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요나의 심술’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요나서는 다른 예언서들과는 성격이 매우 다른 독특한 책입니다. 예언서라고 하면, 보통 예언자의 예언이 담긴 책을 말하는데, 요나서에는 예언은 별로 없고, 요나 자신의 독특한 삶의 체험이 이야기 형식으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예언서로 분류되기보다는 성문서로 구분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기독교성서 뿐 아니라 히브리성서에도 예언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표면적으로는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서기전 8세기에 요나라는 이름을 가진 예언자가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책이고, 아마도 서기전 40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요나서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요나서 1장 1~3절을 보겠습니다.
1 주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3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욥바로 내려갔다. 마침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를 만나 뱃삯을 내고, 사람들과 함께 그 배를 탔다.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갈 셈이었다.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인데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그들은 그렇게 죄악에 빠져 살다가 멸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도망가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큰 바람과 파도로 위협하시자 뱃사람들이 요나를 깊은 바다에 던졌는데,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로 요나를 삼키게 해서, 요나는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게 됩니다.
요나는 거기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은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땅에 토해내게 하십니다. 이리하여 요나는 니느웨로 갔고,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외쳤는데, 이후 요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왕부터 백성까지 한 마음으로 금식을 하면서,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뉘우침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십니다. 이렇게 되자 요나는 하나님께 심술을 부립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나님께 투정을 한 것입니다.
요나서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 특히 앗시리아에 가졌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서기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가 쓴 민족말살정책으로, 북왕국은 혼혈족속이 되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예 지워져버렸습니다. 서기전 701년에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남왕국 전역으로 밀고 내려온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고 전멸당할 뻔한 위기를 겨우 넘겼습니다.
이런 철천지 원수나라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 그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용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살기가 싫어졌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이 요나를 설득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의 설득을 받아들였는지 여부는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나서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서기전 5세기 페르시아 시대에 기록된 문학작품입니다. 당시의 세계는 페르시아라는 신흥 강대국에 의해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변모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지도자들은 역사를 거꾸로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로 대표되는 새 시대의 지도자들은 강력한 배타주의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서의 저자는 문학작품을 통해 자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웃 민족은 모두 저주받을 민족이며, 오로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고 구원하신다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신앙을 넘어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원수 나라들의 백성까지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전 인류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는 당시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서 저자는 수백 년 전의 앗시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글을 쓴 것입니다. 오래된 옛날이야기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도 긴장을 풀고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옛 이야기가 전해주는 교훈에 마음의 문을 열 여유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요나서라는 문학적인 작품이 예언서의 형태로 쓰여진 이유입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