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실전` 패튼전차 M46, 北전차 `저승사자`
전차를 육군의 꽃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벌어졌던 전쟁에서 육상 전투의 핵심은 전차전이었다.
2차대전 때는 독일 기갑부대가 유럽을 휘젓고 다녔다. 개전 초기 프랑스와 동유럽은 독일 전차의 진격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그 후 한국전, 베트남전, 중동전 등 주요 전쟁에서도 전차부대는 지상작전의 해결사였다. 걸프전(1990∼1991년)도 이라크 기갑부대의 쿠웨이트 진격으로 시작됐고,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의 기갑부대가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처럼 지상전의 시작이자 끝인 전차를 우리 육군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비로소 전력화했다. 미군이 한국전에 대거 투입한 전차는 훗날 육군 기갑부대의 기반이 됐다.
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 후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만들기 시작한 전차들이 2차대전 당시 미 3군사령관이었던 조지 S 패튼(George S. Patton) 장군의 이름을 딴 ‘패튼 전차’였다.
패튼 전차 시리즈는 M46, M47, M48, M60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M26 퍼싱’도 패튼전차에 포함하기도 한다.
1948년 개발된 M46은 2차대전에서 활약했던 M26 퍼싱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M26 퍼싱의 문제는 엔진의 힘이 달린다는 것이었다.
40t에 달하는 전차 중량에 비해 엔진은 30t대인 ‘M4 셔먼’에 탑재하던 것을 약간만 손질해 쓰다 보니 자연 기동성에 적잖은 제약이 따랐다.
이를 보완해 미군은 M46에 700마력짜리 가솔린 엔진을 달았고, 험한 지형에서도 문제없이 운행할 수 있게 됐다.
M46의 실전 데뷔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8일로 M46 전차가 미 6기갑대대 소속으로 부산에 상륙한 날이었다. 패튼 전차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이었던 M46의 한국전 참가는 이후 패튼 전차 시리즈가 자유진영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50년 말까지 M46은 한국에 200여대가 배치돼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전차 전력의 15%를 차지했다.
소련제 T-34/85 전차를 대거 투입해 파죽지세로 남진하던 북한은 개전 3개월여 만에 패튼 전차라는 ‘저승사자’를 만났다. 낙동강 전선에서 M46 전차부대는 인민군의 T-34/85 전차 8대를 아무런 피해 없이 파괴하는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M46은 이처럼 실전에서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지만 기존 M26 퍼싱의 개량형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새로 등장한 M47에 밀려 단명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교육훈련용으로 무료 대여되는 신세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