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야∼ 아아아∼.몇 년 전이었다. ‘개그콘서트’라는 인기 개그 프로그램에서 매번 대미를 장식한 것은 심현섭이 아프리카 추장으로 나온 ‘사바나의 아침’이었다. 이 코너에서 끝없이 터져 나오던 심현섭의 애드립은 정말 사람이 보여 줄 수 있는 즉흥 연기의 최대치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심현섭에게 슬픈 가족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심현섭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사건 때 운명을 달리한 심상우 전 민정당 총재비서의 막내아들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서야 개그맨 심현섭이 우리에게 보여 준 재치와 익살이 실은 아버지에게 보여 주지 못한 막내의 어리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3년 10월 9일 오후 12시 58분.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 대양주 6개국 순방 첫 방문국인 미얀마의 아웅산 국립묘소에서 참배를 준비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의 외교사절과 수행원이 북한의 테러로 운명을 달리했다. 몇 달 후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영상이 방영될테니 노약자나 임산부는 시청을 삼가해 달라’는 멘트와 함께 당시 테러 현장을 담은 영상을 내보냈다.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에 이어 카메라 앵글이 심하게 흔들렸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먼지가 피어오르고, 조금 뒤 먼지가 가라앉자 폭격을 맞은 듯한 아웅산 묘소 전경이 화면에 잡혔다. 이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현장에 널브러진 부상자와 사망자, 피 흘리며 지나가는 기자, 놀라 당황해하는 현지 경찰들. 텔레비전에서 보여 준 영상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테러의 참상을 피부로 느끼게 하였다. 한국은 여전히 냉전의 그늘 속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웅산사건순국외교사절위령탑은 경의선 임진강역 부근에 있다. 서울에서 한 시간여를 달리자 다소 황량해 보이는 임진강역이 나왔다. 역 밖으로 나와 먼저 시인 박봉우의 ‘휴전선’을 감상하자.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17m 높이, 열일곱 계단의 위령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순국자 17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령탑 둘레에는 외교를 통한 국력 신장, 민족 화합, 조국 번영, 승천영생의 염원을 담은 4개의 청동군상이 있다.
이 위령탑뿐만이 아니다. 이곳 임진강공원에는 낯선 이국땅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위해 세워 놓은 비석, KAL기 피격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 실향민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망배단, 끊어진 경의선 등 수많은 조형물과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사연들이 방문객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