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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에스더 4 : 10 - 17
제목: 에스더의 결단
일시: 2010. 7. 18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삶은 결단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유학, 전공을 결정하는 일, 결혼, 자녀를 출산하는 일, 큰 프로젝트을 결정하는 일 등, 크게 여겨지는 일 뿐 아니라, 삶의 작은 일도 결정하고 결단해야 한다. 오늘 주일 예배에 어떤 옷을 입고 올 것인가? 몇 시에 집에서 나올 것인가? 나와서 자리에 앉을 때 어디에 앉을 것인가? 앞인가 뒤인가? 햇빛이 나오는 곳인가? 선풍기가 있는 곳인가? 성가대에서는 어떤 찬양을 드릴 것인가? 구역식사는 어떤 음식으로 할 것인가? 사람은 하루에도 만 번 정도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B.C. 5세기 경, 페르시아에 억류된 유대인들이 아하수에로 왕 시절에 하만의 흉계에 의해 민족이 말살되는 위험에 처했다. 3장 13절을 보라.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남녀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이때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로 있던 유대인 에스더가 내린 결단으로 민족이 구원을 받게 된다. 성경 에스더는 그의 결단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스더는 유대인들이 전멸하는 상황에서 침묵하여 왕비라는 자신의 위치와 생명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유대인을 대변하여 전면에 나서서 그 소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자신의 생명까지 감수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II. 선택하여 결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에스더의 결단으로 유대인들은 운명은 결정되어진다. 절망 속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에스더였다. 그의 어깨에 유대인들의 삶이 걸려 있다. 모든 이들이 에스더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와 콘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왕비 에스더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에스더도 고민이 있었다. 11절을 보라. 그저 콘탁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당시 아하수에로가 만들어 놓은 법이 그랬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권력투쟁이 있던 당시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암살의 위협을 생각한다면 그런 법은 자신의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왕비조차도 그러한 법을 지켜야 했다. 그런데 에스더의 딜레마가 무엇인가?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일이라”는 것이다. 이미 왕은 왕비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왕비가 갑자기 나타나면 법에 따라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을 살리기는커녕 자신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다른 아눙이 없는 유대인의 지도자 모르드게는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제 에스더가 내려야 하는 선택은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결단이었다. 안전히 왕궁에 있을 것인가? 죽을 운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인가? 유대인임을 숨기고 생명을 부지할 것인가? 아니면 유대인임을 밝힐 것인가? 에스더가 내려야 하는 결단은 고민스런 것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고 U-20의 여자 월드컵이 독일에서 있다. 어제는 드레스덴에서 한국과 가나의 경기가 있어서 응원하러 갔다. 4:2로 이긴 신나는 경기였다. 한국은 여자선수들이 잘하는 것 같다. 특히 이름 모를 그 10번 선수는 스위스에서 3골, 어제 가나에서 2골을 넣은 골잡이다. 저는 어제 경기에서 선수들도 보았지만, 특별히 심판을 유심히 보았다. 심판의 역할이 오늘 말씀의 테마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선수들도 잘해야 하지만, 종종 결정적인 것은 심판이 얼마나 공정하게 보느냐하는 것이다. 심판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경기의 흐름을 끊을 수도 있고 흐름을 역전시킬 수도 있기에 결정이 중요하다. 지난 월드컵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경기를 망치고 게임에서 진 나라들도 있었다. Aok에서 나오는 잡지에서 독일의 국제심판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다. In einem normalen Spiel muss ich innerhalb einer Minute vier bis fuenf Entscheidungen treffen. War es ein Foul? Stand dieser Spieler im Abseits? War der Ball ueber der Linie usw. 그래서 심판을 한다는 것은 떨리고 두려운 일이다.
심판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선수들은 빠른 액션에 있기에 순간적인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공을 가진 선수들 뿐 아니라, 함께 뛰는 다른 선수들도 보아야 한다. 공과 상관없는 파울도 있다. 공은 이쪽에 있는데, 그 공을 받기 위해서 가는 사람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심판을 현혹시키는 것들도 있다. 소위 헐리우드 액션이라고 한다. 다리에 맞아도 얼굴을 붙잡고 넘어진다. 새눈을 뜨는 선수도 있다. 조금만 부딪혀도 과도한 액션을 취한다. 보통 우리 어른들은 어디에 부딪혀도 꾹 참는데, 조금만 아파도 그렇게 인상을 짜고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 운동장에 안 가봐서 그렇지 아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리고 공이 나가도 다들 손을 들고 본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오심이 있는가?
III. 결단은 의무이자 특권이다.
국운이 자신의 어깨에 있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에스더가 꼭 해야 할 의무였다. 에스더는 이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모르드개를 보라. 은근히 위협도 한다. 직무유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13절과 14절을 보라.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모르드게는 에스더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그가 뭘 고민하는지 알고 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특별 미션을 주면서 은근히 “싫으면 말어... 너 아니어도 방법이 없지는 않아! 부탁하고 필요하다고 할 때 얼른 나서”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만일 에스더가 잠잠하여 비겁하게 유대인들의 위기에 함께 하지 않아도 일이 잘 풀려나가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게 되면 에스더는 부끄럼을 당할 것이고 영원히 수치를 맛보게 될 것이다. 나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없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할 때 나서주는 것은 사실 의무가 아니라, 특권인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해서 라이프찌히로 불러 주었다. 나를 필요로 해서 극장에서 솔리스트로 서게 했다. 나를 필요로 해서 국가대표로 그라운드에 서게 했다. 그것은 얼마나 귀한 특권들인가! 모르드개는 바로 그러한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에스더는 의무감에서 힘겹게 하기 보다는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얻기 전에 자신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것은 특권인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든지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도구가 된다. 만일 거절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 시킬 때 하라. 안한다고 하면 결국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있게 된다. 여전히 하나님이 일을 하신다.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우리는 기회로 알아야지 그것을 피곤한 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축복으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지 에스더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나의 역할이요 나의 특권인 것이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인 줄 누가 아느냐?”
에스더가 결단한다고 하지만, 그는 선택을 받은 것이다. 선택을 받은 자는 미션을 가지고 나서야 하지만, 특권을 가진 자이다. 에스더는 역사의 중심에 선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이사야 41장 14절을 보라.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43:1) 에스더의 결단의 순간은 그의 역할이요 그의 특권이었다.
IV. 결단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며 올인하라!
에스더는 고민했다. 그는 편하게 결단한 것이 아니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그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버울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16절). 이 힘든 결단을 에스더는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로 준비했다. 에스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였다.
그런 후에 에스더는 어떻게 하는가? “...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규례는 무슨 규례인가? 부름이 없이 왕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되는 법이다. 유대인들이 몰살당하는 날은 이미 잡혀 있는데, 왕이 불러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에스더가 규례를 어겨 생명을 잃는다 해도 먼저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왕에게 나아갈 때 에스더의 각오는 어떠한가? “죽으면 죽으리이다”이다. 이 결단이 있기까지 에스더는 고민 많이 했다.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제 던져진 주사위처럼 맡겨 놓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일을 액션으로 옮기기까지 기도하면서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결단을 하게 되면 에스더의 각오로 나아가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 결단을 번복할 수 없는 단호함으로 행하라.
축구심판들이 경기장에서 훌륭하고 유능한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심판 훈련도 받는다. ☞1급자격자: 대학이상 실업, 프로, 국제심판으로 활동가능, ☞2급자격자: 중등부주심, 고등부 부심으로 활동가능, ☞3급자격자: 초등부주심, 부심으로 활동가능. 선수출신이나 체육학과 출신들이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이론적인 것도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야 하고 체력도 선수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달리기 시험도 보고 체력테스트도 있다. 급수시험을 위해서 동계실전훈련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영어도 공부해야 한다. 또한 심판은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운동장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이 가는 곳, 선수가 달려가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달려가서 가까이 보아야 한다. In der 90.Minute statt lauft der Schiedsrichter 12 bis 15 Kilometer. 심판은 한번의 결정을 내리고 번복할 수 없다. Sie haben nur eine Chance, Sie koennen Ihre Entscheidung nicht korrigieren. 따라서 에스더의 심정으로 해야 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따라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 심판들이 파울이 일어나면 쭈뼛거리면 안 된다. 그래서 파울이 나면 심판은 아주 확신에 찬 듯이 파울 현장으로 뛰어가면서 노란카드든 빨간 카드든 가슴에서 꺼낼 액션을 취한다. 그리고 뭔 말이 그렇게 많은지 뭐라고 선수들에게 고함도 치고 액션도 한다. 게다가 항의하는 선수들을 잠재우기 위해 경고까지 준다.
V. 결단하고 나가라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선택과 결단의 순간이다. 쉽지 않는 일이다. 많은 눈들이 보고 있고 그 결단으로 운명이 결정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단으로 삶의 흐름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매 순간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진지해져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 순간까지 고민하고 갈등할 수 있을 수 있다. 에스더와 같이 기도 가운데 결정하라. 그리고 그 결정한 일에 에스더의 각오로 나서라. 죽으면 죽으리이다!
감사하기로 결단해야 감사도 나온다.
걱정도 안하기로 결단해야 안나온다.
헌신도 그저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헌신하기로 결단해야 헌신이 된다.
주일을 성수하기로 결단해야 주일을 지킬 수 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그 삶은 결단의 삶이다.
이번 주간도 우리는 내려야 할 모든 결단의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탁월한 결단으로 삶을 세워나가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