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외국 구호식량은 군대, 당 간부의 전유물

[열방샘]

외국 구호식량은 군대, 당 간부의 전유물

[2005-09-22 12:12:01]

UN에서 보내는 원조미가 흥남항으로 들어왔는데, 수송비를 뽑기위해 정무원 량정부 산하 무역기관에서 한톤 당 600달러씩 받고 파는 것을 사왔다고 말씀해주셨다.


탈북자 연재수기-추억(1) : 4

외국 구호식량은 군대, 당 간부의 전유물

지원식량, 한 톤 당 600달러에 거래

* WFP를 통해 무상지원된 쌀이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다/Daily NK

계속되는 식량난 때문에 WFP(세계식량기구)의 주도하에 다른 나라에서 보낸 구호식량이 북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함흥시 흥남항으로 미국과 한국 등 여러 나라, 국제기구에서 보낸 구재미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말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외국에서 식량이 지원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가, 흥남항에서 간부를 하고 있는 친구의 부친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루는 그 친구 집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방에서 놀고 있는데, 밖에서 화물트럭이 멈춰서는 소리가 나더니 친구 아버지의 목소리가 집 마당에서 들려왔다. “거 집 안에 누가 없냐?” “예. 아버지 왜 그러세요?” 영수가 마당으로 나가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집에 없냐?” “예, 누나 집에 갔어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응, 쌀 싣고 왔다.” “무슨 쌀인데요?” 영수가 의아해하듯 다시 아버지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틀 전에 항에 들어온 쌀을 실어 온 거야.”, “알았어요.”

친구 아버지가 쌀을 싣고 온 운전수와 조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 아버지의 말에 “예,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운전수의 목소리도 들렸다. 잠시 후 친구가 안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항에서 싣고 온 쌀을 창고 안으로 들여 놓는 것이었다. 쌀 가마니를 창고 안으로 들여 놓는데 30분 정도 지났을까. 40포대 정도 되는 쌀 가마니를 창고에 드리는 일이 끝났다.

우리는 ‘무슨 쌀을 저리 많이 실어왔는지’ 친구 아버지에게 물었다. 유엔식량기구에서 보내는 원조미가 처음으로 흥남항으로 들어왔는데, 수송비를 뽑기 위해 정무원 량정부 산하 무역기관인 에서 입쌀을 한톤 당 600달러씩 받고 파는 것을 사왔다고 말씀해주셨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미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인민군, 복장과 차량번호 바꿔서 식량 가져가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 중에서 외국의 원조로 들어오는 식량이 실질적으로 일반주민들에게 공급되는 확률이 대단히 낮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일반주민들에게는 전혀 차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우선 식량을 실은 선박이 흥남항에 들어오면 1차적으로 함흥시 주변에 위치한 군부대들에서 실어가도록 지시가 내려진다는 것이다.

1997년에는 식량을 실은 선박에서 외국인 선원이, 북한인민군이 식량을 실어 나르는 사진을 찍어 국제기구에 공개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식량을 실은 선박이 흥남항에 들어오면 인민군은 차량의 번호를 사회차량 번호로 꾸어(바꿔) 달고 군인들은 군복대신 사복을 입고 항으로 들어가 식량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후에 나 역시 목격하게 되었다. 특히, 함흥시에는 인민군 7군단 사령부를 비롯해 많은 군소, 군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어 나르는 식량의 량도 엄청난 량이었다.

군부대에서 1차적으로 식량을 일정하게 실어 나르고 나면, 다음에는 함경남도당위원회, 도인민위원회, 도행정경제지도위원회, 도안전국, 도보위부, 도검찰소 등 도, 시 국가기관들에서 실어간다. 다음으로는 병원, 식당, 대학이 조금 실어 나르고, 맨 나중은 소위 주민용 배급으로 공급될 식량이 조금 남는다. 하지만, 그마저 주민용 배급으로 남은 식량은 외국에서부터 식량을 실어 나르는데 들어간 수송비와 기름 값을 뽑아낸다는 명목 하에 외화를 받고 판매를 한다.

식량판매는 개인에게는 팔지 않고 공장, 기업소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이루어진다. 외국에서 들어온 식량에 대한 판매는, 정무원(現내각) 량정부 산하에 소속되어 있는 조선량정수출입 회사에서 해 마다 공장, 기업소별로 충성의 ‘외화벌이 계획’이 상급기관으로부터 떨어진다. 북한 전역의 공장들과 기업소들은 해 마다 외화를 벌어 당에 바쳐야 한다. 북한은 각 공장, 기업소들에 할당된 외화벌이 계획에 따라 액수만큼 외국에서 들여온 식량을 사가서 노동자들에게 공급하라고 한다. 하지만,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고 노동자들은 공장에 출근조차 하지 않는데, 어떻게 달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식량을 구입하고 싶어도 외화가 없어 식량을 구입하지 못하는 공장, 기업소 간부들은 결국, 돈 많은 장사꾼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공장, 기업소에 없는 달러를 장사꾼이 내고, 장사꾼은 공장, 기업소의 명의를 빌어서 식량을 사오는 방법을 쓴다. 이렇게 외화를 국가에 내고 사오는 식량의 60∼70%는 돈을 낸 장사꾼의 몫이고, 공장, 기업소들은 나머지 30∼40%를 가지게 된다. 장사꾼들은 식량을 구입해 놓고 식량 값이 오를 때까지 저장해두었다가, 해마다 식량 값이 최고인 봄철에 시장에 내다 팔아 몇 십 배의 이익을 챙긴다.


낡은 이념과 독재자의 정치체제를 먼저 변화해야

공장, 기업소들에서 챙긴 식량의 대다수는 간부들이 먼저 챙기고,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차려지는 식량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유엔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에서 주민들 먹으라고 보내는 식량은 인민군의 식량으로, 노동당 간부들의 배를 채워주고, 또한 장마당에서 장사꾼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는 역할 밖에는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리 유엔을 비롯하여 미국과 한국 등 많은 나라에서 북한의 기아상태를 걱정하며 사랑의 마음을 보내주고 있지만, 그 사랑의 손길은 북한 주민이 아닌 북한의 인민군대, 권력계층과 그들과 연관되어 있는 몇몇 장사꾼들 좋은 일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굶주림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물론 식량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잘못 된 사회체제와 이념, 독재자의 정치체제를 바꾸는 일이다. 오늘의 북한사회가 이념과 정치체제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주민들의 생활처지는 결코 달라질 수가 없을 것이며, 계속적인 아사자만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