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법소 입추 도훈 “언덕으로 열어가는 상생세상“
2016년 8월 7일 (음력 7월 5일)
입추의 여지 없이 이렇게 성황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흔히 인사말을 하는데… 오늘은 입추입니다.
썰렁한 아저씨 개그로 입추 도훈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가족모임이 있으면 조카들을 비롯해 애들이 모이면 저도 아저씨 개그로 말을 걸어보곤 합니다. “머라카노? 아메리카노!” “꼬출 든 남자” 등… 꽤 기발한 창작들이 많았는데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애들과 어른이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개그 코드가 잘 안맞을 수 밖에 없는데 그나마 한국말만 알면 세대를 초월해 서로 통하는 개그다 보니 애들도 유치해 하면서도 싫지 않은 반응을 보게 됩니다.
상제님 고수부님도 이런 아저씨 개그성의 말씀을 하셨지 않았나 싶습니다. “도통이 두통이다!” “무당무당이라 하여 당파 없는 것이 좋다고 하나니 천지의 무당을 따르면 좋으리라.” 등 꽤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음동(音同)을 취해 공사를 보신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풍수의 명당인 사명당을 사명대사인 사명당으로 연결시켜 쓰기도 하셨고 청주 만동묘 대신 가까운 청도원에 기운 붙여 공사를 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음(音)이 같음으로써 마음을 그렇게 먹고 그렇게 인식하면 그렇게 구체화가 되는 것이지요.
또 말의 힘을 또 강조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 죽는다”는 말씀도 있었고 “너희 세사람이 입을 모아 죽는다 하면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말씀, 또 “도가의 글읽는 소리에 신이 응한다”는 말씀도 있으셨고, “무슨 주문이고 믿고만 읽으면 효험이 있다”는 말씀도 하신바가 있습니다. 잘못된 언습을 고치라고도 하셨고 언덕을 잘 가지면 복이 되어 돌아 온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거시 경제에서 경제는 심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거시적으로 사람들이 마음으로 경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기에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또 마음으로는 그 사람이 미워도 좋은 말을 건데다 보면 인간관계가 자연 개선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말 한마디로 관계가 악화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이라는 것이 마음의 말단적 표현이라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말과 마음이 서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덕은 언덕보다 큰 것이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말을 후하게 하면 그 사람에게 복이 되어 나에게까지 미치고, 말을 박하게 하면 그 사람에게 화가 되어 나에게까지 미치느니라 하시니라."
마음과 생각이 안보이는 이 세상에서는 말이 곧 생각으로 간주가 됩니다. 말을 통해서 상대의 마음을 읽고 나의 마음을 정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종교조직이든 사회조직이든 지도자가 의심하고 편가르고 학대하는 조직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은 그것이 세상의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논리로 또 생각하고 그런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개인차는 있어도 사실 사람의 마음과 소견이라는 것이 그런 경험적 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잘못된 마음씀이 계속 이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가 되어서 살아가는 세상은 나의 회사와 나의 가정입니다. 내 인생의 시간을 대부분 보내는 곳이 내 가정과 내 회사입니다. 조그만 문구멍을 통해서 바깥 세상을 보듯이 가정과 회사라는 내가 몸담은 조직을 통해서 세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정적 모습 일색이라면 참 힘든 세상살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또 우리가 세상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큰 곳이 신문과 매스컴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기사들이 주로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가 많습니다. 언론이 권력의 견제라는 공적인 역할을 자처하지만 언론사로서 사적인 경쟁이 또한 있다보니 이목을 끌어보려는 상술이 작용해 과장이 더해져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너무도 어두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과 언론의 이슈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감사하고 즐거운 하루가 아니라 매일 한탄과 불평과 비난 일색의 대화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세상이 그렇고 신문으로 보는 세상조차 그렇게 음울하다보면 모두의 마음속에 세상은 원래 그런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공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힘들게 반대로 살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상제님 말씀에 “學大人者(학대인자)난 修天地之德(수천지지덕)하야 以我賢(이아현)하야 及人(급인)하고 立天下之至善(입천하지지선)하노라. “"대인을 배우는 사람은 천지의 덕을 닦아 나를 어질게 하고 남에게 미치게 하여, 천하의 지극한 선(善)을 세우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96)
덕을 닦아 나부터 어질게 하고 남에게 미치게 하여서 천하의 지극한 선을 세운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그런 부정적이고 상극적인 잘못된 마음가짐에서 벗어나서 긍적적이고 상생적인 말과 행동을 해야 상생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단초가 열립니다.
상제님께서 무신년 약장과 궤를 만드시면서 궤에다가 팔문둔갑이라 쓰시고 그 위에 설문이라고 불지짐을 하십니다. 혀 설짜에 문 문짜입니다. 심심지문(尋心之門)이란 말씀도 있지만, 그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혀를 움직여 주문을 읽어 그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고 그 찾은 마음자리로 세상을 상생세상으로 바꿔가는 것도 혀를 움직여 말을 함으로써 변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현무경에서 의통이란 결국 병든 마음을 고쳐 대인대의한 마음을 회복시켜 가는 것임을 밝혀 놓으셨는데 그것이 결국은 입을 통해 주문을 읽고 입을 통해 세상을 교화해 가는 것이란 말씀인 것이지요.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고 또 읽다보면 그 태을을 느끼고 그 천심의 마음자리가 우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염되어 부정적이고 상극화된 내 마음을 초기화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미 오염된 마음은 기준을 잡지 못합니다. 수행을 통해 상념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통해서 천심자리를 느끼는 연습을 통해서 내 잘못된 마음을 인식할 수 있고 바꾸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자리에서 우러나오는 상생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인 가정과 직장에서 상생의 말과 행동을 실천해 나의 인연들이 상생의 세상을 느끼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남의 장점을 취하기에 힘써 사람을 사랑하고, 남의 단점을 취하여 남을 미워하지 말라. 너희들이 사람을 사랑하면 천하가 태평하고, 너희들이 남을 미워하면 천하가 어지러워 지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489)
남들의 어두운 측면을 적발해 드러낸다고 세상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어두워져가고 더 치밀하게 악해져 갑니다. 나의 인연들 속에서 상생세상을 넓혀가야 합니다.
또 “세상을 악하다 말하지 말라. 너희가 선한즉 선한 세상이요. 너희가 악한즉 악한 세상이니라. 너희 사회부터 개조해 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상생의 사람이 일만이천명이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2016년 시작이 얼마전이었는데 어느새 입추를 맞이했습니다. 내 마음을 점검하고 내 언행을 점검해 매일 일신우일신함으로써 내 말과 글로써 내 주위의 인연들에게 상생세상을 넓혀가야 겠다는 마음을 도훈을 준비하면서 다시 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도훈을 모두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