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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우린 이런 쓸데없는 속담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잘되라고 독려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조금 더 멀리가보자.
당신이 지금 도시에 사는가 그런 00구, 소도시,아니면 농어촌 그럼 00군 당신이 지금 사는 그 지역에서 선생님,친구,친지,이웃등 아무나 좋다 당신이 아는 사람 50명의 이름 기억나는대로 써보자.
그럼 조선시대 아는 사람이름 30명만 대보자 위인도 좋고 못댄다면 지금 이명박씨, 오세훈씨, 박원순씨등 서울시장들의 행적을 우린 소상히 알고 있다. 그럼 조선왕조 500년동안 서울시장겪인 한성판윤이름 3명만 대보자.
다음 고려시대 평민이름 아무나 5명만 대보자 해결했다면 백제,가야,발해의 장군이름 3명씩만 대보자 아니면 신라인이름 아무나 10명만대보자 자료가 그래도 많이 남아 있으니 대기가 가장 쉬울거 아닌가.
그전엔 부여,고조선 그 시대 살았던 인물 3명씩만 대보자 이 나라들 이전엔 어떤 나라가 있었을까 두개만 대보자.
아인슈타인,칭기즈칸 너무 유명하다 이들의 이름이 영원무궁토록 기억하리라 생각하는가
지금 군인들 모자 줘도 안 갖는다 하지만 손기정선수가 부상으로 받은 그리스시대 병사의 투구 국운을 걸고 가지고 오려한다. 예전에 흔했던 검정색 남학생교복모자 지금 황학동벼룩시장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 모두 단견에서 나온말이다.
동물은 죽어서 가죽 누구맘대로 인간맘대로 동물이 이 속담들으면 좋아할까 스스로의 의지로 가죽을 남기기 위해 사는 동물은 한마리도 없을것이다 관점의 다양성을 배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속담.
왜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할때 한가지 해석만하라고 강요받는 것일까 관점의 다양성을 배제하도록 조장되는 무언의 사회적 분위기 깨기는 힘들까.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을 비평하는 것은 재주가 한 단계 위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 동양이건 서양이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냥 자기들끼리 잘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우리는 이상한 이미지를 씌워 왜곡된 모습으로 그들을 보게한다.
거미는 가장 깨끗한 동물이고 박쥐는 자기들끼리 오붓하게 사는 짐승들인데 왜 이상한 굴레를 씌워 17c 미국에서 19명을 교수형에 처한 세일럼의 마녀사냥을하듯 우리는 아무 죄의식도 없이 수시로 우리 스스로를 쇠뇌시키고 있을까.
소가 물을 먹으면 뱀이 물을 먹으면 뱀의 독이 있었기에 자연은 균형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건 인간중심이다. 만일 내 옆에 미스코리아가 있고 내앞에 징그러운 나방과 지네가 있다면 우린 그것들을 징그럽다고 느낄것이다. 그럼 그 생명체들의 눈엔 우리가 예쁘게 보일까 징그럽게 보일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 나방과 지네에 대한 생존권 투쟁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방도 오랜세월동안 별빛과 달빛을 이정표 삼아 다니도록 진화되었기에 갑자기 나타난 불속으로 스스로 빠져드는것 아닌가 우리는 결과만 본다. 불나방 같은 인생이라고 비유를하며...
무리생활을 하는 개과 동물은 서열싸움을하다 지면 상대의 입앞에 자신의 치명적 약점인 목덜미를 들이댄다 까마귀는 서열싸움을하다 지면 상대의 부리앞에 자신의 약점인 눈을 들이댄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이에게 언젠가부터 정수리를 들이밀게끔 무의식적으로 교육되어왔다.
동물들은 위험을 느끼면 뒷덜미털이 곤두선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목덜미털이 곤두서고 닭살이 돋는다. 또 침팬치과 동물들은 수유기간이 3년이라 수컷들은 새끼가 큰 후엔 다른 암컷을 찾아떠난다 요즘 사람들도 황혼이혼이니 무엇이니 말이 많지만 전통적으로 이혼률은 3년이 지난 시점이 가장 높다는 통계조사가 있다.
많은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방식대로 장점을 키워왔다 예로 맹인은 다른 감각기관이 훨씬 발달했다는걸 우리는 익히 알고있다.
노아의 방주에 수많은 동물들이 태워졌고 인간에게 맡겨졌지만 우리는 신의 뜻을 어기고 신나게 때려잡아 홍수가 끝난후 뭍으로 나온 동물은 반수도 안남게되었다. 물론 노아의 방주 원문은 수메르의 우드남피슈팀신화를 베낀거지만..
곤충은 촉수와 감각탐지능력을 맹금류는 시력과 발톱을 새알은 둥우리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알이 타원형의 모양으로 진화했다 고래나 박쥐는 초음파를 인간은 뇌를 각각 생명유지수단으로 발달시켰는데 우리는 인간만이 감정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만일 사람이 악수하고 하트모양하고 주먹을 쥐거나 손가락을 펴고 신호하면 "역시 인간은 무언가 있어"라고 생각할까 우리가 개가 컹컹대는걸 바라보듯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동물들은 우리를 바라볼까 속담에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그랬다.
예로 고래가 떼죽음 당하기 전날엔 그 해역에서 해상군사훈련이 있었다고한다. 즉, 초음파교란이 일어났기에 고래가 떼죽음을 당했던거다.
반포지효는 늙은부모를 젊은 까마귀가 봉양한다는 의미고 부부금실이 좋던 까마귀도 다른 까마귀암컷이 수컷을 유혹해 새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관찰되고 있다.
까치가 과수원 과일을 파먹는다고 잡아죽이거나 그리스에서 까치를 나쁜새라해 우리의 까치숭배의식을 없애려는 시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여러가지 공존방법이 있을텐데..
또 예로 독수리 모형에 반짝이는 스티커모양을 입혀 달아놓는다든지 나무나 밭에 트리에 감는 그런 반짝이 줄쳐 놓으면 접근이 안되는등 방법은 여럿인데 무슨 일만 있으면 우선 죽기고 보자일까 여우와 늑대의 교훈에서 배우려면 아직도 우린 까마득하다.
양화대교중간에 생태공원이 있다 태릉이 있다 아이들 개구리잡으려 난리다 선생님들 관심도 없다.
산에서도 개구리 잡으려 난리다 왜 그냥 신기해서 집에 가져간 다음 며칠 통속에 놔두고 기르다 죽으면 버린다. 이걸 전국으로 환산해보자. 나도 어릴적 냇가에서 물고기,올챙이 보일때마다 잡아 다라이에 물 받아 기르다 죽으면 버렸다.
그냥 보고 즐기는 시스템 정착시킬 수도 있잖은가 꼭 그렇게 잡아서 기르다 죽으면 버리는 시스템만 고집해야할까 학교에서 그런 교육 끽해야 1년에 2~3시간 정도면 충분할텐데 교육청은 왜 손놓고 있는것일까
올챙이나 피라미를 잡아왔을때 그들이 무얼먹는지 알기나하는가 만일 아이 하나를 어느 괴물이 잡아 방만한 우리에 가두고 매일 김치,깍두기만 주면 그 아이는 살 수 있을까 그 거대한 괴물은 사람이 무얼먹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아무거나 주면 잘먹겠지 생각할것이다 그렇게 시름시름하다 죽으면 버리는 시스템을 그 괴물족이 가지고 있다면 우린 어떤 자세로 자연을 대해야할까
자신이 속한 그룹이나 국가의 이익을 넘어선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지식인이 된다.
언젠가 역사스페셜에서 강감찬장군의 종가에 대해 보여주었다.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몇백년동안 이어져내려온 영광된 가문 가감없이 자랑하고 존경받아야할 가문이다. 안동의 충효당이 있는 유성룡대감집 솔직히 임진왜란은 조선과 왜국과의 싸움이 아니라 유성룡대감과 히데요시의 싸움이었다.
난이 끝나고 선조는 내탓이라는 '애통교서'만 내린채 굶어죽는 백성을 나몰라라 바라만봤지만 유성룡대감은 국법으로 금지시킨 사무역을 허가해 중강개시등 여러가지 현실적인 조치를 취해 우리의 포목이 만주로 가는 대신 만주의 잡곡이 조선으로 들어오게해 백성들의 기근을 해결했으며 영화 '광해'에서 이슈가된 '대동법'을 최초로 만들기도 했다. 그런 집안은 대대로 존경받아야 한다.
우리민족은 평화를 사랑하고 침략한적이 없으며 천 번을 넘게 침략만 당했다 이건 어느 정도 날조도 섞여 있지만 침략당한 역사가 있는건 사실이다. 헌데 어느 집안이 "우리는 대대로 중국인의 씨를 받고 왜놈의 대를 이어"라고 자랑하고 다니겠는가 무덤까지 가져가지. 또 그 후손들은 단일민족이라 외치며 다세대가정에 대한 선입견으로 일관한다.
이태원도 임진왜란시절 왜군에게 겁탈당해 애를 가진 여인들이 모여살던 곳이고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조정래씨의 '아리랑'에서도 일본인지주의 첩으로 들어가는 조선여인들이 등장한다.
또 무수한 친일파가 있었지만 해방후 그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민중속에 섞여 튀어나온 몇몇에게만 돌을 던지고 있다.
어느 엄마가 선생님께 봉투주고와 자식에게 말하겠는가 자랑하겠는가 입다물고 있지 그리고 그 아이는 튀어나온 한두친구에게만 돌던진다 자신도 똑같으면서 자신있게 말못하겠지만 언젠가 뉴스에서 봉투들도 다녀가는 어머니들의 비율이 80%라고 얼핏 들은적이 있다 정확하진않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자신들은 20%에 속한다고 착각속에 살고 있다.
1868년 도쿠가와장군가문이 가진 정권을 메이지천황에게 인계하는 메이지유신이 단행되고 1872년 '패번치현'을 단행한다. 즉 막부(무신)정권의 울타리인 '번'을 패하고 행정구역 중심인 '현'을 택하며 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을 나누어주는 칙령을 발표한다.
대한제국도 1909년 5%인 양반과 왕족만 가지고 있던 성을 일반 평민들도 가질수 있도록 '민적법'을 반포해 기왕이면 왕족의 성을 받자며 망한 왕조의 성인 김해김씨나 권족들의 성인 권,한씨등을 받게되어 이런 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외국의 사례 몇몇만 들자면 티벳은 5%의 승려계급이 95%의 토지를 소유한적도 있었고 이사벨여왕시절 2%의 귀족이 95%의 토지를 소유했으며 러시아도 농노가 90%를 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린 이런 사실이 있었던 것을 외면한채 거짓으로 꾸며진 진실속에 살도록 강요받고 있다.
언제 인테리어 사장님이 그러신다 여름에 반팔을 입으면 상놈이된 것 같아 긴팔을 접어 입는다고 언제 TV에서 그런다 자신의 가문은 조선 어느왕의 몇 째 왕자의 후손이라고 웃기는소리
느낀다. 사람은 시대를 잘타고 나야된다고 전두환이 600년전에 태어났으면 전씨왕조를 여는것이고 이성계가 600년후에 태어났으면 살인마가 되는 것이고 정도전이 600년후에 태어났으면 허화평이 되는것이고 허화평이 600년전에 태어났으면 정도전이 되는것아닌가
그럼 추노에 나오는 노비,추노꾼,백정,소작인,중인,기생 그들의 후손들은 다 어디갔는가 그들은 태어날때부터 노비였는가 그리스를 보자.
펠로폰네소스전쟁이후 세력이 커진 아테네는 오만방자하다 결국엔 다른 도시국가들의 지원을 받은 스파르타에 무릎을 꿇고 90%의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간다.
또 제주도는 원나라의 14개 말목장중 하나였으며 자신들의땅 몽고로 도망치던 원나라귀족과왕족 950여명이 명태조 주원장에게 잡혀 제주도로 보내져 제주엔 희귀성이 많아지고 돌하루방이 생긴것 아닌가 돌하루방의 기원은 몽고석인상이다.
우리가 천민이라 여기던 '천방지축마골피'도 고대엔 아테네 같은 멸망한 나라의 고대왕족이나 귀족이었을 것이다. 마광수교수님도 예전 TV에 나오셔서 자신은 백제귀족이라 말씀하시던적이 있었다.
이런 시스템을 발굴하자는 이야긴 아니다. 나만 깨끗해 나는 아니야보다 나는 아니기 때문에 너한텐 돌던져도 나에겐 죄가 없어하는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system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역지사지가 가능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면 이런 잘못된 system은 그저 과거의 역사로 묻힐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이야기속엔 역사와 사회의 모습을 남겨놓은다.
돌다리를 두드리기 위해서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체제가 필요하다.
결국 이름을 남기거나 가죽을 남기는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누가 후대를 위해서 정신적,제도적시스템을 남겨놓고 떠나느냐에 있다.
철원에 명성산이 있다 일명 울음산 주인을 잃은 말과 신하들이 산하가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란다 철원하면 떠오르는 역사의 인물 '궁예' 보통 드라마에서는 왕비의 성기를 불에 달군 꼬챙이로 지지고 왕자들을 죽이며 관심법을 쓰며 미친왕으로 전락시키지만 어느 정권에서나 그렇듯 아마 왕건의 측근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고로 왕건도 쿠데타일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다양성이 꽃피웠던 문화를 고려는 가지고 있었다는데 있다.
왕건은 다양성과 문호개방,포용정책을 추진하는 적극적인 시스템을 남기고 죽었다.
또, 그 어느나라에게건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려,여진,거란 모두 백두산(태백산)을 성산으로 여겼듯 어느 정도 동질성도 유지되고 있었다.
사극마다 고려공녀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친일파가 주구가 되어 벌인 위안부와 알아서 공녀를 갖다바치는 조선의 관행을 덮고 비난의 화살을 고려 공녀에게 돌림으로써 자신들에게 면죄부를 주기위한 수작인 것이고 고려공녀는 100년동안 공식기록엔 700명이 갔다고 기록되었다한다.
고려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힘에 의해 굴복했을뿐이지만 조선은 지레겁먹고 500년내내 사대로 굽신거리는 시스템을 이성계는 만들어 아직도 은연중 중국에 굴종하는 의식을 갖게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목숨을 걸고 애걸하는 체제를 만들어 호란을 자초하기도했다 깡패들이 의리를내세우는 이유가 배신이 판을쳐서 그런것처럼 조선도 역모로 일어났기에 언제 똑같이 고려왕조신세가 될지모르니 수없는 무고사건이 500년내내 판을 치게 만드는 시스템과 중국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중국인의 허락한 문물만 수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죽었기에 우리는 암울한 근대역사를 거쳐 오늘날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까지 맞게한 것 아닌가.
내가 왕건과 이성계를 다르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지금 수출액기준으로 우리기업이 물건을 잘 만들어 팔고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58조원을 덜 받는 실정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등 한류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하지만 우리는 일본의 사무라이 마케팅 같은 주축이 없다.
파리의 에펠탑 같은 상징성이나 브라질의 쌈바축제 같은 무언가 핵심이 되는 주력이 없다.
영화는 그래도 비슷하다 중국은 은연중 중화민족주의로 치장한 진용,황비홍,용문비각,빙봉협 미국은 은연중 제국주의적 영화 한국은 이념주의 영화가 주류를 이룬다 거의 비슷비슷하다.
한국은 DMZ의 생태, 금강산, 선비정신,음식문화,인성이 빠진 학교교육, 판문점, 왜곡된 대입문화, 태견, 융화된 종교, 경제기적,세계갯벌4위국가,풍수, 농약과 화학비료소비1위국가, 급격한 초고령화사회 같은 소재가 있다 무언가 있다 예를들자면 쿠바가 유기농법으로 유명해졌듯 한국은 일본같은 기적의사과 같은 자연농법이 개발되고 있지않은가 새로운 메인시스템과 하부시스템을 구축할 시점이 지금이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시스템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떠나야할지 중요한 타이밍에 서있다.
문제만 남기고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