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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시릴겁니다
여름이다. 산과 들은 푸를 대로 푸르러졌지만 6월의 하늘은 쪽빛 제 빛깔을 잃고 탁해졌다. 수은주가 한 칸 오를 때마다 대기는 수증기로 더 뿌옇고 회색빛 하늘은 한 뼘씩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래서 여름엔 푸른 것들이 더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답다.
횡성 병지방은 푸르디 푸른 산마을이다. 산들이 산뿌리를 이 갈래 저 갈래로 겹친 산골짝에 들어앉은 벽촌. 산마다 계곡수를 쏟아내는 까닭에 맑은 물줄기가 마을을 감싸안고 흐른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개울은 반두를 들고 송사리를 쫓던 달콤한 추억이 떠오를 만큼 정겹다. 개울 너머엔 녹슨 양철지붕을 인 허름한 농가도 서있다.
물줄기를 따라 상류로 들어서면 이끼 짙은 계곡과 원시림이 앉아있다. 짙푸른 나무숲에서 흘러 나온 산소 알갱이들이 공해로 찌든 가슴을 헹궈준다. 이제는 신화가 돼버린 아득한 삼한시대의 역사까지 깃든 병지방. 초여름에 어울리는 푸른 산마을이다.
〈글 최병준·사진 김영민기자〉 섬강의 첫줄기 횡성 ‘병지방(兵之坊)’
초여름. 습기 섞인 햇살이 무겁다. 이른 더위로 멀리 산자락마저 어른거리는 6월. 이제는 계곡이 그립다.
강원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에 간다. 병지방은 구면이다. 겹겹산속에 둘러싸인 벽촌. 5~6년전 처음 찾았을 때는 비포장길 한 가닥이 탯줄처럼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다. 지금도 매양 마찬가지지만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2배 정도 넓어졌다. 숲그늘 짙은 산줄기 사이로 겨우 승용차 한 대 지나갔던 옛길이었는데…. 내년 완공될 도로를 위해 이런 산줄기들을 덜컥 잘라냈다. 비포장길은 새 흙을 깔아 다지고 있다. 지방도에서 마을 복판까지는 비포장도로로 8㎞ 정도. 길이 완공되면 관광객들이 몰려들 테지만 아직은 심심산골이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계곡의 윤곽이 잡힌다. 계곡은 그리 크지도, 넓지도, 깊지도 않다. 개울처럼 작고 아담하다. 여울도 없이 시종 잔잔한 계곡은 멀찌감치 앉아있는 산줄기 속으로 꼬리가 닿아있다. 지도상에도 병지방 계곡이란 이름 대신 대관대천이라고 씌어있다. 이 물줄기가 바로 섬강 첫 줄기다.
“처음 온 사람들은 계곡이 고만고만하다고 하지만 사실 이곳 저곳 물골이 많아요. 조금만 들어가면 사람 하나 없는 그런 계곡들이 흩어져 있어요.”
공세울, 장승골, 다락골, 산뒤골, 샘골, 공세울…. 마을 앞에 세워진 안내 그림판에는 골짝도 많이 그려져 있다. 비포장길이 끝없이 이어진 공세울 상류를 밟아보니 원시림 같은 이끼골도 나타났고, 마을을 지나 산으로 이어진 늘목길에는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여기저기 뚫린 임도는 끝을 알 수 없이 산을 감고 사라진다. 늘목재 아래 계곡은 등산로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비오는 날만 물줄기를 뿜어내는 건천도 있다.
사실 계곡만 따지면 병지방은 설악산이나 오대산에 비할 수 없다. 계곡 군데군데 석축을 쌓아놓아 예전보다 운치도 없어졌다. 그래도 한 번 계곡에서 놀다간 사람들은 다시 찾는다고 한다. 시퍼런 소(沼)나 깊은 담(潭)이 없어 눈길 줄 데가 많지 않지만 대신 안전하게 탁족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물가에 들어서면 막 길어놓은 샘물처럼 맑고 차가운 물줄기에 더위가 싹 가신다.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데다 자작자작 강자갈을 적시며 흐르는 물소리, 숲을 옮겨 가며 우는 새소리, 앙칼지지 않게 긴 울음을 던지는 강아지…. 화려하진 않아도 은근하게 마음이 가는 곳이다.
계곡뿐 아니라 오지 여행의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횡성은 북동쪽으로는 태기산(1,261m), 청태산(1,190m), 봉복산(1,028m), 운무산(980m), 어답산(789m)을 끼고 있다. 북쪽으로는 수리봉(1,028m), 발교산(998m), 오음산(930m), 대학산(876.4m)이 첩첩 늘어서 있다. 동쪽으로는 사자산(1,120m)·배향산(808m)이, 남쪽엔 치악산 남대봉(1,819m)·향로봉(1,042m)·비로봉(1,288m)과 매화산(1,084m)이 있다. 병지방은 이중 어답산, 발교산, 대학산 안에 앉아있다.
“옛날에는 화전민 촌이었더래요. 그때가 더 북적거렸지요. 1970년대에 녹화사업으로 다 쫓겨 가 버리고 그나마 땅뙈기가 있는 사람들만 남았지요.”
한때는 이 산 저 산을 잇는 산길이 한자리로 합쳐지는 산마을이어서 제법 행인들이 많았던 곳이다. 50여년 전만 해도 장돌뱅이, 약초꾼, 화전민들이 들락거리는 주막집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지방리 삼거리는 옛이름이 주막거리였다.
다른 마을들은 산을 깎고 길을 내어 이리저리 연결시켜 놓았지만 병지방은 그동안 개발에 뒷전이었다.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그 덕택에 산마을의 예스런 풍광을 간직할 수 있게 됐다. 횡성군은 그런 병지방을 토종마을로 지정했다. 실제로 토종꿀을 치는 사람이 많고, 더덕밭을 가꾸는 집도 있다. 산그늘이 드리워진 경사진 밭고랑 끝머리에는 녹슨 양철지붕을 이고 있는 옛집(사진 맨위)도 많다. 아직 디딜방아가 남아있는 집도 있다. 마을은 채 50여가구가 못된다.
병지방(兵之坊)이란 옛날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라고 한다. 전쟁의 역사는 무려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쫓겨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갑천면에는 태기왕이 피묻은 갑옷을 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답산(御踏山)이란 임금이 친히 밟은 땅이란 뜻으로 박혁거세와 태기왕이 찾았던 곳이다. 공세울에는 태기왕이 군사들을 먹이기 위해 세금을 거둬갔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요즘 병지방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을 안에 청소년 수련관과 함께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는 통나무집 산림문화회관이 들어섰다. 지난해에는 청소년 수련관이 문을 열었다. 계곡 위쪽에 7만8천평 규모의 어답산 관광단지가 2006년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단지 내에는 관광 펜션과 오토캠핑장 등이 들어선다. 주변 풍광도 수년 사이 많이 변했다. 병지방 인근에 횡성온천이 개발됐다. 5년전 횡성댐 건설로 생긴 횡성호도 지척이다.
자연 속에 숨겨져 있던 병지방 계곡. 웅웅장장한 암벽은 없고 고만고만한 산마을 끼고 있는 아담한 계곡이지만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소박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여행길잡이
▶ 교통
횡성은 중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 중앙고속도로 횡성IC, 영동고속도로 원주IC에서 가깝다. 횡성IC에서 빠져나와 횡성읍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횡성교를 지나 섬강유원지 표지판을 보고 달리면 섬강과 횡성댐 갈림길. 횡성댐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달리다보면 왼쪽에 공사중인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비포장길로 접어들면 병지방 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작아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횡성에서 국도 19호선을 타고 홍천 서석면 방면으로 달려도 된다. 호반에 있는 병지방 콩두부집을 지나 갈림길에서 좌회전한 뒤 두번째 나타나는 주유소를 끼고 다시 좌회전하면 횡성온천 방향. 온천을 지나면 자그마한 저수지가 나타나고 계속 달리면 오른쪽에 비포장 병지방길이 이어진다.
▶ 먹거리
병지방에서는 변변한 식당 하나 찾기 힘들다. 원주IC로 이어지는 원주공항 맞은편 이화식당(033-343-2367)은 30년 전통의 곰탕집이다. 5,000원. 횡성호 가는 국도변의 병지방 콩두부(343-0082)는 직접 집에서 만든 두부 요리를 내놓는다. 순두부 5,000원, 두부전골 2만원부터.
▶ 숙박
병지방 계곡에는 여관은 없지만 마을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통나무집 산림문화회관이 있다. 큰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공동화장실을 이용하지만 취사가 가능한 콘도형이다. 방 크기에 따라 3만, 5만, 7만원. 이장집(345-9237). 통나무집 관리하는 집(345-5684). 횡성에는 자연휴양림이 4개나 있다. 병지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횡성자연휴양림(344-3391). 둔내면에는 청태산 휴양림(343-9707)과 둔내자연휴양림(343-8155) 등이 있다. 횡성온천(344-4200)은 피로를 풀기 좋은 곳. 온천수는 약알칼리성이다. 온천 바로 앞에는 모텔 어답산 파크장(344-9400)이 있다.
〈횡성/글 최병준·사진 김영민기자 bj@kyunghyang.com〉 SK임업 충주사업소
-초록너울 일렁이는 하얀 그리움…‘쏴아아’바람속 자작나무숲에 서다-
추운 북쪽 나라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자작나무가 있었다. 하늘까지 잎을 뻗어 올린 하얀 나무. 연둣빛 이파리는 빛이 들면 투명하게 반짝이고, 그늘이 들면 파스텔톤으로 바뀐다. 충북 충주 SK임업 조림지엔 자작나무가 숲을 이뤘다. 1975년 심었으니, 숲은 이제 서른살이다.
충주 산척면과 동량면의 인등산(666.5m)과 부산(780.4m). 충주호반인 이곳에 SK임업(전 서해개발) 충주사업소가 있다. 여의도 넓이인 2백59만평(840ha)의 숲엔 자작나무 34만그루, 가래나무 60만그루, 낙엽송, 참나무, 잣나무 등 12종류 1백15만여그루의 나무가 있다. 75~80년 조림해 지금까지 가꿔오고 있는 숲이다. 가래나무와 자작나무를 대규모로 키우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여기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보전을 위해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4륜구동차가 가파른 임도를 올라간다. 멀리 삐죽 솟은 키 큰 나무들이 자작나무다. 사이사이 낙엽송·가래나무·산수유가 모여 있다. 임도변 루브라참나무는 가을이면 붉은 잎으로 산을 물들인다. 88년 국내 최초로 미국에서 종자와 묘목을 가져왔다. 조경수나 가로수로 보급할 예정이다.
“처음엔 30년 키우면 목재가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20년은 더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충주사업소 이현목 소장(42)은 산척면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 마을 어른들이 지게에 묘목과 비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오지지만, 그때 산척면은 ‘깡촌’이었다. 벌거벗은 산자락마다 화전민들이 숨어 살았다. 밭을 갈아 감자와 옥수수를 키워 먹던 곳에 SK임업이 들어와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었다.
#1970년대 故최종현회장 추진
산에 나무가 없던 70년대 당시 선경그룹(SK그룹) 최종현 회장은 서해개발을 창립하고 조림을 시작했다. 그룹에서는 투자기간이 길고 수익이 금방 나지 않는 임업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최회장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 거야”라는 말로 조림사업을 추진했다.
충북 충주, 충남 천안, 경북 영동, 경기 오산에 사업소를 조성하고 활엽수를 심기 시작했다. 활엽수가 성장은 더디지만 목재나 조경수로 가치가 높기 때문이었다. 4개 사업소의 임지는 모두 4,100ha. 여의도(850ha·행정구역 기준)의 4.7배 규모다. 천안사업소엔 동양 최대 규모인 호두나무 단지 1백만평이 조성돼 있다. 오산사업소에서는 묘목을 길러 조경수·관상수로 공급한다. 충주사업소는 가래나무와 자작나무가 주 수종. 훗날 목재로 쓰기 위해서다.
가래와 자작은 둘 다 쭉쭉 뻗는 키 큰 나무들이다. 가래나무는 총 개머리판을 만드는 데 썼다. 그만큼 단단하고 가볍다. 옛날 중국에선 황제의 관을 가래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결이 고와 최고의 건축자재로 꼽힌다. 자작나무 역시 일품 목재. 하얀 몸피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기름기가 많아 불이 잘 붙는다.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이란 이름이 붙었다.
자작나무엔 그리움과 낭만이 깃들어 있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들으면 먼 북국의 설원과 흰 숲이 떠오른다. 40대라면 영화 ‘닥터 지바고’를, 20·30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죽은 이의 영혼이 자작나무 숲에 깃든다고 믿는다.
#숲을 키운건 30년 정성
자작나무는 원래 강원 이북에서 자란다. 강원도 국유림에 자작나무 숲이 일부 조성돼 있지만, 규모와 수령은 여기에 못 미친다. 위도는 낮아도 내륙에다 해발 500m 이상 고지대여서 잘 자란다. 묘목은 오대산에서 채취했다. 나무들은 20m 높이로 자랐다. 몸뚱이는 어른 허벅지보다 굵다. 길이 생장은 끝났고, 부피 생장이 남았다.
곳곳에 노란 띠를 묶은 나무가 보인다. 인공 조림지는 햇볕·양분 공급을 위해 주기적으로 나무를 솎아 준다. 3,000평에 묘목 4,000~4,500그루를 심어 400그루만 남긴다. 띠가 없는 나무들은 감벌 대상. 솎아낸 뒤 공예품 재료로 활용한다. 띠 두른 나무들은 더 길러 목재로 공급할 예정이다. 이소장은 “나무는 자신의 대에서 결실을 볼 수 없는 사업”이라며 “목재로 베어내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숲을 키운 건 30년 정성이다. 여름이면 웃자란 넝쿨 치우고, 겨울엔 가지 치고, 틈나는 대로 잡풀을 뽑았다. 작은 불씨 하나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불’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화재 한 번 없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자작나무 이파리는 ‘쏴아아’ 소리를 내고 하늘 끝 나무 꼭대기는 가볍게 흔들린다. 사람의 때 타지 않은 충주 숲엔 사람의 정성이 묻혀 있었다.
〈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ark@kyunghyang.com〉 ‘30년 숲지기’ SK임업 성백진 사장
SK임업 성백진 사장(63)에게 숲은 ‘꿈이 영그는 곳’이다. 직접 나무를 심은 황무지가 30년 세월이 흘러 푸른 숲으로 변했다.
성사장은 1974년 서해개발(현 SK임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75년 충주사업소장을 맡아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래나무·자작나무 숲을 만들었다. 비료와 묘목을 지고 산에 올랐고, 화전민 마을 헛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한밤중엔 옷 속 전대 가득 주민들에게 줄 노임을 두르고 3㎞씩 떨어진 마을을 돌아다녔다. 당시 그의 별명은 ‘헬리콥터’. 이 봉우리 저 봉우리 그가 불쑥 나타날 때마다 주민들은 “헬리콥터 떴다”고 했단다. 농구화와 바짓단이 헤어질 만큼 산야를 누비다 임업과장·부장 등을 거쳐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난 2월엔 상명대에서 조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림은 곧바로 수익이 나는 사업이 아닙니다. 당시 ‘장학퀴즈’를 실시하고 한국고등장학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던 최종현 선대 회장이 나무를 키워 얻는 수익을 미래의 인재 양성에 쓰기 위해 조림사업을 시작했습니다. 30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수익이 나면 선대 회장의 뜻대로 교육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계획입니다.”
50년생 나무 한 그루는 산소 3천만원, 물 4천만원, 대기오염 제거 8천만원으로 1억5천만원의 가치가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임업을 선대 유업으로 생각하고 계속 발전시키기로 약속한 것이 그에겐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첫댓글 년전에 매화산에 가 봤는데 산세가 아담하고 예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