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욜란타’를 보며 마음을 챙기다
글/스텔라 박
오페라에 마음을 빼앗기다
언제부터 오페라라는 예술 장르가 나의 영혼을 훔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20대 초반부터는 꾸준히 빼놓지 않고 오페라 공연을 다녔었다. 이후로 오페라는 나의 종교가 되어 갔다.
종교가 되어 갔다는 말의 의미는 이렇다. 밥은 못 먹더라도 오페라는 봐야 한다. 오페라 한 편을 보기 위해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도 마다 하지 않는다. 엄마가 5개월 만에 한국에서 오신다고 Ride를 부탁받았을 때 “안 돼. 엄마. 귀국일자를 바꾸면 안 돼? 나 그날은 오페라 보러 가야 하거든.”
옆에서 내 전화하는 소리를 듣던 친구는 기겁을 했다. “네가 오페라를 보러 가지 않으면 될 걸, 오래간만에 오시는 엄마더러 귀국 날짜를 바꾸라고 하니. 참, 대단~하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실황중계
LA의 로컬 오페라단인 LA Opera는 공연 작품 수가 연간 예닐곱편으로 그닥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CD나 DVD등 다른 경로를 통하지 않는다면 나의 오페라에 대한 왕성한 식욕을 채울 수가 없다. 그러다가 한 6년 전, 알게 된 것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실황중계(HD Telecast)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미국 뉴욕에 있지만 마법 같은 현대 테크놀로지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실황중계를 즐길 수가 있다. 실제로 나도 몇 년 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가족과 보내려 프랑스에 갔다가 그곳 현지의 극장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실황 중계를 본 적이 있다. 쥘 마쓰네의 “타이스”라는 작품이었다. 또 영국 런던에 갔을 때도 이 실황 중계를 봤다. 재미있는 것은 영국에서는 영어 자막(Subtitles)이 올라오는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자막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한국어 자막이 나오겠지. 새삼 한국에 살고 있는 이들이 부러워진다.
같은 오페라를 수십 번 보는 이유
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초호화 성악가, 그리고 창조성 넘치는 감독들이 만들어내는 무대는 마법 같다. 같은 오페라일지라도 출연진과 연출자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수십 번 ‘카르멘’을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껏 보았던 메트로폴리탄 실황 중계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는 앤소니 밍겔라(Anthony Minghella) 감독이 연출했던 쟈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을 꼽는다. 꿈을 꾸듯 아름답고 로맨틱한 연출이었다. 나비부인의 흰 색 기모노가 그녀의 순수한 사랑과 핑커톤에 대한 동경을 참 잘 표현해주었던 작품이었다.
실황중계에서만 볼 수 있는 맛
물론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가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객석에 앉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실황중계에는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객석에 앉아 본다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하나의 시각에서밖에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실황중계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잡은 다양한 장면을 접할 수 있다. 새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의 무대를 잡은 장면, 고양이가 아래에서 바라본 것 같은 시각의 장면들, 합창단이 나올 때면 무대 전체가, 그리고 두 남녀 성악가가 나와 사랑을 속삭일 때면 그 두 인물만 비춰준다. 혼자서 아리아를 부를 때면 1인을 비춰준다. 객석에 앉아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이 카메라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주인공 디바가 입은 드레스의 질감과 목걸이의 화려함까지 모두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중간 휴식시간이면 르네 플레밍, 조이스 디도나토 등 정상급의 성악가들이 무대 뒤로 가서 출연진들과 인터뷰를 한다. 그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다. 또한 무대 소품 담당, 안무 코치 등 제작진과의 인터뷰도 진행된다. 그저 수동적인 자세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무대가 갑자기 살아서 깊은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실황중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한 시즌에 약 10편의 오페라를 실황중계해주고 있다. 당신이 대도시에 산다면 분명 접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어떻게 구체적인 정보를 구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기야 오페라,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지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실황 중계를 보고 싶다면 www.metopera.org를 들어가 HD Telecast라는 항목을 클릭한다. 그리고 티켓 예매 항목을 클릭하면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우편번호를 넣게 되어 있는데 대부분 AMC 체인 극장과 Regal 체인 극장 중 몇몇 곳에서 상영한다. 티켓은 영화보다 약 2배 비싼 25달러이다.
뉴욕에서 토요일 오후, 마티네이(Matinee) 공연이 있을 때, 이것을 실황중계해주기 때문에 뉴욕일 경우 대개 오후 1시이지만 LA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서둘러 가야 한다. 유럽에서는 분위기 잡기 딱인 저녁 시간에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가끔씩 바그너의 오페라를 상영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바그너 오페라가 워낙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길이인지라 (공연 총 시간이 대 여섯 시간 된다.) 조금 일찍 끝내야 저녁 공연도 할 수 있기에 뉴욕에서 12시, 그리고 LA에서는 9시에 시작을 한다. 아무리 오페라를 좋아한다지만 주말 오전 9시부터 극장을 가려면 어지간히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욜란타
2월 14일, 발렌타인즈 데이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무대에 올렸던 작품은 표트르 일리히 차이코프스키의 단막 오페라 “욜란다(Iolanta)”였다. 워낙 빼놓지 않고 다 가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오페라는 처음이라 잔뜩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찾았다.
“욜란타”는 차이코프스키가 “호두까기 인형”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성했던 작품이다. 음악 역사가들은 “욜란타”를 “호두까기 인형””의 ‘사라진 쌍둥이’라고 부른다.
당시나 지금이나 잘 나가는 작곡가들은 극장 또는 오페라 컴퍼니로부터 일을 의뢰받는다. 차이코프스키에게도 작곡 의뢰가 들어왔다.
“차이코프스키 선생. 우리 극장에서는 이번 겨울 시즌, 하룻밤에 발레와 오페라를 한 편씩 볼 수 있는 ‘패키지’를 무대에 올리려 합니다. 한 번 멋지게 만들어주세요.”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태어난 욜란타
차이코프스키는 오페라 “욜란타”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완성했다. 이 두 작품은 1892년 12월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동시공연 작품(Double Bill)으로 초연됐다. 하룻밤에 두 작품을 보는 것이니 각각의 작품은 보통 오페라의 절반 정도 길이이다.
초연 후, 두 작품은 모두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한 채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호두까기 인형”은 전곡의 주요 부분을 발췌한 모음곡이 인기를 끌면서 매해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욜란타’는 큰 인기나 인정을 받지 못했었다.
헨릭 헤르츠의 희곡이 원작
오페라 “욜란타”는 헨릭 헤르츠의 희곡 “르네 왕의 딸”을 원작으로 한다. 르네 왕의 딸, 욜란타 공주는 아름답지만,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눈은 오직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만 있는 신체 기관이었다.
어느 날, 욜란타가 너무 안쓰럽다고 느낀 마르타(욜란타를 돌봐주는 여인)는 “욜란타, 울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욜란타는 “마르타, 어떻게 내 눈을 만져보지도 않고 내가 눈물을 흘리는지 알죠?” 라고 묻는다. 그녀는 “본다(See)”라는 개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방팔방으로 공주의 시력을 되찾아줄 방법을 물색 중이던 르네 왕은 알라를 믿는 무어인 의사, 이븐하키아를 만나게 된다. 이븐하키아는 공주의 시력을 회복시킬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주가 자신이 소경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을 뜨려면 내가 못 본다는 것을 깨달아야
이 대목을 보면서 무릎을 탁 내려쳤다. 우리가 지금껏 무명에 빠져 헛살아 온 것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깨달음도 있다는 얘기와 어쩜 이렇게도 닮아 있을까.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3가지 독(三毒)’가운데 가장 큰 것이 어리석음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눈이 있으면 뭐 하나.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는데. 아둔한 상태에 빠져 있는, 슬기롭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인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제대로 보지 못하다 보니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집착하고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부정하려 든다. 어리석은 우리들은 꿀 속에 빠져드는 파리, 불 속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탐냄과 성냄의 덫에 걸려든다. 탐냄과 성냄도 그 근본 원인을 보면 어리석음이 시작이다. 어리석음이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법을 보지 못한다. 어리석음에 빠진 이들에게는 어두움만이 있을 뿐이다.
자각과 함께 뜨거운 열망만이 해답
무어인 의사는 욜란타 공주가 눈을 뜨려면 “첫 번째, 자신이 장님임을 자각해야 하고 두 번째, 강렬하게 눈을 뜨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르네 왕은 딸에게 이런 열망을 심어주기 위해 잔머리를 쓴다. 우연찮게 공주가 기거하는 숲속 저택으로 들어와 욜란타를 보고 첫눈에 반한 청년 귀족 보드몽. 르네 왕은 욜란타에게 “네가 눈을 뜨지 않으면 보드몽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겁을 준다.
욜란타 공주는 자신에게 찬란한 빛의 세계에 대한 꿈을 심어준 보드몽을 살리기 위해 한 번도 보지 못한 빛의 세계를 강렬하게 소망한다.
“꿈꾸는 다락방”, “시크릿” 등 자기개발서적들은 하나 같이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 준다. 수술 끝에 공주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고, 보드몽과 행복하게 맺어지면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차이코프스키의 원숙미가 빛나는 오페라
이 작품이 애초에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크리스마스 즈음에 공연되기로 기획됐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기획자가 누구였는지, 정말 뭔가를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욜란타”는 사랑의 힘을 통해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는 욜란타 공주의 심리적 정서적 변화를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오페라를 작곡했을 때는 이미 원숙의 경지에 도달했던 시기다. “욜란타”의 멜로디는 천상에 속한 듯 아름답다. 차이코프스키의 창조적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스코어이다.
오페라를 보면서도 마음 공부
어리석음으로 어두움에 빠져 있는 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괴로움을 바로 보고, 인식하면 언젠가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게 된다. 내가 이제껏 실체를 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괴로움의 소멸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이켜 반성한다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사슬로부터 빠져 나갈 수 있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것.
이 세 가지 어리석음이 사라진 상태를 열반(nibbāna)이라 했다. “벗이여, 탐냄, 성냄, 어리석음의 소멸, 그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마음의 눈이 시력을 상실한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 먼저 그 사실을 깨닫고 밝은 세상 에서 살아가도록 부지런히 마음 공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