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웃는 연습(서정시학)
박금성
법명 도신. 8세에 예산 수덕사 입산. 수덕사 부주지 역임. 수덕사 박물관장, 서광사 주지. 2020년 《서정시학》 등단.
박금성의 시 세계는 불안의 정동이 기본 정조를 이룬다. 그러나 그의 불안의 정동은 외부의 위험에서 오는 현실적 불안이 아니라 내재된 기억에서 연원하는 근본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불안 원형에 해당하는 기억은 자기방어 기제에 의해 의식의 저편 속에 전략적으로 관리되고 억압되면서 압축과 전치의 미로를 걷는다. 그러나 그의 시 세계에서 불안은 고통스런 기억의 대상에 대해 미적 욕망의 속성을 지니는 공감적 반감(a sympathetic antipathy)의 특징을 지닌다. 그에게 불안의 결절덤은 끌림과 거부, 메혹과 상처, 원망과 비감이 중첩되는 실존적 경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통이 극점을 이루는 기억의 찰나지만, 그러나 어느 때보다 그리운 대상들이 곡두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때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편에서 볼안의 결절점에는 상처와 그리움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다. 불안한 그리움 혹은 그리운 불안함이 그의 시 세게의 중심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시편은 이러한 정동하는 불한의 한 양상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눈발은 날리고
개밥그릇에 눈은 쌓이고
이미 개는 어제부터 안 보이고
강아지들은 강아지들은
흑 색깔 같은 강아지들은
돌 색깔 같은 강아지들은
밀가루 반죽 같은 강아지들은
강아지 주먹만 한 눈이 내리고
사료를 쥔 내 양손이 꽁꽁 얼어붙고
양다리가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고
멀리 개 짖는 소리 들리고
눈발은 날리고
개밥그릇에 눈은 쌓이고
금순아, 마리아야, 금자야
흙이 되고 돌이 되고 눈곱이 되어도
눈발은 눈발을 싣고
-「눈발은 눈발을」 전문
동형구문이 반복되면서 시적 리듬이 가속화되고 있다. 리드므이 가속도에 따라 눈발이 날린다. 어느 새 “개밥그릇에 눈”이 쌓인다. 시적 정황과 언어들도 눈발의 속도에 따라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어제부터” “어미 개”가 안보이고 있지 않은가. 시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리드므이 가속도가 한순간에 불안의 소용돌이로 전이된다.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아지들은 “흙 색깔”이 되고 “돌 색깔”이 되고 “밀가루 빈죽”이 된다. 모두가 너무 어리고 애처롭고 위태롭다. 그래서 날리는 눈마저도 “강아지 주먹만 한” 폭력성으로 느껴진다.
시적 화자 또한 “양손이 꽁꽁 얼어붙고/양다리가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이 모두가 “어미 개”가 “어제부터 안보이”기 때문이다. “어미개”의 부재가 통제되지 않는 자동 불안을 초래시킨 것이다. 아직도 “어미 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텅 빈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욱 짙어진다.
-홍용희(문학평론가), 시집해설 「불안과 그리움과 초극의 언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