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성과 요령성의 경계에 위치한 진황도..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이 이곳에 위치..
산해관은 장성 수비 군영의 지명이며 장성은 발해만의 바닷가 노룡두에서 시작된다..
Qinhuangdao, 秦皇島(진황도)
장성이 사작되는 산해관 노룡두를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산해관 성문내의 관광지에서 숙박..
이곳을 달림으로 관광을 시작합니다!!
유명한 관광지입니다만 비시즌으로 상가는 한산하네요..
청나라 시대를 표현하는 조각이 많이 있습니다..
변발을 한 만주족 평민들..
산해관 군영의 복원지..
비시즌으로 내부 공사중입니다!!
이곳 외곽으로 나가면 이제 장성이 시작되면서 멀리 돈대가 보입니다..
중국 정부!!
하나의 중국에 동북 공정을 추가하면서 소수 민족의 땅까지 하나로 복속하기 위하여
앞에 사마타이 장성에서 설명드렸듯이 만리 장성과 관계없는 지성까지 몽땅 만리장성으로 복속하는 허위 정보를 만들면서
멀리 압록강변에 위치한 호산산성이 장성의 시작이라고 최근에 발표했죠!!
가진 넘이 더 욕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과거 한족들은 오직 중원에서 혼자 잘 살기만을 바라더니 18세기 후반 제국주의 세력에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난 후
허장성세를 버리고 실리를 택하는 것을 정책을 변모하였는데 아주 고약하게 변했습니다..ㅠㅠ
진황도!!
랴오닝성[遼寧省]과 보하이만[渤海灣]에 접해 있는 도시!!
스자좡[石家莊]와의 거리가 480km인 항구도시로 연평균온도는 10.4℃이고, 연강우량은 674.5mm이다.
4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지명은 시황제가 이곳을 순시한 고사(故事)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1948년에 친위시[秦楡市]라고 불렀고 1949년에 친황다오시[秦皇島市]와 산하이관시[山海關市]가 설립되었다가,
1953년에 친황다오시와 산하이관시를 합병하였다.
현재는 하이강[海港], 산하이관, 베이다이허[北戴河] 3개 행정구와 3개의 현(縣), 1개의 자치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1898년 카이롼[開灤]탄전의 채굴권을 장악한 영국이 석탄 출하를 위하여 개발한 항구이다.
본래 작은 섬이었으나 바다를 메워 육지와 연결하고, 베이징[北京]~산하이관[山海關]간 철도와 지선으로 연결하였다.
부동항으로 석탄과 석유를 운송하며, 현재 톈진신강[天津新港]·뤼다[旅大]·옌타이[煙臺] 등과 더불어
중국 북부 연안항로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징한철도[베이징~한커우]가 지나며, 다친철도[다롄~친황다오]의 종착지이다. 유리·시멘트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그밖의 공업으로 기계, 교량제조, 내화재료 등이 있고, 해양수산업이 활발하다.
교육기관은 고등전문학교와 학원이 34개 있으며 문화재로는 산하이관장성[山海關長城], 베이다이허[北戴河] 해변,
멍장뉘먀오[孟姜女廟], 수안양퉁[懸陽同]과 진산줘이[金山嘴] 고성의 옛터 등이 있다.
남서쪽 해안지구는 경치가 수려해 여름철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허베이성 진황다오시 산해관현입니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며 청의 건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소..
행정적으로는 친황다오시[秦皇島市]에 속하며, 둥베이[東北:만주] 방면과의 연안 육상교통로의 관문이다.
위관[楡關]이라고도 하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지이다.
북서쪽으로는 러산산맥[燕山山脈], 동쪽으로는 보하이만[渤海灣]에 접해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4km 되는 곳이 난하이커우관[南海口關:老龍頭]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북제(北齊) 때 이루어진 것이다.
산하이관성 동쪽에는 만리장성 동문성루에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만리장성 동쪽 끝 시작지점으로 예로부터 자주 싸움터가 되어왔다.
특히 명나라 말(末) 이자성에 의해 북경이 위협을 받게되자 산해관을 지키고 있던 오삼계가 50만 대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군하였다.
하지만 이자성에 의해 북경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삼계는 다시 산해관으로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북경을 함락한 이자성이 오삼계의 아버지와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잡아가자 오삼계는 청나라에 협조하게 된다.
오삼계는 이자성을 물리치기 위해 청나라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고 철옹성인 산해관을 문을 청군에게 열어주었다.
북경을 정복한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이후 오삼계의 군대도 청나라 군대에 괴멸되었다.
산하이관이란 지명은 14세기 초 명대(明代)에 성을 쌓고 산해위(山海衛)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되었으며,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관[關]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수(隋)·당대(唐代)에는 임유관(臨制 關), 요(遼)·금대(金代)에는 천민현(遷民縣)·천민진(遷民鎭) 등으로 불렸다.
수(隋)나라 때 임유관(臨制 關)이라 일컬었지만 현재보다 약간 서쪽에 위치하였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11세기 초 요(療)나라 때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화베이[華北]와 화둥[華東]의 중요한 군사요지였다.
현재 징산[京山]·선산[瀋山] 두 철도의 접속지로서 교통상 요지였으며, 또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교량공장(橋梁工場)이 있어,
황허철교[黃河鐵橋]·한수이대교[漢水大橋] 등 중국의 유명한 철교를 제작하였다.
부근에 만리장성 전설에 관한 유적들이 많다.
청의 황태극(누루하치)는 산해관의 철옹성을 피하여 북쪽으로 북경을 침공하기로 계획..
북쪽은 장성을 공격하나 명나라 군대의 철벽같은 방어로 고르곤이 이끄는 팔기군의 절반 이상의 잃고 대치는 소강상태..
이런 가운데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고 산해관을 방어하던 오삼계는 위기에 봉착..
그들이 즐겨하는 수법인 "이이제이"로 이자성을 물리치기 위하여 철옹성이었던 산해관 문의 청나라 팔기군에게 개방..
청은 이자성 오삼계의 도움으로 명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미 힘이 기운 명나라.. 언제라도 멸망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이 둘이 그 운을 더 빨리 도운 격이 되었죠!!
지금도 역사 드라마로 자주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새로 복원된 산해관 경구의 풍경입니다..
장성을 철통같이 방어하던 오삼계인가요??
한족이 지배하던 명나라 시절 든든한 국경이었던 만리장성은 장성밖의 이민족인 만주족이 청나라를 건립하면서
더 이상 유명무실한 방어도구가 되어 버렸죠!!
명나라와 달리 청나라는 팽창 정책으로 많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고..
산해관 내부 관광지들..
흔히 산해관을 장성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나 엄격히 말하면 산해관은 군영입니다..
장성을 경비하기 위한 군대의 주둔지!!
이곳 산해관 군영에서 일대의 장성을 방어한 곳입니다..
군영답게 군영 내부도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만 비수기로 휴업중이네요!!
패방을 지나 이제 산해관 성벽으로 올라갑니다..
장성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야 하나
이곳 산해관의 장성들도 대부분 복원이 되었으며
이곳이 도시로 변함으로인해 유감스럽게도 도시 지역의 장성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산으로 가면 다시 장성이 시작..
이미 사마타이 장성을 보고 또 고속도로를 오면서 많은 곳의 장성을 차창 관광하였기에
그냥 장성 관광은 생략합니다!!
성벽 구경..
대부분 복원되었다고 보아야 하겠죠!!
그래도 대단한 규모입니다..
과거 산해관의 액자 그림과 관우의 청룡언월도..
저걸 휘둘렀다고 하니 살짝 뻥이겠죠..ㅎㅎ
장성의 주 성문..
천하 제일관!!
인증샷..
그리고 아래는 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종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