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가
/윤행원
요즘에는 웬만한 결혼식에 가면 젊은 사람들이 축가를 부른다.
신랑 친구나 신부 친구 중에서 노래 잘 하는 사람을 내 세워 결혼을 축하한답시고 노래를 부른다.
솔로로 부를 때도 있고 중창(重唱)으로 부를 때도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회적인 문화행사(文化行事)에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축가(祝歌) 부르는 걸 본다. 개회(開會)를 하면 회장인사 그리고 경과보고 그 다음엔 내빈축사 공로패 전달식 등등을 하고 그리고 축가를 부른다.
대개 이런 공식적인 행사에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프로 음악가들이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프로다운 풍부한 성량(聲量)으로 몸짓도 멋들어지게 아름답고 능숙하게 노래를 부른다. 음률(音律)을 한껏 듣기 좋게 뽑아 내면 모인 대중들은 감탄과 감격을 하면서 열렬한 박수를 친다. 노래는 딱딱한 행사를 부드럽고 친밀한 분위기로 만든다. 음악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편하게 만드는 마력(魔力)이 있다.
그런데, 어쩌다 내가 어느 공식모임에서 축가를 부르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수필작가회 회장단에서 올해는 남자작가 중에서 축가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하필(!) 나한테 요청을 한 것이다. 처음엔 나를 선택하는 마음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어정쩡한 표정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주는 게 무엇보담 고마웠다. 그 후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축하노래를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며칠 후, 어느 문학단체 기념식이 있어서 참석을 했을때다. 나의 입장이 있는지라 축가 부르는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화려한 의상을 걸친 미모의 젊은 여자가 당당하고 능숙한 목소리로 세미크라씩을 자유자재로 부르는데 이건 보통 잘 부르는 게 아니었다. 오래 동안 전문적인 음악공부를 한 사람인지 공연 무대에서 부르는 음악가 뺨치는 실력이었다. 이런 사람이 부르는 자리에 순전히 아마추어인 내가 부르다가 실수라도 하면 근엄한 공식행사에 얼마나 큰 누(累)가 될 것인가.
평소엔 천방지축 엉뚱한 용기도 부리지만, 엄숙해야 할 공식행사에 까지 만용을 부리기엔 염치가 조금은 꿈틀댔다. 생각을 거듭하다가 행사 일주일 전 마침 이사회(理事會)가 있는 날, 아무래도 내가 축가를 부르기엔 무리가 될 것 같다는 내용의 사의(辭意)를 전했다. 그러나 회장단과 이사(理事)들은 적극 만류를 한다.
심지어 어느 작가는 농담으로 나를 부추겼다. 이번에 축가를 부르면 가문의 영광이 될 것이니 한번 불러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한다. 또 어느 작가는 이런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좋은 경력이 되어 취직 할 때에 큰 도움이 될 거라면서 농담으로 나를 부추겼다. 나는 속으로 “이거 보통 큰 떡이 아니구나(....)!‘하면서 그럼 한번 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선 오디션삼아 노래를 부를테니 괜찮다고 싶으면 박수를 쳐 달라고 했다. 한 곡조 뽑았다. 모두가 박수를 쳐서 예심은 통과한 샘이다. 이제야 용기가 생겼다. 그래 한번 해 보자. 가문을 빛낼 수 있다는데 좋은 경력이 되어 취직이 수월해 질 거라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동인지 출판기념 행사 날은 어김없이 다가 왔다.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을 불렀다.
부르기 전에 한 마디 했다.
“사실 이 자리는 내가 설 자리가 못됩니다. 음대 교수님이나 아니면 KBS교향악단과 가까운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음악도가 불러야 할 자리인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장단의 지엄한 분부이니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한 곡 부르겠습니다.” 하고 노래를 했다. 풋 냄새가 풀풀 날리는 어설픈 노래가 그렁저렁 무사히 끝났다.
이 노래는 아마추어가 부르기엔 좀 버거운 노래다. 고음(高音)과 장음(長音)을 처리하기가 여간 까다롭기 때문이다. 1950년 중반에 제니퍼 죤스, 윌리암 홀덴이 출연한 영화 ‘慕情’의 주제가로 앤디 윌리암스가 부른 노래인데 그 후 맥 몬로가 부르기도 했다. 서양 팝송의 가사가 대체로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되어 있지만 특히 이 노래의 the golden crown that makes a man a king은 아주 멋진 가사(歌詞)다. '사랑은 금관이다.. 평범한 사람을 왕으로 만든다,' 라는 매력적인 가사다. 사랑을 하면 왕이 되고 여왕이 된다는 노래다. 세상 사람들이 왕성한 사랑의 기운을 주고받아서 모두가 王이 되고 女王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7년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