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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Mr.블로그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봤던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보아왔다고 여겨지는 영화 20편을 골
라봤습니다. 따라서 이 리스트는 무슨 '영화 걸작 베스트 20' 같은게 아닙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생각나는 영화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한번 꼽아본 것뿐
입니다. 생각 같아선 100편 정도 들고 싶지만, 여러 여건상 일단 20편만 추려봤습니
다. 물론 순위하고도 무관합니다.
01.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1965
감독: 로버트 와이즈
배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안나 리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봤던 영화다. 이 영화에 푹 빠져 근 일주일 내내 상영관에 출근했던
기억이 다 날 정도다. 예전에 특선 명화극장으로 TV에서 더빙으로 해주던 외화프로로도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비디오로 출시되자 아예 VHS를 직접 구입해서 보고 또 보았
다. DVD가 출시되자 가장 먼저 구입한 것도 역시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2천년대 이후로는 거의 못 봤지만 과거에는 몇번 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반복해서
많이 봤었다. 예전에는 각 장면마다 나오는 대사까지 거의 외울 정도였었다. 마리아 수녀
가 알프스 산위에서 그 우아한 춤과 함께 메인 테마곡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는 오프닝신
은 정말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마리아 수녀와 예비역 장교,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나 인형극 놀이, 그리고 파티에서 아이들의 특별 공연 같
은 장면들은 수십번을 반복해서 봐도 그때마다 감동의 깊이가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노래와 풍광, 그리고 사랑으로 어우러진 감동
의 드라마가 펼쳐지기에 근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다.
나에게 대령의 큰 집과 잘츠부르크는 마치 고향처럼 느껴진다.
02.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감독: 리들리 스콧
배우: 해리슨 포드, 룻거 하우어, 숀 영
인간 복제와 기억의 이식 그리고 복제 인간의 위험성 같은 것들은 미래 사회를 배경
으로 하는 SF물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다. 미래 사회는 곧 진보된 과학이 지배
하는 사회를 의미하고, 과학의 전면적 지배는 인간에 버금가는 또다른 생명체의 출
현 가능성을 예고한다.
여기서 생명체까지 만들어내는 진보된 과학은 창조주의 역할과 겹치면서 인간의 정
체성을 놓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도 제어하기 힘든 수준의 하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시대라면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이렇듯 과학의 끝에는 언제나 철학적인 물음이 자리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대다수 SF물들에 존재하는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을 아주
오래 전에 제기한 영화다. 그래서 모든 SF물들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의 어떤 SF물
들도 [블레이드 러너]가 제시한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블레이드 러너]가 디스토피아적 시각으로 미래 사회를 암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전설이 될 정도로 잘 알려진 얘기다. 이 영화에는 러닝 타임 내내 칠흙같
이 어두운 밤만 나온다. 그런 미래 도시의 밤을 밝혀주는 빛은 거리의 간판과 네온
사인들인데, 재미있는 것은 그 간판과 네온사인들이 온통 일본어로 치장되어 있다
는 것이다. 아마도 리들리 스콧은 80년대 초반 미국 경제를 거세게 위협하던 일본
경제의 활황에서 미국인들의 불안감을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의 탁월함은 사실 비쥬얼에 있다. 고딕적 이미지의 초고층 건물들을
을 중심으로 공중 패트롤카와 대형 광고 비행선에 이국적인 광고 스크린까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사이버틱하다. 특히 권력을 상징하는 타이렐사의 건물은 피
라밋 형식의 고층 건물이어서 초현대적이면서도 흡사 파시스트적인 위압감을 주기
도 한다.
고층 건물들은 일견 화려하게 세팅되었지만 어두운 밤거리에 흩날리는 산성비와 고
압적인 디자인 탓에 상당히 음습한 느낌을 준다. 도시를 거니는 인파들도 활력에 넘
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왠지 통제된 곳에 갇힌 느낌이다.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암울
함은 가히 세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회화와 사진을 전공했다는 리들리 스콧의 전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
이식된 기억을 추적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도 실은 [블레이드 러너]
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진 테마인데, 이 부분도 후대의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간복제의 성패는 결국 복제품에 인간 정신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식할 수 있느냐
에 달려있다. 그래서 기억(memory)과 감정(feeling)이 인간 정신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로 흔히 다루어진다. 인간 정신을 복사할 수 있는 것인지는 최종적으로
철학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어서 늘상 성찰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03.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감독: 이와이 순지
배우: 나카야마 미호, 사카이 미키, 카시와바라 다카시
러브레터는 겨울만 되면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영화다. 홋카이도 설원을 배경
으로 첫사랑의 추억과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 절절한 그리움이 눈 내린 설원
의 그 순백한 아름다움과 정말 제대로 어울렸다.
이와이 순지의 멜러드라마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그가 주목하는건
겉에 드러나는 사랑이나 겉으로 보여지는 애정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사랑
이나 감춰진 사연인 듯 싶다. 짝사랑에 내재된 은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아
주 조금씩 꺼내보이며 세밀하고 농도 짙게 표현하는건 이와이 순지의 전매특
허다. 그런 측면에서 설정이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러브레터]나 [하
나와 앨리스]는 모두 이와이 순지표 영화다.
어찌보면 여학생 취향의 순정물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도 그의 손길을 거치면
감흥의 깊이가 남다르고 모든 세대를 아우를만한 한 편의 웰메이드 멜러물로
재탄생하는게 우연은 아닌 듯 싶다.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 이츠키를 1인2역으로 소화해낸 나카야마 미호의 그
여리고 청순한 모습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을 정도인데. 더불
어 여자 후지 이츠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사카이 미키의 그 수줍고 귀여운
모습도 더욱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중학교 시절 여자 후지 이츠키와 남자 후지 이츠키가 이름 때문에 바뀐 시험지
를 교환하기 위해 어두워진 밤에 교정의 한 모퉁이에서 자전거 페달을 돌려 불
을 밝혀가며 시험지를 살펴보는 장면은 정말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이다.
동심(?)과 추억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후
지 이츠키가 중학교 시절 자신의 모습이 담긴 스케치를 받아들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회상에 빠지는 장면은 이 영화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할만큼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죽었어도 잊지 못하는 그 절절한 사랑. 그러나 영원히 변할 수 없을 것만 같았
던 자신의 그 절대적인 사랑도 애틋하고 고운 순백 같은 그 첫사랑의 추억을
마주하고서야 결국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04. 카사블랑카 Casablanca, 1942
감독: 마이클 커티스
배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폴 헨레이드
[카사블랑카]는 이젠 영화사의 전설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그 쿨하다는 매력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다. 요즘 기준으로는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말없
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며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사나이의 그 쓸쓸한 뒷모습이
참 그럴싸한 매력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영화의 주제곡 'As Time goes By'
도 영화만큼이나 유명하다.
05.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 1992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진 해크먼, 모건 프리먼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서부극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담은 영화이다. 윌리엄 머니가 얘기하는 과거 자신의 모습은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구축했던 무법자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클린트 이스
트우드는 과거 여러 형태의 웨스턴에서 다루어지던 서부의 모습들을 환갑
이 넘은 노인의 눈으로 차분히 성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가치지향적이고 서정적인 정통 웨스턴의 양식에서
벗어나 있으며 스타일을 제거한 탓에 상당한 리얼리즘까지 확보하고 있다.
정의로운 영웅이나 폼생폼사의 스타일리시한 주인공 대신에 늙고 초라한
무법자 출신의 인물이 등장하여 사례금을 노리고 카우보이들을 제거하지
만 왠지 개운치 않은건 살인과 총격에 대한 지루할 정도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나 샘 페킨파가 기존의 웨스턴 신화를 해
체하고 재해석을 시도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러한 서부를 조용히
회고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06. 대부 1,2,3 (The Godfather, 1972,1974,1990)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배우: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로버트 듀발, 다이앤 키튼
대부 시리즈는 참으로 거대한 시리즈다. 대부 시리즈는 폭력을 통해 사회
와 질서 그리고 권력을 탐구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코를레오네 패밀리를
등장시켰다. 형의 자리를 대신해 막내 마이클이 가업(마피아 사업)을 이어
받아 보스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그 자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살
인을 비롯한 각종 범법도 불사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족(패밀리)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가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
해서라면 살인 같은 극단적인 방법도 모두 정당화된다. 그래서 대부 시리
즈는 종종 마피아의 범죄를 통해 미국의 부패를 고발하는 영화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도 마피아와 미국을 근본
적으로 동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마피아나 미국은 공히 자본주의에서 파생
된 현상이며 둘은 '이익'이라는 가치를 위해 그 어떤 범법도 불사한다는 것
이다.
그래서 코폴라는 마이클(알 파치노)을 미국적 부패의 총체적 상징으로 그리
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1편에서 관객들은 고독한 이미지로 권력에 다가
가는 그에게 일종의 연민을 느꼈고, 이런 점 때문에 2편에서 마이클은 좀더
고통스런 인물로 그려졌다. 그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보다 진지하
게 탐구하게 된 것이다.
07.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 1995
감독: 브라이언 싱어
배우: 가브리엘 번, 케빈 스페이시, 스티븐 볼드윈, 피트 포슬스웨이트
떠벌이 버벌 킨트(케빈 스페이시)가 카이제 소제를 떠벌일 때만 해도 사실
카이제 소제는 가공의 인물처럼 보여졌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공의 인물이 영화 막판에 떡커니 등장하면서, 영화 [유주얼 서스
펙트]는 일약 90년대 최고의 반전 스릴러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대단한건 역시 절름발이 범법자 역을 정말 기막히게 소화해낸 케
빈 스페이시의 그 마술같은 연기력이다. 뒷골목의 초라해보이는 장애인 범
법자에서 어느 순간 일약 마피아 세계의 전설적인 두목으로 변신하는 과정
은 관객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90년대의 일급 스릴러물인 데이빗 핀쳐의 [세븐]이나 브라이언 싱어의 [유
주얼 서스펙트]는 공히 케빈 스페이시에게 얼마간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다.
08.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
(Star Wars, 1999,2002,2005,1977,1980,1983)
감독: 조지 루카스
배우: 해리슨 포드, 마크 해밀, 캐리 피셔, 이완 맥그리거, 헤이든 크리스텐슨,
나탈리 포트먼, 리암 니슨
역시 스타워즈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대형 블럭버스터 임에 틀림다. 그런데
에피소드1부터 3까지는 이채롭게도 다스 베이더라는 악의 신화를 뒤쫓고
있다. "I'm your father!"라는 그 강렬한 멘트는 이제 거의 신화가 되어버
린 듯한 느낌. 진화, 진보의 역사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퇴행, 퇴보의 역사를
추적하는 영화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는 매우 특별하게 기억될 영화임에 분명하다.
스승 오비원 캐노비와의 숙명의 대결에서 패하면서 가엾게도 다스 베이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슬픈 전설을 다룬 에피소드 3로 시
리즈의 대미를 장식했지만, 그것이 30년 전의 시리즈의 출발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09. 클리프행어 Cliffhanger, 1993
감독: 레니 할린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 존 리스고우, 마이클 루커
과거 90년대에 TV에서 재탕, 삼탕을 넘어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방영
된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레니 할린이 메가폰을 잡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
을 맡았던 산악 액션물 [클리프행어]였다.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펼치는 산악구조대원 실베스터 스탤론의
강철 같이 흔들림 없는 액션은 산악 액션의 진수를 만끽하기에 충분할 정도다.
깍아지른 절벽과 지형을 무기로 중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을 차례로 무력화시키
는 스탤론의 그 한발 빠른 몸놀림은 관객들에게 스릴과 함께 이루 말 할 수
없는 통쾌함을 선사해주었다.
10. 인디아나 존스 1,2,3,4
(Indiana Jones, 1981,1984,1989,2008)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해리슨 포드, 카렌 알렌, 케이트 캡쇼, 숀 코네리, 케이트 블란쳇
1981년 [레이더스]에서 부터 시작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타워즈 시리
즈와 함께 지난 20세기 후반을 관통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유명한 시리
즈의 하나다. 나치의 탐욕과 음모와 뚫고 펼쳐지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
박사의 그 스펙터클한 모험담은 그야말로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고난도 연출의 달인이자 흥행의 귀재인 스티븐 스필
버그의 역량이 고스란히 발휘된 시리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유머
러스하면서도 여유만만한데다 지혜로운 존스 박사로 분한 해리스 포드의 그
믿음직한 면모는 이 시리즈를 단순한 영화가 아닌 거의 문화 유산에 가까운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는 생각이다.
행동하는 고고학자 존스 박사가 3편 [최후의 성전] 이후 무려 19년만에 다시
영화팬들 품으로 돌아왔다. 비록 예전 같은 민첩함과 기민함은 없지만, 특유의
가죽 모자에 낡은 셔츠를 입고 채찍을 든 존스 박사가 귀에 익은 오프닝 주제
곡과 함께 다시 우리 앞에 선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영웅 인디아나
존스 박사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11.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톰 행크스, 톰 시즈모어, 에드워드 번즈, 맷 데이먼
이 영화가 나오면서 이제 모든 전쟁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
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실전을 방불케하는 극단의 리얼리티라는 전쟁 영화의 새로
운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다. 전쟁의 비극과 실전에서 병사들의 고통을 이 작품만큼
선명하게 드러낸 전쟁 영화는 일찌기 없었다는 생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걸작이지만, 때로는 톰 행크스의 걸작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일병
한사람을 귀환시키기 위해 특공대가 조직되지만, 특공대는 물론 관객들조차 한 사람
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수의 병사들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이런 비이성적인 작전
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의문은 특공대의 리더인 밀러 대위(톰 행크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쉽사
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보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영웅주의건 아니면 그 무엇이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려
는 밀러 대위의 그 강인한 책임감과 극한 상황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그 침착하고
냉정한 리더쉽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12.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
감독: 봉준호
배우: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살인의 추억]을 10자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역시 영화의 카피 처럼 "미치도
록 잡고 싶었다"가 될 것이다. 실패한 작전, 실패한 수사가 남긴 그 긴 여운을 이토록
절절하게 묘사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미치도록 잡고 싶은 범인,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 범인이라 확신하는 용의자를 눈 앞
에 두고도, 그만 실정법상의 벽에 부딪혀 놓아줄 수 밖에 없는 그 환장할 상황에 직면
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쓰벌눔, 밥은 먹고 다니냐?"
13. 터미네이터 2 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감독: 제임스 카메론
배우: 린다 해밀턴, 에드워드 펄롱, 아놀드 슈워제네거
반란군 지도자인 존 코너의 어머니를 암살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극강의 전
투 머신 터미네이터. 비록 악역이었지만 무표정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표
정을 담은 터미네이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냥 사라져버리기엔 너무 아쉬
웠는지 터미네이터는 2편에서 "I'll Be Back"이라는 문구와 함께 재등장한다.
엄청난 파워와 극강의 전투 모드 그대로, 이번에는 존 코너를 수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보내졌다.
그러나 2편 '심판의 날'에 새롭게 등장한 암살머신 T-1000은 자유자재로 변
신하는 기능을 갖춘 터미네이터 보다 더욱 진화된 초극강의 사이보그다. 존
과 그의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이젠 구식이 되어버린 터미네이터가 온 몸
을 던지며 T-1000에 맞서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그 무자비한 사이보그 액션은
이젠 거의 전설로 회자될 정도이다. 특히 천신만고 끝에 T-1000을 물리친 터
미네이터가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자폭하는 장면은 짠한
여운을 남겼다.
14. 에너미 앳 더 게이트 Enemy At The Gate, 2001
감독: 장 자크 아노
배우: 주드 로, 조셉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우랄산맥의 사슴사냥꾼 출신으로 소련의 천재적인 저격수인 바실리 자이체프
와 독일의 무장SS 저격수 학교장인 쾨니히 대령 간의 한판 승부를 다룬 전쟁
물이다. 두 사람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원래 저격수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적을 겨누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는 곳으로 끌어내 영웅으로 만드는 과
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에너미 앳 더 게이트]다. 명저격수는 총구를 통
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런 저격수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총이 아
닌 펜대라는 그 아이러니가 의미심장하다.
15. 다이 하드 1,2,3,4 (Die Hard, 1988,1990,1995,2007)
감독: 존 맥티어난, 레니 할린, 렌 와이즈만
배우: 브루스 윌리스, 앨런 릭맨, 보니 베델리아, 제레미 아이언스,
새뮤얼 L. 잭슨, 매기 큐, 저스틴 롱
다이하드는 영화가 아니다, 하나의 신화이자 액션의 한 장르다
[다이하드]는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또하나의 간판급 액션 블럭버스터다.
최신 병기로 중무장한 악질 테러리스트들의 상대로 슈퍼 히어로도 아니고 근
육질 파워맨도 아닌 일견 평범해 보이는 남자를 내세운 것이 1980년대의 여
타 액션물들과 비교되는 [다이하드]만의 특징이었다.
달랑 홀홀 단신으로 달랑 권총 몇자루 만으로 중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을 상대
하는 존 맥클레인은 무슨 대단한 힘이나 탁월한 격투술을 지닌 남자는 아니
지만 배짱이 두둑하고 민첩한데다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상대와 대처할 때는 남다른 동물적 감각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런 특유의 액션스타일에 유들유들하며 다소 시니컬한 면모를 더해 존 맥클
레인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했고, 이것을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의 분신처럼 소
화해내면서 [다이하드]의 신화가 탄생했다. 존 맥티어난의 3편 이후 무려 12
년만에 존 맥클레인은 [다이하드4.0]으로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비록 아날로그 시대에 활약했던 인물이지만 아직도 시리즈를 기억하는
전 세계의 많은 팬들은 이제 중년 남자로 돌아와 디지털 시대를 헤집는 그의
일차원적인 액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16. 스쿨 오브 락 School of Rock, 2003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배우: 잭 블랙, 조앤 쿠색, 마이크 화이트
"뚱땡이, 당신이 선생 맞습니까?"
지금은 [킹콩]으로 더 유명하지만, 잭 블랙의 대표작을 들라면 단연코 [스쿨 오브
락]이 될 것이다. 락 그룹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못말리는 돌출행동으로 인해 그
룹에서 쫓겨난 주인공이 밀린 월세를 해결하고자, 궁여지책으로 친구의 대리교사
자격을 사칭하고 초등학교 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펼친다는게 영화의 줄거리다.
무엇보다 감상 포인트는 뚱땡이 주인공이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락밴드를 조직하여
청춘의 음악인 락으로 동심을 사로잡아가는 과정에 있다. 도저히 교사라고는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어이상실하게 만드는 뚱땡이지만, 최소한 락 음악을 얘기할 때 만큼
은 열정이 넘쳐 흐른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를 제쳐두고 레드 제플린이나 AC/DC
를 외치면서 락의 정신을 갈파하는데,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뚱땡이가 그럴듯한
음악 선생으로 보이기도 한다. ^^
"락이 뭐냐구? 니들 가슴에 있는 것을 다 끌어내 폭발시켜봐, 그럼 그게 락이 되는
거다."
그런 뚱땡이의 열정 때문인지 아이들 중 하나가 기타로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를 리프할 때는 전율이 흐를 정도. 아이들을 데리고 락 경연대회에 참석할
즈음, 보수적인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힌데다 자격 사칭까지 들통나면서 뚱땡이가
위기로 몰리지만, 그런 뚱땡이를 구원한건 결국 자신의 열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아이들이었다.
막판 경연대회에서 아이들 자신이 만들었다는 락으로 한바탕 신나게 공연을 펼쳐보
이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여기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건 말건 끝없이 계속
되는 연주 장면도 무척 재미있다. ^^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으로 조앤 쿠색이 출연하는데,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그녀는 연
기파 배우 존 쿠색의 누나이지만, 이미 80년대부터 숱한 영화에 출연해 왔던 상당한
경력의 중견배우다. 영화에선 약간은 근엄하면서도 보수적인 면모의 교장 선생님을
연기하는데, 자칫 뚱땡이의 원맨쇼로 일관 했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녀는 학교가
어디까지나 교육의현장임을 환기시키며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
단정하면서도 이지적인 그녀의 이미지는 상극의 개그 캐릭터인 잭 블랙의 엉뚱함과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특히 맥주바에서 뚱땡이에게 이끌려 스티비 닉스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장면은 압권이다. ^^
17.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2007
감독: 폴 그린그래스
배우: 맷 데이먼, 줄리아 스타일즈, 조앤 알렌
10년전 쯤에 맷 데이먼이 [굿윌헌팅]의 씨나리오를 들고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는 로빈 윌리엄스라는 큰 산 앞에선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세월
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서 맷 데이먼은 헐리웃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로 자
리매김한 듯 싶다. 그에게 그런 위치를 부여한 작품이 바로 '본 시리즈'라는
생각이다.
기억을 잃고 방황하는 첩보원이라는 도무지 스파이답지 않은 스파이 역할은
이제 그를 빼놓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고민하고 방황하는 스파이 제이슨 본이 지난해 [본 얼티메이텀]으로 다시 돌
아왔다. 과거 그에게는 하달된 임무의 수행이 중요했지만, 정보 기관에게 쫓
기는 지금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지, 그 행적을 추적
하는게 중요하다.
과거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기억을 삭제당했다. 그 기억을 복원해야
만 살 길이 열린다.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를 통해 어느 정도 복
원된 기억을 취합해서 음흉한 정보기관과 최후의 일전을 펼치는 그의 활약상
을 [본 얼티메이텀]은 정말 숨막힐 정도로 빠르고 격렬하게 잡아내며 시리즈
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한가지 반가운 것은 제작사는 이미 맷 데이
먼을 다시 한번 주인공으로 내세워 본 시리즈 4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다.
18.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2006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배우: 코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모타이 마사코
영화 <카모메 식당>은 이역만리 외국땅인 핀란드 헬싱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줌마와 우연히 그 아줌마를 만나 식당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
줌마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스토리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일상의 그 평범함 속에서 삶의 여러 모습들을 여유로우면서도 유머있게 그려
내고 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게 아니다.
비록 이역만리에서 우연찮게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 인연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서로의 외로움 같은 것들마저 살포시 어루만져주는 그 따뜻한
심성들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식당에 손님이 나타나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채, 살며시 고개를 까닥
이며 짧고 명랑하게, "이럇~샤이~!"(어서오세요~!)를 외치는 주인장 사치에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보는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전혀 영업을
위한 작위적인 멘트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물조물 음식을 다듬는 그녀
의 나긋나긋한 손길은 참 야무지면서도 맵시가 있다.
사치에의 밝은 표정과 깔끔한 자태 그리고 재치있는 말투에서 우러나오는 특유
의 포근한 분위기는 동료 아줌마들이나 손님들 모두를 편안하게 인도한다. 사
치에를 보면 엄마같기도 하고 누나 같기도 하며 또 연인 같기도 하다. 모든 세
대의 여인상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사치에 아줌마가 자아내는 그 거부하기 힘든 흡입력은 그 어떤 S라인 미녀도
따라잡기 힘든 그녀만의 매력이다.
보통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보통의 일상 속에서 다룬 영화는 흔치 않다. 남성과
관계없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낸게 이 영화의 독특함이자 특징이라 봐도 과
언은 아닐 것이다. 그 만큼 이 작품은 평범하다. 서로 모여 수다를 떨고 음식
을 만드는게 전부이지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그 안에서 사소한 것에도 의
미를 부여하는 여성 특유의 세밀함을 잘 포착해냈다. 그녀는 여성 감독다운 섬
세함과 예민한 관찰력으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음은 물론 종래 남성의 대칭적
인 존재로 그려지던 여성에서 벗어나 그녀들만의 이야기로 영화를 채우고 있다.
상당히 심심할 것 같은 이 영화의 각본도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의외로 짜임새
가 있다. 아줌마들의 대사는 제멋대로 수다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별로 경박
스럽지 않은데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상당히 정겹다. 한마디 툭 던지는 쌩뚱
맞은 질문이나 그러한 질문에 답하는 가벼운 농담에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분위
기와 장단을 맞추는 즐거움과 여유가 철철 묻어난다. 헬싱키를 방문해 사치에
아줌마가 해주는 그 주먹밥을 한번 먹으면서 아줌마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로.. ^^
19. 가족의 탄생 Family Ties, 2006
감독: 김태용
배우: 문소리, 엄태웅, 고두심, 공효진, 정유미
개인적으로 2006년 개봉된 한국 영화들 중에서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말이 가족
의 탄생이지, 실은 가족의 연애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아 뭉클한 감흥을 전달하는 솜씨가 상당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방식이 상당히 독특하다. 세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
는 가족들은 모두 평범하지 않다. 노처녀 누나 앞에 엄마뻘 애인(고두심)을 데리고 나
타나는 어이상실 남동생이나 구박덩이 이복 동생을 데리고 놀아줘야 하는 누나, 그리
고 누구한테든 친절 상냥해서 남자 친구의 속을 태우는 천사표 아가씨까지.
가족이라 말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어이없
는 이야기들이 영화 [가족의 탄생]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 지적했듯이,
이렇듯 대책 없는 현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그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
다.
그리고 무엇보다 놓칠 수 없는게 바로 세 주연 여배우인 문소리, 공효진, 정유미의 매
력이다. 문소리의 소녀틱한 모습은 정말 영화에서 드물게 본 것 같습니다.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들릴듯 말듯 읖조리는 말투와 그 소심한 눈빛은 가히 예술의 경지.^^
특히 관광버스 안에서 추던 무슨 요상한 춤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을 정도다.^^
그런가하면 공효진의 그 반항어린 연기도 볼만하다. 툭툭 내뱉는 말투와 늘상 뭔가 꼬
인 듯한 태도를 보이는 아가씨역이다. 물론 환경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그
럼에도 밖에 나가서는 닭살 돋는 상냥 그 자체로 변신..^^ (하기사 바깥에서까지 그런
다면야 어디..^^) 하지만 그렇게 삐딱이처럼 굴면서 통통 튀는 모습이 은근히 귀엽다.
극 중 채현으로 나오는 정유미의 매력도 상당하다. 천사표이면서 워낙 친절하고 상냥
해서 모든 남자들을 매료시킨다는 역할인데, 엄청 매력덩어리지만 누구에게든 애교
만점이어서 남자 친구를 뒤집어지게 만드는게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다. ^^ 정유미의
발견이라는 말을 해도 좋을만큼 이 영화에서 그녀는 문소리나 공효진과 대비되는 또
다른 개성을 보여주며 영화에 균형감을 실어주고 있다.
20.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2006
감독: 호소다 마모루
배우: 나카 리이사, 이시다 타쿠야, 이타쿠라 미츠타카
마코토는 마냥 친구일 것으로만 생각했었던 치아키의 사랑 고백에 놀라고 당황
한 나머지, 타임 리프로 시간을 되돌려 그의 사랑 고백을 없었던 일로 만든다.
하지만 그와 함께 했었던 그 시간들의 소중함과 그의 마음을 미처 헤아려주지 못
했던 미안함,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치아키
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이기 위해 맹렬히 달린다.
고교생들의 일상과 우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기본적
으로 성장 영화이지만, 첫사랑의 설레임이나 사랑과 우정 사이를 미묘하게 흐르는
애틋한 감정을 아주 밝고 건강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편의 청춘 멜러물
로도 손색없다.
천방지축 날뛰던 장난꾸러기 소녀가 흡사 첫사랑에 눈을 뜨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
진하고 또 박진감있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 일련의 에피소드를 거치면서 소녀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시간을 달리는 소
녀>다. 여기에서 타임리프는 무슨 SF적 장치라기 보다는 소녀가 성장해가는 과정
을 뒷받침해주는 일종의 매개체와 같은 역할이다.
그리고 Kisyoshi Yoshida가 영화에 삽입한 음악들로 꾸며진 OST 앨범은 올해의
베스트 OST라 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여기에 오쿠
하나코가 지극히 소녀틱하고 감수성 짙은 보이스로 소화해낸 'Garnet'과 '변하지
않는 것'이 실려있는 싱글 앨범도 작품의 분위기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첫사랑의
애틋함이 드러나나는 그 풋풋한 순간들을 오쿠 하나코가 귀엽고 감수성 짙은 목소
리로 너무나 잘 표현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