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칼럼]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2022.09.08 목)
엡 2:20-22.
이방 신전과 성전의 차이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전을 할 수 있는 한
크고 화려하게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신의 위대함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성막을 만들게 하셨고,
그 성막에서 백성들을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막은 이동이 편리한 텐트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는 더 이상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서 실로라는 곳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잘 했으나, 하나님을
관념적으로만 알던 다음 세대들은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성막은 점차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다윗이 왕이 된 후에 법궤를 성으로 모셔 들이며
성전 건축에 대한 결심을 했으나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시고 솔로몬을 통해서 짓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지는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이기에 따로
성전이 필요 없으시다는 겁니다.
성전은 본질적인 의미와 목적이 중요한 겁니다.
성전의 의미와 목적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 특별히 구별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와서 기도하는
장소로 허락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봉헌기도를 들으시고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는데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며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가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들어,
결국 성전이 버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룹바벨 성전을 건설하고 또 한참 지나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하면서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허나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호통치십니다.
성전은 외형적 건물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와 자세로, 어떤 목적으로 오느냐?'가
더 중요한 겁니다.
성전이 되시는 예수의 육체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십육 년 동안 지은 것을 어떻게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입니다.
'거하시매'라는 단어가 '성막이 되시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전의 의미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후로는 눈에 보이는 성전은 의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구약 시대에 성막과 성전이 가지는 의미를
성취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 이후에는
더 이상 물리적인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모심 성도들이 성전인 겁니다.
교회당은 성전 된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일 뿐입니다.
지어져 가는 성전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이방인 출신의 성도들과
유대인 출신의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성전이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지어져 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차별 없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을
지어가는 동일한 자재들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곧 성전이
되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교회는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성도 간에 서로 교통함'이란 본질을 충분히
이뤄가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길인 겁니다.
성전은 외형적인 크기나 화려함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 상태에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하나 되어 사랑하는 성도들의
모임에 권능과 영광으로 임재하십니다.
이를 기억하며 아름답게 지어져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