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백의 5월 평원에서 철쭉 대신 눈을 만나다
1. 일자: 2024. 5. 18 (토)
2. 산: 소백산(1439m)
3. 행로와 시간
[죽령(09:49, 연화봉 7km) -> (도로) ~ 전망대/기상돔(11:33, 1357m) -> 연화봉(12:12, 1383m, 비로봉 4.2km) -> (중식) -> 제1연화봉(13:13, 1394m) -> 정상(14:10, 어의곡 4.2km) -> 어의곡 갈림(14:22) -> 주차장(16:04) / 17.14km]
여러 이유로 288과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한 지 꽤 오래 되었다. 이번 달은 반드시 참여한다고 마음 먹었는데 마침 밴드에 공지가 올라왔다. 18일 소백산, 멤버들이 규합되고 산거북님이 다음매일산악회에서 예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기쁜 마음으로 주말이 기다려진다.
사당으로 향하는 길, 단상 둘.
신호를 기다리며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키 큰 플라타나스가 기린처럼 긴 목을 하고 우두커니 서 있다. 가지 끝에 달린 잎이 기린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잎은 곧 풍성해질 게다. 봄이 무르익고 있구나.
버스가 과천에 들어선다. 육봉능선, 케이블능선, 응봉능선이 연이어 지나간다. 산의 색이 참 푸르다. 참 좋은 계절이다.
6명이 죽령 들머리에 선다. 몇 년 만에 처음 보지만 어제 본듯 편안하다. 봉화에 사는 다정이님은 먼저 출발했단다. 봄볕이 강한 너른 길을 치고 오른다. 도로라고, 길이 넓다고 힘이 덜 드는 건 아니었다. 제 2연화봉까지 약 4.5km 오르막은 힘겨웠다. 두런두런 옛 추억과 사는 이야기를 하며 걸으며 모처럼 벗들과 함께 하는 산행을 즐긴다. 모두 그간 산행이 뜸했다 하는데 무쩍 잘 걷는다. 매주 산에 가는 내가 젤 느리다.
연화봉대피소를 지나 기상돔 앞 전망대에 선다. 조망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산이 굽이친다. 산과 하늘이 맞닿는 곳은 긴 띠로 연결되고 그 밑으로 농담을 달리하는 색으로 숲과 마을과 산이 구분된다. 바라보는 풍경은 거침이 없다. 멀리 월악산 영봉이 선명하다. 그리고 5월의 신록은 찬란했다. 전망대에 서서 포즈를 취한다. 오래 기억될 소중한 사진이 얻어진다. 이 사진은 지금 이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해 주리리 믿는다.
제 2연화봉을 지나 연화봉까지의 등로는 그간의 긴 오름에 대한 보상인 듯, 걷기에 그만이다. 천문대를 지나 연화봉 정상에 선다. 다정이님과 기대하지 않았던 돈도니님이 우릴 맞는다. 반가웠다. 간단히 사진 몇 장 찍고 인증 샷의 번잡함을 피해 제 1연화봉으로 향한다. 숲 속 널찍한 공터에 점심 식당이 차려진다. 소박한 음식에도 행복한 식사가 이어진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간 경험한 산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늘 반복되어도 실증나지 않는 의식이다.
긴 계단을 지나 다정이님과는 헤어진다. 이곳부터는 소백의 자랑, 소백평전이 비로봉까지 이어진다. 눈이 호강하는 곳인데, 오늘은 행운과 실망이 공존한다. 연화봉에서 정상 능선을 바라보며 희게 띠를 이룬 게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그건 놀랍게도 눈이었다. 5월 중순에 눈이라니,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은 오늘 산행을 오래 기억되도록 할 것이다. 반면 이상 기후로 이맘 때 한창인 철쭉꽃은 씨가 말랐다. 꽃은 그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5월의 소백은 평원의 푸르름 만으로도 그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디 하나 막힘이 없다. 덕분에 내 눈이 호강했다.
꿈 같은 소백평원을 지나 비로봉에 선다. 인증 사진을 위한 긴 줄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굳이 사진이 없어도 정상에 섰다는 기분만으로도 충분했다. 걸음을 어의곡리 방향으로 옮긴다. 처음 소백을 찾던 때, 어의곡리로 올라 천동으로 하산했었다. 옛 기억이 희미한 길에는 또 다른 평원이 아주 넓게 펼쳐진다. 색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푸른 고원 뒤로 지나온 소백의 봉우리들이 내게 잘 가라고, 또 오라고 인사한다. 먼 길을 애써 걸어온 보람을 또 느낀다.
어의곡리 하산은 멀고 길었다. 초반 완만하고 전나무숲이 인상적이던 평탄한 등로는 이내 거친 돌길로 바뀐다. 잠시 머문 사이 일행들과 멀어지고, 우렁찬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하산했다. 주차장 옆 작은 음식점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했다. 맥주 한 모금에 시큼한 김치, 맛이 제대로다.
기록을 살핀다. 17.14km 6시간14분,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한 이들 모두에게 감사한다.
< 에필로그 >
흔히 집중하는 대상이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이면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활동을 기억하면 일상적인 경험보다 오래 지속된 것처럼 느껴진다.
대개 나이들면 새로운 경험은 사라지고 익숙한 일상이 이어진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알차게 쓰는 법은 스스로 새로운 것에 끊임 없이 노출해야 한다. 내가 늘 다른 산에 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졸음이 밀려드는 버스 안, 사진을 정리한다. 기대보다 근사한 사진들이 꽤 많다. 밴드에 기록을 올리고 눈을 감는다. 지난 6시간의 산에서의 일들이 미몽사몽 스쳐 지나간다. 행복한 기억들의 연속이다. 등산이 좋은 건, '홀로 또 같이' 모두가 가능한 놀이라는 게다. 모처럼 288 벗들과 함께 하며 잊고 지냈던 '대간 속도'도 다시금 경험했다. 예전처럼 전투하듯 산을 찾지는 않겠지만 가끔은 속도감 있게 걸으며 더 실력을 키워야 겠다는 다짐도 해 보았다.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그간 만들어 놓고 사용하지 않았던 네이버 블로그를 되살렸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카페와 함께 블로그를 통해 산행 기록을 남겨야 갰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애써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등산에 관심있는 이들과 나의 경험을 더 많이 공유하는 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소백평원에서 5월 신록의 푸르름을 경험하고 다시 일상에 다가설 힘을 얻었다.
첫댓글 어제 날씨는 어디를 가도 괜찮았겠더라고…. 가지 않았어도 간 것 처럼 느끼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썩히지 마시길. 네이버블로그 링크도 하나 올려놔 봐봐요~~^^
ㅎㅎ
처음 올려 봤는데 열릴네나?
https://m.blog.naver.com/smflrp01/223451250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