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일지 (2024.06.04~06.25)*
-12일차 : 6월 21일 금요일
풍경(風景) 둘
1
유월 거리 풍경
-저녁 산책 시간에
합기도를 마친 꼬마 여자애가 승격 띠를 받지 못했다며 삐진 채 마중 나온 엄마를 미소 짓게 만들고, 길가 한편에 마련된 빌라의 조그만 텃밭에는 늙은 엄마에 순종하는 정신장애 처녀가 심은 채소를 향해 물을 주고 있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은 본다) 원성동사거리에 있는 아파트단지 건축예정 부지는 펜스만 세워놓고 하세월이고 천안고등학교를 지나는 도로변은 소나무를 새로 이식하는 조경작업이 한창이고 그 밑에 최근 새로 문을 연 명륜진사갈비집 식당에는 평일에도 손님이 제법 테이블을 채우고 멀리서부터 고기가 굽히는 구수한 냄새를 피운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을 본다) 일 년도 못 버티고 떨어져나간 돼지 대패삼겹살 식당자리에 요즘 유행하는 노란색 일조인 커피전문점이 새로 개업해 준비 중이고 아내 기억으로 처녀 적부터 있은 북경반점을 돌면 힘든 일을 마치고 노천 테이블에서 치맥을 먹고 마시는 주점가가 나오고 유일한 하천인 천안천 주변으로 운동과 산책을 하러 나온 시민들의 한가로움이 흐른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을 본다) 농협 앞에서 채소와 과일 조금을 늘어놓고 매일 팔리기를 기다리는 지쳐 보이는 아줌마, 편의점과 호프집 앞 도로변에서 퇴근 후 한잔 걸치는 검게 탄 일용직 노동자들, 어제는 열렸다 오늘은 닫힌 음식점들, 술집, 또 호프집, 미용실, 테니스장, 지나가는 가벼운 표정의 행인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을 본다) 이제 곧 재단장을 할 것처럼 펜스를 둘러 시민들 접근을 막은 오룡시민경기장 옆의 경사진 길을 오르면 근처에서 제일 큰 천안장로교회를 필두로 두 개의 교회가 더 보이고 학생이 많이 없어진 신안초등학교를 지나 일방도로를 빠져나가면 늙은 엄마에 순종하는 정신장애 처녀가 심은 채소를 향해 물을 주고 있던 텃밭이 다시 나오고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이들을 모두 보았던 우리는) 멀리 맞은편에서 석양이 붉게 노을 지는 한가로운 풍경에서 유월이라는 시간을 새삼 깨닫는다
2
영국 빅토리아 왕실의 식문화와 시대의 풍경
-애니 그래이 作, 홍한별 譯 《먹보 여왕》을 읽으며
제7장 아이들과 함께 : 여왕의 아홉 아이들과 함께 일반 가정처럼 산교육을 하고 텃밭을 일구며, 그곳에서 가꿔 나온 채소와 과일들로 아이들과 맛있는 요리를 해먹던 행복한 시절의 풍경
제8장 일상식 : 먹을 줄 아는 여자였던 빅토리아 여왕의 일상에서의 식탐기
제9장 특별식 : 1837년 9월 벨기에 레오폴트 국왕, 1844년 6월 러시아 차르(니콜라이 1세), 10월 프랑스 루이 필리프 국왕, 1855년 4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1867년 터키 술탄, 1873년 페르시아 나세르 알딘 국왕 등 국빈 방문시 빅토리아 여왕이 접대에 나섰던 당시 풍경
책은 이렇게 ‘요리’라는 한 분야를 통해서 역사적인 한 인물을 독특하고 특별하게 조명하여 독서의 즐거움과 흥미를 제공한다. 여왕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영국인들이 우러러볼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아울러 일반인들의 삶에 적지 않은 환상도 심어주었으리라 여겨진다. 이 책이 독서인에게 그런 동일한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작가의 관련 자료를 꼼꼼히 수집하는 시간, 그 자료들을 차분하게 읽어나가며 필요시마다 정리하는 시간, 마지막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당시 풍경을 재현해내며 수집하여 정리한 관련 자료들과 음식처럼 조화롭게 배합하는 일 등이 이런 특별하고도 훌륭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여왕의 꼼꼼한 기록 습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런 다양하고 특별한 장면들은 한 편의 영화로도 만들기가 어렵고 이제 와서 다큐멘터리 제작은 더욱 난제일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 치세의 해가 지지 않게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영제국의 풍경을 음식과 요리를 주제로 흥미롭게 담아낸 영화판 블록버스터이자 출판계의 맛깔나고도 훌륭한 특별식으로 칭송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은, 독서광들에게 일독을 추천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