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싱싱한 통영이 살아있는 이탈리안 요리 ‘오월(O’wall)’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통영의 한 바닷가 마을 골목 안을 파고든다. 그곳에 유명한 셰프가 내어놓는 요리가 있다.
그림자를 골라 디디며 그 맛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설렌다. 간판도 달리지 않은 작은 흰색 대문이 어서 오라는 듯 활짝 열려있다.
서툰 듯 예쁜 그림이 그려진 계단을 오르면 ‘오월(O’ wall)’이 진정한 식도락가를 맞이한다.
최고의 음식 재료, 계절마다 달라지는 메뉴
메뉴판만 펼치면 ‘선택 장애’ 증상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면 ‘오월’에서는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된다. 전채 요리–샐러드–주요리–디저트가 알아서 나온다.
‘오월’은 테이블이 단 세 개만 있다. 그마저도 시간 차이를 두고 예약을 받는다. 테이블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다는 뜻이다. 예약할 때 고객은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재료만 알려주면 된다.
통영은 식도락가의 낙원이라 불릴 만큼 신선한 해산물과 해초, 나물이 넘쳐난다. 주인장 김현정(46) 셰프는 매일 새벽 서호시장에서 그날 예약된 만큼만 장을 본다. 시장에서 제일 싱싱하고 물 좋은 것으로만 고르다 보니 계절마다 날씨마다 메뉴가 달라질 수밖에. 김 셰프는 통영 ‘오월’은 통영 ‘다찌(선술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오월’이 로컬 프렌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바다향이 가득, 입도 눈도 즐거운 전채 요리
대중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 한다면 흔히 상상하는 그림들이 있을 것이다. 가게마다 비슷한 종류의 전채 요리, 면이 위주인 해물 파스타, 씹는 맛(?)이 있는 스테이크 등.
그런데~. ‘오월’에서 맨 처음 선보인 전채 요리를 보면 예상이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약간은 낯선 구성에 ‘아니 이건~!’ 눈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탈리안 요리에서는 보기 힘든 싱싱한 밀치(가숭어)회가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안 전채요리에 회라니!
김 셰프가 내민 접시 위에는 명란을 넣은 마스카르포네(이탈리안 크림치즈)가 동그랗게 올라간 카나페를 중심으로 밀치회, 오븐에 구운 전복, 성게 알 올린 아보카도, 게살과 양파가 들어간 멘보샤(빵 사이에 다진 새우살을 넣고 튀긴 요리)가 둘러싸고 있다. 이 한 접시에 통영의 바다가 오롯이 담겼다. 작은 전채 요리 하나에도 요리사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마스카르포네 위 눈에 보일 듯 수줍은 꽃 한 송이가 마치 섬 위에 피어있는 들꽃을 연상한다. 입에 넣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 후에야 먹을 수 있었다. 모차렐라에 크림을 첨가한 브라타(Burrata) 치즈가 소복이 담긴 샐러드, 그리고 거기서 풍기는 신선한 과일 향이 더욱 식욕을 자극한다.
“오늘은 물 좋은 오징어로 만든 파스타”
“오늘은 오징어가 물이 좋더라고요”라며 김 셰프가 그린 색이 감도는 요리를 내어왔다. 통오징어 두 마리가 올려져 있다. 큼지막한 키조개 관자도 압권이다. 그 사이로 바지락과 똬리를 튼 면발이 살짝 보인다. 말 그대로 진짜 해물 파스타였다.
파스타를 먹으면서 처음부터 칼로 뭘 썰어보기는 처음이다. 오징어는 촉촉하면서도 탄력 있고 관자는 쫄깃하다. 비릿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입에 넣는 순간 느껴지는 신선함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 녀석들이 팔딱팔딱 살아 있었음을 알려준다.
풍부하게 들어간 허브는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오일파스타의 풍미를 산뜻하게 잡아주었고, 알맞게 삶아진 면은 겉은 부드럽고 속은 식감이 살아있다. 시각과 미각과 후각이 모두 만족해야 완벽한 요리라고 했던가. ‘고급지다’란 표현 외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해물 파스타’는 가라!
이 집 스테이크 완전 찐~, 감탄사 절로!
안심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자마자 바로 물어보았다. “여기에 특별한 숙성 방법이 있나요?”라고. 그 말에 김 셰프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사 온 고기예요~.”
“그렇다면 무슨 밑간을 한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풍부한 육즙 속에 맛을 내기 위한 어떤 특별한 조치(?)를 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금과 후추요”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고기를 쓰면 숙성하지 않아도 부드러우며, 별다른 양념을 쓰지 않아도 재료가 모든 맛을 내준다고 했다.
오븐에서 막 꺼내 온 민어 스테이크가 식탁 위에 올랐다. 감싸고 있던 종이 포일을 잘라내자 올리브와 허브향이 훅 올라온다. 그 뒤로 감도는 고소한 민어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한 점 입에 넣자 생선에서 상큼함이 느껴진다. 비린내는 전혀 없다. 역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민어에 토마토와 올리브, 타임(Thyme)과 딜(Dill)을 올리고 오븐에 익힌 것이 전부라는 설명뿐.(타임은 ‘백리향’이라고도 불리며 강력한 살균 작용을 하며 요리용 허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정시키다’는 뜻의 딜도 생선요리에 자주 사용하는 허브다.) 여태까지 내가 먹어왔던 스테이크는 대체 뭐였을까?
‘르 꼬르동 블루’ 출신 요리사, 통영에 빠지다
김 셰프는 1895년 설립된 세계적인 요리 학교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를 수석 졸업했다. 이후 서울에 터를 잡고 레스토랑 ‘오월(O’ wall)’을 운영했으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5년 만에 가게를 접어야 했고, 2015년 통영국제음악당 총괄 셰프로 면접을 보러 오게 됐다. 태어나서 첫 통영 방문이었다.
“통영에 도착했던 순간 무조건 여기 와서 정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무엇보다 시장에만 나가면 싸고 신선한 식자재가 넘쳐났어요. 서울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죠.” 그는 국제음악당을 그만두고 3년 전 서울에서 운영하던 식당 이름을 그대로 따 통영 ‘오월’의 문을 열었다.
그의 음식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최고의 요리사는 최고의 식자재를 찾는 사람이다. 모든 맛은 재료 본연에서 나온다. 요리사는 그저 약간만 거들뿐”이라며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