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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三國志) (212) 강동의 계략
장중으로 돌아온 손권은 노숙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말한다.
"나는 선생의 예지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소."
"어찌 그러십니까 ?"
"삼 개월 전, 그대가 형주에 다녀온
뒤, 유기의 병이 위중하여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 않았소 ? 짧으면
삼개월, 길어도 반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삼개월 만에 세상을 떳으니, 이제 유비보고 형주를 내놓으라고 하면 뭐라고 할 지 궁금하구려.
허허허허 !..."
"하 !... 유기 공자가 죽기는 했지만,
주공께선 우리가 형주를 찾아 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럼 유비가 약조를 어길 거라고 보는 거요
?"
"아닙니다. 다만, 약조대로 형주를 달라고 할거면 신중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형주를 얻었을 때와 얻지 못했을
때의 득실을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 !... 옳은 말이오.
유비가 순순히 형주를 내놓으려고 하진 않을 것이오. 형주라는 고기를 이미 입 속에
넣고, 꿀꺽 삼켜버린 상황에서 쉽게 토해 낼 리가 있겠소 ? "
"주공, 외람 된 말씀이오나,
현 상황을 직시해 보건데, 유비는 사 군을 취했고 , 군마와 세력이 커져서 눈 깜짝할 사이에 아군과 대등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제갈양은 우리가
전쟁을 원치 않는다 여기고, 필시 형주를 우리에게 넘기려 하지 않을 겁니다."
"후후후... 간교한 공명과 가식적인
유비요..."
"주공, 이런 난세 속에선 간교든 가식적이든 간에, 강약지 고하(强弱之高下)만 존재합니다. 그야말로 승자는 영웅, 패자는 도적으로
치부되지요."
"음 !... 그런 이치는 나도 아오.
순간 조급해졌을 뿐이오. 자경, 결심했소
! 형주를 돌려받아야겠소. 주지 않겠다 해도 받아야 하오. 한 마디로 돌려주지 않을 것을 알아도 요구는 반드시 해야 만 하오. 그래야만 형주의 주인이
우리라는 것이 각인되며, 유비는 오로지 객(客)일 뿐이라는 인식이 되지 않겠소 ? 그리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더욱 더 얕보고 형주가
자기들 것이라고 여길 것이고 , 요구해도 안 주겠다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니, 적당한 때가 되면, 우리가 무력으로 취할 수가 있소.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이니, 명분이나 도리에서 정당한 일이 될 것이오."
"맞습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내친 김에 유기의 문상을 구실로 형주에 가 봐야 겠습니다."
"바로 다녀오도록 하시오."
손권과 노숙이 이런 말을 주고 받을 때, 파릉에 나가 있던 장흠(蔣欽)이 들어와 문안 인사를 한다.
"주공, 선생 !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
손권이 인사를 받고 물었다.
"아 ! 장흠 장군, 여긴 무슨일로 왔소 ?"
"예, 군량과 무기를 보충하러 왔다가 오늘 파릉으로 돌아갑니다. 가기 전에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묻는다.
"파릉에 있는 아군의 상황은 어떻소 ?"
"소장이 이곳에 오면서 정찰병을 만나 물어 본 결과,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요
? .."
"그게.. 유비가 모든 군마를 형주 일대로
거둬 들이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대군의 공격에 대비하는 듯 말입니다."
"아 ! ..제갈양이 전쟁 준비를 하는군요."
노숙이 단박에 유비군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말하였다. 그러나 손권은 화제를 돌려,
"공근은 몸이 좀 어떻소 ?"
하고, 물었다. 장흠은 걱정스런 어조로 대답한다.
"호전 됐다, 악화됐다 합니다."
"장군이 시상으로 올 때에 공근은 뭘 하고 있었소
?"
"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전선을 시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공근이 무기 보충을 지시했나
보군."
"예,"
"음...수고했소. 어서 돌아가 보시오."
손권은 장흠이 물러가자,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그리하여 노숙도 함께 따라 일어섰는데,
"자경, 공근이 유기가 죽은 것을 알고,
유비를 공격하려고 무기를 보충하는 것이 틀림없소. 형주를 노리고 말이오,
즉시 출발해서 파릉의 준비 태세를 살피고 , 유비와의 교전을 막도록 하시오.
그리고 형주로 건너가 동태를 살피시오."
손권은 이같이 말하자 노숙은 즉석에서 명을 접수한다.
"알겠습니다."
한편, 파릉의 주유는 남군성 전투에서 조인의 병사로
부터 맞은 독화살의 후유증으로 몹시 고통받고 있었다. 상처 부위가 쑤시고 덧나기가 일쑤였고,
심하다 보면 피를 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유는 부하 병사들과 장군들이 보는 앞에서는 감쪽같이 아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유의 동태를 유심히 살피는 심복 장수 여몽과 감녕 한테는 때때로 고통받는 순간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 날도 두 사람이 찾아오기
직전에 주유는 책을 읽다 말고, 고통으로 괴로워 하고 있었다.
"대도독, 또 병이 재발하신 겁니까
?"
주유의 군막으로 찾아온 여몽과 감녕이 괴로워 하는 주유를 보고 묻는다.
"응 ? ... 전혀 아니네,
나날이 회복되고 있다네."
주유는 딴청을 부리며 대답하였다. 그러나 두 장수는 주유가 아픈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을 눈치챘으나 그의 대답이 망연하므로 여몽도 딴청을 부리며,
"대도독, 벌서 보름째 같은 책을 보고
계시니 누가 지은 책이기에 이렇듯 몰입하고 계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건 어떤 현인이 쓴 책인데, 읽을수록
깨우침을 얻게 되네. 이제 그 내용을 간파한 것 같아. 그 지혜와 계략까지..."
"누가 쓴 책인데 그러십니까 ?"
감녕이 이어서 물었다. 그러자 주유는
담담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제갈양..."
"네 ?..."
"적을 이기려면 적을 스승으로 삼고 그의 계략에 통찰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당하고야 말거야..."
주유는 여기까지 말을 한 뒤에,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군막을 서성이며,
"지난 남문성 전투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고, 제갈양의 용병술을 되짚어 보게 됐네. 이제,
놈의 장,단점을 완전히 파악하고, 놈의 계략을
모두 예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시 싸우게 되면, 나는 기필코 이길
것이네 !"
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단언하는 것이었다.
"영명하십니다 !"
여몽과 감녕은 주유를 향해 감탄을 해 보인다.
그때, 노숙의 배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응 ... 노숙이
? 또 대판 싸워야 하겠구먼 !"
주유는 자리에 앉으며,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여몽이,
"대도독, 병을 핑게로 피하시지요."
하고, 말을 하니, 주유는,
"안되지, 당당히 가서 맞이해야지.
"
주유는 이렇게 대답을 한 뒤에, 두 장수를 가리키며 말한다.
"명이다, 누구든 선생께 불경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알겠습니다 !"
이렇듯 주유는 노숙을 경계하지만, 무시하진 않았다.
주유는 여몽과 감녕을 거느리고 포구로 노숙을 마중나갔다.
마침 배에서 내리던 노숙이 주유를 발견하였다. 노숙은 반가운 소리를 하며 다가왔다.
"하하하 ! 공근 ! 잘 계셨소 ?"
"유비한테 형주를 돌려 받으러 가시오 ?"
주유는 반가워 하는 가운데 첫번째로 이런 소리로 물었다.
"그렇소, 유기가 죽었으니 전에 했던
약조를 지키라고 해야 되지 않겠소 ? 그 동안은 유기가 있어 형주를 달라고 하지 못했지만 이제 유기가 죽고
없으니, 당연히 형주를 돌려달라고 할 계획이오."
"그거야 제갈양이 어떤 구실을
대며 거부할 지도 모르지, 생각해 보시오, 이미 삼킨 고기를 뺏을 수
있겠소 ?"
"역시 주공근이오, 단번에 핵심을 짚으니,
허나, 주공의 결심은 주지 않아도 뺐겠다는 결심이오."
"좋군요, 그래야겠죠. 하하하하 !"
"공근, 어쩌다 여기 파릉까지 오셨소
? "
"시찰이오. 북소리를 못 들으면 온 몸이
쑤셔서 말이오."
"아, 그게 사실이오 ?
장흠을 시켜서 이만 명분의 군량과 무기를 받아오지 않으셨소 ? "
"형주를 공격할까 걱정이신게로군..맞소
?"
"공근, 형주를 돌려 받든 못 받든,
이번만은 유비와 교전을 벌여서는 안되오."
"이유는 ?...."
"공근, 알겠지만, 유비는 지금 장사 사 군을 취하고 기세 등등하오. 허나, 우리는 합비에서 큰 손실을 입고, 상장군 태사자 마저 전사했소. 아주 짧은 시간에 손유 양측의 세력이 대등해 진 거요. 거기에 제갈양은 조기에 정예부대 대부분을
형주로 거둬들였소. 이는 우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오."
"맞는 말이오. 허나 제갈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려해 보셨소 ?"
"말씀해 보시오."
"제갈양은 바로 그런 생각을 간파하고, 도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제갈양 생각엔 조조가 있는 한, 동오가 손유 동맹을 깨지 못할 것이며, 주공과 자경도 감히 유비와 내가 반목하리라고 여기진
않을 것이오. 때문에 자경이 형주에 가게 되면 헛탕만 치고 오게 될 거요. 유비와 제갈양은 형주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그렇소...나도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소,
그걸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오. 허나, 공근, 부디 숨김없이 말해 주시오.
형주를 정말 공격하실 생각이오 ?"
"그렇소. 하고 싶소. 오직 그 생각 뿐이오... 해서 이미 여몽과 감녕, 장흠에게
전투를 준비시킨지 석 달이 넘었고, 병사들의 사기도 높아, 설욕을 하겠다고
난리요. 솔직히 말해, 벌써 하명했소. 파릉의 양 측면으로 보군(步軍) 삼만과 수군 오만을 진군시키면
사흘 내에 형주성에 당도할 것이오."
"그럴 권한이 있소 ?"
"자경, 잊지 마시오, 난 대도독이오."
"전쟁의 권한은 도독 권한이 아니오 ! 주공의 결정을 따라야 하오 ! "
"잊으셨소 ? 나 주유는 팔만 병사의
대도독이오. 때론 주공의 지시도 무시할 수 있지."
"공근 !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요
!"
"훗 ! 후후후.. 이보시오 자경, 당장 싸운다는 것은 아니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공근, 싸우지 않겠다면서 왜 형주로
군사를 움직이려 하시오 ?"
"형주를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왜 굳이 가려하시오
?"
"훗, 공근, 혹시 의병을 배치하려는 의도요 ?"
"그렇소, 제갈양은 우리가 반목 하리라곤
생각 못 할 것이니. 거병을 하는 척 하며, 결사항전 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거요. 제갈양 같은 자에게 말 만 해 가지고 무슨 소용이오. 그런 달변가는 말만 가지고 제압할 방법이 없으니, 무력을 써야만 하오. 가거든 이 말을 전해주시오. 형주를 못 주겠다면 주유가 결전을 치룬다고. 자경, 이건 당신을 위한 거요. 무력시위로 받쳐주면,
형주 반환을 더 강경하게 요구할 수 있겠지."
"그랬었군요... 대도독,
배려에 감사드리오 !"
줄곧 주유와 논쟁을 벌이던 노숙은 마지막 순간에 주유의 진심을 알고, 그를 향해 허리를 깊숙히 구부려 보였다.
"아, 자경, 일어나시오... 그리고 그동안 훈련만 해 온 병사들도 한번 쯤 출격해 줘야 긴장감도 가질 수
있으니 여러가지로 좋소. 그리고 무력 시위에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봅시다. 자경, 형주를 돌려 받지 못 하게 되더라도 이것만 주지시키시오. <우리에 진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고, 오래 끌 수록 빚은 늘어날 것이라고.>"
"알겠소. 공근 이만 가보시오.
영내엔 안 들어가겠소."
"어쩔 셈이오 ?"
"오늘 밤은 명월도 비추고 바람도 좋으니, 이 참에 강을 건너가면, 내일 쯤 형주에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오."
"곧바로 가면 힘들지 않겠소 ? 하루
묵고 가시오."
주유가 노숙을 배려하는 소리를 한다. 그러자 노숙은 주유를 경애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두 손을 높이 올려 작별 인사를 고한다.
"밤을 도와서라도 어서 빨리 형주에 도착하도록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