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는 못들은 말
이수현 씨가 희생되었을 때 한국 대통령의 추모의 말이나 신문 제목에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4글자가 항상 있었다. 일본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이 말은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의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뜻 있는 선비, 仁한 사람은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스스로의 생명을 버리고 仁을 이루는 것이다)”에 나오는 구절인데, 현대식으로 풀면 “자기 보신을 버려 생명까지 버리고 사랑의 가치를 지킨다’는 너무나도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이 단어를 현실에서 빈번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수현 씨가 죽은 2001년, 평소보다 주의 깊게 뉴스를 시청한 결과 이 해만 4건의 ‘살신성인’ 사건이 있었다. 일본사람인 나로서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이수현 씨의 사고가 일어난 같은 달 1월에는 부산의 한 고층 아파트의 화재 때 방에 남겨진 한 남성이 5살 된 딸을 품에 안은 채 등을 밑으로 해서 뛰어 내려 자신은 죽고 딸을 구한 사건, 같은 해 3월 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에 있는 주택 화재 진화 도중 “1층에 아들이 남아 있다”는 주인 아줌마의 외침을 듣고 9명의 소방관이 뛰어들어 6명이 숨진 사건 등이 있었다.
특히 이 화재 사건 당시 새벽 3시 51분경에 화재신고를 받고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은 골목 불법 주차 차량들로 현장 접근이 어렵자 호스를 들고 65m를 뛰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화재현장을 탈출한 집주인의 애원을 듣게 되고 화재진압과 더불어 구출작전을 병행키로 결정, 오전 3시 54분 불길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건물 내 진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4시 12분, 공기호흡기와 손도끼만 든 채 2인1조로 로프로 몸을 묶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바닥을 더듬어 생존자를 찾고 있던 대원들을, 건물 2층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그대로 덮쳐 버렸다.
소방관이라면 프로이다. 적어도 타오르는 불이 그 뒤에 집을 어떤 모습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과 그 때 그 속에 들어가면 자신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것을 알면서도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9명이 뛰어들어 6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완전한 희생이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실제로 그 집에는 그 때 아들이 없었다.
순직한 소방관들 중에는 결혼을 일주일 앞 둔 대원도 있었다. 다른 한 소방관은 사고 며칠 전 후배에게 보낸 이메일에 “나는 사람의 생명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이 소방관이란 직업을 ‘성직(聖職)’으로 알고 있다”고 써 있었다고 해서 주위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분명히 그들은 모두 현대의 ‘성인(聖人)’들이었다.
◈ 지켜야 할 것은 ‘사랑’밖에 없다
같은 해 네 번째 사건으로 한국인의 이성을 초월한 사랑은 일본 땅뿐 아니라 미국 땅도 눈물로 적셨다. 7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의 한 강에서 2명의 여학생이 급류에 휘말린 것을 본 한국인 유학생 조창배 씨(20세)가 자신은 수영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2명의 생명을 구하려고 사력을 다했지만 그만 쇠진해서 익사한 사건이다. 여학생 쪽은 운 좋게도 둘 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현지 일간지 <타임스 스탠더드>는 “20세 한국인이 영웅처럼 죽었다”는 제목으로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17일에는 조씨가 유학 중이었던 험볼트 주립대학 교내 교회에서 부총장과 교직원, 학생, 주민 등 200여명 참석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그의 친구들과 장례차 서울에서 온 가족의 말을 인용, 조씨가 “지역사회의 ‘밝은 빛’이었다”,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등 의협심이 강했다”고 전했다.
다음 해 1월 20일에는 지난번에 소개한 정만채 군에 의한 지하철 선로 구출이 있었고, 4월 15일에는 김해에서 발생한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의 생존자인 설익수 씨(24세)가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비행기의 잔해 속에 들어가 중상을 입은 다른 승객 20명을 구한 공로로 미국 <타임> 잡지로부터 ‘아시아의 영웅 20명’의 한 명으로 선정된 사건이 있었다.
첫댓글 사랑!! 사랑합니다 무토님!!
한민족의 위대함을 다시 느낍니다. 바로 이게 "참사랑"이네요...감동을 감사합니다. 무또상☆
이러한 한국사람들의, 마치 외견으로 판단할 때는 충동과도 같은 행동이 나타내 보이고 있는 하나의 가치는 <모든 것을 버려도 마지막에 지켜야 할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이다....전발
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