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기독실업인회 새청주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재풍
『믿음과 행함』-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유 재 풍
(성경) ①마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달려있다.”
②약1:22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시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③약2: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찬송) 503장 ‘세상 모두 사랑없어’
1-1
저는 본시 사랑이 없는 자입니다. 남이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잘 하지만, 그것을 감쌀 줄 모릅니다. 지금은 나이가 좀 들어 그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신혼시절부터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해온 부부싸움 중에 한결같이 아내에게 들어온 말이 바로 ‘제 몸 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저 자신 밖에 모릅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만남에서 그렇습니다.
1-2.
여러분 보시기에 어떤지 모르지만, 사실 저는 다른 이들과 잘 대화하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제 아내와도 마찬가집니다. 자녀들과도 그렇고요. 집에 오면 제 방에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웹서핑을 하거나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읽다 만 책을 읽거나 하는 시간이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습니다. 때로는 아내가 보는 연속극과 다른 연속극을 이층에 올라가 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애가 주말에 가끔 집에 와도 밥이나 같이 먹는 정도지 진지하게 대화하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1-3
직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출근하면 제 방 문을 닫습니다. 제 사무실이 변호사가 다섯 명에 직원이 스무 명이나 되는 그래도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로펌, 즉 법무법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명씩 의뢰인과 고객들이 방문해서 변호사나 직원들과 상담과 재판준비를 하게 되어 시끄러울 때가 많아, 그게 싫어서 출근하면 방문부터 닫습니다. 다른 변호사들은 대부분 열어놓는 데도요. 그리고 비서로 십수년을 같이 일하는 여직원으로부터 시작해서 동료변호사와 다른 직원들과 업무상 필요한 이외에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동료변호사들의 경우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함께 모여 식사하고 차를 나누며 회의를 하는 이외에는 같이 식사를 하거나 대화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저 대로 바깥에서 다른 이들과 점심을 나누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긴급한 사안이 아니면 다른 변호사들과 대화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사무실 동료들과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표랍시고 잘못하는 것 지적하고 요구만 했습니다. 제가 먼저 베푼 것이 없습니다.
1-4
엊그제 전 직원들과 함께 제천 청풍호 부근의 ‘작은동산’이라는 산을 오르면서도 제가 제일 앞에 갔습니다.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데도 앞장서 가니 어떤 후배변호사는 제 체력 좋은 것을 칭찬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체력이 약한 여직원들이나 몸이 무거운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저만 잘났다고 폼잡고 앞에 간 것입니다. 중간에 쳐져서 막걸리 먹으며 농담하는 동료들을 속으로 나무라면서 말입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동료들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노래부르는 것이 못마땅해서 자는 척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노래 두어 곡을 불렀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1-5
친구들과도 마찬가집니다. 사실 저는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초중고대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점차 연락도 뜸해지고 공식적인 모임이나 애경사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인 만남도 줄어들다 보니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근래 들어 어떤 친구하고도 만나서 진지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 골프나 등산 등에 초대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이외에는 정말 없습니다. 동기회 하는 날도 그렇고, 초상집 같은 데서 만나도 그렇고 제가 음주가무를 안하고 화투도 못하고 하니까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결혼식에는 거의 가지 않습니다. 토요일에는,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짜여져 있는 골프약속이나 등산약속 등 바쁜 스케줄 때문이고, 항차 주일날 행해지는 결혼식에는 물론 예배 때문에 못 간다는 핑계지요. 대개 미리 축의금을 보내고 맙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 가는 경우는 일 년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청첩은 한 주일에 서너 통씩 쉴 새 없이 오지만.
2-1
그렇다 보니 가족도, 직장동료도, 친구도 그들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복잡하고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제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내게 달려있는 것처럼 일하라”는 스펠만이라는 사람이 했다는 말을 하나의 motto로 삼고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 저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타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2-2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후반기의 삶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생각 때문일까요. 산에도 혼자 가고, 겨울에 스키장도 혼자 가고, 책도 혼자 읽고, 음악도 혼자 듣고 등등,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자연스레, 주위에 있는 이들의 삶에 대해 진정한 관심이 없어지고, 그 관계라는 것도 진심이 없이 그저 표면적으로 응대하는 수동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후반기의 삶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타인을 도외시 한다면 지금의 그 다소 여유로운 삶이 결국 타인들의 도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잊고 있는 것 아닌가요?)
3-1
그런데 지난 주 서울에 계시는 김승남권사님과 저희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비업체인 조은시스템을 비롯한 여러 개의 기업을 운영하시면서 조은문화재단과 PTPI라는 국제적 봉사단체의 한국이사장을 맡고 있고, 70이 다 된 나이에 서울에서 우리교회까지 버스로 주일예배에 참석하시는 등, 크리스찬 비즈니스맨의 본령을 몸소 실천하시는 성공적인 기업인입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을 늘 격려해주시고 그 삶이 본이 되시는 분이라서 존경하는 분인데, 마침 휴가로 집에 온 딸과 아내와 함께 같이 저녁을 나누면서 많은 교훈을 받았고, 최근에 권사님께서 새로 출간하신 『좋은 성공』이라는 책까지 선물 받아 읽었습니다.
3-2
그중에서 제 가슴을 치는 것이 네트워크, 섬김과 나눔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좋은 성공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고, 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중시해야 할 것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신뢰관계의 형성,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더 많이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진정한 나눔과 섬김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권사님은 자신의 삶과 주변에서 보고 들은 많은 이들의 섬김과 나눔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3-3
사실 그동안 ‘섬김’을 많이 말하면서, 나름대로는 제 직업인 법률가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최선을 다해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산다고 자부해 온 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제 삶의 또다른 motto로 삶고 있는 성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 진정으로 하십시오”라는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실 법조주변에서는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애쓰는 제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는 이들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4년여 간 진행해 온 믿음학교 과정에서도 같이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이를 자랑스레 말하고, 저들에게도 각자의 삶, 특히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일 가운데서 그 일을 통해 다른 이들을 잘 섬기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 사랑의 길이라는 실천적인 얘기를 많이 강조해 왔습니다.
3-4
그런데 저는 위의 『좋은 성공』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또 어제 저녁 서영진목사님의 노아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통렬히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면서 우리에게 이웃사랑 하기를 주님사랑 하듯 하라 하셨는데, 정말 저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 자신만 편하면 되고, 다른 이들에게는 진정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무관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결국 자신의 이익만 추구해 온 것입니다. 말로는 섬김을 외치면서 제 몸과 마음은 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주의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보기도라는 것도 형식적이 되기가 일쑤였습니다. 진정으로 주변의 가까운 이들로부터 먼 데 있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기도가 아닌, 몇몇 사람만을 생각하는 저급한 수준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 예수께서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십자가에 목숨까지 바치셨으니 우리에게도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4-1
오늘 읽어드린 야고보서 1장과 2장의 말씀은 제가 대학시절부터 매우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얻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요. 그런데 그 구원은 시작에 불과하고 구원의 완성은 말씀대로 행함에서 나온다는 것, 즉 성장하는 믿음은 바로 주님 명령하신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도 아시지요. ‘크리스찬이 되는 것’ 즉 구원의 시작인 중생과 칭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되는 것이지만,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는 것’ 즉 성화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요.
4-2
대학졸업한 뒤 30년이 지나 이제 나이 오십을 넘긴 제게 위의 야고보서 말씀이 꾸지람으로 다가옵니다. 정말 네가 행함 있는 믿음을 지녔느냐고요. 진정 타인들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고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껏 타인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진정한 섬김이 아니라 입술로만 섬겼습니다. 섬김이나 사랑은 커녕, 제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조차 칭찬이나 위로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모른 체 했습니다.
4-3
담임목사님 쓰신 『믿음의 길』 성장편에서 “여러분 이제 정말 남을 위해 좀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나 내 문제에만 급급하다고 인생을 마치겠습니까? 성경은 받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라 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사람은 긴장하셔야 합니다. 그래봐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이제는 적어도 심판자 되시는 우리 주님 앞에 서실 준비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는 구절이 제 가슴을 때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누어 줄 것이 없는 사람이고,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라는 구절도 마찬가집니다.
5-1
회개합니다. 잘못된 삶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그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 회개라고 배웠습니다. 제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로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과 직장의 동료들과 친척들, 친구들, 교회의 지체들, 그리고 고객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주고 같이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으로서의 이웃 사랑은 바로 섬김이며, 그 섬김은 나눔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마음 속에 새깁니다. 그리고 그 나눔은 또한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5-2
저도 아내에게 존경은 아니라도 인정받는 남편이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 인정받는 아비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친구와 동료, 이웃들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못 될지언정, 강도 만난 이웃을 외면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 살지는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만분의 일이라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진정 따뜻한 관심과 배려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때, 내 한 몸만이 아니라 저들과 같이 고민하고 그들에게 먼저 손 내밀 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서 먼저 손 내밀기를 원합니다. action plan! 구호만이 아닌 생각의 실천. 바로 저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4/26/10) 좋은교회 새벽기도회 메시지를 대신하여
첫댓글 유재풍 변호사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