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떨쳐버리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새 출발을 하는 첫날이다. 이 '설'은 순수 우리말로써 그 말의 뜻에 대한 해석은 구구절절 하다.
그 중 하나가 '서럽다'는 `설'이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茶禮)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음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 설(說)이다.
각종 세시기(歲時記)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한 것도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의 첫 시작을 경거 망동하지 말라는 까닭이다.
옛날 문헌들에 정초에 처음 드는 용(辰)띠날, 말(牛)띠날, 쥐(子)띠날, 돼지(亥)띠날,그리고 2월 초하룻날을 신일(愼日)로 적혀 있음을 근거로 하여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풀이한 기원설이다.
새해부터 처음 맞이하는 십이일을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이라 하여 여러 가지를 삼가며 조심할 것을 가르친 풍속이 있는 걸 볼 때 매우 타당한 설(說)이다.
`설'의 어원에 대해 또 다른 견해는 나이를 댈 때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된 연세설(年歲說)이다.
한국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語系)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산스크리트語) · 잘(퉁구스語) · 질(몽고語)'이라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는 뜻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 이 모두 정초와 직접 연관되고 있다.
중국의 어원사전인 `청문엽서(淸文葉書)'에 보면 연세를 나타내는 `살'· `잘'은 세(世)· 대(代)· 세(歲)· 수(壽)를 뜻하고, 또 대나무나 풀이나 뼈마디를 뜻하는 절(節)의 어원이라고도 했다.
'몇 살 몇 살' 하는 `살'이 그 연세의 매듭(節)을 짓는 정초를 나타내는 `설'로 전화됐음직 하다.
또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설다. 낯설다' 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강해서 '설다'의 의미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
곧 묵은해에서부터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에 있는 다소 익숙치 못하고 낯설은 단계라는 의미이다.
설은 한해가 시작되는 첫날로 우리 나라 명절 중 최고의 명절이다.
설은 다른말로 세수(歲首), 원단(元旦), 원일(元日), 신원(新原) 이라고도 한다.
설날 아침에는 식구들이 일찍 일어나 새로 지은 옷(설빔)을 입고,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새해 첫인사 즉 세배를 올린다.
집안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을 찾아 세배를 드린다. 세배를 받는 쪽에선 손님께 대접하는 음식상을 차린다.
어른에겐 술과 음식을, 아이들에겐 과자나 돈을 주고 덕담을 건넨다.
아이들에게 주는 돈은 저축정신을 기르는 뜻에서이다.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이 놀이들은 비단 설날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 농한기 특히 설날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를날까지 즐겼다.
우리 나라의 많은 민속놀이는 정월 대보름에 즈음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
설날 민속놀이에는 연날리기, 윷놀이, 농악, 널뛰기와 함께 기호지방의 북청사자놀이, 영남지방의 광대놀이, 동북부해안 지방의 처용놀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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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다른 명절 중에서도 한 해의 첫날이며 한 해를 가르는 달력의 기점이 되는 날로, 원일(元日) 또는 원단(元旦), 정초(正初), 세수(歲首)라고도 부른다. 또한 이날은 그 해의 첫 출발을 시작하는 날인만큼 몸을 바르게 하고 경거망동을 삼가하여 새로 시작되는 한 해를 바르게 지내자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을까 ?
설에는 흰 가래떡으로 떡국을 해먹고 떡국으로 차례상을 낸다. 설이란 말에는 ‘삼간다, 근신한다’는 뜻이 있는데 그 해 첫날인 설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일년 열두 달을 아무 탈없이 보내려는 바람이 담겨있다.
떡의 흰색은 자연 그대로의 색이며 자연과 가장 합일되는 순색(純色)으로 지고함과 진실됨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엄숙, 장수, 시초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설 떡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흰색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요,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완벽한 색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화시키는 그야말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원초적인 색이었던 것이다.
[하단 - 흰색과 우리민족 참조]
● 흰 떡, 그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
그래서 신성한 제사나 고사상에 올리는 시루떡도 반드시 순수 무색의 백설기를 쓴다. 돌상에 백설기를 올리거나 청홍색이 아닌 흰 실타래나 혹은 길게 뽑은 흰떡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이치이며, 실이나 가래떡처럼 아이의 수명도 길어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쌀에는 곡령이 깃들었다고 믿었고 그 흰 쌀로 빚은 백설기는 순수하고 깨끗해서 부정이 들지 않았다고 믿었다. 신성한 제사에 바치는 제물은 어떠한 부정함이 끼어서도 안되기 때문에 팥 시루떡이 아닌 백설기를 쓰는 것이다.
마을 제사인 동제(洞祭)를 지낼 때도 흰색은 빠지지 않는다. 동제를 지낼 때면 마을 입구나 제관집, 마을 샘에 금줄을 두르는데 이 같은 금줄에는 반드시 솔가지와 함께 흰 종이를 사이사이에 끼운다. 그것은 신성한 제장의 표시임과 동시에 부정과 잡귀를 물리치려는 수단인 것이다. 제의 말미에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불태워 올리는 소지는 어떠한가. 소지(素紙)는 말 그대로 ‘흰 종이’라는 뜻이다. 부정이 없는 깨끗한 흰 종이라야만 신도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 장터를 어슬렁거린 선비의 정성
지금이야 전화 한통화면 스키장 콘도가 되었건 관광지 호텔이 되었건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제물을 차려주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한다지만 그래도 제사 때 제일 어려운 것이 제물 준비이다. 왜냐하면 제사음식에는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하도 찢어지게 가난해서 제삿날이 돌아와도 선친께 변변히 대접을 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장터에 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소매 속에서 신주를 꺼내서 살짝 음식 앞에 내보이며, 아버지 혼령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소리로 “아버님 여기 밤, 대추가 있습니다. 여기 감이 있습니다. 여기 배가 있으니 그저 잡수시기만 하십시오.” 이렇게 과일 맛을 보이고, 어물전에 가서, “아버님 여기에 조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명태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푸줏간에 가서 “아버님 여기에 쇠고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돼지고기가 있습니다.” 채소가게에 가서는 “아버님 여기 숙주나물이 있습니다. 도라지가 있습니다. 고사리가 있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라고 했다. 이렇게 구경하듯 다니면서 주인은 알아듣지 못하고 신주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면서 소매에서 신주만 조금씩 내보였다. 그날 밤 선비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오늘 저자에 나가서 가게마다 다니며 제사 음식을 푸짐하게 잘 먹었다. 오죽하면 네가 그러했겠느냐”며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되는 이야기 하나 더 해보자. 매일 노름만 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던 사내가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자, 아무 것도 없어 걱정이 된 부인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이 사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던지 “제삿날이 되거든 딱 머리나 빗고 목욕이나 하고 있거라” 했다. 부인이 목욕을 하고 있노라니 남편은 제상에다 냉수 한 그릇 떠다놓고 이웃집에 가서 황소 한 마리 빌려달라고 했다. 이웃은 이 사내가 매일 노름만 하는 자라 팔아먹을까 봐 빌려주지 않았다. "딱 한시간만 빌려달라”고 하도 사정을 해 빌려주었지만 혹 황소를 팔아먹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밤에 그 집에 들르니 그 사내 축문이랍시고 읽는데,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현비 유인 모공 모시에 아, 요사이 아버님 소식이 여하여하 하옵신지. 유령이 들어오시와 영물을 그대로 올리오니 아버님 구미대로 응감하옵소서. 도죽에는 산 소를 올리오니 구미대로 잡수옵고, 사각과 두미족(頭尾足 : 소머리, 꼬리, 족)은 곰탕을 하여 잡수옵고, 불고기를 잡수시려면 불고기를 해 잡수시고, 또 생선을 잡수시려면 소상강 동정호에 가옵시고, 채소를 잡수시려면 보성시장으로 가옵시고, 과일을 잡수시려면 대추는 전남 고흥으로 가옵시고, 사과를 잡수시려면 대구나 경상 하양으로 가옵시고, 감을 잡수시려면 상주 오복동으로 가옵시고, 배를 잡수시려면 삼량진이나 김해 대저면으로 가옵시고, 향불이 없으시거든 거제 봉산 백무통으로 상향이라”며 되지도 않는 말로 축을 읊는 것이었다.
이는 경남 밀양 지방에서 전해온 이야기다. 기왕에 이야기 나왔으니 하나 더 해보자. 수원에 구두쇠로 소문난 자린고비가 부모님 제삿날이 다가오자 처음에는 제물을 차려 제사를 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물 값이 아까웠던 이 자린고비 다음에는 제물 값이 아까워 종이를 여러 장 오린 다음 종이 한 장 한 장에 ‘대추’, ‘밤’, ‘곶감’, ‘배’, ‘명태’, ‘적’… 이라고 써서 제기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다음 번 제사에서는 종이 값도 아까웠던지 아예 “여기는 대추, 여기에는 밤, 여기에는 배, 여기에는 나무, 여기에는 명태” 등등 말로 제물을 차린 뒤 제사를 때웠다고 한다.
● 보이지 않는 정성이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제사란 음식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정성이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정성만 있다면 저자 제사면 어떻고, 요즈음 말하는 신세대의 콘도제사면 어떻고, 호텔 제사면 어떤가. 제사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성이다. 자신의 편리만을 좇아 이벤트사에 주문해 차린다면 아무리 제물을 많이 차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 차라리 정성이 담긴 깨끗한 청수 한 그릇 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글 | 정종수 문화재관리국 학예연구관/우리 민족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민속의 현장을 찾아 그 진실을 기록하는 일을 오로지 해온지 18 년째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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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상서로움
“묵 팔러 장에 갔더니/배옷에 먹물 먹었소/
옷이야 검었소만/배알까지 검길 소냐.”
이 남도 아리랑이 불려지던 시대는 일제 강점기 때, 장터 입구마다 일제는 커다란 먹물 가마솥을 걸어놓고, 흰 옷 빨아 입고 장에 들어서는 우리 민족에게 먹물을 끼얹었다. 거리 어느 곳에서나 모두 흰옷을 입은 우리 민족의 모습은 일제가 볼 때 소리 없는 항거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흰옷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려 때 동방국인 우리는 동방의 상징색채인 청색 옷을 입어야 한다고 태종은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흰옷만을 즐겨 입었다.이에 태종은 “흰옷만은 임금도 못 당했다”고 했으니 그 고집을 누가 꺾으랴.
지난 시드니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은 ‘코리아’ 단일팀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워 입장했다. 한반도기에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으로 한반도 지도가 그려졌다.새 천년 첫 올림픽으로 기억될 시드니가 한민족에게는 새로운 ‘민족화합의 땅’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한민족의 노벨상 수상은 이 때 이미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신화적으로 흰색은 출산과 서기(瑞氣)를 상징한다.그래서 흰색은 상서로운 징조를 표상하고 있다.흰색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의 선수단이 나란히 입장한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민족의 높은 기상을 세계에 알렸다.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김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 평화안정에 기여한 공로가 커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이 수상은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인 민족적 경사임은 물론,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 천년 동안 이어온 평화민족으로서 마침내 그 결실을 본 느낌이다.따라서 대통령의 수상은 개인의 영광뿐 아니라 백의민족으로 상징되는 한민족 전체에 주어진 영광이다.그것은 우리 민족을 더 크게 태어나게 하는 큰 선물이 된 것이다.
반 만년 동안 단일 민족성을 유지할 정도로 강인함을 가진 민족이면서도 유난히 평화를 사랑한 것이 우리 민족이다.단군이 나라를 열어 그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한 것에서도 평화와 밝음을 숭상한 정신을 읽을 수 있다.희고 깨끗하고 밝다는 태양숭배와 경천사상에 따라 밝( )사상이 형성되고 민족의식으로 두어왔다.밝( )은 다름 아닌 흰색을 뜻하고,흰색은 평화를 사랑해 온 우리 민족이 신성시하는 색이 되어왔다.흰색은 어떤 색으로도 물들일 수 있으나,반면 어떤 색으로도 물들지 않은 자존(自尊)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마음을 나타낸다.우리 민족은 이 흰색에서도 지고의 의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신화에서도 하늘과 관계 있는 흰 기운과 흰 산(白頭山),흰 새,흰 동물(白鹿)들이 곧잘 등장한다.고구려의 주몽은 흰빛이 유화부인을 비춤으로써 태어났고,신라의 박혁거세도 흰 말이 절하는 곳의 알에서 태어났다.김알지(金閼智)가 놓여져 있던 황금 궤 아래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 백의는 하늘의 뜻을 받은 상징
우리 민족은 흰옷입기를 즐겨했다.‘위지 동이전’에도 “변한,진한,부여때부터 우리는 흰 옷을 일상복으로 입었다”고 기록돼 있다.부여 의복은 백포(白布)의 대몌(大袂:상의)와 포(袍:외의),고(袴:바지)를 입었다.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백호가 그려졌으며,흰옷을 입은 우두신인도 장식되어 있다.중국 지린성 지안현 고구려 고분 5호묘 천장 굄 앞쪽에도 흰색 도포를 입은 우두인신이 오른쪽 손에 벼이삭을 들고 힘차게 뛰는 모습의 벽화가 있다.흰 뿔에 푸른 눈이다.흰 두루마기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조선시대 학자들의 평상복은 학창의(鶴*衣)라 한다.고결하고 숭고한 학의 흰 모습을 본 떠,학을 닮은 이상적인 선비의 기상과 잘 부합된다고 믿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흰색을 숭상한 것은 우리 민족만이 아니다.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티베트 민족들도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초기 크리스트교의 세례를 받은 자는 빛나는 흰옷을 입었다.백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하러 온 천사가 입었던 옷이요, 흰색과 계시는 은총과 변모의 상징이었다.
백색의 평화는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이제 세계는 대립과 전쟁에서 상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20세기까지 약육강식의 시대였다면 21 세기는 상대가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다는 상생의 시대가 되었다.결국 백색과 평화를 숭상해온 한민족의 저력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