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쌀국수 퍼(Pho)의 유래
알고 먹어야 맛있다 - 베트남 대표 음식, 쌀국수
베트남은 오늘날에도 전 국민의 80%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업 국가이다. 특히, 쌀농사에 적합한 천혜의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어 연중 3모작이 이뤄짐에 따라서 베트남의 한해 쌀 생산량은 베트남 국내 전체 농업 생산물량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쌀은 베트남의 수출 주력 상품이기도 하다. 매년 500만 톤, 25억 달러 이상의 쌀을 수출하고 있는 베트남은 태국과 쌀 수출국 1위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쌀을 원료로 하는 베트남 음식들
베트남에서는 예로부터 쌀이 풍부했기 때문에 쌀을 주원료로 하는 음식이 매우 발달했고 이는 곧 베트남 음식의 특징이 됐다. 쌀가루를 물에 갠 후, 얇게 펴서 증기로 찐 다음, 햇볕에 말려 만드는 ‘반짱(Banh Trang)’, 즉, 라이스 페이퍼(Rice Paper)에 육고기, 해산물, 채소 등 신선한 재료를 싸서 먹는 월남쌈-‘고이 꾸온(Goi Cuon)’을 비롯해서 라이스 페이퍼에 다진 돼지고기, 당근, 버섯 등을 넣고 돌돌 말아서 기름에 튀겨 먹는 베트남식 군만두, ‘짜죠(Cha Gio)’와 ‘넴잔(Nem Ran)’ 그리고 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음력 설날 ‘뗏(Tet)’에 먹는 찹쌀떡 ‘반쯩(Banh Chung)’과 ‘반뗏(Banh Tet)’은 모두 쌀로 만드는 베트남의 대표적 전통 음식으로 손꼽힌다.
베트남에서 가장 사랑받는 퍼(쌀국수)
하지만 베트남에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베트남 대표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퍼(Pho)’라고 불리는 쌀국수다. 분주한 아침시간 간편한 식사로서 그리고 출출할 때 언제 어디서든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간식거리로서 쌀국수는 베트남 사람들의 가장 사랑받는 국민 음식이다.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겪으며 이리저리로 피난을 가는 것이 생활화 됐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국수 등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게 오늘날 베트남 사람의 식습관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매일 이른 아침이면 주택가 골목 여기저기에 생겨나는 쌀국수 노점과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베트남만의 독특한 아침 풍경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쌀국수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고 여름에 수확하는 밀농사가 베트남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은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로 국수를 만드는 제조법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북부의 ‘퍼’, 중부의 ‘분보후에(Bun Bo Hue)’, 남부의 ‘후띠에우(Hu Tieu)’ 등으로 대표되는 지역별 특색 있는 여러 종류의 쌀국수가 생겨났다. 맑고 진한 육수에 100% 순수 쌀로 만든 국수 면발을 말고, 갓 씻은 싱싱한 채소를 듬뿍 곁들여 먹는 쌀국수는 웰빙 식품으로서 제격이다. 게다가 숙주나물과 독특한 향기의 여러 가지 푸른 향초(베트남인들은 약초라고도 부른다), 고추, 파, 마늘 그리고 새콤한 라임 즙을 짜 넣어서 먹는 쌀국수는 무더위로 지친 심신에 에너지를 불어 넣는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쌀국수의 유래
쌀국수는 개개인의 입맛에 맞게 날계란 노른자, 매콤한 칠리소스, 달콤한 해선장(海鮮醬)을 넣어서 나름 가미해 먹을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국물, 즉, 육수가 국수의 맛을 좌우한다. 쌀국수는 소의 꼬리, 갈비, 사태와 불로 구워 짓이긴 계피, 양파 등을 함께 넣어 오랫동안 우려낸 맑은 육수에 소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소고기 쌀국수 ‘퍼보(Pho Bo)’, 그리고 닭의 고기와 뼈를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닭살을 찢어 올린 닭 쌀국수 ‘퍼가(Pho Ga)’ 등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일 년 내내 더운 날씨 때문에 기름지고 단맛이 강한 고칼로리 음식을 선호하는 베트남 남부 사람들은 퍼보를 즐겨 먹는 반면, 담백하고 얼큰한 맛을 즐기는 북부 사람들은 퍼가를 선호하는 등, 쌀국수를 먹는데도 남북 지역 사람들 간 입맛의 차이가 드러난다.
쌀국수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당시, 프랑스인들이 고기만 먹고 뼈는 버리는 것을 본 베트남인 조리사가, 남겨진 뼈를 우려내어 국물을 내고 거기에 쌀로 만든 국수를 말아서 만들어 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등 이런저런 여러 가지 설이 회자되고 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쌀국수의 원조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부 하노이다. 오래전부터 중국과 하노이를 드나들던 중국인 보따리 장사꾼들에 의해 중국의 소고기 국수(牛肉粉)가 하노이에 유입됐고 그것이 결국, 베트남식 쌀국수로 재탄생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쌀국수는 프랑스 식민지배 당시 파리에서 ‘하노이 비프 누들’로 소개될 정도로 베트남 대표 음식으로서 인정받았다.
베트남의 역사가 스며있는 진정한 베트남 음식
쌀국수는 남북 분단과 월남전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적 음식이기도 하다. 하노이에서 탄생한 쌀국수가 1950년대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는 상황 속에서 북에서 남으로 이주한 실향민들이 생계를 잇고자 쌀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베트남 남부 지역까지 쌀국수가 보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쌀국수는 월남전 당시, 해외로 망명한 보트피플을 통해 더욱 다양한 맛과 형태로 개발돼 세계 각지에 소개되는 세계화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베트남 국가대표 음식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쌀국수는 중국, 남북 분단, 월남전 등 베트남의 역사가 스며있는 진정한 베트남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재 교수
출처: <베트남한국교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