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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自鳴鼓)로 울리는 고독의 미학
삶의 동통(疼通)- 나에게로 오는 길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라는 시의 앞 부분으로 심호흡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가슴에서 용도폐기시킨 것들을 호명해본다. 지난 시간을 ‘과거’라고 부른다면 ‘기억’이라는 말에는 더 중립적인 어감이 있다. 새삼 점쟁이의 것 같은 언어가 왼쪽 가슴께를 뻐근하게 한다. 고독감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텍스트에 스며든 감성의 강도가 편린들을 들추면서 팔목 뼈가 시큰시큰할 정도로 혹사를 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몸속에 부력이라도 있는 듯 마음속에서 자맥질하는 지난날들이 손이 시린 것도 아닌데 손바닥을 말아 입에 댄다.
저널의 특집으로 Government의 커버스토리를 방금 넘겼다. 기운 내는 달콤한 내 안의 감촉을 즐기고 싶다. 늘 그렇지만 원고를 마감하고 나면 늘 뭔가 허전하다. 상대의 내면을 허가받고 파고들어 거기서 파생되는 미세함을 감지해 언어로 완성해내는 황홀함, 이 굵은 느낌의 힘이 한몫 단단히 하고 나면 든든해야 하는데 늘 허허롭다. 다음 원고 머리기사부터 걱정하느라 또 바쁘다. 잡지사 기자 일을 하면서 늘 따라다니는 것은 ‘액션’과 ‘스피드’였다. 일하는 여자, 당차게 일 잘하는 여자라고 불리는 대신에 그 뒤의 무게는 대단하다. 이러다 보니 내 것이라고 마음에 찍어 놨지만, 온전히 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것도 아닌 게 많다. 수첩에 적어놓은 도서목록, 인터넷 장바구니의 쇼핑리스트 꼭 만들어 먹겠다던 요리들 그리고 잡지에 접어져 있는 스트레칭 자세들, 언제나 내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영원히 아닐 수도 없는 것들이다. 마음의 짐 중의 하나라도 과감히 덜어내야겠다 싶어 창문을 열고 구석구석을 쓸어내고 다음에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정성들여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는 마트에서 모처럼 마음먹고 장보기를 하고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는 책상에 앉아 ‘내 마음의 자명고’ 시집을 꺼내들었다.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데 지나온 시간, 그 치열했던 고민의 시간이 상처 위에 소독약을 붓는 것처럼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한 권의 시집을 앞에 놓고 가슴이 아프고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지난날 문학에 대한 고독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포기하면서 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게 문학의 미련이었으니까. 이렇게도 내 인생에 모진 미련이 있을까 싶다.
가슴의 동계 (動悸)- 그리움 부르기
문학이라는 꿈 밭에 씨를 뿌려준 고마운 정원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국어선생님, 과 교수님이시다. 유난히 기억력이 좋으셨던 할머니는 「춘향전」「숙영낭자전」등을 술술 엮어 나가셨고 나는 이야기를 듣느라 졸린 줄도 모르고 늦은 시간까지도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날이 많았다. 또한, 서당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한문 가르침은 나에게 또 다른 흥미로움이었다. 가끔은 끝이 뭉뚝하게 탄 부지깽이로 봉당마루에도, 마당에도 벽에도 집안 곳곳에 한문을 써놓는 낙서를 해서 부모님께 야단을 듣기도 했다. (웃음) 그래서인지 후에 나는 현대문학보다도 구비문학 등 동서양고전에 더 많이 재미를 붙이곤 했다. 중. 고등학교시절엔 유난히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습관 때문인지 교내에서는 물론 도내 글짓기 대회에서는 늘 수상을 하곤 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꿈을 적으라 하면 난 늘 ‘서점주인’이었으니까. (웃음) 책만 읽으면서 살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당시 국어선생님과 인연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습작 공책을 보시고는 일일이 고쳐 주시고 또 더러는 칭찬을 해주시며 ‘글의 생명은 언어의 감각’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책을 사주시면서 ‘읽은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 읽고 난 후 머리나 마음의 가장자리에 남는 향기가 필요한 것이란다.’라는 메모지를 첫 페이지에 넣어주시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을 때는 공감이 가는 글귀에 밑줄을 치며 독후감을 달아놓는 습관이 생겼다. 창작 활동에 또 한 분의 은사님이 지켜봐 주시고 계신다.
사진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제자에게 스승은 달걀 하나만 주고 일 년 동안 달걀만을 찍으라 했고 처음에 제자는 달걀을 어떻게 일 년 동안이나 찍을까 생각했지만, 스승의 뜻을 알려고 달걀 곁을 떠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똑같은 달걀을 계속해서 찍어 나가다가 어느 날 달걀이 한순간도 똑같은 적이 없음을 제자는 깨달았다 한다.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떨어지는 빛에 따라 다른 모양이었고 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또 다른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오묘한 우주의 모습을 보고 스승을 떠나 자신의 세계를 찾아 나섰다는 이야기와 함께 표현은 ‘창조’라는 말씀만 해주시고 한동안 나를 지켜보시기만 하셨다. 이때 해주신 이 이야기가 나에게 시작詩作을 위한 방법의 고민이었다. 지금도 가끔 햇살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잦다.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떠올리는 것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이 흐르는 것,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이나 나무에서 꽃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오래도록 멀리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서 꽤 큰 서정을 선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퇴고를 시키면서 가끔 호되게 혼내시기도 하시던 선생님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때처럼 평생 그만큼 뭐에 씐 사람처럼 책을 읽고 습작을 한 적이 없지 싶다. 아침부터 도서관에 나가 문학 작품과 문학이론서를 뒤적이는 생활이 꽤 오래 이어졌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에겐 많은 책이 문학 세계로의 꿈을 심어주는 좋은 안내자들이 되기도 했지 싶다. 창의성의 여신들이 힘과 에너지의 신인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니모신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희랍 신화는 창의성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그 사이사이 T.S 엘리엇의 시를 음미하기도 하고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에서 불교의 윤회설을 곁들인 싯달타의 시적 정감에 휘말려 들어가기도 했었다. 정신없이 각국의 문학을 섭렵하려는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그러다 교회 근처도 못 가 본 내가 입에 넣으면 흐뭇하게 뺨이 불룩해지는 굵직한 알사탕을 물고는 「성경책」을 읽어 내리기도 했다. 습관적으로 알사탕을 꽤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시편」에서는 시의 운율을 「욥기」에서는 희곡의 주제를 찾아내는 마음의 횡재를 했지만, 그때 생긴 충치 때문에 나중에 꽤 애를 먹기도 했다. (웃음) 선생님의 권유로 지방 모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가 아닌 소설로 도전을 시작했다. 이렇게 내 속에 감추어진 것을 조금씩 밖으로 밀어내는 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도전에서 떨어진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마냥 3박 4일을 울며 지냈다. 그리고는 덜컥 결혼을 해버렸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조금씩 또 습작을 하며 또 한 번의 도전을 꿈꾸고 있었다. 시 쓰기를 권유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하고는 또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 퇴고를 거듭해서 두 번째 도전을 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내 안에서 문학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직도 나 자신이 입 다물고 있는 뭉쳐진 사유이다. 당시 문학의 위험지대에서 달려든 방황이 내 심장을 깨물지 않도록 온몸을 웅크리고 절절매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후 글을 발표하거나 모아놓을 자신이 없어 라면박스 가득한 습작 원고들을 강원도 ㅇㅇ절에서 모두 태웠다. 몸의 아픔으로 가슴 아픔을 이겨내려고 차가운 법당 마루에 꽤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앉았었다. 법당 안의 촛불을 오래 바라보면서 안쪽의 저 속이 어떠려나 싶어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와서는 아이 엄마로 며느리로서의 평범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배님이 하시는 출판사에 갔다가 소개로 객원기자로 일을 조금씩 받았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창작 연습은 하지 않고 중간에 미뤘던 공부를 다시 하면서 논문 서너 편 쓰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은 부재 의식의 감성이 살아 있다는 징표처럼 글에 대한 갈증과 허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고독의 혈맥-영혼의 개안開眼
일본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구(大宰府天滿宮)를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학문의 신인 ‘스가오라 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다. 호텐 앞에는 6000그루나 되는 매화나무가 있었고 경내에는 비매飛梅라는 이름표를 붙인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안고 있었다. 생전에 스가오라 미치자네는 매화를 특히 사랑했다고 한다. 이 비매에 대한 전설은 미치자네가 교토에서 규슈로 떠나올 때 ‘ 이 집안에 비록 주인은 없더라도 너(매화)는 계절을 거르지 말고 꽃을 피워라.’라고 시를 지어주었는데 교토의 집에 있던 그 매화가 주인을 못 잊어 규슈까지 날아와 뿌리를 내렸다 한다. 그래서 ‘날아온 매화’라는 뜻으로 ‘비매飛梅’라는 이름이 붙여져 천 년이라는 세월을 가지고 있다 한다. 서울로 돌아와 ‘비매’의 꽃망울 모습에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면서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여전히 문학의 미로에 갇혀 헤매고 있던 내 마음에 ‘비매’라는 문패를 달았다. ‘讀修空房의飛梅’ 라는 시로 문단에 들어선 것이다. 살면서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내 삶에서 떠밀어낸 단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핏줄이 톡톡 튕겨져나 올 정도로 말라있던 단어와 고독의 요추에서 뜯어낸 단어들이 수북하게 쌓여 꼼지락 꼼지락 내 속으로 도로 기어들어가는 날에는 속 쓰림에 혼쭐이 나기도 한다. 유보해 두었던 질문인 문학다운 문학 시다운 시를 쓰라는 난관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기력을 섭생할 수 있을까? 라는 팽팽한 긴장감이 마음에 고압전선처럼 깔리면 가끔 균열이 봉합되는 침묵으로 단어의 몸놀림이 무거워지며 자주 끊기는 문장이 반복되기도 한다.
가끔은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사진을 찍으면서 쉼표와 마침표, 물음표와 느낌표, 줄임표를 비롯한 온갖 문장부호 사이에 마음을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야생화는 크기가 작아 엎드려야 보이는 것도 있다. 심도조절을 못 해 많이 찍었는데도 한두 장도 건지지 못할 때도 있지만 작은 것의 소중함을 들꽃에 배우기도 한다. 어느 이른 봄에는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활짝 핀다고 해 ‘얼음새 꽃’이라는 복수초를 찍으려고 눈밭에 두 시간 넘게 쭈그리고 앉아 동상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서정의 영역을 가슴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시 마지막 구절이 나에게 수혈을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사랑도 그런 것이다 /정설연
복수초 살갗이 부풀수록
꽃잎 켜켜이 고독이 글썽이고
잔설에 서린 견딤이 아파서
목이 멘다, 내 고통일 테지
잔설을 비집는 꽃잎의 진통
천근만근 그리움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은 사람은 안다
복수초가 가장 아픈 꽃이다는 것을
사랑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잔설을 비집는 모습이 이토록,
눈물겹게 아프다
가슴에 아프게 사랑해야 할
고독 하나쯤 지니고 사는 사람
밤새도록 가진 그리움 떨치지 못하고
가슴 한 곳에 묻어둔 사람은 안다
햇빛 비치는 낮에만 꽃잎을 여는
복수초가 가장 아픈 꽃이다는 것을
Epilogue-詩가 다시 희망이다
내 마음의 자명고 /정설연
내 소망의 안쪽으로 들어와
그 마음이 겹쳐질 때까지
가슴으로 들여 놓아 주는 일로
사나흘 아니, 일주일을 굶어도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애증은
해어화(解語花)의 꽃대를 밀고 올라오는
흉통(胸痛)이다
가슴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슴 아프다 할 때
그대의 마음속을 다녀온다
너무나 조용히 다녀와서 소리가 나지 않을 뿐
무한한 고독이 끝도 없이
눈앞을 가로막고 기력을 앗아가는 날은
밖으로 울음소리를 내고 싶다
내 마음의 자명고를 울리고 싶은 날은
하도 문질러 빨개진 단어의 살갗에
손바닥에 땀이 배도록 꼭 잡고만 있다 아직도,
그리움을 간직하는 심장을 나무랄 수 없다
고독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날은
둥 둥 …….
소리를 내고 싶다
꽃대를 밀고 올라오는 흉통胸痛은 오랜 진통 끝에 불혹을 한 달 앞두고 탯줄을 잘랐다. 나의 <안-밖> 경계를 허물고 자명고自鳴鼓로 울리는 고독의 미학이다. ‘내 마음의 자명고’의 단어와 단어 사이에 존재하는 그 둥글고 순한 마음이 독자에게 전이되었으면 한다. 오늘도 누군가 나의 시에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이것도 귀한 삶의 선물일 것이다. 자신을 겹겹으로 에워싼 것들을 깨뜨리느냐고, 단어들이 딱딱한 껍질을 벗어 버린 생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공감은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은 지금 심정은 꼭 안개가 많이 낀 날 새벽에 운전하는 것과 같이 바짝 긴장이 된다. 2007년 하반기에는 ‘한비문학 제1회 작품상’과 함께 대한문학세계 ‘ 최우수문학상’을 수상하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2008년 6월에는 물집을 터뜨리는 아픔으로 몸 안에 눈물이 가득 채워지는 ‘한비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수상 소식은 이렇게 또 하나의 시작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한테서 받은 은혜를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되갚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제 ‘시가 다시 희망이다.’라는 마음으로 내 언어에 대해 좀 더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로 성찰하며 공들이는 새로운 고민에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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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雅號): 설연(雪姸)
◆대한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한국 문학발전상 수상
◆대한문학세계 최우수문학상 수상
◆한국 한비문학 제1회 작품상 수상
◆한비문학상 시 부문 대상
◆한국 한비문학 추천시인
◆현- 한국 한비문학 작가협회 기획국장
(사)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정회원
한국잡지협회 기자
프리랜서
◆시인과 사색 동인
◆시집- 내 마음의 자명고(自鳴鼓 )
◆이메일-solvitn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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