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장
엄니 꽃 — 눈 내린 마당의 덕석말이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이면
고향 마을은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다.
밤새 눈이 내려
초가지붕에도, 장독대에도, 논둑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나면
사람들은 아침부터 비싸라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먼저 대문에서 길까지 눈을 치우고,
눈이 그친 오후에는
마당에 쌓인 눈까지 말끔히 쓸어냈다.
이상하게도 눈을 치우는 날은
세상이 참 조용했다.
비싸라기가 눈을 밀어내는
사각사각 소리만 들리고,
차가운 겨울인데도
어디선가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나는 그런 겨울의 고요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어느 겨울날,
나는 그 하얗고 고요한 마당에서
평생 잊지 못할 광경 하나를 보게 되었다.
아마 아침 열 시쯤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우리 손을 잡고 동네 어느 집으로 향하셨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가면
그저 따라가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그 집에 도착하니
눈을 깨끗이 쓸어낸 넓은 마당에
커다란 덕석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인 듯했다.
처음에는 무슨 집안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였는데도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누구 하나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보다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더 차갑고 무거웠다.
잠시 후
마을의 장정 몇 사람이
그 집에 사는 아저씨 한 분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그를 덕석 위에 눕혔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장정들은 아저씨의 몸을
덕석으로 둘둘 말았다.
얼굴까지 보이지 않게 감싸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막대기를 들었다.
퍽.
퍽.
막대기가 덕석 위로 떨어졌다.
그때마다
덕석 안의 사람이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겁이 났다.
왜 어른들이 한 사람을 저렇게 때리는지,
왜 아무도 말리지 않는지,
왜 그 집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니, 저 아저씨 왜 저래요?“
어머니는 길게 설명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말씀하셨다.
“부모한테 불효허먼 저렇게 되는 것이여.”
그 한마디뿐이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으셨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아이 앞에서 길게 따지지도 않으셨다.
다만 내가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게 하셨다.
어린 나는 그날
‘불효’라는 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았다.
부모에게 불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은 책에서 읽은 가르침도 아니었고,
학교 선생님에게 들은 훈계도 아니었다.
눈이 깨끗이 치워진 겨울 마당,
말없이 둘러선 동네 사람들,
덕석 위로 떨어지던 막대기 소리,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서 있던 어머니.
그 모든 것이
한 권의 교과서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날 보았던 것이
‘덕석말이’, 혹은 ‘멍석말이’라 불리던
옛 마을의 관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청과 법이 지금처럼 가까이 있지 않던 시절,
마을에는 마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도둑질이나 패륜처럼
공동체의 질서를 크게 어겼다고 여겨지는 일이 생기면
마을 어른들이 나서서 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 가운데 덕석말이는
사람을 큰 멍석에 말아놓고 매를 치던
혹독한 공동체의 형벌이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농촌에서는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것이
한 집안만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였고,
그 도리가 무너지면
마을 전체의 질서까지 무너진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날 덕석에 말렸던 아저씨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을 떠났다고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집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집터에는 풀이 자라고,
세월이 흐르면서 집도 허물어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 겨울날을 떠올리곤 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
그 집터가 눈에 들어오면
잠시 발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멈추었다.
눈 덮인 마당.
커다란 덕석.
말없이 서 있던 사람들.
그리고 어린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
그날 이후 나는 평생
두 번 다시 덕석말이를 본 적이 없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덕석말이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궁금했다.
어머니는 왜 어린 나를
그 무서운 곳에 데리고 가셨을까.
굳이 어린 자식에게
그 광경을 보여 주어야 했을까.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머니는
내게 매를 보여 주려고 데려가신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백 번 할 수도 있다.
착하게 살아라,
사람의 도리를 지켜라,
부모 가슴에 못 박지 마라.
말로는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긴 훈계 대신
내 손을 잡고 그 겨울 마당으로 걸어가셨다.
그리고 내가 직접 보게 하셨다.
아마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어린 날 두 눈으로 본 한 장면이
백 마디 훈계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날의 막대기 소리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 마당도 사라지고,
덕석도 사라지고,
그곳에 모여 있던 어른들도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불효자가 살았다고 사람들이 꺼리던 집도
풀 속에 묻혀 흔적만 남았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날 내 손을 잡고 계셨던
어머니의 손이다.
나는 이제야 안다.
어머니가 내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덕석에 말린 한 사람의 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방향이었음을.
어머니는 글을 써서 가르치지 않으셨다.
좋은 말씀을 길게 들려주지도 않으셨다.
밭에서는 땀으로,
부엌에서는 밥 한 그릇으로,
장독대에서는 쌀 한 줌으로,
그리고 그 겨울날에는
말없이 잡아 주신 손으로
삶을 가르치셨다.
돌이켜보면
내가 부모에게 불효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마음 한구석에는
어쩌면 그날의 겨울 마당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처럼 깨끗하게 살아라.
사람의 도리를 잊지 마라.
부모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지 마라.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평생 그 말씀을 들으며 살아온 셈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어머니는 곁에 계시지 않는다.
다시 그 손을 잡을 수도 없고,
그날 왜 나를 데리고 가셨느냐고
여쭈어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겨울날 눈이 내리면
나는 가끔 그 고향 마당을 떠올린다.
하얗게 눈이 씻겨 나간 마당 한가운데
어린 내가 서 있다.
무서워 어머니 곁으로 바짝 다가선 아이의 손을
어머니가 꼭 잡고 계신다.
그 손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손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안다.
“사람답게 살아라.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사람의 도리를 잊지 말고 살아라.”
그날 어머니는
내게 덕석말이를 보여 주신 것이 아니었다.
평생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한 가지 도리를 보여 주셨다.
눈은 녹았고,
마당은 사라졌고,
그 집마저 흔적만 남았다.
그러나 그날 어머니가 내 마음에 심어 놓은 가르침은
아직 녹지 않았다.
그것도
어머니가 내게 남겨 주신
한 송이 꽃이었다.
엄니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