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초대 총독에 데라우치가 취임했다. 육군대장 데라우치는 일본왕에게서 위임받은 전권을 휘둘러 잔학과 수탈의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조선 민중은 신음했고, 친일파들은 나라와 양심을 팔아먹은 대가로 배를 두드리며 살았다.
1918년 10월 1일 장준하가 태어났다. 장준하는 강제 징집되었던 일본군에서 탈출해 광복군에 자원 종군한 독립운동가이다. 해방 후 민주화운동에 매진하던 중 옥중 당선을 통해 국회의원도 지내지만 1975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1942년 10월 1일 최현배를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이때 이윤재와 한징은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이윤재의 한글 묘비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이천동에 있었으나 관리 부실을 겪던 중 고향인 김해 외동으로 옮겨졌다.
1946년 10월 1일 ‘대구 10 ‧ 1사건’이 일어났다. 1949년 10월 1일에는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되었다. 1950년 10월 1일에는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국군이 강원도 양양에서 38선을 넘어 북진했다. 그 날과 그 일을 기념하여 정부는 1956년 이래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기리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그보다 28년 전인 1921년에 중국공산당이 창당되었고, 그 100년 뒤인 2021년에는 ‘중국공산당 100년사(김정계)’가 발간되었다. 이 대목에서 약간 뜨악한 것은 공산국가 ‘중공’의 건국기념일과 우리나라 ‘국군의 날’이 겹친다는 점이다. 이래도 되나? ‘국군의 날’을 제정할 19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 때문에 분단조국의 잔재인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 1946년 10월에 일어난 ‘사건’,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진행된 ‘동란’ 등이 좀처럼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되지 않는 현상도 그 때문이다. 세계적 전쟁을 겪고도 우리는 ‘남과 북(홍성원)’, ‘전쟁을 이긴 두 여인(홍상화)’ 등 아주 소수의 관련 작품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자기검열이 일상화되면 10월1일에 얽힌 역사는 사라지고 그날이 ‘커피의 날’이라는 것만 남는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하지만 생선종이에서 향내가 날 수는 없다. 시대와 ‘불화’한 서정은 아름다운 향기를 담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