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저런 아버지도 있었네!
장민정
산 넘고 개울 건너 십 리 밖 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는 산마랭이에서 하교하는 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는, <동행>이란 티브이 프로에 등장한 60대 여자 주인공의 따뜻한 이야기를 듣다가 불현듯 내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같이 학교에 가려고 이웃에 사는 친구 집에 들렀을 때였다.
“뜨듯하니 어서 신어라. 발 시릴라” 친구 아버지가 부엌에서 친구의 신발을 가지고 나와 댓돌에 놓아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이 덜 시리게 하려고 아궁이 옆에서 구워 온 따뜻한 신발이었다.
친구가 신을 신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빡 미소 머금은 친구 아버지의 환한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으로 친구가 부러웠다.
이때까지 한 번도 생각하거나 느껴보지 않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훈훈한 모습을 한동안 못박힌 듯 서서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그리고 많은 형제들이 한집에 살고 있는데 고아가 된 듯 나는 외롭고 추웠다. 오슬오슬 한기까지 느껴졌다.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친구 아버지,
이런 아버지가 다 있다니!
그때까지 나는 세상의 아버지들은 모두 근엄하고 엄격해서 무섭기까지 한 존재라 여겼다. 아버지 함자 뒤에 무슨 長 짜 직함이 붙던 우리 아버지는 평판을 중요시했고 그래선지 집안 분위기는 농담이나 웃음이 끼어들지 않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곤 했다.
아버지 옆에만 가면 저절로 몸이 굳어지고 움츠러들고 꼭 여쭐 말도 더듬거려져서 스스로 피하기 일쑤였다. 될 수 있는 대로 멀리하고만 싶던 아버지, 응석을 부려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친구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너무 달랐다. 마음 같아선 친구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그런 이야길 했대도 아버지는 “뭐 그런 상스러운 짓을, 남자 망신 다 시키는구먼, 이라고 한탄하실 것이라 지레짐작했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고 그냥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었다.
나는 할머니의 흰 고무신을 말끔하게 닦아 댓돌 위에 놓았고 아버지가 마루에서 내려오실 때는 마당에서 놀다가도 달려가 댓돌 위에 가지런하게 신발을 놓아드리기도 했다.
이런 일은 보통 아랫사람이 하는 일, 가르침과 강요된 점이 없지 않지만, 공경의 마음이 강요된 사회, 아버지는 사랑과 존경을 받기만 할 뿐 내리사랑을 표현하는 것조차 상스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이긴 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해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윗사람에게서, 혹은 사회 통념에서, 사랑도 배우는 것이 맞는다면 말이다.
배우지도 않았고 들은 바도 없으며 차라리 친구 아빠 같은 행동은 수치라 여기는 아버지의 사랑을 어찌 읽을 수 있었겠는가?
할머니가, 어머니가, 아내가, 엄마가, 남존여비 사상의 피해자이면서 조력자이다. 모든 여자가 한탄하고 푸념하고 원망하면서도 또한 자식인 아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부추기는 꼴이 되어 남성우월주의는 아주 견고한 통념이 되어 가정을 휩쓸었다.
틀에 박힌 통념의 메마른 정서에 어린 것들은 상처받으며 자랄 수밖에, 그런 사회 그런 교육에 신물이 났기에 사랑해야지, 사랑을 마음껏 표현해야지, 거듭거듭 되뇌면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의 빈 마음은 아직도 서럽고 아프게 그늘져 있다.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
첫댓글 제 어린 날이 생각나네요
친구아버지가 어찌나 다정하신지,
저의 아버지도 다정하시면서도 엄하셔서
그 친구아버지가 부러울 때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