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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둑 아래 큼직한 뽕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반들거리는 잎이 싱싱하다. 나무 한구석엔 희끄무레한 뜨물이 어룽거리고 꺼칠꺼칠한 데가 있다. 그 아래 좌우로 펑퍼짐해서 밭을 일궜으면 좋겠다 싶어 눈독을 들이다 들어갔다. 두 길쯤 되는 언덕을 내려서 보니 풀이 무성하고 쇠꼬챙이와 각목, 비닐, 천 조각 등 쓰레기가 버려져 엉성하고 어설프다.
이게 밭이 되겠나 하고 그늘에 앉아 한참 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길게 뻗어 텃밭을 만들 수 있는데 너무 으슥하고 외지다. 바닷가로 위아래 차도가 났다. 그 가운데 공터로 삼각형을 이룬다. 도로를 만들다 생긴 빈터로 가드레일이 사방으로 처져 있어서 드나들기 거북한 땅이다. 나무를 심어 미세먼지 차단 숲을 만들었는데 그 밑 구렁으로 버려진 땅이 늘어섰다. 거기다 아래 바닥엔 개울이 있는데 손에 묻혀 혀에 대니 찝찔하다. 앞 바닷물이다.
흙으로 이랑 고랑 만들어 채소 가꾸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밭을 만들어야 한다. 낫질하며 검불을 걷어내고 깍지로 긁어낸 뒤 땅을 뒤집었다. 큰 돌을 빼낼 때 땀 흘리며 헐떡거린다. 후련하다. 일한 것 같았다. 사부작거리는 밭일은 쉬엄쉬엄해야 했다. 서둘다간 숨차고 싫증이 나서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모래가 섞인 땅은 부드럽고 삽이 싹싹하게 들어가 편하다. 내가 엎어놓으면 아낸 이내 뒤따라오면서 호미로 툭툭 쳐 고르게 만든다. 여기서는 부부 손발이 이리 잘 맞을 수 없다. 삽을 땅에 꽂아놓고 헉헉하며 숨을 좀 고르노라면 어느새 쫓아온다. 둔덕에 앉는 것보다 돌의자를 만들어 앉아보면 그리 좋다. 찹찹한 느낌이 피로를 쉬 풀어지게 한다.
“일은 조금 하고 돌의자만 만들구만”
뭐라 한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 일어날 때 힘들었다. 거기다 거름과 동구리, 비료. 생석회, 살충제를 뿌리고 다시 뒤집어 기름지게 만든다. 두 벌 세 벌 박힌 돌과 자잘한 것을 알뜰히 골라낸다. 왠지 돌은 싫다. 삽과 호미 끝에 부딪고 걸리는 것이 힘들다. 씨 뿌리면 며칠 뒤 파릇파릇 아주 작은 것이 연약하게 올라온다.
“입김에도 화상을 입을 듯”
“병아리가 지나가도 뭉개질 듯”
그것들이 자라 배추와 무로 큼직하니 신기하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배기는 것이 있다. 무는 몸통을 흙으로 감싸 덮어두면 봄에 가운데 잎이 살아나온다. 시금치와 대파, 쪽파는 펄펄하다. 서리가 안 내리고 심한 추위가 없으면 다 살아난다. 지난해 가을 김장 배추와 무가 봄에 더 커서 나오니 그 맛이 일품이다.
“채소 비싼 요즘 이게 어디냐.”
봄동을 심어 겨우내 자라 이듬해 봄날 쌈 싸 먹으니 맛나다. 더러운 흙인 줄 여겼는데 만지면 보드라운 것이 아기 살갗이란다. 가꾼 것을 거둬들이니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리 좋은가 보석을 캐는 것 같은 즐거움이란다. 그러니 안 거들고 되겠나. 바깥 주장으로 살다가 늘그막엔 내주장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전은 일하고 오훈 이런저런 모임에 나간다. 그렇게 약속이 되었다.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나갈 시간이 돼 간다. 나는 몸달아 서두르는데 아내는 느긋하다. 밭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이 편안한가 보다. 마냥 그렇게 있고 싶어 했다. 처음은 흙 파는 것이 싫었다. 모임에 나가 친구 만나야지 이 땀 흘리는 게 좋겠나. 조금씩 닮아가는가 보다. 밭일이 재밌어져 간다.
“더 만들어요.”
“밭이 큼직해야지 이건 작아요.”
옆으로 게처럼 비틀거리고 풀 베고 또 뒤집었다. 조금씩 넓혀 나갔다. 이만하면 되겠지 했는데 밭이 말쑥해지면 그래도 부족한가보다 더 넓히잔다. 그렇게 해서 자꾸 번져나갔다. 대충 대충해야지 욕심을 내 자꾸 헤쳐 나가면 힘에 부친다. 한번 뒤집을 때 거름과 비료 넣으면 그만이지 또 섞어 펴란다. 그 위에 씨뿌리고 설렁설렁 손으로 저으면 묻히는데 얇게 고랑을 파서 작은 씨를 정성 들여 흩고 살짝 덮는다.
“꼼꼼하게 일하는 게 재빠르다.”
“잠시를 가만 안 있고 보시랑 댄다.”
감자를 심는데 북을 돋운 뒤 비닐을 덮어씌우고 묻는다. 일을 찾아 어렵게 하는 바람에 지칠 수 있다. 재미있는 일도 나는 어렵고 더디다. 그렇게 하고 나니 거둘 때 좋다. 내가 하려던 일보다 낫다. 기가 살아서 이래라저래라 막 시킨다. 가지 몇 포기를 심었는데 그것도 비닐을 깔고 구멍을 뚫어 심었다.
거름을 거듭 넣고 해서 뭘 저러나 했는데 웬걸 겨울 문턱까지 주렁주렁 얼마나 많이 열리는지 이웃에 나눠줬다. 호박도 넝쿨이 어찌 잘 뻗는지 뽕나무에 기어올라 저 높은 데서 굵은 것이 열린다. 언덕배기로 막 기어올라 너풀너풀 춤추듯 달아난다. 매일 따 나르고 굵은 것 서넛을 막대를 받쳐 앉혔다. 씨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큰 것은 추수감사절 예배에 가져가요.”
일하는데 갑자기 언덕을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했는데 옆자리에 밭을 일구는 부부였다. 풀을 베고 일궈 텃밭을 만들었다. 지나다 보고 탐을 낸 것이다. 적적했는데 잘 됐다. 그런데 더 넓혀 나가려던 곳인데 그만 막히고 말았다. 안동 권씨로 고향 가까운 사람이다. 허리가 나빠 옆에 서 있고 부인이 호미로 부지런히 일했다. 여자들은 흙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남다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봐서인가.
“어찌 우리 집과 닮았다.”
상추와 배추, 열무, 고구마를 심었다. 옥수수와 고추는 한 고랑씩 끝부분에 키웠다. 경계에 거름더미를 만들어 음식물 찌꺼기를 그 속에 넣어 같이 썩게 했다. 잘 크라고 비료를 듬뿍 주었더니 옥수수가 키만 자라 솟구쳤다. 다닥다닥 치뻗어 빽빽하다. 웃자라니 몸통이 가늘어 열매도 작다. 옆 밭 권상달씨 것은 굵고 튼실하다.
고구만 줄기가 싱싱해 껍질 벗기고 데쳐 먹는다. 고등어 조릴 때 넣으니 일품이다. 상추를 갓 뜯어 된장 풋고추 넣어 쌈 싸 먹으니 그럴듯하다. 배추와 열무는 김치로 맛나다. 둑에다 참외와 오이를 심었는데 좀 시들해도 하나씩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들이 잘 자라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쇠뜨기가 많다 뽑아도 연신 올라왔다. 잔뿌리가 있으면 거기서 또 쑥 치솟아 자란다. 뽑고 뜯어내기 바쁘다. 밉상이다.
일하다 뙤약볕을 피해 그늘에 들어와 돌의자에 쉬면 참 편하다. 뽕나무와 소사나무가 앞뒤에서 그늘을 짙게 만들어준다. 거기다 산딸기나무가 둑을 지켜서 아늑하고 그윽하다. 뽕나무는 크다 가지가 척척 휘늘어진 게 수양버들 같다. 반짝이는 잎이 연해서 따 호박잎처럼 쪄 쌈으로 먹기도 한다. 누에가 그 잎을 먹고 토실토실 크니 좋으리라.
“이게 암컷인가 수컷인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달리는 걸 못 봤다. 산딸기가 익어 새벽마다 따 날라야 했다. 하루 건너면 그만 물러 물컹해진다. 잔잔한 것이 수다스럽다. 검붉은 것이 익어 잘 따진다. 한 소쿠리 하자면 한참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했다. 한 주먹씩 입에 털어 넣으면 달콤한 게 살살 녹아 넘어갔다. 한 달 정도 달려들어 거둬야 한다.
“잠시여야지 매일 새벽마다 분주하다.”
집에서 기르는 풀꽃을 옮겨 심으니 꽃밭도 예뻐라. 모기에 물려가면서 뻔질나게 다닌다. 그러던 사이에 저 동쪽 끝에 또 누가 와서 텃밭을 만든다. 보니 택시업을 하는 사람이다. 박씨로 어떻게 알고 찾아왔다. 셋집으로 늘어났다. 넓게 자리 잡아 저 끝까지 드문드문 호박을 심어서 내 땅이라 경계를 쳐 뒀다.
권씨와 박씨는 산딸기를 보고 신기한가. 몇 뿌리 달래서 실한 것을 여러 포기 줬다. 둑에다 심어서 살리는데 박씨는 늦어서인가 그만 말라 죽고 말았다. 내년엔 일찍 주어 심게 해야지 생각이다. 딸기가 달려도 너무 많이 매달려 오롱조롱하다. 작아서 따는 일이 성가시다. 너무 많아 아침저녁으로 먹고 자녀들에게 많이 보내며 이웃에 나눠주는데도 넘친다.
아들이 당근에 올리고 이곳저곳에도 연락해서 반값으로 팔았다. 많이 나올 땐 7, 8킬로그램이다. 한 달간 매일 그리 따니 어찌 감당하나. 당뇨가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혈당이 심하게 오르지 않고 좀 덜하다. 실컷 먹었다. 위 공터를 숲으로 만들면서 산딸기나무를 둑으로 옮겨 심었다. 여러 곳 묻었다, 그늘 쉼터 공원을 만들면서 여러 대 중장비를 들여 파헤쳤다. 둑도 정리하면서 아카시아와 잡목을 베내고 뿌리까지 뽑아 없앨 때 그만 같이 뭉뚱그려졌다. 고맙게 뽕나무와 소사나무를 살리면서 여긴 남겨 뒀다.
“뽕나무, 소사나무야 고마워라.”
그늘만 근사한 게 아니라 삽과 괭이, 쇠스랑, 곡삽, 호미 지지대, 각목 등을 걸쳐 놓으니 안성맞춤이다. 또 그 아래 퇴비와 비료 포대를 두고 푸른 천으로 덮었다. 농약 넣은 단지도 묻었다. 풀빛 나는 상자도 나무 아래 두니 너저분하지 않고 감쪽같다. 장화도 고추 지주대를 땅에 네 개 꽂아 그 위에 올려 넣으니 그저 그만이다.
“텃밭 주위가 깔끔하다.”
당리 뒷산에서 텃밭 할 때, 벗어 둔 장화를 신으니 꾸물거리는 게 지네가 들앉아 있었다. 놀라 얼른 벗어 털어냈다. 한번은 장갑을 끼는데 그만 물렸다. 왜 거기 있나. 지네 독이 있대서 겁을 먹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 치료받았다. 뱀독보다는 약하다며 약 먹고 링거를 맞았다. 누웠다가 저녁때 나왔다. 장화와 장갑을 높은 곳에 걸어두니 괜찮다.
여름 몸서리 나는 신 자두와 가을 홍시를 좋아해서 잘 먹는다. 이제 딸기가 하나 더 늘었다. 한 달 시달리다 보면 진저리가 난다. 딸기에 신물이 생겼다. 붉은 게 밉살맞다. 배와 사과는 따면 한 주먹인데 이건 한참 따야만 된다. 그래도 아낸 돈이 생기니 흥이 나는가. 시간만 나면 밭에 가잔다. 오전 일해 주고 당구 치러 나가면 늘 허전하고 서운한지.
“하루 빠지면 큰일 나는가.”
뭐라 한다. 다시 뒤엎고 상추와 배추, 무, 대파, 쪽파를 심었다. 여름 장마로 물이 넘쳐 오를 때가 있다. 바닷물이 높을 때 홍수가 지면 그런다. 막 싹이 난 상추가 녹으려 한다. 마침 햇볕이 나 겨우 살았다. 대파와 쪽파는 물을 덮어쓰니 비실거리다 하나하나 자취를 감췄다. 고추와 깻잎, 배추, 무는 물에 잠겼다가 나와도 언제 그랬나 하는 듯 잘 자란다.
바닷물이 들랑거리고 장마나 썰물 때는 민물이 섞여 들어온다. 소금물을 덮어쓰니 상추와 대파, 쪽파는 그만 살기 싫다며 죽는다. 떠온 수돗물로 씻어주고 일으켜 세워도 구차하다며 시들어 눕는다. 세 번이나 물에 잠기더니 껄떡거리다가 자지러지고 말았다. 한번은 권씨 부인이 단지가 저기 있다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즐겨 불던 노란 단소가 단지 옆 길바닥에 누워있다. 그 속에 있던 농약과 장갑, 비닐봉지 등이 나와 여기저기 흩어져 뒹군다. 뽕나무 아래 묻어뒀는데 나와 다녔다. 물통도 모두 떠내려가 갈대밭에 둥둥 떠 있다. 보니 물이 많이 올라와 밭을 덮고도 그 위를 넘쳤는가 보다. 삽, 괭이, 호미, 쇠스랑, 장화만 나무에 걸쳐 놓아서 있지 모두 휩쓸렸다.
땅에 묻었던 단지가 왜 나왔나. 알 수가 없다. 누가 뽑아 올리기라도 했나. 하나하나 주워 제자리에 가져다 놨다. 단지는 좀 높은 곳에 다시 묻었다. 그러니 상추와 대파, 쪽파가 숨이 막혔나 보다. 큰물 장마에 논과 밭, 집이 다 떠내려가면 그 자리에 서서 허허 웃는다더니 그 짝이다. 아주머니와 같이 웃고 말았다. 권씨는 밭을 돋워서 물이 잠기지 않게 애썼다.
그런다고 되겠나 내년에 또 그럴 걸 그냥 두자. 아낸 일을 되도록 하지 않고 설렁설렁한다며 뭐라 한다. 몇 해 전에 을숙도 모래땅에 말똥을 되나마나 뿌려서 열무를 심었더니 무럭무럭 크게 잘 자랐다. 교회 사람들을 불러들여 뜯어갔다. 대충대충 하면 더 잘 자라더라 하니 어쩌다 그렇게 됐지 하는 게 엉성하단다.
붕어와 숭어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민물 바닷물이 들랑날랑하는 것 같다. 엄청 두툼한 집게로 권투선수처럼 얼굴을 가리고 성큼성큼 기어 다니는 커다란 게도 보인다. 낚시꾼이 둑에 앉아 붕어를 낚아 올렸다. 그물에 손바닥 떡붕어가 대여섯 마리 보였다. 이 좁은 데서 잡다니 강물이구나 했는데 게가 설설 다니고 수면으로 쫑긋쫑긋 입을 벌리며 떼거리로 다녔다. 숭어였다. 이때는 바닷물이다.
한번은 뽕나무 밑을 지나는데 굵은 붕어가 금방 올라온 듯 풀밭에 드러누웠다. 곧 뛰어 들어갈 것 같아서 밀어 넣었다. 게가 갈대밭에서 나와 건너 담 쪽에 엉거주춤 있다. 괭이로 잡아당겨 잡으려고 하자 기어 물속으로 엉금엉금 들어간다. 걸리면 당기려는데 흙탕물이 되어 어둡다. 보니 아내가 바닥을 휘저어 못 잡게 훼방을 놓았다. 라면 끓일 때 넣으면 맛있는데-
매일 갈 때는 산딸기 딸 때 한 달간 새벽에 나간다. 그 외는 하루 건너서 호박 수정할 때 들른다. 못생긴 것을 호박꽃이라 이르는데 볼 때마다 노란 게 큼직해서 좋다. 누가 이리 좋은 꽃을 괜스레 그리 말할까. 꽃은 붉고 하얀 것이 많다. 노란빛이 봄날 개나리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엄지만큼 굵다란 벌이 윙윙 다니며 호박꽃에 들면 잎을 오므려 가둔다. 밤에 반딧불이를 넣어 초롱 만들어 놀기도 했다. 넓은 잎 가운데 호박꽃은 돋보이기만 하다.
그 벌이 없어 수정해야 한다. 많던 뒤영벌이 사라져서 호박이 맺혔다가 곯아빠진다. 왜 이럴까 했는데 수꽃으로 문질러주었더니 열린다. 고마워라. 처음은 애태우며 자라지 않다가 줄기가 나가기 시작하니 제멋대로다. 어디까지 뻗어나간다. 따라다니며 꽃 찾기가 힘들다. 전날 피었던 것은 입을 다물려 한다.
그래도 벌려 발라줬다. 기면서 수염 손으로 잡아당겨 걸어 매는데 어쩌다 다니면서 뜯기거나 길로 나가는 것을 끌어내어 갈 곳을 바꿔줬다. 그만 화를 내고 열리지 않으니 어쩌면 좋을까.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덥다고 수꽃만 피우고 밤알 같은 호박을 안고 나오는 암컷은 적다. 무던할 줄 알았던 호박 성질이 꽤 까다롭다.
애호박을 키우다가 맷돌 호박씨를 받아 심었다. 청등 호박이 더 맛있어 보인다. 가을에 누렇게 굵은 것이 먹음직하고 탐스럽다. 쫑쫑 올라올 때 잎이 좀 달랐다. 단호박이다. 수정했더니 검푸른 것인가 하면 푸른색이 있고 흰빛도 달렸다. 끓이니 단호박이다. 일반 호박꽃으로 수정해서이다. 둑에 가득 심으니 섞여 잎과 꽃이 즐비하다. 일일이 긴 작대기로 들춰 봐야 안다. 단호박은 손잡이 자리가 둥글고 맷돌은 별 모양이다.
그런데 호박벌이 다 어디 갔나. 여기만 그런가. 지난해는 산딸기꽃에 잔 벌들이 잉잉거려 가까이 가기가 두려웠다. 보니 양봉보다는 작은 토종벌 같기도 하고 나나니벌처럼 보였다. 올해는 적다. 겨우 몇 마리 다니니 되겠나. 지난겨울 추위에 얼어 죽었을까. 농약이나 코로나 방역 살포로 살아가기 힘들었는가 별생각이 든다. 벌이 왜 이리 줄어들까 안 열리면 어쩌지 걱정이다.
기다리며 갈 때마다 살폈다. 눈을 감고 펴지길 기다리는데 붉어지는 게 보인다. 별처럼 반짝이며 수없이 열린다. 저절로 수정되었을까 적은 벌이 다 수정했는가. 곤충이 줄어든다니 갑자기 벌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업신여기고 무시하며 장난쳤던 그들이 그리 귀한 것이었나 생각이 든다. 있을 것은 다 있어야 하는가 보다. 나방이 팔랑팔랑 다니면 쫓아가 끝이 여러 갈래인 나뭇가지로 후려쳤다. 맞아떨어지라고.
그게 채소에 파란 벌레를 낳아 곰실곰실 갉아먹고 굵게 커 가기 때문에 싫다. 그런 것도 있어야 할까. 없어지니 다 귀해 보인다. 제비가 안 보인다. 그 많던 게 어딜 갔나. 말레이시아에서 많이 보였다. 봄이면 오던 게 강남에서 오지 않으니 무슨 일일까. 벌레가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보면 추녀 둥지에서 입을 벌리고 짹짹 먹이를 계속 받아먹는 새끼들이다.
호박벌과 산딸기에 오던 벌이 사라지니 다른 것도 줄어들어서 먹이가 모자란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시골은 호박이 달리는 걸 보니 곤충이 있는가 보다. 오이와 참외, 가지, 토마토, 박은 열리니 괜찮은 것 같다. 시골 사과밭엔 꽃필 때 수정해야 하는 곳이 있다니, 그리되면 큰일이다. 무슨 수로 그 넓고 많은 과수를 일일이 하나.
여름밤 허공을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요즘 보기 힘들다. 은하수 보는 것도 옛날얘기다. 몽골에서 하늘을 보면 보일 것이라 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다. 몇 개 굵은 것만 보이지 헤아릴 수없이 많던 별 무리는 온갖 매연에 시달려 묻히고 말았다 그런가 해서 다른 텃밭 가꾸는 사람에게 물으니 거기는 잘 열린단다. 강서 바닷가만 그러면 다행이다. 이게 벌레 없어지는 신호가 되면 어쩐다. 모기와 파리는 잡는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데 참아야 하나.
한참 산딸기와 오디를 딸 때 개울에 고기가 죽어 올라온다. 크고 싱싱해서 몇 마리 담아보았다. 아내가 싫다며 버리란다. 바다에서 사는 숭어이다. 자꾸 죽어 나오고 새끼들은 무리 지어 입을 뻐끔뻐끔하며 다닌다. 다음날 보니 다 죽어 둥둥 떠다닌다. 요즘 날이 가물어 고인 물에 살기가 어려운가 빨리 달아나 바다로 가지 않고 머물다 그렇게 된 것 같다.
바닷물이 들어오니 붕어가 피하지 못해 튀어 올라오고 낙동강 물이 들어올 때 숭어가 서둘러 빠져나가지 못해서일까. 저들은 그런 사정을 알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고기가 얼마나 죽었는지 개울 수면이 모두 하얗다. 어미가 먼저 죽고 어린 것들은 나중에 배를 허옇게 뒤집었다. 잔잔한 것만 돌아다니는 걸 봤는데 큰 것은 어디 있다가 나왔을까. 저걸 건져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며칠 뒤 저절로 가라앉아 녹아 없어졌다.
썩은 내가 진동할 줄 알았는데 괜찮다. 봄에 아내가 꽃을 자꾸 심어서 보다못해 화단을 크게 만들어주었다. 밭 옆 둑에다 예쁘게 담을 치고 여러 종류의 국화와 장미, 봉선화, 금송화 등을 잔뜩 심었다. 향기로운 산국도 심어 더부룩하다. 벌써 채송화와 제라늄, 분꽃, 접시꽃이 계속 피어난다. 좀 넓게 만들었는데 물 차도 괜찮을 대파와 쪽파 심을 자리다. 야금야금 자꾸 침범해 온다. 아직 한 달여 남아서 더 들어오지 못하게 잠깐 배추를 심었다. 길길이 자라 너풀거린다.
그래도 밭이 더 넓어지길 원해서 동쪽 끝자락을 박씨에게 말해 얻었다. 가지와 토마토, 고추, 들깨를 심고 지그재그로 옥수수 씨를 넣었다. 중간에 개울 둑이 무너져서 다니기 어렵다. 아내가 다니다 빠지거나 미끄러지고 엎어질까 해서 고쳤다. 옆에 한 평 정도 밭도 만들었다. 돌 빼고 박고 하다가 얼마나 애썼는지 힘이 빠져 그날 저녁은 끙끙 몸살을 앓았다.
거기엔 부추 씨를 넣었다. 잘 자라 몇 번 베먹으니 재미가 쏠쏠하다. 또 욕심이 생겨났다. 호박을 심을 데가 없나 살피다가 서쪽 언덕에 올리면 좋을 것만 같다. 엉성하고 풀이 짙어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길을 내고 갈대와 쑥, 넝쿨을 쳐내고 호박을 심었다. 지금의 호박밭이다. 십여 평으로 넓다. 동구리를 한 주먹씩 넣어 호박넝쿨이 내 사네 하고 둑을 덮친다. 뿌리가 깊게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번져 넓게 거름을 넣어줬더니 저런다.
이제 좀 선선해지면 마구 열릴 것이다. 자꾸 개울가로 길을 틔워서 저 멀리까지 갔다. 거기도 밭을 일궈 미나리를 캐 심었다. 또 산나물인 참나물과 당귀, 곰치 씨를 넣었다. 오래된 것일까 참나물만 늦게 겨우 올라왔다. 둑 나무 그늘이 져서 음지 식물인 미나리와 산나물을 심고 의자도 두 개 앉혔다. 아내와 앉아 도란도란 얘길 나누련다. 하모니카도 불고 단소도 잊지 않도록 불어 줘야 한다. 얼마나 어렵사리 익혔는데 묵혔다 썩이면 되나.
생각과 달리 모기가 많아 얼씬 못한다. 가만 앉아있을 수 없다. 칡넝쿨이 막 내려와 잘라내기 바쁘다. 당리 해성에 사는 장 회장에게 아파트 화단의 꽈리를 얻어서 아내와 내 자리에 두 포기씩 심었다. 자두와 매실, 감나무, 복숭아, 대추나무를 사서 양쪽에 묻었다. 잘 크더니 몇 그루 말라 죽는다. 가물 때 물을 퍼 준 게 소금물이어서 그런가 싶다. 혀로 느끼는 게 정확지 못해서 염도계를 사서 재어봤다.
바닷물은 3, 4%인데 낙동강 주위는 강물과 섞인 기수여서 2%이다. 밭 아래 개울은 섞여서인가 1% 전후이다. 혀를 대면 약간 찝찔하다. 가끔 강물이 들어오면 퍼 줄 수 있는 0.3 전후다. 이리저리 재 봤다. 국은 0.7%, 김치는 1%, 소변은 0.5%였다. 국이 몹시 짜 재었더니 1,3%다. 한 컵 물을 넣으니 0.7이 됐다. 가물 때 물 들어 나르는 일이 쉽나 되게 힘들다. 멋모르고 퍼 줬더니 소금물이어서 힘들게 가꾼 채소가 잎이 타들어 간다.
네 통을 들고 가 줘도 시원치 않다. 정확지 못한 혀의 맛으로 개울 물을 주었더니 작물이 말라 비틀거린다. 고추와 열무가 약한가 여러 번 심었다. 아내에게 또 한 소리 들었다. 아들에게 부탁해서 하나 사 재었을 때 민물일 때 주니 좋다. 그런 물이 드물게 나타난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우물을 파기로 했다. 개울 옆에다 둑을 만들고 구덩이를 파련다.
집 앞 진우도와 장자도에 지난날 사람이 살았는데 우물이 있었단다.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어도 파면 담수가 나오니 여기도 그러리라 믿는다. 벌레 달려들고 움직이면 땀에 흠뻑 젖어 밀쳐뒀다. 선선해지면 하리라 맘먹는다. 볼 때마다 엉큼한 곳이 날 부른다. ‘조금 기다려라.’ 정말 팠을 때 단물이 나오기나 할까.
이 개울을 왜 팠을까 생각이 난다. 저류시설 샛강이다. 범람을 막기 위해 여러 물길을 깊게 만들어 저장하는 것이란다. 길길이 자란 갈대와 잡풀을 베내고 우물을 파서 염수 아닌 담수가 나오길 바란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들뜬다. 아낸 쓸데없는 짓으로 힘만 뺀다며 그만두란다. 지난달에 16번 이달에 또 하나 늘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벌금을 매긴다. 안 해, 싫어, 하지 마, 나빠, 그만 등의 말이다.
상대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답답함을 안겨주는 말은 참고 좋은 말로 바꾸자는 얘기다. 웃고 넘기지만 그럴 때마다 벌점을 얘기하고 과태료를 내라 한다. 나도 조심하며 산다. 부정적인 말이 몸에 익어 자꾸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녀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해서다. 따라줬으면 좋겠다. 네 구석 밭뙈기를 찾아가려면 길다 길어. 동에서 서쪽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몇 번 왔다 갔다 다니다 보면 다리 운동이 된다. 바로 옆이 개울이어서 자칫 빠질 수 있다. 그래도 한 번 헛디뎌 들어가거나 자빠진 적 없고 잘 다녔다.
이게 민물이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소금물이어서 빛 좋은 개살구다. 농사에는 물이 최고다. 물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 올 때는 한꺼번에 퍼붓고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내도 소용없다. 청천 하늘이다. 그러니 애가 탄다. 남동풍이 비를 몰고 와도 여긴 ‘부산 강서네’ 하며 지나치는 것 같다. 배추와 열무, 상추, 대파를 주로 많이 심는데 번갈아 해야 한다. 떨어질 때쯤 이어 심어서 끊기지 않도록 한다. 요즘처럼 금상추 금치 금자가 자꾸 들어가 채솟값이 등 다락 같다. 몽골 사람은 초목의 잎은 먹지 않고 고기를 주식으로 한다. 우린 소나 말, 염소, 토끼처럼 풀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산하에 나는 온갖 것이 다 먹거리다.
쪽파 자리에 배추가 잘 자라 너풀거린다. 동구리와 사료, 거름을 듬뿍 넣고 키웠다. 자주 물 뿌려줬는데 잎을 누가 파먹는다. 달팽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훑어서 물에 던져넣었다. 고추에도 누린내 풍기는 딱정벌레가 까맣게 달라붙었다. 약을 칠 수 없어 잡으려면 눈치가 빨라 눈길 피해 줄기나 잎 뒤로 숨거나 도망치고 뚝 떨어져 어디론가 달아난다. 흔들어서 떨어뜨리곤 짓밟아 문지른다. 잡히면 개울 소금물에 던진다. 짠 물에 그냥 떠다니는데 여치는 버둥거리며 건너편 돌담에 붙어 숲으로 올라가 도망친다.
지난겨울엔 가을배추와 봄동, 대파 등을 남겨 겨우내 뜯어먹으려 했다. 어느 날 보니 하나도 없다. 다 뜯겼다. 왜 이런가. 누가 가져갔나. 싹둑싹둑 잘라먹었다. 세 가닥 발자국이 나 있다. 새들이 먹어 치웠다. 이놈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나. 겨울 지나 봄에 나오라고 검은 비닐을 덮어뒀다. 다시 청둥오리는 가까이 오지 않았어도 너무 파먹어서 크질 않고 자랄 기미도 없다. 해마다 봄동을 쌈 쌌는데 그만 먹을 게 없다.
보는 데로 돌멩이를 ‘우우’ 소리치고 던지며 쫓아냈다. 이것들이 다급하니 엉금엉금 기면서 날아올라 달아났다. 얼마나 배불리 먹었던지 뒤뚱거렸다. 어느 놈은 아예 물속으로 기어들어 도망쳤다. 물속으로 돌을 던져넣었다. 혼쭐났다. 전에는 안 왔는데 한 놈이 알고는 가족이나 친구를 데려왔다. 하는 수 없이 뒤집어 파헤쳐 놔야 했다.
알뜰히 해치워서이다. 덮어놓으면 들춰 먹을까 했는데 그러진 않았다. 걷고 먹을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산딸기 딸 때부터 모기가 많아 작년엔 많이 물렸다. 목덜미와 손가락, 팔, 발목을 물어뜯겼다. 겨우 내내 툭툭 불거져 나왔다. 병원에서 약 처방까지 받았다. 올해는 조심해야지 하며 모자와 긴 소매, 두꺼운 바지, 장화, 장갑을 꼈다.
좀 덜하다. 아들딸이 모기 채 세 개를 사 보냈다. 뽕나무와 소사나무에 걸어두니 타닥타닥 잡히는 소리가 고소하게 들린다. 뾰족한 모기 부리는 어찌 생겼는가 두꺼운 옷을 뚫고 들이밀어 피를 빨아댄다. 물과 숲이 우거지니 득실거린다. 소리도 없이 달려든다. 어떨 때는 허벅지가 되게 가려워 불거져 나온다. 긁었다간 터지면서 종기로 번질 것 같다.
모기 없는 봄날엔 자리를 펴고 누워 보면 그리 편할 수 없다. 이내 스르르 잠이 온다. 울퉁불퉁한 뽕나무 아래를 잘 골라 부드럽게 펴놓으니 안방 같다. 달래와 기린초, 머위를 캐다가 소사나무와 딸기나무 아래 심었다. 작년에 심은 뽕나무 뿌리 아래의 돌나물이 파랗게 돋아나더니 쑥쑥 자라 몇 번이나 뜯어먹었다.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니 풋풋한게 맛나다. 진해 불모산 대장동 큰 바위 위의 돌나물을 그대로 걷어와서 동쪽 고추밭 둑 계단 좌우로도 심었다.
대파가 넘친 물에 기를 못 펴고 죽어서 이번엔 모종을 서편 길에 거름을 넣고 기다랗게 꽂아 가꿨다. 온 겨울 먹고도 남았다. 물기도 올라오고 따스한 햇볕으로 잘 자랐다. 올해는 서쪽 미나리밭 둑에도 심었다. 산딸기를 따고 어미나무를 베냈다. 그래야 내년 새순에서 잘 열린다. 햇순이 올라올 때 흙과 함께 떠 이곳저곳 많이 옮겼다.
동편 고추밭 머리와 서쪽 미나리밭 옆에다 드문드문 묻었다. 저쪽 서편 길 아래도 몇 그루 옮겼다. 물기 있는 데는 열매가 굵다. 쑥쑥 뽑아서 한꺼번에 몰아서 묻기도 했다. 잘 크라 했는데 웬걸 반은 말라 죽었다. 그것도 가물 때 소금물을 퍼부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바닷물로 망한 게 하나둘이 아니다.
허연 게 떨어져선 끈적끈적하다. 만지거나 앉으면 쩍쩍 달라붙는다. 눈이 내린 듯 뿌옇다. 이게 뭔가. 뽕나무에서 떨어져 내린다. 하얀 머리카락 같은 것이 솔솔 날아내리고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린다. 집에 가서도 머리카락이 엉켜 만지면 쩍쩍 달라붙는다. 큰 뽕나무 잎에 뜨물이 끼여 뒤덮었다. 서리 내리거나 황사가 날아와 쌓인 것 같다.
잎이 돌돌 말리고 크다가 지실 들어 움츠린 것 같다. 그늘 좋은 나무가 말라 죽으면 뙤약볕을 어디서 피하나.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버럭 든다. 얼마나 달라붙었는지 잎마다 줄줄 흰 거미줄과 가루가 떨어진다. 땅바닥에 깔려 밟으면 붙었다 떨어지는 찍찍 소리가 난다. 옆 산딸기나무와 소사나무에도 엉겨 붙는다. 훨훨 날아다니며 주위 숲에 옮아간다. 희한한 놈이다.
연장과 그릇마다 가루가 앉아 만질 때 들러붙어 할 짓이 아니다. 이제 뽕나무가 죽게 생겼다. 농약을 뿌렸다. 심한 곳부터 밑에서 치 뿜으니 좀 덜하다. 이제 괜찮을 것이라 했는데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또 극성이다. 전체가 몸살을 한다. 분무를 물줄기 물총으로 바꿔 높은 데서부터 사방으로 약물을 덮어씌웠다. 몇 번을 했더니 견딜 수 없는가 조용하다. 잘 살아나고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올 때마다 계속 퍼부었다.
이럴 때 오디는 왜 이리 많이 달렸나. 가지마다 빼곡하다. 오롱조롱 매달렸다. 누가 따 먹을까 약을 쳤으니 먹지 말라 카톡으로도 일렀다. 이제 살 만한가. 잎사귀에 윤기가 흐르며 고맙다 반짝인다. 아직도 뜨물 흰 거미줄이 남아있다. 자세히 보니 흰 실 가운데 파란 것이 기어 나와 고물고물 다닌다. 하도 작아서 눈을 크게 뜨고 봐야 알 수 있다. 손바닥에 앉혔다. 연두색의 예쁜 아주 작은 벌레가 이 설치듯 기어 다녔다. 이 작은 것이 이 큰 나뭇잎을 흰 가루로 덮어쓰게 했나. 대단하다. 진드기다. 작은 개미가 커다란 언덕을 세워 만들 듯 미세해도 무서운 곤충이다. 사람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이런 종류의 살인 진드기 따위라니 가관이다.
가운데쯤 물 건너 둑에 복숭아가 익어 붉게 보였다. 따려니 손이 닿지 않아 건너가려고 동쪽 끝으로 한참 걸어갔다. 끝에 주렁주렁 발갛게 익은 먹음직한 복숭아가 보였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껌벅인 뒤 다시 쳐다봤다. 알맞게 익은 굵은 것이 휘늘어지게 달렸다. 야생 까칠 복숭아가 아니다. 다니는 사람 눈에 띄었을 텐데 여태 그냥 있다. 절벽이고 밑은 저수 물이어서 손닿지 않아서이다.
복사꽃 떠내려오는 여울물을 따라가니 석굴을 만나고 지나니 낙원이 나타났다는 도화원기의 무릉도원 얘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큰길 가에 이런 과일이 심어졌을까. 가운데 다른 복숭아 한 그루도 크고 옆에 대추나무도 있다. 또 뽕나무 앞엔 석류도 있어서 봄이면 빨간 꽃이 피고 가을엔 붉은 열매가 벌어져 떨어진다. 어디 이런 데가 다 있을까. 참 좋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올망졸망 달린 뽕나무 오디가 더없이 좋기만 하다.
장대 끝에 작은 호미를 잡아맸다. 물에 떨어지면 건지려고 철물점에 긴 매미채 같은 그물도 구했다. 아내는 정신없다. 잡아당겨 떨어뜨리길 잘한다. 양산 원동 배내에서 고종 감을 따 나무 아래로 던지면 잘 받던 아내다. 여러 해 받더니 야구선수처럼 흘리지 않고 낚아챈다. 신명이 났다. 난 둥둥 떠다니는 복숭아를 끌어 올렸다. 두 양동이가 그득하다. 자라지 않아 몇 개 놓치고 다 담았다. 만선의 기쁨으로 귀항하면서 한 놈을 골라 깨무니 새콤달콤하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산딸기 딸 무렵에 뽕나무 아랜 야단났다. 시꺼먼 것이 밟혀서 온통 거무죽죽하다. 오디가 익어 떨어져 켜켜이 쌓여만 갔다. 밟히니 질벅거린다. 갈 때마다 쓸어 담아서 거름에 올렸다. 여러 번 비를 맞아 깨끗하고 반짝이는 것이 맛있어 보인다. 농약을 쳐서 먹지 말라 했는데 이제는 괜찮을 것이다. 아내가 손 잡히는 가지를 당겨 하나씩 따 먹는다.
저 위에까지 새까맣게 달렸다. 붉다가 익으면 검어진다. 나도 당겨 따 먹기 시작했다. 청주 잠사박물관에 들어가니 검은 그물을 깔아 떨어지는 오디를 주워 먹을 수 있게 했다. 어떤 것은 엄지척같이 굵다. 검어도 달콤한 게 맛있다. 어릴 때 고향 밭 가운데 줄지은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먹던 게 생각난다. 뽕나무 아래 단지가 있어서 뭔가 들췄더니 막걸리다. 풀썩풀썩 삭아지고 있다. 냄새가 달곰해서 뽕잎을 오므려 퍼먹고 해롱해롱한 적이 있었다. 귀한 쌀로 빚었으니 맛 나는 것을 나중엔 손으로 실컷 넣고 배가 불룩 나왔다. 얼굴이 붉어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봇물에서 ‘후절펑’거리며 뛰어놀았다.
모기 채를 소사나무와 뽕나무에 걸어두었는데 파리나 굵은 벌레가 걸려들어 계속 피 피 소리 내며 탈 때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들랑날랑 가녀린 모기는 날아다니다 붙들려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작년엔 그렇게 물렸는데 올해는 단도리를 잘해서 덜하다. 보니 소사나무에도 잎이 거미줄처럼 앙상한 게 드문드문 보인다. 벌레가 먹거나 뜨물 진드기 짓인 것 같다. 또 농약을 쳐서 살아나라 했다. 이 두 나무 그늘이 좋다. 없으면 쉴 머물 곳이 없다. 이 뙤약볕에 무슨 수로 지나나. 갑자기 지나가는 소낙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여기밖에 피할 데가 없다.
비 올 땐 뽕나무 아래가 좋다. 잎이 넓어 피할 수 있다. 버들처럼 척척 늘어진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봤다. 어찌 이리 클까. 그 아래 큰 돌을 네 개 의자로 앉혔다. 아들딸 것까지 만들었다. 일하다 힘들고 더울 땐 그늘로 들어와 앉길 잘한다. 물 마시고 주전부릴 한다. 직박구리가 수다스레 무엇이라 말하다간 날아간다. 까치와 까마귀도 앉았다가 ‘여기서 뭐 합니까.’ 하고 물어본다.
전엔 이 뽕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걸 못 봤는데 올해는 이리 많이 열렸다. 무심코 얼른 지나쳐서 그런지도 모른다. 암컷인데 그냥 있었겠나. 아무튼 그릇에 가득 따 담았다. 붉다가 익은 것은 잘 따진다. 덜 익은 오디는 꼬장꼬장 안 떨어지고 뭉그러진다. 물에 씻어서 말렸다가 먹는다. 그래도 혹시 농약이 묻어있을까이다. 산딸기와 함께 오디도 같이 먹게 되었으니 이게 웬일인가.
더 바빠졌다. 늘어진 가지를 당겨 오롱조롱 맺힌 익은 것만 골라 땄다. 아침마다 새까만 오디를 따서 한 입씩 털어 넣고 딸기와 갈아 먹고 얼려둔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가득하다. 밥만 먹다가 요즘은 이것으로 아침 끼니를 때운다. 어디가 좋으려니 한다. 많이 나올 때는 산딸기가 값이 헐하다. 냉장고도 차고 분당 딸네 집에 보내며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줘도 남는다.
졸업생 치과와 피부과 정형외과에 가끔 치료받으러 간다. 금니를 해 넣고 얼굴과 목, 팔의 점을 다 뺀다. 아내 발바닥이 괜히 저리고 아파 절뚝거리다가 진해 병원을 찾아갔다. 어찌하면 좋을까 물었는데 오라 해서이다. 온갖 검사와 비싼 사진을 찍고 치료해서 좋아졌다. 수술해야 한다고 날을 잡으라 했는데 안 해도 될 정도로 막 걸어 다닌다. 대상포진을 앓고 나서 허벅지가 아프더니 발바닥으로 내려갔는가 뜨끔거리고 아프단다.
계산하려니 없다. 받지 않으려 하고 밀어낸다. 껄끄럽고 미안해서 어쩌면 좋을까 했는데 마침 잘 됐다. 몇 푼 되겠냐마는 산딸기를 듬뿍 담아 선물로 가져갔다. 조금 속이 편해진다. 간호사도 따로 담아줬다. 그래도 철철 넘쳐 이 산딸기를 어쩌리오. 아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광고지를 붙였다. 며칠 뒤 반가운 연락이 와서 배달했다. 귀한 오디도 준다며 고마워했다. 30여 개 승강기 전단을 보고 연락이 곧 오지 했지만 더는 오지 않았다.
하루만 안 가도 물러 처지니 매일 이른 아침에 따는 것도 힘들고 안 팔리니 더 낭패다. 이것을 보관하기가 어렵다. 오디도 물러지니 어쩌면 좋을까. 생각 끝에 잘 가는 목욕탕 가게에 말했다. 가져오라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길이 틔었다며 얼씨구나 했다. 일이 이렇게 풀려야지 살맛이 난다. 우선 어제 많이 따 놓은 것을 갖고 갔다. 싸게 팔아달라 했다.
다음 날 가니 웬걸 이렇게 맛없는 산딸기는 처음 먹어본다며 다 가져가란다. 남의 장사만 망쳤다며 불룩불룩해댄다. 가져간 사람의 돈은 받지 말라고 한 뒤 남은 것을 모두 도로 가져왔다. 먹으니 괜찮은데 그런다. 냉장고에 넣었던 것이어서 빛이 바래지고 맛은 조금 덜한 것 같다. 그래도 새콤달콤한 것은 여전하다.
작년에 많아서 팔려 해도 아는 사람에게 일일이 전화해야 했다. 올핸 내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생각에 옆 큰 마트에 사달라 말하면 될 것 같았다. 우선 아파트 과일 가게에 들러 부탁했다. 조금 있으면 산딸기가 나오는데 사 달라 부탁했더니 단번에 거절하며 어렵단다. 보관이 안 돼 곤란하다는 말이다. 아침에 따 금방 가져오니 신선해서 며칠간은 지날 수 있고 팔리지 않으면 가져가겠다 해도 소용없다. 젊은 여자에게 단칼에 거절당해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모든 과일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빛깔과 맛이 신선해 보이는데 산딸기만은 그렇지 않다. 후줄근해 보이고 처지며 까라지는 빛과 맛이다. 오래전에 엄궁 농산물시장에서 산딸기가 먹음직해 하나 샀다. 뜯어보니 겉만 멀쩡해도 아랫것은 곰팡이가 폈다. 여러 날 되면 이런가 보다. 붉은 과일로 아주 잠시 나타나는 귀한 것인데 갈무리가 안 된다. 안팎이 붉은 과일은 딸기와 토마토, 앵두, 보리 등이다. 드물다. 겉 붉은 사과와 복숭아는 속이 희다. 수박은 속은 붉어도 겉이 푸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주식인 열매는 좁쌀 외에는 대부분 희다.
겨울에 어느 식당은 홍시를 얼려뒀다가 후식으로 내주니 아이고 좋아라 맛있게 먹었다. 물컹한 복숭아도 통조림으로 만들었다. 껍질과 씨를 발라내고 노란 것을 반쪽씩 네댓 개 넣었다. 포도도 그리 만드는데 산딸기는 왜 그리 못할까. 오디는 더 물러터진다. 붉고 검은 것이 말썽이다. 냉장 보관이 안 돼 야단났다. 다 연구가 잘 돼 발전하는데 이것은 더디기만 하다.
교회 권사 한 분이 사정을 알고 산딸기를 좋아한다며 가져오래서 팔아줬다. 자꾸 이러니 인심 잃게 됐다. 몇 푼 안 되면서 말이다. 당구 치는 최 선생이 조금 달래서 오디와 함께 주었더니 집에서 맛있다며 주문을 많이 했다. 조 사장도 그렇게 팔아주니 갑자기 남아돌던 것이 달린다. 한꺼번에 못 주고 여러 번 나눠 역시 오디를 끼워줬더니 기분이 좋다며 더 주문한다. 상추와 열무도 덤으로 주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산딸기보다 오디와 채소가 좋은가 집 가까이 가지러 온다. 아들이 과일 가게 두 곳을 말해 주문이 크게 들어왔다. 10킬로와 5킬로를 받겠다니 그렇게는 없다. 조금씩 주고 맛만 보였는데 관심이 대단하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늦게서야 일이 터졌다. 그러자 산딸기와 오디가 끝날 무렵이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모두 고맙다고 인사했다.
한 달간 일찍 일어나 모자가 따선 안고 들어왔다. 식탁에 펼쳐놓고 으깨진 것과 무르며 작은 것을 골라냈다. 5백 그램씩 담아 포장하면 그 주홍 색깔은 영락없이 아름다운 보석상자이다. 시중 반값에 내니 다 좋다며 뒤늦게 달라지만 그만 아쉽게 끝나버렸다. 우리 먹을 것만 나온다. 끝물에는 작고 비리비리해도 오디를 넣고 갈아서 아침상에 오른다.
밥 대신 드니 더운 날 시원하고 가볍게 먹음이 좋다. 두유를 넣어서 얼려두었던 것과 함께 합치니 그 찹찹함이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사방을 드리운 가지를 잡고 익은 것을 하나하나 따는 재미가 대단하다. 어디 이렇게 오디가 많이 열리나. 저 높은 곳은 딸 엄두를 못 낸다. 가까운 가장자리만 따는데도 한 바가지다.
새벽마다 마지막 남은 딸기와 오디 따는 일이 즐겁다. 어제 다 땄는데 아침에 보면 또 그만치 달렸다. 화수분이다. 끝없이 나온다. 많이 달리면 작아지는데 크다. 굵어서 입에 넣으면 달짝지근하다. 누군 비닐이나 자리를 깔아 밤새 떨어진 것을 모아 줍는 게 낫다지만 늘어진 가지를 잡고 얘기하면서 따는 게 좋다. 산딸기는 붉고 둥글다. 오디는 까맣고 길쭉하다.
고만고만하다. 오들오들하고 그 속에 잔 씨가 있다. 먹을 땐 모른다. 갈아먹으면 씨가 조금씩 씹힌다. 잎이 햇볕에 반짝인다. 많은 꽃을 피우는 벚나무나 열매 맺는 사과와 배, 복숭아, 대추, 밤나무는 이내 추리해지는데 이건 생판 다르다. 뜨물 들어 비실거릴 때와도 다르다. 언제 그랬나 싱싱한 게 다 피둥피둥하다. 농약 쳐 살려 줬더니 고맙다며 그다지 오디를 많이도 내준다. 약 묻은 걸 다 떨어뜨리고도 가녀린 가지에서 새로 만들어 내는가 꾸역꾸역 자꾸 나온다.
초 중복도 보내고 입추가 지나 말복이 다가오는데도 하나둘씩 붉은 것이 까매지며 오디가 생겨난다. 아직 붉은 빛이 있는 것은 새콤해서 몸이 비틀리지만 고마워라 동동 팔월에도 나올까. 얼려둔 으깨지고 자잘한 산딸기와 오디를 바나나와 함께 간편식으로 들었다. 여름 장마가 지고 태풍이 거듭 들이닥치며 무더위가 이글이글 끓어도 풋풋한 오디 맛에 길들여 선선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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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전벽해...어릴때 꽤나 넓은뽕나무밭이 있었는데 요즘가보면 어디가 밭이었는지 모르게 우거진 산으로 변해버렸어요. 제 생각에서는 아직 오디보다는 뽕...입니다
오디란 열매가 어디 따로 있는줄 알았으니까요ㅋ
머리에 속속 그려지는 수채화같은 수필입니다.
밭에 가면 편합니다.
모기에 물리고 땀 범벅이 되어도 뽕나무 아래 있으면 좋습니다.
아내 따라 변했습니다.
성도님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