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무너질 것이 남아 있을까 싶은 대한민국에서 아직 가능해 보이는 최악의 재난을, 영화 〈터널〉은 기어이 찾아냈다. 신도시의 하도터널이 개통 한 달 만에 붕괴되고, 자동차 영업사원 이정수(하정우)가 터널 속에서 구조를 요청해온다. 휴대폰 배터리 잔량은 78%, 주유소 노인이 실수로 가득 채워놓은 자동차 연료와 그가 건넨 생수 두 병, 딸 수진의 생일케이크가 있고, 트렁크에는 영업 판촉물인 손톱깎이 세트와 손전등 두 개가 있다. 삼풍백화점 최장 생존 기록이 17일이었고, 물에 잠긴 세월호에서는 끝내 아무도 살아 올라오지 못했는데, 이정수는 과연 이 암흑을 뚫고 살아나올 것인가.
‘속도’의 역습: 터널이 무너졌다는 것
방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쉽지 않을 것은 틀림없다. 시시때때로 나타나 구조 활동을 지연시키기나 하고 기념촬영 후 표표히 사라질 뿐인 관료들을 보자면 책임 있고 힘 있는 존재들은 애당초 별 도움이 안 되고, 드론 부대 같은 최첨단 기술도 (마치 사대강의 로봇 물고기와 세월호 참사의 구조함인 ‘통영함’처럼) 쓸모없었다. 그나마 믿을 만한 것이 있다면 이정수의 생환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과 구조대원들의 의지였겠지만, 작업반장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기고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여론마저 급속히 돌아서기 시작한다.
‘희망고문’이 거듭되는 가운데 이정수의 목숨 줄을 틀어쥔 새로운 문제가 부각된다. 구조 지연 중에 발생하게 된 500억 원의 경제적 손실과, 하도 제2터널 공사 중단으로 인한 부담이었다. 하도 제2터널은 마지막 발파작업을 앞두고 있었다. 발파 강행시 인근 하도터널에 매몰된 이정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었지만, 개발 당국자들과 지역 의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사 현장의 도롱뇽만큼 성가신 ‘이정수씨 문제’를 빨리 마무리 짓고 경제적 손실과 정치적 압박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하도터널은 서울과 신도시 하도의 이동시간을 무려 40분이나 단축시키는 통로였다. 사상가 폴 비릴리오에 의하면, 이렇게 단축된 시간(속도)은 공간을 압축하고 소멸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공간은 단편적으로 파편화되면서 비현실적으로 지각된다.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물리적 정서적 감각을 기대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고 또 멀기만 하다. 터널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이 속도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한 뼘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붕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수가 했던 일은 껌껌하게 통과하는 공간에 불과했던 터널, 즉 소멸되었던 공간과 (생존 가능한) 시간을 최대한 확장하고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투쟁이기도 했다. 정수는 생수병에 촘촘히 눈금을 그어가며, 개가 눈 똥 위에 돌탑을 쌓아가며 언제 마감될지 모르는 생존의 날을 계수한다. 다행히도 정수에게는 고립을 넘어 그와 고통의 감각을 공유하는 이웃들이 있었다.
자꾸, 죄송한 사람들
터널이 붕괴된 지 일주일이 지나고, 구조단장 김대경(오달수)이 전화로 소변을 받아 마시라고 권하자 터널에 갇힌 이정수가 묻는다. “드셔 보셨어요?” 할 말을 잃은 김대경의 답은 “죄송합니다, 아직.”이었다. 매몰 3일째 느닷없는 강아지의 출현 덕에 만난 민아(남지현)에게 다친 몸으로 사력을 다해 기어가면서 정수는 말한다. “미안해요. 꾸물거려서.” 민아는 또 정수에게, 엄마에게 거듭 미안하다. “죄송한데요. 휴대폰 한 번만 쓸 수 있을까요?” “죄송해요. 제가 물을 다 먹어버렸죠….” “엄마… 엄마 차 다 부서졌어. 미안해….” 이정수가 민아와 생명 같은 물을 나누어 먹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자, 정수의 아내(배두나)는 밥뚜껑을 열다 말고 다시 덮는다. 밥 먹기도 미안한 거다.
살아가면서 자기 소변 못 먹어본 것이 뭐 그리 죄송할 일일까. 하지만 이 공연한 미안함의 정서야말로 터널 안 고립된 세계와 터널 밖의 ‘정상적인’ 세계를 만나게 하는 연결고리라는 것. 영화는 이 점을 잊지 않았다. 정수가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라디오 채널이라는 이유로, 클래식 프로그램 DJ(이동진)가 가요를 내보내고, 매일 첫 5분을 정수를 위해 할애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고립과 단절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 전파를 통해 정수는 아내와 소통하고, 자신을 기다리고 또 버렸던 세상과 만나 울고 웃었다.
집요함이 이긴다
영화 〈끝까지 간다〉(2013)에서 김성훈 감독은 자신이 범인인 사건을 추적해야 하는 형사의 아이러니를 ‘더 센 놈’을 동원해 집요하게 파헤쳐 주목을 받았다. 그에 앞선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은 함량 미달의 홈런볼 과자를 찾아내 제조사에서 돈을 받아내는 중년남자 백윤식의 집요한 찌질함이 흥미롭다. 김성훈의 세 번째 장편 〈터널〉은 소재와 내러티브의 집요함과 상황의 아이러니, 변함없는 개그욕망이 적절히 결합되어 잘 짜인 그럴듯한 허구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영화보다 냉혹한 재난의 ‘생존자’라 할 이 시대에, 장르영화로서 〈터널〉의 상투성과 예측 가능한 전개, 그리고 갑작스러운 결말은 대부분 ‘낭만적인 거짓’이라는 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단, 이 총체적인 ‘거짓’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진실’ 또는 사실(fact)을 찾아내고 반추할 능력이 관객들에게 있음을 영리한 영화는 잘 알고 있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을 닮은 장관(김해숙)과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닮은 기념촬영 현장의 관료, 다이빙벨처럼 보이는 시추기계, 터널 부실시공과 비리, 저급한 언론의 윤리의식 등에 대한 〈터널〉의 묘사는 풍자 이상의 직설이다. 더욱이 이는 관객이 눈치 못 챌 수 없을 만큼 동시다발적인 언술로 작동한다.
모두가 거짓인지 알고 있는 거짓말은 차라리 속 깊은 위로다. 대경이 정수에게 “사람 구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대한민국 최고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정수가 민아에게 “대한민국이 총동원해서 우리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럼요. 우리 살 수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고통 받는 상대방에게 그들이 잔혹한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것에 차라리 우리가 안도할 수 있었던 것처럼. 〈터널〉의 거짓말은 어쩌면 지속가능한 기억과 투쟁을 위한 영화의 위로이고, 이제 그만하라는 짜증과 피로를 잠재우는 집요함이다. 끝까지 가는 자가 이길 것이다.
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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