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raina
유럽권 남동부에 있는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큰 나라
수도는 키예프이다.
북쪽으로 벨라루스,
북쪽·북동쪽·동쪽으로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아조프 해, 흑해,
남서쪽으로 몰도바·루마니아,
서쪽으로 헝가리·슬로바키아·폴란드와 접해 있다.
1924년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후 바로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해 12월 1일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확정했다.
독립국가연합의 가입국이다. 면적 603,700㎢,
바이킹족과 슬라브인들이 세운 첫 국가인 키예프 공국이 우크라이나의 시초이다.
그래서 이 키에프 공국은
우크라이나의 원조국이 되기도 하지만,
러시아의 원조국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뿌리다.
몽골(킵차크 한국)의 습격때문에
키에프 공국이 완전히 멸망한 후,
이지역은 타타르인의 지배가 계속 이어졌고,
남쪽 크림반도에는 크림 칸국이 들어섰다.
이후 다시 오스만 투르크가 내습하여
이슬람계인 몽골(타타르)-투르크세력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키에프 공국이후
계속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우크라이나인에 의한 슬라브족 국가는 자라나지 못했다.
그러나 멀찍이 북쪽에 떨어져 있던 모스크바 지역은
타타르-투르크 세력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성장하여 러시아가 된다.
투르크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코사크 국가가 성립되었지만
폴란드가 뜨던 당시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먹히고,
폴란드가 저물자
이번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에게 분할당한다.
한편, 동부 우크라이나는
오스만 투크르제국이 계속 지배하다가
17세기에 급성장한 러시아 제국이
투르크와 10여번에 걸친 전쟁을 벌여
결국 19세기까지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동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역이 되었다.
러시아는 이후 폴란드를 분할하면서
서부 우크라이나까지 차지하고,
이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지만,
이미 동부와 서부 우크라이나는
같은 민족임에도 수백년간 따로살면서
종교-정서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즉 동부 우크라이나는
투르크의 압제를 러시아가 해방시켜주면서
자신을 러시아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 반면,
서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지배를 받으며
어느정도는 서방화되면서
러시아를 이질적으로 생각한게 된 것이다.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이 지역은 잠시 독일 세력권에 할양되었지만
곧
독일 제국이 패망한 이후
이 지역은 무주공산이 되고
볼셰비키,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민족주의자, 극우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
제각각 무장하여 투쟁을 벌였다.
이후 (동)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으로 (공산국가는 아니다!)
각각 분리독립을 이루고,
현 우크라이나 동부지방은
적백내전에서 백러시아에 가담했다.
동서 우크라이나는
곧바로 1920년에 통일을 선언하나.
막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폴란드의 제1공화국은
친폴란드 우크라이나인들(주로 서부인)의 요청(+ 자국의 팽창주의)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에 우크라이나의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건국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면서
공산러시아와 폴란드가 맡붙은 소련-폴란드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참패했기 때문에
1921년 리가조약을 맺으면서
서부 우크라이나를 폴란드에 할양,
이곳은 다시 폴란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남은 동부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가입하여 한 공화국이 된다.
러시아에 가까웠던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도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독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들은 소련에게 철저히 탄압당했다.
당시 소련 국방장관인
레프 트로츠키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자란 유대인이었는데,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을 철저히 짓밟으면서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의 사투리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듯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그저 자국의 변방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푸틴도 마찬가지.
이런 우크라이나 탄압은
트로츠키와는 앙숙이었던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스탈린이 추진한 집단농장화에서 큰 무리가 빚어져
수백만명이 굶어죽은 아픈 역사가 있다.
바로 1932년~1933년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
때문에 미국인들이 가진 대공황에 대한 뿌리깊은 공포 이상으로
우크라이나의 기근에 대한 공포심은 강하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의 연원이기도 하다.
다만 동부 우크라이나는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석탄의 주산지였는데,
스탈린의 무자비한 공업화 몰빵으로 엄청나게 산업화되었다.
그러면서 이곳에 러시아인 인력이 다수가 이주해와서 살게 되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흐루쇼프도
바로 이렇게 우크라이나에 이주해 와서 (태어난) 러시아인 광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독소 불가침조약에 의한 폴란드 분할 당시,
폴란드에 속하던 서브 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련에게 합병된다.
소련은 서부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우크라이나 사회주의공화국에 편입시키면서
1921년 빼앗긴 영토를 수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서부인들은 이런 소련의 지배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독소전쟁이 개전되고 우크라이나 지역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초기에는
이들을 해방자로 환영했지만,
수탈과 기아, 민간인 학살 등이 자행되자 반독으로 돌아선다.
전쟁 기간 중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은 독일과 러시아 양쪽에서 학살당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전사자 포함, 약 700만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2차대전 이후, 연합국의 대지분을 보유한 소련은
폴란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1939년 합병한 서부 우크라이나 영토를 확정했고,
대신 폴란드는 독일의 동부영토를 할양받았다.
서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원해부터 우크라이나인이었기 때문에
폴란드에게 별로 명분이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이 소련의 지배를 달가워한것도 아니었다.
어쨌든간에 이런 동부-서부의 다른 역사는 이후 큰 갈등의 씨앗이 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서남부 5개 주
(리비우
테르노필, 이바노프란키우시크, 자카르파티야, 체르니우치)는
1939년, 또는 1945년까지
러시아/소련 땅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들 지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을 거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의 지배를 받았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소련 영토가 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러시아는 철저히 외부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몰도바 남부의 해안지대는 이때부터 우크라이나의 영역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개념은
소련에 맞서고 탄압받으면서 생성되었으나,
사실상 두 개의 민족에 가까울 만큼 지역별 러시아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키예프가 있는 내륙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공업도시 하르키우(제2도시, 러시아어
하르코프)와
항구도시 오데사(제3도시), 크림 반도 등이 속한 동부 우크라이나는
지지정당부터 민족, 언어 구성까지 제법 다르다.
그래서 서부 지방은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심한 반면에,
러시아와 붙어있는 동부 일부 지방은 러시아어를 많이 쓰고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서부쪽에 있는 폴란드와 일단 친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역사적으로 서부를 집어삼키던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서부를 잃어버린 자기들 땅이라고 여기기에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에 대하여 견제하고 있다.
북쪽에 있는 벨라루스와는 사이가 나쁜데
벨라루스가
과거 키예프 공국으로
같은 동족이면서도 여긴 러시아 지배를 받아들인 편이기 때문.
서로들 옛 우리땅이라고 우기고 벨라루스는 친러시아(친러) 정책을 취하다보니
우크라이나와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