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까지 나의 수업은 전형적인 교사 위주의 일제식 수업 방식이었다. 특히 3학년 문과반 수업을 맡은 해에는 수학 과목을 포기한 학생들에게 수학 대신 다른 과목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8명 내외였고, 다른 과목을 공부하다 그냥 엎드려 자는 학생이 많았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설 때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보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학생들과 교류도 없었고, 실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그저 수업 시간에 모르는 문제를 질문하는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2012년 베트남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서 1년간 근무한 경험은 교사로서 제2의 삶을 고민하게 한 계기였다. 2013년 한국으로 복귀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업에 변화를 주는 것이었다. 모둠 수업, 거꾸로 교실 등 다양한 방식을 수업에 적용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는 각각의 장점만 골라 나만의 방식으로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교사와 학생의 경계를 허물다 렉처 포럼(Lecture Forum) 방식의 수업
우선 학생들의 좌석 배치부터 바꿨다.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네 그룹으로 나누고, 한 모둠에 그룹별로 한 명씩 골고루 배치되도록 했다. 특히 모둠 내에서 멘토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친한 친구들끼리 모둠을 구성해줬다. 수업 중 문제 풀이 시간이 되면 모둠별로 멘토 학생의 주도 아래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좌석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기존의 좌석 배치에서는 도와줄 친구가 없어 그냥 앉아 있기만 하던 학생들이 친한 친구들끼리 배치해주자 조금씩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수업 방식도 바꿨다. 종전 교사 위주의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 학생들이 수업을 직접 꾸려가도록 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공부 방법은 하루가 지나면 학습한 내용의 5%만 기억에 남지만, 말로 표현하면 90%가 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전 교육으로 이를 공유하고 수업에 직접 참여할 학생들의 신청을 받았다. 단원별로 학생 한 명이 교사 대신 수업을 진행하되, 사전에 준비한 강의 원고를 최소 2~3일 전 점검받도록 했다. 강의 원고를 보고 학생의 수업 방향을 예상해보면서 추가할 부분이나 설명 방법 중 바꿔야 할 부분 등을 피드백해 고치도록 했다.
처음에는 수업 내용이 미비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막상 시행해보니 생각보다 잘해 놀랐다. 특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교사가 수업을 진행할 때는 부담스러워서인지 질문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친구가 수업을 진행하니 부담 없이 모르는 내용은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학생이 점차 늘었다.
수업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도 교사와 달리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인지 훨씬 이해가 잘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학생의 수업 내용이 다소 부족하면 교사가 보충 설명을 해 해결했다. 남는 시간에는 모둠별로 문제를 풀어보고, 서로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주도록 했더니 점차 참여하는 학생이 늘어났다.
기록과 평가의 변화 노트 검사 수행평가에서 벗어나다
학생이 수업을 하는 동안 나는 교실 뒤쪽에서 어떤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는 어떤 교감을 하는지 등을 기록장에 자세히 남겨뒀다가, 나중에 학생부로 옮겼다. 작년에는 인문 과정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처음 적응하는 시간이 지나자 80% 정도의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는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그만큼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학생부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에 기록할 수 있었다.
수행평가 방식도 바꿨다. 종전에 했던 노트 검사 형식의 수행평가가 학생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마땅히 다른 방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또 그 방식이 교사 입장에서는 사실 편하기도 하다. 그러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연구하고 자신의 수업 사례를 공유하는 경기도교육청 동아리를 통해 다양한 수행평가 방식을 알게 됐다. 그중 다른 학교 수학 선생님의 방식을 수업에 도입해보기로 했다.
먼저 수학 교과서의 읽기 자료를 기준으로 학생들이 수학적 흥미는 물론 일상생활에 수학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어 ‘주제 탐구 발표’를 수행평가 항목으로 넣었다. 사전에 학생들이 주제를 결정하면, 언제 발표해야 하는지 조율해 기간을 정해줬다.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에 맞춰 PPT 자료를 만들어 발표했다.
학생들이 잡은 주제는 꽤나 흥미로웠다. 고대 수학자들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를 빛의 밝기가 거리의 제곱과 반비례하는 데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어 빛이 지구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올베르스의 역설과 연계하기도 했다.
과속 차량을 단속하는 원리는 카메라 앞에 설치된 감지선과 감지선 사이를 자동차가 지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속도를 계산하는 것이라는 사실, 탄산음료의 거품이 사라지는 이유는 탄산음료에 포함된 이산화탄소가 액체보다 기체 상태에 도달하려는 성질이 있어 작은 기포는 더 작아지고, 큰 기포는 반대로 점점 커져서 수면 위로 올라가 터지기 때문이라는 점, 뷔페를 찾았을 때 좋아하는 한 가지 음식만 많이 먹으면 한계효용체감법칙에 따라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음식을 조금씩 맛볼 때 수학적으로 가장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 등 수학적 이론을 일상생활과 연계하는 발상이 참으로 기발했다.
이 내용들을 모두 정리해 학생부에 기록해주니 학생들은 더 열심이었다.
또 모둠별로 주제에 맞춰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모둠별 평가를 실시 했다. 2016년 1학기에는 ‘영화 속에서 수학 찾기’를 주제로 진행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수학적 요소를 찾아 그 부분을 편집하고, 그와 관련된 직업을 찾아본 뒤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할 부분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 <다반치코드> 속 피보나치 수열과 연계해, 일상생활이나 자연현상 가운데 ‘꽃잎의 수’ ‘나뭇가지가 자라는 모습’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보나치 수열을 소개했다. 보험계리사 등은 생소한 직업이지만 수학이 꼭 필요한 직업임을 모둠별로 조사해 발표하기도 했다.
소재가 영화다 보니 학생들이 수행평가에 재미있게 참여했고, 발표 자료를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직업이 수학과 연관되었음을 아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모둠의 발표를 보는 건 그 자체로 간접 체험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활동이 늘어나고 다양해지니 학생부에 기록할 내용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다. 기록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자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더 늘었고, 작년에는 수업을 듣는 90% 학생들의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자세히 기록해줄 수 있었다.
수업과 수행평가 방식이 변화하자 엎드려 자는 학생이 급격히 줄었다. 수학을 포기했던 학생들도 이제는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업을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끔씩 전날 늦게까지 놀다 잠을 자지 못하고 온 학생들이 깨워도 계속 엎드려 자는 모습에 의욕이 상실돼 그냥 예전으로 회귀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 교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결국 수업 아니겠는가.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