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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의 성모" 윌리엄 부게로(Virgin of the Lilies - William Bouguereau)
"백합의 성모" 윌리엄 부게로(Virgin of the Lilies - William Bouguereau) ,1825~1905
산에 오르는 두 갈래 길,하나는 옛부터 걸어온 호젓한 오솔길,
다른 하나는 고르고 넓직한 신작로, 사람들은 행길이 나자 너나 할 것 없이 새길로 갔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변함없이 옛부터 혼자서 걸어온 신비와 의미의 소롯길을 향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새 길이 났는데 왜 헌길로 가냐고 바보 꼴통이라며
성질을 내고 욕지꺼리를 해댄다. 그 사람은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 길을 가다 그 길에서 만난 숲의 정령이며 신비와 의미의 지대를 지나며
요정, 꿈 많은 천사와 먼저 간 아이들을 그 길 위에 아로새기고,
그 자신도 그가 그린 요정과 천사의 품에 안겨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여기 격한 영혼의 오솔길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한 거장이 있으니,
한 세대를 풍미했던 낭만주의가 쇠퇴하고 인상파의 태풍이 몰아칠 무렵,
그야말로 마지막 아카데미의 문지기로서 선과 절대미를 탐색하고
신화 속의 '큐피드'처럼 꿈의 산맥과, 땅과 천상의 오솔길을 넘나들며
사랑과 젊음의 영혼을 사로잡은 마지막 고전주의자, 라파엘전파
아돌프 윌리암 부게로(Adolphe William Bouguereau, 1825-1905)
부게로는 프랑스 라로셸(La Rochelle) 출신으로 부친은 아들을 상인으로 키우려고 했지만
가세가 기울자 그만 삼촌집에 맡겨진다.
삼촌은 신부 또는 큐레이터라고 하는데 뭐가 사실인지 모르겠다.
다만 부게로의 그림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그림이 많은 것으로 볼때
아마 삼촌은 학식있는 신부또는 독실한 카톨릭 신도였다고 추측해 본다.
삼촌은 부게로를 친자식처럼 성서, 신화와 고전, 역사를 가르치고,심지어 고등학교에 입학까지 시킨다.
아무튼 어릴적 삼촌의 가르침은 어린 부게로의 운명을 바꾸고 성장하는데 밑걸음이 되었다.
"어렸을 때 행복했던 기억은 없지만 삼촌 집에 있을 때는 행복했다."
그 후 보르도에 있는 미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학비가 없어 주경야독하며 미술 공부를 한다.
스무살이 채 안 되는 나이에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미술을 배웠다고 하니 부게로의 끈기와 의지도
어지간한게 아니다. 그 후 그림에 대한 도전과 집념으로 어렵게 에콜 드 보자르를 거쳐
또 4년간 로마 유학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런 과정과 연마를 거쳐 체득한 마치 신화의 세계, 천상의 세계를 그린 그의 정교하고 생명력 넘치는
그림은 당시 화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살롱에서 높은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작가의 창의성보다는 규격화, 표준화된 기법을 강조하는 풍조에
질식했던 젊은 화가들은 기존 체계에 반발해서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인상파를 출범시키고, 세잔, 드가 등 이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서 아카데미의 주류인 부게로는
그들과 화풍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당하고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부게로는 그런 비판에 전혀 대응하지 않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더욱 그림에 정려했으며,
오히려 그가 비난받은 이유와 달리 부게로 만큼 마티스를 비롯한 그의
제자에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도록 독려한 스승이 없다고 전해진다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은 획일적인 아카데미즘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부게로는 당시 파리 화단에서 최고의 인기
를 구가하는 작가였다. 파리 살롱에 전시된 그림들을 본 사람들로부터 원작의 축소판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쇄도
했다. 부게로의 그림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보고 나면 오래 기억되며 또 다시 보고 싶어질 만큼 매우 인
상적이다. 잠시 시선을 맞추고 감상하면, 직접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있는 듯, 지금도 살아 있는 실재하는 여성(또는 소녀, 아이)와 마주하고 있는 듯, 신화속의 한 부분이 되어 그 당시의 상황과 현장 속에 함께 있는 듯한 신
비한 마술에 빠져들게 한다. 아내와 7개월된 아들까지 잃게 된 부게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잃고 실의와 슬픔에 빠져있는 남자는 항상 누군가의 관심과 동정심
을 받게 되나 보다. 물론 이런 동정심이 깊어지면 사랑으로 변하고, 부게로의 학생중 한명인 미국출신의 여성화
가, Elizabeth Jane Gardne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부게로의 문하로 12년동안 있으면서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슬픔에 빠진 부게로에게 많은 위안을 주게 된다.
그 해 말 결혼의사를 밝혔지만, 어머니와 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어머니는 특히, 자신이 죽기전에는
재혼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평소 어머니를 존경하던 부게로의 입장에서는 결국 가족
몰래 둘은 약혼만 한다. 1879년의 봄햇살이 온 누리를 따뜻하게 비추는 5월의 일이었다.
그러던 중 1884년, 그림상인 Goupil의 기획으로 런던에서 프랑스미술전이 있었고, 부게로는 7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 중 유명한 The Young Bacchus 와 Biblis 가 포함되었다. Baron Taylor에 의해 설립된 예술가 후원회의
회장을 엮임하고 Victor Hugo 장례식에 프랑협회를 대표하는 자로 뽑히기도 했다.
또한 그의 그림들은 미국의 거부들에게 고가로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1896년 부게로의 어머니는 마침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몇 십년을 미루어 왔던 Elizabeth Gardner와
의 결혼을 하게 된다. 부게로 나이 71세때의 일이다. 엘리자베스는 화가로서의 길보다 남편의 내조자로서의
길을 택한다. 그녀는 항상 헌신적이었고, 그의 편에 서서, 그의 비서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1899년, 부게로는 또 다른 아픔에 직면한다. 훌륭한 법률가로 명성을 날리던 아들, Paul이 죽게 됨으로써 부게로
는 5명중 4명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보내는 누구보다 불운한 가장의 아픔을 겪게 되고, 폴의 죽음은 육체
적뿐만아니라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이었고, 이는 결국 부게로로 하여금 더 이상 공직, 권력, 명예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절감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자신의 일에 열중했던 그는 늙고
힘없는 노인으로 변해간다.
슬픔과 실의에 빠진 부게로는 술로 날을 지새고, 엄청난 흡연, 1902년 심장병과 동맥경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건강이 점점 나빠져 모든 공직생활과 공식적인 행사를 포기하고 1903년부터 붓은 물론 연필도
잡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죽음을 직면한 부게로는 1905년 고향인 라로셀로 돌아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할아버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위대한 화가로서의 모든 것을 놓고 아내의 무릎위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 나는 매일 기쁨에 젖어 작업실에 갔다. 저녁에는 어둠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지만
다음날 아침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작품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욕구가 되었다. 내가 인생에서 다른 무엇인가를 더 가진다고 해도
내 소중한 그림을 못 그리나면 나는 비참해질 것이다 -윌리암 부게로"
부게로의 그림을 바라보게 되면 어릴적 한 마리 새가 되어 마구 하늘을
날아오르던 동심과 마법의 세계에서 놀고, 신화 속의 주인공과 대면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의 해맑고 고운 그림에 닿으면
어느새 같이 맑아지고 잃어버렸던 선과 신성의 세계를 찾게 된다.
마치 인간이 저 천상의 세계에서 잠시 땅에 내려와 있다가 거룩함을
회복한 후 다시 천사가 되어 천상으로 가는 존재인 것처럼 그의 그림
어디에나 천사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 점이 심금을 울린다.
한편 붓 하나로 하늘나라를 노래하고 춤춘 그에게도 뼈저린 아픔이
있었으니, 31세에 '마리'란 여성과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의 생전에 네 아이와 아내를 잃고 만다.
800여 그의 작품 중에 '최초의 슬픔' '자애(Charity) 등 몇 안되는 작품
속에 그의 슬픔이 고스란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애덕에 등장하는 여인과
다섯 아이들은, 그의 아내 마리와 다섯 아이들을 연상시킨다.
'최초의 슬픔' 은 아벨을 잃은 아담과 하와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데,
왼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있는 아담의 괴로움이 뼈져버린다.
이 그림이 어찌 아담과 하와만의 슬픔이겠는가? 이 그림은 아담의
슬픔이자 자식 넷과 아내를 먼저 보낸 부게로의 슬픔이며, 자식을 잃은
온 인류의 슬픔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 속에는 유달리 아이들, 소녀, 요정, 천사그림이
많습니다. 마치 죽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영혼을 달래려는 듯...!
아이들과 천사들의 그림은 먼저 간 그의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진혼곡처럼 들린다.
그는 스웨덴 보리를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스웨덴 보리가 묘사한 '아이들 천국'이 그림 속에 살아있으니 말이다.
"부모가 신앙이 있든지 없든지 아이가 죽으면 모두 하느님이 받으시고
천국에서 가르치며... 그 아이의 지성과 지혜가 완전해지면
하늘나라에 인도되어 천사가 된다. "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바로 하늘나라에서 깨어나고, 부활하자마자
하늘나라로 안내되며, 육체를 입고 살 때 아이들을 인자하게 사랑하고
동시에 하느님을 사랑한 여성 천사들에게 맡겨진다."
그 천사들은 세상에 살 때 모든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맡겨진
아이들을 자기 아이로 여기고 어머니의 인자함으로 받아드리며,
아이들도 타고난 성향에 의해 그 천사들을 자기 어머니처럼 사랑한다."
-스웨덴 보리
창조적인 깨달음은 한평생을 한 순간처럼 살게한다고 했던가!
천상에서 다 못그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났으며, 한 평생 자신을 다 태워 한순간처럼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림을 통해서 울고 웃으며 사랑과 순수, 신비와 의미의 세계를 보여준 다정 다감하고 행복했던 화가,
윌리암 부게로(William Bouguereau), 그는 백합의 성모를 통해서 자신 먼저 떠난 아이들을 회상하며,
먼저 천상으로 돌아간 그 아이들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백합의 성모의 은총 가운데 낙원에 살기를 꿈꾸며
이 백합의 성모를 아픔 겪은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 온 인류에게 선물로 전한다.
이 순간, 아직 가지 않은 길, 머지 않아 생업을 마치고 돌아가야할 길,
그가 걸었던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숲에 들어서니 그의 그림 속에서 천사들이 뛰어나와 노래 부른다.
23.5.18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