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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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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본 바람기에 대한 다큐에서 '도파민' 얘기를 하면서 비슷한 내용이 나왔어요. 느림 사이트에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금세 보게될 줄은 몰랐어요. 재미있네요. ^^ |
[2007/02/15]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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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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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혼자 많이 궁금해했던 내용이라 반갑네요 근데 지금의 다음 단계라는게 어렵게만 느껴지네요 링크시킨 글 잘 보았습니다.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이해가 있어 좋았습니다. 김군이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은 어떻게 활용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정리해보려던 건 그냥 지난 이야기로 묻어 두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반가운 곳이 있어 좋습니다. 느림과 기홍님이 오래토록 젊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콩님도요 |
[2007/02/15]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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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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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가지 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원죄'라는 것 - 그리고 그에 대응되는 '구원'이라는 것 - 에 대한 기홍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
[2007/02/16]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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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씨 요즘도 1에 둘러싸여 많이 바쁜가 봐요. ^^ 명절 잘 지내시고 삼월 즈음에 한번 보는 거 어때요?
종대님 고맙습니다. 종대님도 오래도록 젊고 건강하길 바래요. 그리고 명절 잘 보내시고요. |
[2007/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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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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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의 출처는 만족(뇌과학이 밝혀낸 욕망의 심리학). 그레고리 번스
자세한 글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6. 기분좋은 통증
- 코르티솔이 도파민과 상호작용해 만족감에 매우 근접한 뭔가를 창조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특히 신체적 스트레스에서 생겨나고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두개를 합한 새로운 신체적 자극이 우리모두가 원하는 만족감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다.
생각만으로 통증을 조절한다.
- 통증의 생물학적 차원과 심리학적 차원 모두를 이해하게 되면, 통증과 쾌락이 양극단이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있다. 통증과 쾌락이 뇌에 도달하는 생물학적 경로는 유사하다. 이러한 사실은 통증 자체가 적절한 상황에서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통증을 느끼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원인을 없애 강도를 약화시키고자 할 것이다. 원인이 가시와 같은 외부적인 것이라면 원인제거가 쉽지만 영구적인 손상일 경우에는 통증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척수, 뇌와 같은 신경체계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 척수의 통증 수용체는 뇌에서 만들어진 신호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 두뇌간체계 즉 뇌수도관 주위회백질(PAG)과 위복측내측연수(RVM)에는 고농축의 몰핀과 같은 물질이 존재한다. 이 영역에서 두뇌로 전달되는 통증자극의 강도를 약화시킨다.
- 이두 영역이 대뇌피질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통증을 통제할 수 있을 수있게 된다. 마음이 통증을 제어한다면 통증이 쾌락으로 바뀌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 스트레스의 원인을 조절하는 능력을 세상을 달라보이게 한다. 제어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상사가 당신에게 고함을 지른다든가 중요한 일로 어디를 가능도중에 차가 막힌다든가 하는 외부적인 사건일 수 있다. 아니면 두통이나 위통같은 내부적인 스트레스도 당신의 신체에서 시작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힘겨운 노동과 같은 여타 스트레스들은 인내하고자하는 본인의 의지로 통제가 가능하다.
-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거의 예외없이 불쾌한 것으로 지각되는 반면 통제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참을 만한 것, 심지어는 즐길만한 것으로 지각되기도 한다.
- 통증과 쾌락이 결합되는 곳이 선조체이며, 측중격핵이 중요한 영역이다. 선조체는 통증과 쾌락을 결정하는 곳은 아닐 수 있지만 들어오는 정보들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뇌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정보들에 통증과 쾌락도 포함되는 것이다.
선조체(통증과 쾌락이 결합하는 곳)
- 선조체가 통증이 오기전에 활성화된다는 결과는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뇌의 초기경고체계가 선조체에서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코르티솔(만족감을 부르는 화학물질)
- 선조체는 다양한 정보가 통과하는 길목이지만 통증이 없어지거나 쾌락으로 변화할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염증반응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은 틀림없다.
- 통증시 스트레스 호르몬이자 스테로이드인 코르티솔도 방출되는데, 의사들은 스테로이드의 향정신성작용을 알고 있었다. 프레드니손과 같은 합성스테로이드는 코르티솔과 같은 천연스테로이드보다 열배나 약효가 셀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분과 생각을 이상하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 코르티솔과 도파민의 상호작용은 통증에 대한 만족감의 중요한 열쇠이다. 추측컨대 코르티솔은 SM의 쾌락과 관계가 있는것 같다.
- 코르티솔은 뇌에서 자유롭게 이동해 도파민고 관련 신경세포에까지 들어간다. 코르티솔은 기분을 향상시키고 집중력을 높이며 심지어 기억력까지 좋게 한다.
- 정리하면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특히 신체적 스트레스에서 생겨나고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두개를 합한 새로운 신체적 자극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만족감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 달리기 할때의 행복감(도파민고 코르티솔이 분비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
- 운동을 하게되면 전반적으로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뇌의 신경발생을 촉진하여 말 그대로 뇌를 새로 만들게 된다. 운동은 신체적이고 비 신체적인 스트레스의 원천에서 뇌를 보호한다. 즉 여러분ㅇ르 괴롭히는 모든 것의 만병통치약이다. 우울하다면 운동을 하라.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역시 운동을 하라.
- 신체적인 스트레스를 포함한 모든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을 분비시킨다. 선조체에서 코르티솔과 도파민의 상호작용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 심지어 초월감의 달성과 관련있다고 생각된다.
- 도파민이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지만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코르티솔이 필요하다. 그리고 코르티솔은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만족감을 느끼려면 반드시 불쾌감의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적절한 수준의 도전 찾아내기
- 불쾌감이 만족감에 필수적인 구성요소라는 주장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 어려운 퍼즐을 완성할때의 즐거움처럼 지적활동을 통해 만족감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 신체적인 도전만큼 만족감을 주는 정신적 도전은 무엇일까 찾아보기 위해 애썼지만 신체적인 활동이 만족감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도전을 포함하는 신체적인 활동이 뇌에서 도파민과 코르티솔을 분비하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달리기는 그러한 도전의 하나로 그 인기가 점차 증가한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족을 위한 장거리 달리기
뇌를 변화시키기
-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약 50여년전에 알려졌다. 최근 그 인과관계가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들이 더 똑똑한 것일까? 운동이 정신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일까?
- 운동이 어떻게 신경 발생의 원인이 되는지에 관한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은 성장인자들의 분비를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신체활동은 뇌유인성 신경영양인자BDNF를 증가시킨다. 그것은 시냅스를 만들고, 신경발생을 촉진하고, 해마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세포의 죽음을 방지한다.
- 또 운동은 신장에서 분비되는 에리스로포이에틴과 혈관내피성장인자를 분비하는데, 그 두가지는 뇌혈관의 구조의 성장을 촉진하고 더 많은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대사 요구량을 지원하는데 필수적이다. 운동을 하면 선조체에서 나타나는 파킨슨병의 퇴행작용을 방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른 성장인자 "신경교세포계-유래 신경영양인자 GDNF덕분이다.
- 아무튼 운동을 하면 전반적으로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뇌의 신경발생을 촉진하여 말 그대로 뇌를 새로 만들게 된다. |
[2007/02/16]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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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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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생물학적 차원과 심리학적 차원 모두를 이해하게 되면, 통증과 쾌락이 양극단이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있다. 통증과 쾌락이 뇌에 도달하는 생물학적 경로는 유사하다. 이러한 사실은 통증 자체가 적절한 상황에서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이 글귀를 까페에 옮겨놓은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에서였다. 지금 입원환자 중에 30대 초반 여성 fibromyalgia환자가 입원해있다. 벌써 4번째 입원이다.
그 환자는 그야말로 만성통증 환자이다. 과도한 통증이 발생했을때 척수, 뇌영역에서 inhibitory system이 작동을 해주서 통증의 양이 조절되어 뇌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 환자에게는 그러한 억제 시스템이 망가져버린 모양이다.
10분만 걸으면 온몸에 바늘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다고 한다. 재활의 관점을 적용하여 유연성운동, 근력운동, 근지구력 운동, 협응성운동, 민첩성운동의 순서로 재활운동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유연성운동을 시키면 벌써 통증이 온몸으로 퍼진다고 한다.
그 환자는 어디로 가지도 못한다.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주고 치료해줄 의사도 없는 지경이다. 뇌과학을 좀더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선 그런 환자의 통증을 이해해주기위해 엄청 노력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렇게 심한 만성통증환자가 몇명있다. 위 환자와 거의 비슷한...
한번은 만성통증의 뒷면에 우울증까지 겹쳐 죽음의 그림자를 본 경우도 있었다. 그 만성통증환자는 처음에는 외출은 상상도 못했었다. 다행히 그 환자는 1년여 동안의 치료끝에 지금은 배드민턴도 치료다닐 정도가 되었다.
어쨌든 그러한 만성통증환자에게 성공적이고 궁극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 과정중에 있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방법은 "명상", "수련",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머리형)은 뇌과학의 이해를 통한 통증과 쾌락은 뇌의 같은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해이다.
아직 현실로 적용시켜보지는 못했다. 아마 적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시스템이 필요하기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이해시킬 수 있는 수준이 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 만성통증 환자와는 기나긴 시간의 면담을 하기도 한다. 그때 위에 있는 말을 써먹으려고 적어놓은 것이다. 이해하고 적용하기 힘들겠지만..... |
[2007/02/16]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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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만족』은 작년 12월에 읽은 책인데.. 찾아보니 나도 그 내용을 타이핑해놓았네..^^; 형철이 넌 정말 의사다운 사람인 것 같다. 좋아보인다. |
[2007/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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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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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1에 둘러싸인 自然을 보셨군요. 自然에 비하면 저는 출구가 트인 셈입니다. 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 지현 1111111111111111111111111
3월 7일에 단체 총회가 있어요. 총회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 |
[2007/02/20]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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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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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고민이 아님을 인정하면서 그냥 몇자 적어본다.
작년에 70이 다된 척추관협착증 환자(????여성 사장님, 머리형 사람, 신경외과 의사를 사위로 두고 있는 할머니, 아들이 정신질환, 며느리는 가출, 손자가 자폐증, 3명의 손자를 돌보며 사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얻은 깨달음이야기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아침 8시 50분경에 종종걸음으로 달려오시면서 "바뻐! 바뻐! 빨리좀 해주세요" 그러면서도 얼굴은 엄청 밝은 모습으로....
할머니 어떡하면 그렇게 즐겁게 사세요? "나는 즐겁게 살기위해서 노력하면서 사내! 평생을..."
그리고 퇴근하면서 갑자기 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확장들이 있었다. 왜! 세상은 고통일까? 정말 세상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일까? 그냥 내개 그렇게 고통으로 규정짓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이, 어떤 환경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인가? 나에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은 "나 자신이, 나의 뇌가, 나의 집착이, 나의 신념이 나를 고통으로 몰아갈 뿐" 그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도, 어떤 환경도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나를 가끔 갈구는 나의 와이프도, 괜스래 보기 싫었던 병원에서 모 선생님도, 말을 잘 안듣는 수련의도, 나에게 매일 왜 안 낫느냐고 투정하는 환자도, 지나가는 거지도...
실제로는 나의 고통의 상황이 아니라 나에게 기쁨과 편안함을 주는 사람, 환경일 뿐이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외로워서 못살것이고, 그들이 없으면 내 삶의 포지션도 없을 것이고, 그들이 없으면 나의 존재이유도 없을 것이고....
그리고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한마디 "處處佛象"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부처님, 나에게 존재의미를 주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그러한 존재...
더 놀라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
[2007/02/20]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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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감동적이기도 하다. '행불행을 결정하는 건 외부 조건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다.'는 말이 생각난다. 내 삶의 한 축으로, 핵심적인 축으로 삼고 싶은 내용이 담겨있는 것 같다. '더 놀라운 이야기' 기대한다. |
[2007/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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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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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철님, 님의 이야기 제 블로그에 옮겨갑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
[2007/02/27]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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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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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친구님! 공부가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더 놀라운 이야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처처불상, 하늘님이라는 깨달음이 나의 온몸에 전율로 느껴지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번 되뇌이기도 하고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송정리역에서 익산가는 07시 10분 기차를 타기위해 택시를 타고 도착한 시간이 7시 2분정도였다. 익산으로 1-2교시 강의하러 1주일에 1회씩 다니는 길인데, 기차표를 끊기 위해 기다려본적은 없을 정도로 한가했는데 그날은 8명가량이 앞에 줄을 서있었다.
표를 한명두명 끊어 내 앞에 1명이 남아있는 상황(3분정도 남아있는 상황)에서 30대 초반 젊은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7시 10분기차를 타야된다면서 먼저 차표를 끊어도 되겠느냐는 말을 던졌다.
나는 순간 화가 나서 "우리도 10분기차를 타려고 줄서있는 거예요"라고 불쾌한 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옆 창구에 50대된 역무원 한분(짬밥이 좀 되는 듯)이 서있었는데, 사람들이 10분기차를 타기위해 줄을 서있는 것을 보면서도 어슬렁거리면서 차표발매를 하지않고 있어서 내심 화가 나 있었던 참이었다.
그 젊은 사람은 결국 나보다 더 빨리 옆창구 역무원 직원한테 차표를 끊고 기차를 타기 위해 달려갔다. 내가 차표를 끊고 기차를 타기위해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 그 젊은 친구가 보였다.
순간 창피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하고 내가 며칠전에 깨달은 처처불상, 하늘님 이야기는 나의 머리속에서 느껴진 것 뿐인가? 대체 나는 무엇을 깨달은 것이며, 내가 저지른 순간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루종일 우울했었다. 강범이한테 그 이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면서 말했지만 ........ |
[2007/02/27]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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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경험담 잘 들었다. 남 얘기같지 않다. 누구나 겪게 마련인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일이 많기 때문에 불교에서 '돈오점수'라는 말도 하고, 예수도 '일흔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이론적으로야 '대각'이나 '확철대오' 같은 걸 하면 그 후의 행동들이 완전히 바뀔 수 있겠지만, 실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마음이라는 게, 그에 따른 우리의 행동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건 '집착'이나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머릿속의 깨달음이 의식 아래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체화되기까지는 부단한 '점수'의 과정을 필요로 하고, 그 과정 중 '깨달은 것(처처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기차역)'은 오히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같은 얘기다만, 예전에 라즈니쉬의 책에선가 '몸이 변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마음이 변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내 오해 하나를 자각했고 그 후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마음과 그에 따른 행동이 단번에 변할 수 있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날 수 있다고 은연 중(혹은 드러내놓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몸이 단번에 변하지 않는 건 당연시하면서 마음이나 행동은 단번에 변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 거, 이거 큰 착각이다. 하루 식사조절했다고 비만하던 사람이 날씬해질 수 없고 하루 운동했다고 갈비씨가 몸짱이 될 수 없는 게 당연하듯, 한 번 마음 먹었다고 해서 마음이 그대로 변해버릴 순 없다. 시간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단번에 변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나 남의 모습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건 크나큰 오해이자 오만이다.'
마음이 단번에 바뀔 수 있는 확률이 몸이 그렇게 될 확률보다는 높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두 가지 확률은 보통 사람이 체험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무지 낮기 때문에 그 차이란 게 별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마음도 몸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여러모로 나은 것 같다. 자기 몸에 힘과 근육이 더 자리잡길 바란다면 반드시 수 년 간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하듯,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변화하길 바란다면 역시 수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의 수행이 필요하다(마음이나 행동의 수준에 따라 시간 차이는 많겠지만), 라고 생각하는 게 좀 더 현실적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이 자신의 불성실함의 핑계나 합리화로 쓰여서는 안 될 테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