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기행 마지막 날을 장흥 관산읍에서 맞이했다. 오늘은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알려진 천관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이른 아침, 천관산 동편 야트막하고 작은 산의 기슭에 자리한 C 모텔에서 체크아웃 후, 4km 남짓 차를 달려 정남진에 도착했다. 일출을 보기로 한 것이다.
일출이야 어디서든 매일 한 번 맞이하지만, 경복궁을 기준으로 국토의 정 남쪽에 있는 지점인 정남진에서 맞이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일출은 누구에게나 특별해지는 것이다. 이번 남도기행 내내 날씨가 맑아, 땅끝마을에서의 일몰과 일출에 이어 정남진에서의 일출까지 보는 행운을 누렸다. 일출에는 약 4분이 소요되고, 그 사이 지구는 약 1도, 즉 약 111km를 자전하는 셈이다.
일출이 끝난 후, 모텔 옆 ‘천관회관’ 식당으로 향했다. 그 도중에 삼산리를 지날 즈음, 세 그루의 거대한 후박나무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천연기념물 481호로 지정된 이 나무들은 1580년경 경주 이 씨가 이 마을에 입주할 때 마을의 동서남북에 심었던 나무 중 남쪽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540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저토록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든다. 모텔 옆 식당으로 되돌아와서 아침을 들었다. 식당 창문 밖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위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천관산이 눈에 들어온다. 천자(天子)의 면류관을 닮았다는 천관산에는 신라 김유신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도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축구장처럼 너른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 저쪽 가장자리에 ‘맛고을’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토종닭백숙으로 저녁식사를 했던 곳으로, 인삼튀김과 닭발구이 등 생소하고 특별한 음식까지 내어주던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은 오래도록 기억될 듯하다. 그 식당 맞은편에는 ‘1박2일’ 간판을 건 식당이 자리하는데, 10여 년 전 천관산 일대에서 동명의 TV 오락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 이용한 곳으로 보인다.
아름드리 가로수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천관산 등로로 향했다. 중간에 ‘등산객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서있는 장안사 입구를 스쳐 지나고, 장흥 위 씨(魏氏) 사묘재실인 장천재(長川齋)를 우측에 두고, 좌측의 천관산 등산 제1코스 들머리로 들어섰다. 연대봉까지 2.7km의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가파른 비탈의 등로는 고도를 높여 가지만, 천자의 왕관 모양 암봉은 자꾸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좁혀 주지 않는다. 연대봉 산정으로 난 긴 산줄기를 절반쯤 지날 무렵부터 시야가 넓게 트인다. 해발 455미터 지점, 관산 읍내와 장흥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너럭바위 군이 쉬어가라 손짓한다. 시야는 멀리 제암산, 보성 율포, 고흥 반도까지 닿는다.
등로에는 통바위 한편이 문처럼 뚫린 바위, 책을 쌓아놓은 듯 보이는 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나타나며 눈을 사로잡는다. 오른편 능선의 여성을 연상케 하는 금수굴과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양근암(陽根巖)’을 지나면서 비탈이 조금 느슨해졌다. 연대봉에서 환희대로 뻗은 시원스러운 주 능선, 눈 아래 펼쳐진 주변의 산군, 멀리 남해바다 등도 조망된다.
등로변 억새 군락 사이에 간간이 홍옥처럼 빨간 열매를 맺은 망개나무가 자리하고, 철을 잊은 철쭉은 꽃을 피우기도 했다. 박석을 쌓은 탑 모양의 ‘정원석(庭園石)’ 바위를 지나면서부터 산정에 올라서기 직전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억새가 춤을 추는 시야가 탁 트인 능선 비탈 저 멀리 연대봉 산정에 박석을 높이로 쌓아 올린 봉수대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성채를 연상케 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약 두 시간 만에 연대봉에 올라섰다. 천관산의 최고봉 연대봉의 옛 이름은 옥정봉(玉井峰)으로 고려 의종 때인 1160년경 처음으로 봉화대를 설치한 후로 연대봉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동서 7.9m, 남북 6.6m, 높이 2.35m 의 봉수대는 기단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86년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주변에 억새군락이 바람에 경쾌하게 춤을 추는 봉수대 위로 올라서서, 좌에서 우로 고흥의 팔영산과 완도의 여러 섬, 북서쪽으로 영암 월출산과 담양의 추월산 등을 더듬어 보며 조망했다. 안내판이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고 알린다. 봉수대 아래 '천관산 煙臺峰 723.1M'라고 적힌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환희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연대봉에서 환희대까지 1.1km의 평탄한 능선은 좌우로 억새밭이 펼쳐진 폭신한 흙길이다. 좌우로 탁 트인 조망을 보며 걷는 기분이 남다르다. 지난달에는 명량해전 때 우리 수군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회진면 회령포에서 ‘이순신 회령포 축제’와 함께, 이곳 일대에서 억새제례, 억새아가씨 선발대회, 산상 음악회 등으로 구성된 ‘천관산 억새제’가 열렸다니, 천상의 정원처럼 사방이 탁 트인 산정에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는 축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비스듬한 경사를 올라 환희대에 닿았다.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서 서로 겹쳐있어서 만 권의 책이 쌓인 것 같다는 대장봉(大臟峰)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石臺)이니, 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환희대 암봉 위에 올라서니, 그 옆 안내판에 쓰인 글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대신해서 감흥을 묘사하고 있다. 천관사, 양암봉, 산행 들머리 쪽으로 각각 뻗어 내린 산줄기 위에 돌기둥 다발을 세워둔 듯 우뚝우뚝 솟아 있는 지장봉, 진죽봉, 구정봉, 선인봉 등 기암이 실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기관이다.
환희대에서 서남쪽으로 500여 미터 뻗어 내리다가 머리를 높이 치켜든 거북처럼 생긴 바위 봉우리인 구룡봉으로 향한다. 그 길 중간에서는 진죽봉과 지장봉의 진면목을 온전히 조망할 수 있다. 거대한 암봉이 층층 겹겹 어우러져 있는 구룡봉(九龍峯) 위로 올라섰다. 여기저기 바위에 파인 수십 개의 나마(풍화호; 風化壕)에는 물이 고여 있고, 개구리밥처럼 작은 잎새의 연녹색 식물이 자라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그 주위 산줄기와 사면에는 크고 작은 모양의 레고 블록을 쌓아 놓은 듯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다. 봉우리 위로 오르는 초입에 서 있는 안내판의 내용은 누가 지은 것인지, 그 위에서의 정취와 감흥을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
“돌사다리를 비스듬히 타고 올라가 깊은 골짜기를 굽어보면, 정신이 아찔하여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가 없고, 다만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석상(石上)에 구덩이가 수십 개 있는데, 크기는 똑같지 아니하며 혹은 둥글게 패어 맑은 물이 고인 채 마르지 아니하고, 흙은 반반하게 패어 초승달 같은 것도 있다. ... 깊은 밤 달 밝을 때는 골짜기의 숙무 짙은 안개가 대해를 이문 가운데 만두(灣頭)나 석정(石偵)이 점점이 드러나 보이는 풍치는 고요히 잠들어 있는 인간세상 밖에서 홀로 하늘 위에 우뚝 서있는 느낌이 든다. 또한 별들이 옷자락에 가득한 듯 여겨지니 태산한봉(泰山漢峯)의 놀이보다 더욱 쾌활(快闊) 함에 잠길 수 있다.”
정오 무렵 환희대로 되돌아와서, 천관산 등로 제3코스 방향 산줄기로 하산 길을 잡았다. 당번천주봉, 문수보현봉, 대세봉, 선재봉, 석선봉 등 기기묘묘한 암봉이 기다린다. 급전직하 계단을 내려서고 바위덜설 길을 지나면서, 산줄기 군데군데 거리를 두고 자리한 암봉을 머리를 젖히고 올려다보며 하나씩 지나갔다.
석선봉 위 너럭바위에서 감을 깎아서 허기를 달랬다. 명적암 아래 뚫린 금강굴을 지나고, 고도가 해발 300미터쯤 될 무렵부터 거친 길은 평온한 숲 사이 흙길로 바뀌며, 산행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알린다. 계곡을 지나며 얼굴의 땀을 씻고, 대나무 숲이 무성한 장천재 앞을 스쳐지나 장천교(長川橋)를 건너며, 남도기행의 마지막 일정인 천관산 산행을 마친다. 두륜산, 달마고도, 천관산 세 번 산행에 대한 각각의 감흥을 묻자, 친구 B는 ‘따봉’, ‘해탈’, ‘무념’이란 단어로 답한다. 친구 넷은 도반(道伴)이 되어 때론 힘겹고 때론 환희도 맛본 3박 4일 남도 기행을 마무리하고 귀로에 오른다. 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