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라 이발도 하고 목욕탕도 가기위해 진해로 갔다.
니는 성격탓인가 몰라도 이발과 목욕탕은 고개 너머 진해로 가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생겨 났고 그로 인해 진해쪽의 이야기들이 컴,방에 자주 올랐다. 오늘은 전국의 누구나가 군항제가 열리는 봄에 벚꽃구경을 한번은 가 보았을 진해의 제황산(우릿말의 옛이름은
부엉산:부엉이 처름 생겼단다)의 진해 박물관을 찿아 보았다. 자세한 설명은 사진에 있으니 잘 보시기 바란다.
나중에 나올 사진이 먼저 나왔다. 내이포는 제포로 왜구에게 삼포(부산포 ,울산의 염포, 진해의 제포, 울산의 염포동, 진해의 제덕동으로 부산과 함께 지명이 남아있다.)
부엉산이 제황산이 된 사연.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다.
지금도 중원 로타리는 크게 변치 않았다.
웅천 공립보통학교는 현재 그자리에 있으나 얼마후 새로 조성된 이파트 단지로 이전된다. 그리고 계광학교는 웅동중학교로 마누라와 처남,처제 모두가 이학교를 졸업. 지금은 이 자리에 아파트가 있고 학교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갔다. 월하 김달진 시인이 계광학교 출신이다.(이 이야기도 컴,방에 올렸다)
얼마 전에 올렸지요, 웅동에 소재하고 도요지 올라가는 곳은 주택지로 개발중 .
어제 쯤이었을까?
지금도 웅동사무소(장가갈때는 창원군 웅동면사무소)와 같이 있다. 웅동초등학교
얼마후에 아쉽게도 아파트 단지로 이사간다.(울 마누라도 5학년까지는 여길 다녔고 얼마후 웅동면 청천리 소재 안청초등학교로 전학 했단다.) 고다.
계광학교는 지금의 웅동 중학교. 월하 김달진 시인도 여기출신.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선풍기 왼쪽이 유성기(전축)
전화기
벼(나락)이나 보리의 수매( 공출) 모습, 우리도 많이 부모님을 도와 드리고 , 學費(학비)도 여기서 나왔지요.
첫댓글 제1회 군항제는 1963년도에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