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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김 소 진
내가 겸사겸사 미아리 셋집엘 한번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내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그깟 돈 삼만 원 은행 온라인으로 부쳐버리면 그만 아니냐는 거였다.
“그 집 남자가 요즘은 문짝 샤씨 달러 다니는 모양이더라. 낮에 가봤자 코빼기도 구경하기 어려워서. 그 예전에 요한네 집에 세 살던 오종종한 해자 엄마 있지? 웃음이 헤퍼서 남자한테 그저 얻어맞고 살던 그 여자 얼굴을 꼭 닮은 그 집 여편네도 뭘 하러 쏘다니는지 갈 때마다 아이들만 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더라구.”
“그 집 전화번호 있어요?”
“저기 가방 찾아보면 나오긴 나올 텐데. 늙은이 혼자 있는 듯하니깐 아주 만만히 보고 능갈*을 치는 데 이골이 났더라구. 두 젊은 양주*가 안팎으로 말이야. 여깄다. 구, 일, 사에…… 아유 침침해.”
삼만 원은 입동 무렵에 연탄에서 기름형으로 바꿔 설치한 셋집 보일러가 기습 한파에 얼었다며 손을 보려 하니 보내달라고 셋집 사내가 기별한 것이었다.
“이 추위에 보일러가 아예 서버렸대요?”
“그런 건 아니고 온수통이 얼어서 따신 물을 못 받아서 쓴다는데 원. 지 입으로도 그러더구먼. 보일러 놓을 때 보니 그 온수통께가 허전해서 온 사람들한테 뭘로 좀 덮어야 하는 거 아니냐구 했다는 거야. 근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일 더하기 좋아하는 이가 어딨니? 그러니깐 그 사람들이 아이구 그냥 괜찮다고 그러면서 쓱싹 바르고 시브저기* 가더니 그 동티가 났다는 거지 뭐. 자기도 남의 집 문짝서껀 주무르러 다니는 사람이면 눈썰미가 있어서 그런 것쯤은 기술자들이 안 해줘도 스스로 알아서 재활용도 안 되는 그 흔한 누더기 짜배기*
라도 덮어놔야지 그게 뭐야. 자기 집 아니라고 데면데면하고서는* 그것 얼어붙어 따신 물 안 나온다고 돈타령이야, 돈타령을? 내가 자기한테 한 달에 기껏 돈 십만 원 셋값 받아서 어느 구녕에 처바르는 지 다 알면서 말이야. 지난달엔 재개발됩네 하니깐 이젠 관에서도 달라붙어서 토지세 내라 무슨 세 내라 하면서 거진 돈 삼백이 다 깨지게 생겼는데 말이야. 아주 낯이 맨질맨질한 사람들이야 생각할수록.”
이 년 반 전에 성남 근처에서 일 년 계약으로 살던 신혼살림을 접어서 신도시에 들어갈 때 미아리 집 에서 혼자 살던 어머니를 모셔 왔다. 말이 모셔 온 거지 집사람이 다시 직장에 나가기 위해선 아이를 봐줄 사람이 절실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뭔가 서운한 일이 있으면 동냥자루 타령을 하였다. 몸도 시원찮은데 애를 보자니 차라리 밥을 빌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 나가서 사시겠다고 까탈 아닌 까탈을 부리곤 하였다. 어머니가 그렇게 큰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 에는 물론 그 세 내준 미아리 집이 있었다. 우리가 아니래도 당신 몸 하나 거처시킬 공간은 있다고 은근히 내비치는 태였다.
“더군다나 그 보일러가 완전 새것으로 해 단 건데 왜 그리 고장이 쉬 난단 말이야. 얼마나 시덥잖게 다루며 썼으면 몇 달도 채 안 돼 그 지경이 됐을라구.”
처음에 셋집에서 겨울을 날 기름보일러를 달아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어머니는 중고품을 하나 헐값에 달 요량이었다. 재개발을 앞둔 그 동네도 길어야 일 년 안에 철거가 시작될 기세여서 일 년 쓰고 버릴 것을 굳이 돈 더 얹어주며 새것으로 할 게 뭐 있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셋집 여자한테 알아서 중고를 하나 골라보라고 했더니 사십만 원 견적이 나왔다고 알려왔다. 그러자 아버지 살아 계실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석윳집의 임씨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어 시세를 알아본 어머니는 혀를 내둘렀다.
“새것으로 해도 사십오만 원이면 뒤집어쓰고 남는다는데 뭔 말라 빠진 중고가 사십만 원씩이야 응? 이놈의 집이 아주 작정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야. 구 경계선인 한길 너머 미아동 쪽으로는 거진 철거가 끝나서 집집마다 헌 보일러가 남아돌아 너도나도 갖다 쓰라고 난리들이라고 그러더구먼.”
“품삯이 많이 들잖을까요?”
“삯이 들어도 그렇지, 그놈의 집이 자기네한데 먼 인척이 되어 잘 아는 물역* 가게에서 들여놓겠다 그러는데 그게 바로 아삼륙*으로 붙어먹으려는 깜깜한 심보지 뭐야. 그래서 내가 임씨 영감한테 부탁을 해서 아예 새걸루다 달아달라고 했어. 괜히 중고로 달면 뭐가 어쨌네 저쨌네 뒷말이 많이 나올 집구석이고 그러면 내가 이 시큰시큰한 종짓굽*을 이끌고 그때마다 어떻게 달려가겠니? 생각 같아서는 다시 『벼룩시장』에다 한 줄 싣고 싶지만 또다시 몇 번 발걸음하고 도배해줄 생각을 하니 입맛이 써서 원.”
“기왕 말 나온 김에 제가 한번 다녀와 본다니까요.”
“거긴 뭐 허러?”
“창이 형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들어두면 좋잖아요. 그리고 셋집 연탄광 쪽에 달아낸 작은방에서 가져올 것도 있구요.”
“뭘?”
“영정으로 썼던 아버지 사진틀도 솜이불 보따리 틈새에 아직 박혀있을 덴데……”
“그 생각은 잊고 꿈에도 하지 마라. 그 뱀의 허물 뒤집어쓴 것처럼 아물아물한 사진은 가져다 어디다 두려고? 애어멈 이 그 형상을 보면 얼씨구나 하겠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도 짐짓 내가 한번 재개발을 앞둔 그 동네를 후딱 살피고 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서너 달 전에 본격적으로 재개발 승인이 떨어지자 그곳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심지어는 현대부동산인가 하는 데서 어머니 앞으로도 딱지*를 넘길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이 들어와 ‘넉 장’을 받고 매매를 하기로 전화로 약속까지 했다가 내가 말리는 바람에 취소한 적도 있었다. 마침 임씨 아저씨 아들인 창이 형이 재개발 조합에서 간사*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내가 평소 가까이 지내온 창이 형을 만나면 그
곳 분위기나 시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듣고 오지 않을까 내심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경의선 기차를 타고 나와 신촌에서 미아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서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익숙해지면 질수록 내 머릿속에는 그날 새벽의 모습이 좀 더 선명히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 종이처럼 얇은 기억이 나를 이렇게 사라져가려는 동네로 밀고 가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이 형을 만나 재개발 정보를 듣거나, 아버지 영정을 다시 꺼내 오거나, 잇속* 바른 셋집 사내를 만나 삼만 원을 직접 건네주며 다독거려주려고 나선다는 것은 어쩌면 허울뿐이지 않을까. 나는 머리통에 난 혹을 더듬는 기분으로 손끝으로 옆머리를 짚으며 기억의 끈질김에 대해 새삼 진저리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따져보니 이십 년도 더 바랜 기억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미아리 셋집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전에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한지붕 아홉 가구의 장석조네 집에 대한 기억이었다.
아마 설을 쇤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을 것이다. 양말을 신은 채 부뚜막에 올라서 까치발을 하고 찬장 위에 얹어진 소쿠리 안을 휘저으면 아직도 뻣뻣하게 굳긴 했지만 부침개 쪼가리나 쉰 두부전 같은 게 손끝에 걸리곤 했다. 내가 태어나자 큰외숙모가 엄마의 산후 조리를 봐주기 위해 마른 미역을 담아 갖고 올 때 쓴 것이라고 하니, 이미 십 년은 지난 그 소쿠리는 낡을 대로 낡아 테두리가 반쯤은 빠져나갔고 군데군데 풀어진 댓개비*들이 날카롭게 비어져 나와 자칫 맘이 급해 서둘다간 손톱 밑을 파고들거나 손등에 생채기를 내기 일쑤였다.
그 소쿠리를 더듬다가 찔린 가운데 손톱 밑의 감각이 아직 얼얼한 데다 몇 해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기까지 한 아버지가 그동안 입에 대지 않던 쇠고기 한 점을 배즙과 함께 삼켰다가 며칠째 자리보전을 하던 중이었으니 기껏해야 설에서 사나흘 이상은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시큰한 나박김치 국물을 많이 먹으면 육식 때문에 덧이 난 아버지의 고혈압이 풀린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왔는지 저녁이면 멕기칠*이 벗겨진 양푼에 살얼음이 버석버석한 김칫국물을 담아 내왔다. 덕택에 며칠간 기름 음식에 질린 내게 그 등골이 오싹하고 인중*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도록 차가운 나박김치 국물에 국수를 한 그릇 말아먹는 맛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그런데 밤새 장을 빠져나와 오줌보로 슬금슬금 고여 든 김칫국물이 탈이었다. 평소 같으면 한밤중이나 새벽녘이나 가리지 않고 머리 맡에 놓인 사기요강에다 볼일을 보고 따스운 공기가 다 빠져나가기 전에 다람쥐처럼 이부자리 속으로 되돌아오면 그만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설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보름 동안은 요강을 쓸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금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시집올 때 가져온 그 난초 무늬 사기요강에 대해 엄청난 터부*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깨지거나 혹은 금이라도 가는 날이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동티*가 생겨서 끔찍한 경우를 당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머니가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가 요강에 금이 간 것을 보고 걱정하시던 날 밤 소 장수를 하시던 외할아버지가 실제로 뿔이 위아래로 어긋나게 솟은 검둥이 수소를 감쪽같이 도둑 맞았다. 어머니의 외가 쪽으로 촌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벌어 그저 사돈이라고 부르는 한 집안에서는 평소 새살맞던* 며느리가 정초에 요강을 부시러 나왔다가 깬 뒤로 배냇병신*을 낳고 결국 집안도 몇 년 안에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요강이기에 특히나 정초부터 대보름까지는 각별히 조심하는 게 제일이고 그러자니 아예 화선지로 덮어 싸서 부엌 한구석에 모셔두고 쓰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엄마는 일러주었다.
나박김치 국물 때문에 눈을 떠보니, 아니 고개를 이불 밖으로 빼 창호지로 막은 봉창*을 보니 아직 어스레한 새벽이었다. 사실은 진작 깨서 이불 안에서 새우등을 한 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머니조차 깨어나지 않은 걸로 봐서 어지간히 이른 새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겁이 많았다. 형을 깨울까 생각해봤지만 새벽잠에 유달리 약한 형이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누나를 깨우자니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아 진땀을 흘리며 사타구니를 꽈배기처럼 꼬고 등뼈가 부러져라 구부러뜨렸다. 오줌이 몇 방울 질금거려 허벅지를 땃땃하게 적실 때쯤 해서 나는 욕을 바가지로얻어먹으며 어머니를 깨울 것인가, 아니면 용감하게 혼자서 아홉 가구가 딸린 기찻집의 제일 끝자락에 서 있는 변소로 갈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나는 홀가분하게 후자를 택했다.
“어디 가니……”
“아, 아니요.”
“근데 우와기(윗도리의 일본말)는 왜 껴입고…… 부뚜막 옆 밥통에 미지근한 숭냉 (승늉) 있다.”
문간 쪽에서 모로 누워 자던 엄마가 고개를 빼 뒤로 젖히며 한마디 던지고는 다시 이불을 끌어당겼다. 엄마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아마 내가 목이 말라서 일어난 줄 아는 거였다. 이불깃 위로 대머리 진 이마만 보이는 아버지가 밭은기침*을 쏟았다. 또다시 따스했다가 이내 척 척 해진 오줌 방울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예에……”
뒤꿈치가 헤진 아버지의 낡은 털신을 끌고 사개*가 잘 맞지 앉아 삐그덕거리는 부엌문을 열며 한 발짝 덜퍽 내딛자 차가운 눈가루가 신발등 위를 덮쳤다. 간밤에 내린 눈이 기찻집의 기다란 마당을 곱게 덮어버린 것이었다. 눈빛 때문에 사위*는 생각보다 희부움했다. 오줌보를 미어뜨릴 듯하던 팽만감도 조금 너누룩해졌다.*
나는 낡은 털신 밑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성큼성큼 무릎을 들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홉 가구가 함께 쓰는 변소 문을 열고 문턱에 올라 두 번씩이나 푸드덕푸드덕 몸서리를 치며 오줌을 갈겼다. 이빨을 위아래로 서너 번 맞부딪치며 뽑아내는 오줌 줄기가 원뿔형으로 딱딱하게 굳은 언 똥에 둔탁하게 달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따스한 오줌 세례를 받은 언 똥이 물컹물컹하게 녹아내리는 소리를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 김이 되어 무럭무럭 콧속을 파고드는 지린내에 코를 쫑긋거리며 돌아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바지춤을 추스르며 김장독을 가지런히 묻어둔 곁을 어정어정 걸어나오다가 발끝으로 눈 덮인 가마니때기 밑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밟았다. 가마니때기 속에 발을 담근 채 눈을 푹 뒤집어쓰고 벽에 기대있던 그 기다란 물체는 고개를 발딱 젖히는가 싶더니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눈이 털려 나간 그 물체는 공사판에서 쓰는 빠루라는 연장이었다. 어른 엄지보다도 굵은 그 기다란 쇠뭉치는 지렛대로 쓰였는데 끝이 물음표처럼 생겼고 또 갈래가 져서 대못 같은 것을 빼는 데 아주 쓸모가 있었다. 그런데 그 빠루가 넘어지면서 하필이면 땅속에 묻지 않고 그냥 바깥에 놔둔 조그마한 짠지* 단지를 스치자 뚜껑은 두 동강이 나 떨어졌고 몸통에는 왕금이 좌악 그어졌다. 금은 갔지만 그 짠지 단지가 당장 두 쪽으로 갈라질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 갈라진 틈새에서는 시금털털한 김치 냄새를 풍기는 국물이 쨀끔쨀끔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태는 명백하고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나는 삭풍*이 부는 황량한 벌판으로 변한 마당가에 서서 힘이 쭈욱 빠져나간 두 어깨를 거느리며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오, 하느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러나 무거운 눈을 밤새 다 털어버린 새벽하늘은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 내 혼잣소리가 도저히 닿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였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는 그 시커먼 빠루가 마치 마녀의 주문을 받아 밤새 뿌린 눈송이를 덮고 위장한 채 기다리다가 내 발길을 일부러 잡아채지나 않았는가 하는 엉뚱한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어린애답지 않게 몹시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그것은 내가 그 순간 헐떡이고 있었던 이유를 적절하게 해명해줄 수 있었다. 피로하다는 것,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감…… 하긴 어찌 피로하지도 않고 감쪽같이 기절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때 내가 피로해야 하는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기절하는 것이었다. 기절이라도 하고 나면 이 세상에 뭔가가 달라져 있겠지. 혹은 최소한 모면의 여지는 남겠지 하는 맹렬한 위안이 달라붙었다. 동시에 그 피로감은 어쨌든 세상에 대한 것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변소에서 오줌보를 비우고 돌아서기까지 나는 너무나 생생했고, 빠루를 밟고 나서 갑자기 피로감을 느끼기까지 불과 십여 초가 흐르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피로감이란 육체적 고단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정신적 흔들림에서 우러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피로감은 어른에게나 해당하는 피로였다.
한편으로는 그 피로감은 몹시 물리치기 어려운 불길함을 품고 있었다. 몇 해 전 길게 뺀 혓바닥 위에 거꾸로 올려놓은 박탄一D* 병의 밑바닥을 손으로 탁탁 두들겨가며 쥐어짠 두어 방울의 알싸한 액체로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피로감을 떨쳐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루한 예감이 그날 어슴푸레한 새벽에 덮친 절망감의 핵심이었다. 문간통에서 두 번째 집구석에 사는 술주정뱅이 고물 장수 순심이 아부지의 노상 흐느적거리는 두 팔과 술 때문에 항상 짓물러져 있는 눈자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저씨도 나처럼 피로해서 그랬을까? 돌산 밑에서 개를 끄실리다가 덴 손가락에 약국에서 사온 가제를 칭칭 감고 소독을 한답시며 이 흡들이 소주를 다 따른 스뎅 주발 안에 질벅질벅 담그다가 홧김에 그 소주 주발을 잡아채 박탄―D처럼 벌컥벌컥 들이켜던 순심\이 아부지도 되게 피로해서 그랬을까.
그런데 그토록 피로한 사람이 왜 뒤늦게 사괄뜨기 여자는 단칸방으로 불러들여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실밥 따는 공장에 다니던 순심이를 말이 기숙사지 공장의 골방으로 내보내고 배추 장수가 꿈이던 상준이를 이미 개가한* 전처 집으로 억지로 떠맡겨 보내 세상살이의 피로감을 되레 가중시켰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새로 낸 살림이 채 일 년도 가지 못해 계집이 달아나 깨지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순심이 아부지가 하필 겨울이 닥쳐 일도 안 나가고 전세 보증금을 야금야금 까먹다 또 종무소식*이 된 걸 두고, 엄마는 새로 온 여자가 수돗가에서 스뎅 요강을 부시다 내리쳐 찌그러뜨렸기 때문이라며 끌탕*을 했다.
엄마가 남의 딱한 사정에 억지 비슷하게 푸념을 하며 동정의 여지를 누르는 이유는 사실 딴 데 있었다. 순심이 아부지한테 작정을 하고 거금 칠백 원을 들여 산 중고 석유곤로*가 보름도 채 가지 않아 결딴이 났다. 제일 밑에 있는 연료통 바닥이 샜던 것이다. 순심이 아부지는 자기가 넘길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모르쇠*를 딱 잡아뗐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습기 때문에 너덜너덜 부식한 밑바닥에 난 구멍을 임시방편으로 삐빠(사포)질로 때운 흔적이 있다는 거였다. 그 일 때문에 순심이 아부지에 대한 엄마의 감정이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해 있었다. 엄마는 새로 끼워 넣은 하안 심지를 꺼내 말렸고 됫병에 종이 깔때기를 꽂고 석유곤로에 남은 기름을 부어넣고 병 입에 신문지를 박박이 쑤셔 넣었다. 그리고 고철값 이백 원을 쳐서 줄 테니 자신한테 넘기라는 순심이 아부지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내게 누런 울릉도 호박엿으로 바꿔 먹도록 뜻밖의 승낙을 했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다음 날 아침 제일 처음 들렀다가 한의원으로 가라는, 사실상의 진료 거부를 당한 신풍의원 맞은편의 동사무소 옆 골목길을 타고 꾸역꾸역 올라가다 보니 길음초등학교 담벼락을 끼고서 마을버스 종점인 콘크리트 물탱크 밑 차부*까지 올라갔다. 구 경계선인 한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려니까 왼쪽으로는 임마누옐교회 하나와 구멍가게 한 채를 빼놓고는 이미 철거가 다 끝난 폐허의 등성이뿐이었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망가진 가재도구들이 제멋대로 누워 있는 벽돌 무더기 사이로 사람들이 자근자근 밟고 다녔을 골목길들이 호젓한 산길처럼 구불구불 뻗어나 서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무너져 방구들이 내려앉은 집들은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다. 사방 서너 발짝쯤이나 될까 한 장방형 방 안에서 살을 맞비빈 식구들이 최소한 넷 아니면 우리처럼 여섯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막 재개발이 결정된 셋집이 있는 오른편 기슭은 겉으론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인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인적이 끊긴 듯 적조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쩌면 벌써 방을 빼 나간 집주인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머닌 건강하시냐, 어때?”
한길 가에서 구멍가게를 겸하고 있는 임씨 아저씨 집 앞을 지나는데 가게 반대쪽 터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코트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예에…… 안녕하세요?”
머리가 허옇게 센 임씨 아저씨와 대충 얼굴은 알 만한 술꾼들 네댓이 가게 앞 철거된 집터에서 자그마하게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위에 걸친 프라이팬에서 삼겹살을 굽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충 짐작건대 예전의 88이발관 자리였다. 다들 불콰한* 얼굴이었다. 철거하고 남은 터라 그런지 부서진 장릉, 의자 다리, 문설주* 등등 모닥불에 넣을 나무 쪼가리 지천이어서 그저 안줏거리만 있으면 술추렴*을 해서 한낮 거나하게 혼전만전* 보내기 맞춤인 나날이었다.
“어딜 바쁘게 가?”
“아유, 아닙니다. 바쁘긴요. 그냥 한번 들렀습니다.”
“그렇지. 이젠 들를 때가 되긴 됐지.”
임씨는 고개를 무던하게 끄덕이다 프라이팬에서 올라온 연기에 눈가를 구기며 고기를 한 점 집어 깨소금 종지 안에 휘저었다. 옆에서는 고깃점을 양념 빛이 좋은 김치에 싸서 길게 뺀 혓바닥 위에 실었다.
“형은 아랫집에 있죠?”
“지금 개 데리고 돌산에 똥 뉘러 갔을 게야. 보다시피 아래루다 말짱 바숴놨으니깐 아무 데서나 누이라고 해도 운동 삼아 간다니 뭐. 곧 올 게야. 그건 그렇고 정 바쁘지 않다고 했으니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 해라 너!”
“아, 예……”
방울 달린 벙거지를 쓴 사내가 엉덩이를 들었다 놓으며 모닥불 앞으로 끼어들 틈새를 열어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곱은 손을 숯 잉겉* 앞으로 들이밀었다.
“너 우리 창이 만난 지 꽤나 된 모양이구나 그치?”
“아, 예 그동안 제가……”
“찝, 이따 만나서 얘기 좀 나누면 되겠지.”
흔적 없이 무너져 내린 집터에서 벽돌을 엉덩이 밑에 깔거나 듬성듬성 속이 터진 비닐 소파에 뭉개고 앉아 벽돌 위에 프라이팬을 걸고 낮술을 마시는 광경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릴 지경이었다. 폐허와 술!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어떤 허무적인 정조를 떠올릴지 모르나 그것은 야릇하게도 정반대의 느낌을 띠었다. 묘한 활력이라고나 할까. 기름기가 자글자글 흐르는 육질 안주 때문인지 술 한잔에 목을 빼고 걸근거리던* 꾀죄죄한 술꾼들의 얼굴이 이미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에 궁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한 해, 아니 길게 잡으면 두 해쯤은 재개발 경기의 훈풍이 그들의 버즘꽃 핀 얼굴에 개기름이나마 번드르하게 발라줄 수 있을지 모른다.
“없어, 남은 거 없어……”
내가 귀 기울이지 않는 사이에 누군가 입을 찝쩝거리며 푸념했다. 딱지 거래 얘긴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빈 소주병을 잡고 흔들었다.
“이번엔 당신이 한 두어 병 사. 이참에 나 술장사 좀 하게.”
임씨 아저씨가 농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 막 이발을 했는지 자를 대고 그은 듯 곧바르게 가르마를 탄 머리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천 원짜리를 두어 장 꺼내 던졌다. 임 씨 아저씨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챙겨 넣고는 가게로 가 소주병을 들고 돌아오며 가르마 탄 사내에게 물었다.
“웬 찍다 남은 벼루를 그렇게 많이 두고 갔어? 어제그저께까지만 해도 애들이 벽돌 틈새를 안 뒤지나 난리들이었어.”
“그럼 뭘 해? 그깟 세멘또 덩어리 짐만 되지.”
그제야 나는 그 가르마 탄 사내가 88이발소 옆 담벼락 밑에 지붕이 폭 빠진 자그마한 가내 벼루 공장 사내임을 알아보았다. 불과 며칠 전에 집을 허물고 딴 곳으로 옮긴 눈치였다.
“편지가 아직 여기 허물어진 집 주소로 오는감?”
“에이구 딴 건 필요 없구…… 오늘니알 중으로 거시키 받을 게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지키는 거여, 커어.”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개를 끌고 내려오는 창이 형이 멀찌감치 보였다.
“민홍이 왔구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손을 높이 들었다.
“형 얼굴이 많이 좋아 보이는데요. 근데 이놈 그새 많어도 늙었네요.”
이젠 눈독 들이는 사람도 없어.”
“무슨 눈독이요? 종자 더 못 쳐효?”
그 개는 온 동네 암캐한테 흘레*를 붙여주는 종자 개였다.
“그것도 그렇고 요즘 여기 개가 흔해서 사람들이 심심찮게 개를 꼬실려 먹거든.”
“아무래도 경기가 좋아지니까 그간 입에 못 대던 개고기가 날개 돋친 듯하나요?”
“그게 아니고 저 동네 집 다 부수고 나서 임자 잃은 개도 많고 하니깐 먼저 보고 때려잡는 놈이 장땡이지. 저건 뭔 거 같니?"
“그럼 저게…….”
“헤에, 아침녘에 발발이 하나 잘못 걸려들어서 바로 매달았지. 냄새 맡아보면 알 텐데.”
“멍멍이고기도 돼지고기처 럼 구워 먹어요?”
“그게 또 별미래. 이놈 빨리 집 안으로 들여서 묶어놔야겠어. 같은 종족 살점 굽는 냄새 맡으니깐 흰자위가 돌아가고 뒷다리에 바들바들 힘주고 성질부리려 드는데. 참 어머니께서 집 내놓으셨다 도로 거둬 들이셨데?”
“아, 그거요? 그런 모양이던데 전 잘 몰라요. 어머니 명의로 돼 있잖아요.”
“그거 잘하셨어. 파시더라도 내년까지 최고로 오를 때까지 기달려야지. 너랑 같이 사시니깐 당장 뭐 큰돈 필요한 건 없으시지?”
“아, 예…… 그것도 그렇구요, 전 그 셋집 아저씨가 보일러 고쳤다고 어쩌구 구시렁대기도 하고 또 아버지 영정 사진도 아직 거기 골방구석에 처박혀 있고 그래서요…… 겸사겸사.”
“아암, 아무튼 좋아.”
그동안 형은 몸이 골골한 데다 직장 없이 가끔씩 아버지 가게에서 석유나 연탄 배달을 해주며 개나 벗 삼고 지내온지라 낼모레 마흔 줄을 앞두고도 장가를 들지 못했다. 나는 그런 창이 형한테서 예전과 달리 풍기는 활력의 정체를 형이 따로 방을 내서 사는 데를 가보고서야 알았다. 올봄에 내가 들렀던 사랑방교회 위의 허름한 방이 아니었다. 형은 한길을 좀 더 타고 내려가다 정육점과 슈퍼, 비디오점, 미장원이 모인 거리에 있는 연립주택의 반지하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형, 방 옮겼어요?”
“응. 너 점심이라도 먹고 가야지.”
창이 형은 성실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 한 근을 썰어달라고 했다.
“형은 네발 달린 고기 잘 안 먹는 등 푸른 생선파잖아요?”
“식성이란 변하게 마련 아냐. 부쩍 근력이 달려서 요즘 육질을 입에 많이 대는 편이지. 사람 입이 간사해서 자꾸 먹어보니깐 또 먹을만 해져.”
형의 뒤를 따라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으레 코를 찌르던 쉬어터진 홀아비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그것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휴지통을 필두로 내 눈앞에 펼쳐진 규모 있는 살림집의 모습이 나를 잠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부쩍 근력이 달린다는 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듯했다.
“이 사람이 밥 먹고 또 자는 모양이지?”
“예에…… 아니 형 그럼 혹시·…‥”
“올여름에 그냥 도둑장가 들어버렸지 뭐
“왜 연락을……”
“식은 안 올리고…….”
나는 놀라움보다 반가움이 앞서서 입을 쩍 벌리며 뒤에서 형의 두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아직 잠기가 가시지 않은 눈매를 한 여자가 부스스한 파마 뒷머리를 긁으며 원피스 잠옷 차림으로 나왔다. 나도 제법 안면이 있는 여자였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인사 올립니다.”
“어머나 챙피, 이를 어째! 오늘 아침따라 얼굴에 물칠도 못 하고·…… 아, 누군가 했더니 저기 가겟집 할머니 막내아들 아네요?”
“왜 아닙니까 하하. 늦었지만 두 분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는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목살 썰어 온 거 예요. 그냥 소금구이로 해주실래요?”
깍듯한 존댓말을 붙이는 형의 얼굴에 어린애처럼 마냥 천진난만한 미소가 잠시 어렸다. 여자의 파마머리를 단발머리로 바꾸어 머릿속에 그려보자 비로소 이름이 떠올랐다. 국희일 것이다. 미아리 셋집 옆의 구둣집 문간방에 살던 효상이 엄마의 동생. 어머니가 국희라고 대뜸 이름으로 불렀던 그 단발머리 아가씨는 처음엔 재봉사였다.
우리 집 뒤의 마당 넓은 집이 한때 바느질집을 할 때 효상이 엄마가 자신의 동생을 소개해서 효상이네 다락방에서 자면서 그 집 대문으로 한동안 들락거렸다. 땅딸막한 몸매에 얼굴도 오막오막하게 생겼지만 목덜미에 잔털이 비치도록 귀밑까지 바짝 깎아 올린 단발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다. 이따금 엄마의 구멍가게에 와서 새참으로 단팥빵이나 알밤케이크를 나한테 돈을 주고 사서 선 자리에서 눈만 깜짝깜짝거리며 먹곤 돌아갔다. 실밥이 잔뜩 묻은 헐렁한 면바지의 무릎은 풍덩 빠져 있었고 굵은 허리까지 내려온 옷의 밑단추가 가끔 하나씩 풀려 있었지만, 빵을 잔뜩 베 문 뽀얀 양볼따구니 밑으로는 파란 거머리 같은 실핏줄이 해맑게 비쳤다. 나는 그 볼따구니를 흘깃흘깃 훔쳐보느라 요구르트 하나 값을 계산에서 빠뜨릴 적이 많았다.
내가 미국 레이건 대통령 방한 반대 가두시위 중 종로3가에서 연행돼 구류를 살고 나온 동안 그 처제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엄마는 내가 들을세라 말세라 어쩐지 그 입술 시퍼런 게 사내깨나 후리게 생겼더라 어쩌구 하면서 구시렁거렸다. 며칠간 동네를 세게 휘젓고 간 사건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형부와 처제가 붙어먹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가공할 풍문 덕택에 내가 데모를 하다 나흘간 유치장에 있다 나온 사건은 동네에서 흔적도 없이 휩쓸려 갔다. 나중엔 결국 정식으로 이혼을 했지만 그때 죽네 못 서네 하던 효상이네 부부도 겨우 내 별거를 하더니 이듬해 봄에 다시 합방을 했다. 그 뒤로 효상이 엄마는 자기 동생이 원래 품행이 방정치 못하다고 동네방네 입에 욕을 달고 다녔다.
몇 년 뒤 내가 방위 생활을 할 때 단발머리는 돌아왔다. 아니, 긴 머리가 돼 있었다. 그리고 내가 유격 훈련을 받느라고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니지 않던 여름철이었다.
“방우 학생, 히힛!”
그녀가 후줄근한 모습으로 부대에서 돌아오던 날 밤 날 불렀다. 알전구 빛이 짱짱하게 내비치는 호남상회 앞 나무 평상 위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은 모습이었다. 석계역 앞 포장마차에서 동기들과 오백 원 빵으로 소주를 한 병쯤 걸친 취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심하게 받은 피티 체조* 때문인지, 아무튼 오르막에 코를 박고 오르는 호흡이 거칠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는 땅바닥에 침을 퉤 뱉는 시늉을 하며 스스럼없이 다가서서 감자와 양파가 반쯤 담긴 라면 박스를 밀치고 평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동네에서 오며 가며 얼굴 마주칠 기회는 많았지만 서로 인사를 할 만한 숫기도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내 코앞으로 방금 딴 차가운 코카콜라 한 병을 내밀었다. 갑자기 목젖을 우그러뜨린 갈증이 나도 모르게 그 병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잡게 만들었던 것 같다.
“고생이 많은가 봐요.”
한 번 반말이면 끝까지 갈 것이지 웬 또 경어람! 그녀가 여러 남정네들을 요정 냈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꽃뱀이었다. 유부남과 붙어놓고는 돈을 뜯었다는 것이다. 나는 대꾸 없이 병을 입속에 꽂고 난 뒤 사레가 들려 기침을 자지러지게 했다. 사실 콜라를 병째로 마시려고 시도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통스러운 기침이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그녀는 내 등을 시원스레 두들겨주지도 못하고 두 손을 마주 쥔 채 어찔 줄 몰라 했다. 나는 뭔지 모르지만 재미난 기분이었다. 그녀한테 질펀한 농지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그때 어깨 위에 간신히 달라붙은 줄에 매달린 얇은 윗옷을 거추장스러운 듯 걸치고 있는 두 봉긋한 젖가슴이 벌름벌름 숨을 쉬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내 아랫도리가 불끈 천막을 치지만 않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 이백 원을 꺼내 평상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뒤에서 욕이 튀었다.
“쌍새끼!”
욕과 동시에 동전 하나가 뒤통수를 알딸딸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입술을 종그렸다.*
“쐐년!”
그러나 뒤돌아보진 않았다. 슬그머니 맥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창이 형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벌써 형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이고, 형이 이미 알고 있다면 그건 어떻게 달리 부를 말이 없지 않을까. 운명이라고 할밖에는. 창이 형과 나는 소금구이에 맥주를 퍼마시고 또 놀러 오라는 형수의 말을 뒤로 하고 나왔다. 형은 파출소 건너편에 있는 재개발조합 사무실로 가기 위해 마을버스 돌산 종점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형, 늦은 신혼 재미가 어때요? 좋죠?”
순전히 술김이었다. 나는 돼지기름 때문에 더부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헹, 좋냐구?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개를 오래 길러봐서 아는데 사실은 사람도 짐승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걸.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야만이면 야만인 대로…… 그런데 사람한테는 어쩔 수 없이 미운 정도 있고 고운 정도 있는 거니깐 그거 한 가지 다르다고나 할까…….”
나는 으스스 끝에 몰려온 현훈(眩暈)뚜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캄캄함 속에서 오래전에 내가 깬 짠지 단지가 두둥실 떠올라 주었다. 나는 아직 다 쓰러지지 않은 길가의 전봇대에 시린 이마를 대며 중얼거렸다. 가자……!
그 한마디에 동화 속 같던 온 세상이 한순간에 흰빛 절망감의 구렁텅이로 변하던 장석조네 집 마당에서 어쩔 줄 모르던 소년의 모습이 환하게 떠올랐다.
나는 깨진 단지를 눈으로 찬찬히 확인하는 순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어찌 떨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단지의 임자가 욕쟁이 함경도 할머니임에 틀림없음에랴! 이 베락 맞아 뒈질 놈의 아새낄 ˙봤나, 하는 욕설이 귀에 쟁쟁해지자 등 뒤에서 올라온 뜨뜻한 열기가 목덜미와 정수리께를 휩싸며 치솟아 올라 추운 줄도 몰랐다. 눈을 비비고 또 비볐지만 이미 벌어진 현실이 눈앞에서 사라져줄 리는 만무했다.
집 안팎에서 귀청이 떨어져라 퍼부어질 지청구*와 매타작을 감수하는 게 상수인 듯싶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길이라고 일부러 발끝에 힘을 주어 제겨 딛고 가느라 우리 집 앞에서 변소 앞까지 뚜렷이파인 눈 위의 내 발자국은 요즘 말로 도주 및 증거 인멸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봉쇄하고 있는 터였다. 이미 아홉 가구의 어느 방 안에서인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내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라도 한 양 두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울기 전에 최후의 시도를 하기로 맘먹었다. 우랑바리나바롱나르비못다라까따라마까뿌라냐 ……
손오공이 부리는 조화를 기대하며 입속으로 주문을 반복해서 외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 깨진 단지를 내려다보았다. 주문이 헛되지 않았는지 내 입가에 기쁨의 미소가 어렸다. 깨진 단지는 그 모양 그대로였지만 어떤 기발한 생각이 별똥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눈사람이다! 나는 가슴이 터질 듯 기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쫙 벌렸다. 일단 이 아침만큼은 별일 없이 맞이할 수 있겠지. 나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서둘러 주위의 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마침 찰기가 좋은 눈이어서 손이 한 번 닿을 때마다 흙 알갱이가 알알이 박힌 눈덩이들이 붙어 올라왔다. 나는 우선 항아리 주변에 눈사람의 아랫부분을 뭉쳐놓았다. 그러고는 조금 작은 눈덩이를 서둘러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깨진 단지를 감쪽같이 눈사람 속에 집어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너 벌써부터 나와 노는구나. 부지런하구나.”
바로 이웃 방에 사는 현정이 아빠가 담배를 꼬나물고 변소에 가려고 내복 바람으로 나왔다.
“방학 숙제로 낼 일기를 쓰는데요, 눈사람 굴리기라도 해서 적어넣으려구요. 앞으론 날이 따듯해서 눈사람을 만들려 해도 그러지 못할 거예요. 이것도 금세 녹을걸요.”
나는 빨리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 앞에서 밍기적거려 자꾸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그가 얄미워졌다. 그 감정을 능친다고* 하는 게 느닷없이 그가 보는 앞에서 눈사람의 귀때기를 조금 떼어내 입에 넣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찝찔한 것 같기도 하고 맹숭한 것 같기도 한 눈 녹은 물을 뱉으려 하자 혀 아래에 흙 알갱이들이 서너 개 거치적거렸다. 벌써 쉰 출에 들어선 그가 몇 해 전에 면도사 하는 젊은 마누라를 새로 후려* 왔을 때 주변에서는 어떻게 다루려느냐는 시샘 어린 격정이 많았다. 하지만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그의 옆방에 살던 꼬마인 나는 한밤중에 자신을 불현듯 깨우곤 하는 숨죽인 앓는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변소가 떠나갈 듯이 소피를 보고 나온 그는 내가 세운 눈사람을 힐끗 보더니 두터운 입술 새에서 담배를 꺼내 눈사람의 입가에 꽂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엌문들이 차례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 현장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었던 나는 그날 하루 동안의 가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눈사람 속에 감춰진 비밀이란 영원할 수가 없어서 반나절만 지나면 오후의 찬란한 햇빛 아래 만천하에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비밀이란 햇볕을 피해 곰팡이가 피도록 묻혀 있어야 제격인데, 기껏 푸석푸석한 눈덩이에 휩싸인 비밀이란 애초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하루 동안 나는 주로 더러운 곳만 골라서 돌아다녔다. 개똥 천지인 돌산 길을 돌아 나와,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시장 거리, 연탄재가 어지럽게 뒹구는 인수교회 뒤쪽의 좁은 골목들을 혼자 떠돌다 딱총용 화약이 숭숭 박힌 종이를 두 장 사서 차돌로 터뜨린 다음 콧방울을 벌름벌름하며 한껏 화약내를 맡았다. 가끔 아버지의 아티반*을 사러 가는 불란서약국 뒤의 연탄가스 냄새가 눈을 찌르는 어두운 단골 만홧가게에서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성인 만화를 보며 지금쯤 녹아내렸을 눈사람에 대해 서너 번 생각했다. 마지막 만화책을 처음부
터 세 번이나 되풀이 보고 덮고 나올 때 연탄난로 위에 끓고 있는 떡볶이를 보며 후회했다.
그길로 처음 볼 땐 한복집인 줄 잘못 알았던 길음천 변의 음산한 텍사스 거리를 겁 없이 걸어 다녔다. 그런 용기를 준 것은 허기진 배와 눈사람 속에 묻힌 짠지 단지다. 텍사스 거리의 한쪽 끝에 있는 튀김집 거리를 지날 때는 싸구려 기름 냄새 때문에 배 속의 내장들이 요동을 치다 못해 밖으로 꾸역꾸역 뛰쳐나올 듯했다. 하지만 설에도 집에 가지 못한 손톱이 긴 매춘부들이 건네주는 오징어 튀김의 유혹에 굴복하진 않았다. 나중에 떨어질 매와 꾸지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다른 것은 다 더럽혀져도 자존심만큼은 더럽힐 수 없었다.
그러곤 어느덧 해 질 녘…… 이미 비밀이 다 까발려졌을 아홉 가구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간 앞에서 나는 심호흡을 몇 번이고 했다. 엄마한테 연탄집게로 맞으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문간 앞을 흐르는 시궁창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갔지만 아무도 나를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게 일제히 안됐다는 시선을 던지며 몰려들었어야 할 사람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냄비를 들고 왔다 갔다 했고, 문짝에 기대 입을 가리고 웃었으며, 수돗가에 몰려나와 쌀을 일며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수돗가에서 시래기를 다듬다 마주친 엄마도 너 점심 굶고 어디 갔다 왔니, 하는 지청구조차 내리지 않았다. 나는 무척 혼돈스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짜고 그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얼른 눈사람을 천연덕스럽제 세워두었던 변소통 쪽을 돌아다보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눈사람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물론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어야 할 짠지 단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짐작하고 또 생각하는 세계하고 실제 세계 사이에는 이렇듯 머나먼 거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거리감은 사실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 그러므로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푸레한 깨달음에 속한 것이었다. 더 이상 나를 상대하지도 혼내지도 않는 세계가 너무나 괴풀스럽고 슬펴서 싱거운 눈물이라도 흘려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하긴 눈물 서너 방울쯤 짜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난 시래기 줄기가 매달린 처마 밑에 서서 몇 방울 떨구며 소리 없이 울었다. 차라리 그 깨진 단지라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혼은 나더라도 나는 혼돈스럽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뭘 잘했다고 소리 없이 눈물을 꼭꼭 짜니? 정초부터 에밀 못 잡아먹어서 그러니? 넉살 좋게 단지를 깨뜨려 눈사람 속에 파묻을 생각은 어찌 했담.”
엄마가 물에 젖은 손으로 내 볼따구니를 야무지게 잡아 비틀며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음을 지었다. 그 얼얼함이 내 균형 감각을 바로 잡아 주었다.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나는 울음을 딱 그쳤다. 그러고는 어른처럼 땅을 쿵쾅거리며 뛰쳐나와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으며 어딘가를 향해 가슴이 터져라고 마구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컸다.
“그래 딴 데는 안 들르고?”
“오다가 저기 전에 살던 기찻집이라고 있어요. 옛날 침례교회 밑에 말예요.”
“으응, 있었지.”
“거기 뭐 좀 볼 게 있어서 들어가려다 개 조심이라고 씌어 있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왔어요. 보니깐 너무 바뀌었어요. 지붕도 기와에서 슬래브로 바뀌고 마당 쪽까지 집을 새로 지어서 반지하까지 치면 이 층이나 다름없데요.”
형이 고개를 건성으로 주억거렸다.
“형, 조합일 보면 보수는 좀 나와요?”
“돈?”
“예.”
“정식으로 받는 급료는 한 푼도 없지. 하지만 나야 큰돈은 못 만지지만 청탁이 큰 이권 사업이 물렸으니 잘만 하면 떡고물깨나 묻힐 수 있는 자리지, 그 자리가. 근데 너 참 아버님 틀사진 가지러 왔다며 아랫집엔 안 들를 거니?”
“그만둘까 봐요. 대낮부터 벌겋게 술도 마시고…… 또 불쑥 찾아간다는 게 좀 그렇잖아요. 돈 삼만 원 건네주는 건데 엄마가 말한 대로 온라인 이용하는 게 낫죠 뭐.”
“그건 또 그래. 그럼 나랑 같이 마을버스 타고 내려갈래? 지하철 타려면. 아니면, 나랑 조합 사무실에 들러서 커피나 마시며 이곳 돌아가는 얘기나 좀 듣고 가든지.”
“듣긴요 뭘. 형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해줄까.”
“내가 해주긴 뭘. 네가 딱지를 팔고 싶다든지 아니면 그냥 입주를 하겠다든지 가부간에 결정을 내리면 내가 아무튼 최고 시세로 되도록 다리는 놔줄 순 있겠지. 내 생각엔 니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니까 당장 현찰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이리저리 굴려서 분양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분하는 게 장땡인데.”
“예…… 엄마가 결정을 할 거예요. 전 심부름이나 몇 번 하면 되겠죠 뭐.”
아무래도 마을버스 종점까지 가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변소가 어서 옵쇼 하고 대령하고 있으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나는 똥이 마려웠던 것이다. 아랫배가 이렇게 딱딱한 걸 보니 모르긴 몰라도 애들 팔뚝만 한 걸로 한 자쯤은 뽑아낼 수 있을 듯 했다.
“형 먼저 가세요. 전 다음에 또 올게요.”
“왜? 버스 안 타?”
“예, 뭐가 갑자기 생각나서요.”
나는 미주알*에 힘을 잔뜩 주고는 형의 등을 떼밀어 마침 출발하려고 하는 마을버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폐허 사이로 난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반쯤 부서진 집들이 몇 채 보이자 나는 그리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사람이 버리고 간 집이지만 똥 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얼마 전만 해도 밥 먹고 잠자던 부엌이나 방이라고 생각하니 선뜻 바지춤을 까내릴 수가 없었다.
잠시 주춤거리는 새에 마침 세로로 절반쯤 깨진 큼직한 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그 안에는 아마 그 항아리의 반을 깨고 들어왔을 한 뼘짜리 벽돌이 들어 있었다. 크기로 봐서는 한 열 명쯤 되는 식구는 좋이 먹여 살렸을 장독 같았다. 나는 누렇게 마른 소금기 자국이 얼비치는 옹색한 항아리 안으로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가 벽돌과 깨진 장독 쪼가리를 디디고 서서 허리띠를 풀었다. 귀밑이 달아오르도록 용을 쓰느라 기침이 터졌다. 기침이 끝나자 나는 서러운 아이처럼 입초리가 비죽비죽 위로 치켜져 올라가는 걸 알았다. 울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구린내가 나는 두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바짝 쑤셔 박고 굵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굵은 황금빛 똥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런데 나는 왜 구린내가 진동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는데 울고 싶어졌을까?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이제 막 초콜릿 맛을 안 네 살배기 아이, 이렇게 세 사람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비록 속눈썹 이나마 이렇게 주책없이 적셔서야 되겠는가, 아아. 하지만 여태껏 나를 지탱해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인 이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만드는 게. 이 동네가 포클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인데……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똥을 다 누고 난 나는 빈집을 나와 모래주머니를 발목에서 풀어낸 달리기 선수처럼 가뿐하게 폐허 사이루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뒤를 돌아다보니 냄새를 맡은 누렁이 한 마리가 내가 나온 집으로 코를 쑤셔 박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고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21세기문학』 창간호(1997년 봄);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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