미생물이 참여할 수 있듯이 미생물발효 공정에서도 산소가 참여할 수가 있다. 미생물발효와 자연발효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차의 발효에서 누가 가공공정의 주체이냐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산화효소로 인한 발효와 산소를 통한 발효가 함께 진행되는 것도 ‘보이차의 발효과학’이며, 이러한 발효이론의 연장선에서 청병과 숙병을 논해야 비로소 보이차 발효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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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보관법(21)
보이차의 올바른 저장법 |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21 |
예로부터 차는 햇차일수록 귀하게 여겼다. 차의 변질 인자는 산소ㆍ온도ㆍ습도ㆍ광선이며 여기에 산화효소의 작용, 미생물의 참여 그리고 자연산화의 진행 등 제반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차의 변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차의 함수율을 6% 이내로 유지하고, 포장지의 빛 차단과 진공을 통한 포장 그리고 저온의 저장 방법 등은 모두 차의 산화를 막기 위한 조치다. 20세기말, 차의 저장법에 대한 인식을 뒤엎는 사건이 일어났다. 즉 어떻게 해야 신선도를 유지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묵혀야 제대로 된 차맛을 느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저장법이 등장한 것이다. 저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저장에 대한 개념에 정반대되는 저장 개념의 탄생은 많은 혼란을 초래했고, 그 혼란의 중심에 보이차가 서 있다. 녹차의 질은 어떻게 산화인자들로부터 철저히 차단하느냐가 관건이라면 보이차는 이와 반대로 어떻게 이러한 인자들을 충분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품질을 다르게 만들 수가 있다. 그렇다면 보이차는 어떠한 방법으로 저장해야 제 맛이 날까? 먼저 차의 산화인자와 보이차의 함수관계 그리고 산화여건을 알아야 보이차 맛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보이차의 산화인자 중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차의 함수율이다. 함수율의 증감은 공기의 습도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 상대습도가 50%가 넘으면 보이차는 빠르게 수분을 흡수하게 된다. 물론 습도의 증가비율이 높을수록 함수율도 정비례해 높아진다. 그렇다고 보이차의 함수율이 마냥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대체로 함수율이 12% 이상 넘으면 보이차에 빠른 속도로 곰팡이가 피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 온도마저 높아지면 그 부패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온도와 습도의 적절한 배합은 보이차의 맛을 내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된다. 예를 들어 환경의 온도와 습도가 모두 높아지면 보이차에 곰팡이가 피어 곧 바로 부패하게 된다. 그러나 온도만 높고 습도가 모자라면 유리지방산이 증가해 보이차에서 신맛이 나게 된다. 그리고 보이차를 직사광선에 노출하게 되면 산화의 속도는 빠르게 진행되나 발효된 후의 보이차의 맛은 밋밋하게 변해버려 가치를 잃게 된다. 저장환경에서의 산소공급은 보이차의 맛을 내는데 필수조건이다. 흔히 보이차의 저장용기에 덮개를 덮어 산소의 유통을 차단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산소의 공급은 많을수록 좋다. 통풍이 잘 되고 서늘한 곳에 보이차를 저장하라는 얘기는 곧 산소를 충분하게 공급하라는 뜻이다. 전통 보이차의 압착에서 보이는 느슨한 누름도 산소의 공급을 높이기 위한 배려이다. 보이차의 참맛은 저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무리 좋은 원료라도 옳지 않은 저장방법을 사용한다면 결국 보이차의 진미(眞味)를 잃게 되며 품질이 저하된다. 풍부한 산소에 서늘한 곳, 실온을 25℃에 맞추고 상대습도를 70%로 유지하게하면 보이차의 저장환경은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산화조건들은 하여금 보이차의 산화효소반응을 일으키고, 적당한 미생물의 참여를 유도하며, 자연산화의 진행을 원활하게 작용하여 보이차의 숙성 즉 후발효의 가치를 한층 높일 것이다. 이러한 산화인자들을 철저히 예방해야만 차의 변질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보이차의 맛은 여기에 더해 산화효소의 작용, 미생물의 참여 그리고 자연산화의 진행 등 제반 요소들이 함께 아우러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
짱유화 (마무리)
'보이차이야기' 연재를 마치며 |
짱유화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마지막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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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복성이라 일컬어지는 중국 썬페이핑(沈培平) 사모시(思茅市) 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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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이차를 기억하는 열쇠는 여러 가지다. 그만큼 ‘이야기 자산’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누군가 ‘보이차는 이야기로 마시는 차’라 했다. 처음엔 중후한 찻빛에 마음이 끌리고 다음으로는 찻잔을 돌려 취하는 보이차의 향, 머금었을 때 입안을 조이는 천(千)의 맛 그리고 목젖을 타고 넘는 저릿한 촉감 등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다가온다. 이렇듯 보이차는 어떤 차보다 ‘분위기’를 많이 타는 차다. 보이차의 분위기는 와인과 많이 닮아 있다. 와인은 술이기 전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비즈니스에서 협상을 좀 더 부드럽게 진행시켜주는 훌륭한 매개체다. 보이차도 와인만큼이나 비즈니스의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이자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만드는 과정을 보면 산지와 품종, 찻잎의 수학, 원료의 고르기 등 조건들이 와인과 별반차이가 없다. 저장과정을 보면 발효에서 숙성까지 와인과 쌍둥이처럼 쏙 빼닮았다. 와인 병을 잘 보관하면 숙성이 잘 되어 맛이 더욱 좋듯 보이차도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향과 맛이 더 개선될 수도 있고 반대로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차는 와인과 전혀 다른 상품으로 취급받고 있다. 쉽게 말해 와인은 가격만 있지만 보이차는 가격과 함께 ‘짝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와인의 모든 정보는 라벨에서 제공된다. 로고, 빈티지, 상표, 등급 그리고 병 입지와 로트번호 등 모든 정보를 상세히 표기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보이차에도 라벨이 있다. 포장지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글귀를 믿지 않는다.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달리 쓰여 지는 것이 보이차의 라벨문구다. 야생, 교목, 노차수(老茶樹) 등 원료의 선택부터 이무(易武), 반장(班章) 등 산지의 출신까지, 정보가 아닌 거짓 글귀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보이차의 현주소다. 그 결과 보이차는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무도 믿지 않는 활자는 죽은 글씨에 불과하다. 죽어가는 보이차 시장을 살리고자 헌신적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썬패이핑(沈培平) 사모시(思茅市) 시장이다. 정부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차의 신뢰문제와 경제적 지위향상 그리고 차농(茶農)문제 해결에 밤낮으로 헌신적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보이차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기위해 지금도 보이차 삼매경에 빠져있다. 그는 “보이차의 발전과 신뢰는 정보의 투명화에 달려있고, 이러한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정부의 몫이 크다. 임기 동안 이를 차질 없이 실행에 옮겨 보이차를 와인과 같은 개런티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갈 것이다”고 다짐한다. 지금 보이차계에서 그를 ‘보이차의 복성(福星)’이라 칭송하고 있다. 나는 믿는다. 보이차의 복성이 많이 나올수록 보이차는 와인과 더불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이 서 있는 현재를 창조하고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연재를 시작하며’를 쓴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남아 있는데 마침표를 찍어야하니 왠지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한 평생을 푼다 해도 완벽하게 이야기하지 못할 차가 보이차며, 아무리 써도 메마르지 않는 이야기가 보이차 이야기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많은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옛 보이차 상품들을 집중조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한된 지면에서 그림을 통해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보이차를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하여야 옳은가’에 중심을 두어 글을 썼던 것이 원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미흡하고 부족했던 글을 끝까지 읽어주고 격려와 질책을 함께 보내주신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펜을 거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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