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남자의 후반생』
가. 간략한 내용 소개
정진홍의 『남자의 후반생』은 남자의 인생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수필로 담담히 풀어낸 책이다.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울림이 큰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후반생은 나이 구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면 그것이 전반생의 끝이다.
그러므로 후반생은 30대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왕에 전반생이 녹록치 않았다면 그런 힘듦이나 실패를 거듭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삶의 변곡점에 선 남다들을 위로하고 다독이기 위해 이 책은 동서고금을 오가며 다양한 삶을 살피고 드러내준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고, 힘내라고 소리친다. 읽는 동안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책속 이곳저곳에서 숨을 멈추어야 했다.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시간을 갖기를 희망한다.
나. 삶의 전・후반
우리의 삶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그 기준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우리는 보통 이럴 때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60대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 후반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딘가 마뜩찮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사업에 실패했거나 직업이 없어 빈둥거리는 30대가 있다면 그에게는 여전히 인생 전반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은 이상해 보인다. 결국 나이로 삶의 전・후반을 가르는 것은 적당하지가 않다. 인생에는 누구든 시기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변곡점은 있기 마련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하다고 다시 재기하는 경우도 있고, 실직을 한 사람이 다시 힘을 내어 재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후반생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50대 일 수도 있고, 60대 혹은 그 이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30대나 40대 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언제든 자신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몸을 털고 일어서는 순간이 바로 후반생의 시작점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 또 다름을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이고,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열정을 다 할 것이다. 정진홍의 『남자의 후반생』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은 “더는 이따위로 살지 않겠다!”는 말로 시작하기에 처음부터 진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결기 같기도 하고 지난 삶에 대한 자책 같기도 하다. 우리가 얼마나 전반생을 별볼일 없이 살았으면 그렇게 시작할까 싶기도 했다.
“더는 이따위로 살지 않겠다! 라는 말이 자기 삶에 진정으로 내습한다면 생은 분질러진다... 삶이 분질러져 두 동강 나는데 죽든지 다시 제대로 살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 한마디 말에 담긴 결의와 결기를 자기 삶에 뿌리내리는 생의 족적이 곧 후반생이다.”
인생 후반생은 바로 “더는 이 따위로 살지 않겠다”는 결기는 결국, 자기 각성에 대한 선언이자 실행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약속일 것이다. 이제 더는 미지근한 삶의 중탕 같은 삶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의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으로 토해낸 격정은 실로 숨 가쁘다. 더러는 강한 어조로 나무라고, 더러는 따뜻하게 다독이며, 또 더러는 아픔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 좌절한 이들에게는 희망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른 꼭지의 글들은 숨을 헐떡이며 날 것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옭죄었던 굴레를 과감히 벗어버리라고 소리쳤다. 황망히 책장을 넘기자 또 다른 외침이 들려왔다. 외침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지금 이 자리가 ‘생의 도약’ 자리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다 눈을 감는다. ‘그렇다면 나는?’ 하는데 생각이 이르자 가슴이 먹먹하다. 생각해보니 어디까지가 전반생인지 어디부터가 후반생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패한 인생도 성공한 인생도 아닌 듯하다. 이 책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나는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오늘부로 전반생을 끝내고 내일부터 치열하게 침묵하며 고뇌하다고 모래부터 후반생을 시작할 수는 없을 일이다. 그래도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해서도 수많은 고언들을 풀어놓았다. 다만 그것을 하나씩 주워 심기일전하는 것이 우리가, 내가 할 일일 것이다.
다. 삶을 뒤돌아보기
책을 읽다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그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살아온 날들이 허망하지 않으려면 남은 생이 행복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그것을 각자의 결대로 사는 것이라 했다.
“사람은 저마다 결이 있다. 하지만 그 결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자기에게 어떤 결이 있는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나마 자기 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결대로 살려고 몸부림칠 때 사람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며 위대하다.”(336쪽)
저자가 가까운 지인의 문상을 다녀오면서 떠올린 ‘미리 쓰는 유서’가 가슴 한 켠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그것은 어쩌면 열심히 살려고 하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 가운데 하나가 ‘커서 뭐가 될래?’ 하는 것이었다. 업이 아니라 직에 연연한 질문이다. 직에 연연하면 업을 잃는다. 그러나 업에 충실하면 직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저자의 말에 무릎을 친다.
‘아침에 눈을 떠 할 일이 없는 곳’ 그곳이 지옥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눈을 떠 할 일이 있는 곳’은 천국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꽤 살만한 세상임을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후반생은 분명 자기 결이 오롯이 드러나는 삶이다. 그러니 일기가 아닌 ‘업기(業記)를 써보자고 한다.
그러려면 저절로 하루를 옹골차게 살아갈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일 것이다. 그 하루들이 모여서 삶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생의 후반생은 보다 멋진 삶으로 가득해지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그런 삶을 위해 파이팅을 외친다. 책을 덮고 나니 모처럼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