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나라 사진계의 원로 한정식 교수의 사진예술 개론에 대한 정리글임
1. 사진이란 무엇인가
1-1. 사진은 말이다.
사진은 어느 시각매체보다도 지시적 기능이 강하다.
사과를 사과로 나타내고자 할 경우, 사진만큼 구체적으로 정확히 묘사해 내 수 있는 매체가 없다
일상생활에서부터 과학,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사진이 없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성립
될 수 없다. 또한 사진의 실질적 쓰임이 의사소통과 기록이라고 하는 언어와 문자의 구실을 한다
1-2. 자연언어와 영상언어
자연언어는 추상적 음성내지는 문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실물 또는 현장과 관계없이 사물을
그 대치물인 기호로 전달하기 때문에 실물감, 현장감이 없어서 그 전달은 개념적이고 따라서
전달받는 쪽에서도 그 느낌이나 충격은 간접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은 실물이나 현장을 생생하게, 현장감 넘치게 전달해 줌으로써 그 느낌이나 충격이
직접적일 수 밖에 없다.
자연언어의 추상성에 비해 영상언어는 구체적이다. 말로만 들었을 때의 어떤 미인의 모습은 각자
의 상상에 의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모습으로 상상이 되지만 사진으로 보게되면 그 모습이 구체
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사람에 따라 만족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초가집' 하면 아늑한 시골의 정취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초가가 사진으로 찍혀 눈앞에 나타나면
어떤 형태의 초가인지 너무나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각자의 상상력을 빼앗아 버린다.
이것이 영상언어로서의 사진의 개별성이요, 한계이다.
장미송이에 달린 이슬방울의 영롱함은 사진이 아니고서는 그대로 그려 낼 수가 없다.
언어로는 제아무리 능력있는 시인이나 소설가라도 그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없다.
1-3. 영상언어의 참뜻
20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사진가들은 언어적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것이 영상의 참역할이 아님을
깨닫고 사진으서만 표현이 가능하고,사진영상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자연언어로는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그림이나 음악으로도 잡아낼 수 없는 사진적 메세지를 의식
하고 이를 영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사진은 거기서 부터 출발하였다.
이 세상에는 언어의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메시지, 언어로는 도저히 번역해 낼 수 없는
시각적 메시지가 한없이 많다. 분명 보이고 느껴지지만 언어로는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 그것을 위해 사진은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영상이 참된,독자적인 언어로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 대목에서이다.
1-4. 사진의 위치
사진예술은 미술과 문학의 중간에 위치한 독자적 예술양식이다. 평면으로 그 외형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평면이 회화적 평면과 달리 시간에 의해 규정되는 유동적 평면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미술에서 벗어난다.
또한 문학성을 띠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루고 있는 내용이 인간의 생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지 평면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학과는 외형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 둘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진예술을 이 두 예술장르 사이에 놓아 본 것이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사진 발명이래의 해묵은 쟁점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사진의
본질을 규명하면 답이 저절로 떨어지는 간단한 문제였다.
한마디로 해서, 사진은 그 자체로는 예술일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진은 말이기 때문
이다. 말(언어,문자)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새삼스러이 시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말' 그 자체로는 예술일 수가 없다. 말의 일부 기능이 심화, 발전되어 예술을
이룰 때 그것이 문학예술로 된다. 마찬가지로 사진 그 자체는 예술이 아니다.
사진의 심미적 기능이 심화, 발전되어 예술을 이룰 때 그것이 사진예술로 승화하는 것이다.
사진은 Susan Sontag의 지적처럼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매체일지언정 그 자체로 예술은
아니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결국 사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을
만드는 사람, 만드는 목적과 방법 그리고 능력에 따르는 문제인 것이다.
1-5. 사진의 분류
응용사진 ; 실 생활에 이용하기 위한 사진
- 자료사진 ; 학문이나 기술 등 전문분야의 보조적 자료로 쓰이는 사진, 기념사진,증명사진
- 보도사진 ; 신문,잡지 등의 시각적 기사로서의 사진
- 광고사진 ;
순수사진 ; 공리적 목적을 띠지 않는 사진, 자기표현만이 목적인, 예술로서의 사진이다.
- 예술로서의 사진 ; serious photo를 말하며,진지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사진, 느끼고 생각한
바를 충실하게 표현할 뿐 다른 목적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사진, 심상사진이라고도 한다.
- 다큐멘터리 사진 ; 인간의 생활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은 20세기 들어 사진적 자각 이후 사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분야로, 인간의 삶의 중심에 서서 인간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사진
의 중심을 이루는 분야이다.
- 회화적 사진 ; 작가의 주관적 감성을 담은 것도 아니고 사회와 인생을 다루는 기록적
사진도 아닌, 사진의 외형성에서 그 심미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조형적
이고 감각적인 사진
2. 사진의 특성
2-1. 현실성
2-1-1. 기록성
사진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을 떠나서 사진은 존재할 수가 없다. 현실에 있는 것만 찍히
지, 없는 것은 찍히지 않는다는 사진의 특성이 사진의 기록성을 이루는 뿌리가 되고 있다.
사진의 기록적 가치는 그것이 인류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데에 또 하나의 뜻이 있다.
의식있는 사진가는 그가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에
카메라를 댄다.
2-1-2. 현장성
사진의 현장성은 단순히 현실을 찍는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사진가가 그 현실에 입회했다는
사실에 더욱 큰 뜻이 있다. 즉 사진가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죽음과 함께하고 역사와
더불어 있었다는 사실이 사진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로버트 카퍼의 종군사진들)
다른 예술가는 피할 수 있어도 사진가만은 피할 수 없는 것, 다른 예술만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어도 사진만은 몸으로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것이 사진의 현실성이요,현장성
이다.
2-1-3.발견의 예술
사진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에는 만든 솜씨(기술) 보다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는
눈(감성 또는 지성)이 더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흔히 사진을 일컬어 '발견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바로 사진의 이런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2-2.우연성
우연성은사진의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진을 예술로 만드는 데에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요소로
오해되기도 했다. 우연성은 극복해야 할 사진의 부끄러움으로 이해 되었다.
그리하여 이 우연성을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거기에 피어난 꽃이
'결정적 순간'의 주인공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었다. 작가의 호흡이 대상의 외적조건과
일치되는 극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우연성을 극복할 수 있었고, 역량을 인정
받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사진에 찍힌 영상치고 우연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현실 자체가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도 인정했듯이 우연성은 사진의 한 특성이지 수치가 아니다.
우연성이 부끄럽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연성이 사진의 특성임을 자각하지 못한 체, 매미채로
매미 잡듯 신기한 소재나 찾아 카메라를 메고 방랑할 때의 이야기이다. 우연성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그것은 사진에 또 하나의 지평을 여는 창조
행위, 예술작업이 된다.
2-3. 고립성
2-3-1. 시공간의 단면
사진은 하나의 고립된 이미지이다. 시간적으로 한순간이 잡힐 뿐이며, 공간적으로 일부분이
찍힐 뿐, 연속된 시간과 이어진 공간이 전부 찍히지 않는 것, 이것이 사진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를 때의 그 현실이란 시간,공간의 연속체임과 동시에 감각적으로도
종합적인 현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시각을 포함해서 후각,청각,촉각,거기에 미각까지의
모든 상황이 종합되어 두 글자로 함축된 낱말이다.
그러나 사진은 이러한 종합적 상황으로서의 현실을 결코 그대로 찍을 수가 없다. 시간적
으로, 공간적으로 어느 한 부분만이 잡힐 뿐이다. 한 장의 사진은 물리적으로 한 개의 시,
공간이 잡힐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상황만을 제시해 준다. 마치 한개의 낱말처럼 한장의
사진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현실을 담을 뿐이다. 그것이 또한 종합적 상황으로서의 현실을
그대로 담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엮음사진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2-3-2. 사진적 리얼리티의 한계
사진이 현실이 아니라 현실적 이미지라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진의
예술성은 사진이 일종의 이미지라는 인식 위에서 가능해진다. 사진영상이 현실이 아니니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리얼한 사진' 이라는 말은 현실 그대로의 사진이라는 뜻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재창조되어
보다 현실감 있게 표현된 사진을 가리키는 말이다.
리얼리티가 사진의 생명이라고 해서 현실을 현실 그대로 옮겨 놓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사진에 있어서의 현실성, 즉 리얼리티라고 하는 것은 해석된 현실이요, 재창조된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진에 임해야 성공적인 사진에 이를 수가 있다. 사진가는 현실을
복사하는 사람(copier)이 아니라 현실을 자기 나름으로 번역하는 사람(interpreter) 이다.
2-3-3. 영상화 작업
사진은 시간이나 공간의 한 토막을 따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시간이나 공간은 그것이
하나의 환경으로 이어져 있을 때 종합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사진은 그 한 조각만
따 오기 때문에 종합적 해석이 불가능하다. 한 장 사진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부여될 수
없는 커다란 이유이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고립된 이미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을 일러
'영상화 작업' 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복제품으로 떨어지기 쉬운 영상을 단순한
복제가 아닌, 작가의 의식으로서의 영상, 창조작업으로서의 사진, 정제된 이미지로서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영상화 작업' 이라고 일컫는다.
한마디로, 자기 이미지를 사진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을 일컫는다고 생각하면 가장 알기
쉬울 것이다. 이 영상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은 단지 한 장의 '복제품'으로
떨어질 뿐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토로한 예술로 승화될 수는 없다.
영상화 작업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진의 고립성에 대한 인식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진을 찍었을 때의
느낌도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되살아나 그 사진이 당시의 느낌이나 생각이 잘 표현된, 잘된
사진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보는 제3자는 그런 상황이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사진을 접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나 감정을 겪지 못한 제3자가 그 사진에서
똑같은 반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상황이나 감정 등이 제대로 생생하게 전달이 되었
을 때 그 사진은 영상화 작업에 성공한 것이 되며, 그러한 사진이 볼 만한 사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주관적인 것이니까 전달이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어찌
되었든 표현해 놓았으니까 더 이상 내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사람도 있다.
전달은 표현이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표현이란 주관적 감정의 객관적 제시를 뜻한다.
자기만 알고 있는 당시의 상황, 자기만이 느낄 수 있었던 당시의 미묘한 감정을 남들도
똑같이 알고 느낄 수 있게 영상으로 바꿔 놓는 작업이다.
표현은 또한 설명이 아니다. 설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만 표현은 감각적이고 구체적
이다. 설명이 사진에 나타난 개별적 상황을 하나하나 읽어 보고 그 종합적 의미를 찾아내게
하는 방법이라면, 표현은 동시적으로 상황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을 뜻한다.
비유해서 말하면, 어두운 방안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말로 자세히 일러주는 것이 설명
이라고 한다면, 설명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불을 켜 줌으로서 단번에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표현이다.
2-3-4. 사진과 공간
여인의 늘씬한 각선미를 과시하는 다리만 찍힌 사진에서 우리는 사진공간의 연속성을 실감
한다. 사진만으로 볼 때는 다리만 나와 있기 때문에 실제 여인의 미모나 나이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씬한 다리만으로 그 여인이 미모일 것이고, 몸매
마저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진영상 고립성의 한 단면이다. 즉 사진영상은
다만 그 영상 자체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사진 밖의 현실까지를 상상하게 해준다는 사실
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이 점에 유의해 가면서 찍어야 한다. 사진영상 자체로 끝나기를
바라는 때가 있는가 하면 사진 밖으로까지 연상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2-3-5. 사진과 개념
언어가 관념적, 추상적인 매체로 개념을 나타내는 데 가장 유리한 매체인 데 반해, 사진은
구체적, 감각적이어서 개념을 나타내는 데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으로
'개'를 찍을 수 없다. 개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포유류, 개과의 짐승, 가축으로 사람을 잘
따름..." 등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진으로는 개를 찍어도 이러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하나로 떨어진 구체적 시각 영상은 그 사물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는 줄지언정 사물의
개념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이 사진영상 고립성의 또 하나의 측면이다.
결국 사진에 제목을 붙이거나 설명을 붙이는 것은 관념적 매체와 구체적 매체를 연결시킴
으로써 두 매체 사이의 장단점을 보완해 주고 그를 통해 보다 완벽한 전달을 꽤하려는
행위인 것이다.
2-3-6. 영상의 폐쇄성
구체적 사물을 통해 내적 경험을 표현하려면 그 사물에 관한 공통된 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통된 내적 경험이 없을 때 어떤 사물에 대한 반응이 같을 수가 없다.
공통된 반응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전달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찍는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공통된 내적 경험을 가지지 못한 제3자가 그
사진을 보면서 작가와 똑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
다. 내적 경험이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한 장의 사진은 단순한 한 개의 형태, 한 사물의
겉모습일 뿐이다.
사진영상은 이렇게 공통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만 경험이라고 하는 폐쇄회로를 통해 뜻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공통된 내적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의미를 전달하느냐 하는
표현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영상화'라는 말을 자주 썻지만 '영상화'란 이때 등장하는 말
이다. 제3자에게 나를 표현하기 위한 사진적 창조작업이 '영상화'라는 것이다. 말은 간단
해도 이처럼 어려운 작업도 실은 없을 것이다. 이 영상화 작업에 성공하면 사진은 끝이다.
이 영상화 작업을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진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영상화 작업의 성공비율이 높은 사람을 일러 사진가, 작가라 하는 것이다.
2-4. 복사성
사진은 현실, 현상을 그대로 복사, 재현시켜 준다. 3차원의 입체가 2차원의 평면으로 바뀌
기는 하지만 사진영상이 현실적 사물에 그대로 대응이 된다는 점에서 이 복사력은 사진의
커다란 특성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복사적 특성으로 인해 사진의 예술성이 늘 시비의 대상
이 되기도 했다. 즉 복사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선명히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 단풍이나 꽃이 또는 여인이 아름답게, 선예하게 찍혔다고
해서 그것 그대로를 '예술작품'으로 착각하고 발표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 사진의 기록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서 단순한 기록을 해 놓고는 예술 작업을 마친 듯한 자랑스러움에
심취한 사람들, 이러한 부류의 사진가들은 아직도 적지 않은 수를 이룬다.
작가의 확실한 생각이나 느낌이 드러나지 않은 단순한 외형묘사, 또는 남들이 이미 여러번
영상화하고 발표한 주제들을 새삼스럽게 들먹이는 빈곤한 창의력, 요컨대 작가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진을 우리는 복사물로 볼지언정 예술작품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아니라고 해서 섭섭할 것은 없다. 사진의 복사력이 없었던들 인류문화가
이처럼 발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으로서의 사진에도 복사성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 값이 다른 미술작품에 비해 싸게
형성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미술작품은 단 한 점밖에 생산되지
않지만, 사진은 얼마든지 복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5. 자동성
사진의 자동성은 사실상 숙명적인 것이다. 사진가가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서 부터 렌즈,
확대기,인화지,현상액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사진 메카니즘에 의해 확고하게 결정지어져
있어 사진가가 생각나는 대로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1/125초라고 하는 시간은
사진가의 상상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며, 이를 1/123초 또는 1/333초 등으로 마음
대로 바꿀 수가 없다. 설령 바꾼다고 하더라도 필름에 주어진 관용도에 의해 농도상의 차이
가 생기지 않는다. 이 자동성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진예술은 결코 '손'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사진을 '발견의 예술' 이라고 했거니와
사진가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여 선택한다. 따라서 사진은 보다 지적인 '머리의 예술'
이다.
3.카메라와 렌즈
볼펜을 쥐고 있다는 의식없이 글을 쓰듯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의식없이 대상에 몰입할 때
작가의 의식은 투명하게 영상화한다.
사진은 사물을 왜곡시키거나 변형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사물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
이다. 이 경우의 '의미'가 꼭 어떤 '뜻'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이 지닌 남다른
아름다움이라든가, 독특한 분위기라든가, 아니면 신선한 느낌 등을 모두 포함해서의 이야기
이다. 발견의 예술이라는 말의 발견이란 이렇게 어떤 '의미'만이 아니라 사물의 아름다움,
분위기,느낌 등을 모두 포함한 의미이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 의미나 독특한 분위기를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거나,
사진예술의 참다운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기한 소재만을 찾아 헤맨다.
카메라나 렌즈로 사진을 '만들려' 하지 말고, 현실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어야' 한다.
찾아낸 뒤에 거기에 렌즈를 들이댐으로써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은 태어나는 것이다.
카메라의 우열이 사진의 우열로는 결코 이어지지 않는다. 훌륭한 시가 좋은 볼펜에서 나온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는 시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볼펜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진은 사진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카메라나 렌즈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승부는 작가의 눈, 작가의 머리, 작가의 마음에 달려 있다.
4.촬영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즉각적으로, 틀림없이 셔터를 누르려면 사진적 훈련이 완벽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 상황에 대처하여 그 상황의 에센스를 정확히 잡아내는 능력은 머리 훈련만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은 훈련과 노력으로 얻어진다. 어쩌다 한번쯤 촬영
을 나가는 그런 자세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축구선수가 늘 공과 함께 있어야 하듯, 사진가는
항상 카메라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자주 찍어야 하며, 필요로 하는 피사체를 만났을 때는
원하는 상황이 잡혔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필름을 아끼지 말고 충분히 찍어야 한다.
플레이밍(framing)이란 찍고자 하는 대상을 파인더를 통해 따내는 작업을 가르킨다. 프레이
밍은 현실 공간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공간을 필요한 만큼 따내는 작업이지만 실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을 따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진과 회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하는 예술이다. 찍는 것이 동적임에 비해 그리는 것이
정적이라는 것, 찍는 것이 무작위적임에 비해 그리는 것이 작위적이라는 것, 찍는 것이 순간
적,반사적임에 비해 그리는 것은 점진적,의식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가 쉽게
이해된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구도를 알아야만 하고, 그것이 사진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지 구도가 아니다. 사진에서는 셔터찬스가 결정적 역할을
하지 구도는 사진의 내용을 결정지어 주지 못한다. 아무리 구도가 좋아도 결정적 순간을
놓치고 나면 그것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구도는 내용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렇게 형성되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구도에 맞추면 사진에 생기가 없어지고 형식적인 외형미만 보일 뿐이다.
구도를 안다고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문법에 정통하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을 생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나 소설
을 쓰기위해 문법을 공무한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그런 것을 아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
면서 구도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도에 관한 지식이 오히려 사진을 찍은 데 방해가 된다면 독자 여러분
들이 이해해 줄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기 전에 구도를 생각하는 것은 마치 산책 나가기 전에 인력의 법칙에 대해 알아
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법칙과 규칙들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서 추론된 것이다. 이들 법칙은 작품에 대한 반성과 사후 검토에 의해서 이루어진 산물일
뿐이지 결코 창조적 활동을 위한 방법은 아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남의 좋은 사진, 고전으로 남아 전하는 명작이라든가 새로 나오는
충격적인 영상들을 많이 접할 필요는 있다. 거기에서 구도나 조명등을 찾아 배우려 하지 말
고, 그들의 위대한 정신을 찾아보고,명작으로 남게 된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구도란 그러는 가운데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지 그림을 그려가면서 학습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진을 많이 보고, 열심히 그리고 많이 찍다 보면 거기에 구도라고 하는 외적 형식은
저절로 익혀진다. 구도에 맟춰 찍은 사진은 문법에 맞추느라 애를 쓴 글처럼 맛없는 사진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구도에 맟추려 들지 말고, 대상에서 얻은 느낌으로 곧장 파고들어
찍는 훈련을 쌓는 것만이 명작을 남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할 일은 무엇보다도 그 사물을 잘 관찰하는 것이다. 그 사물의 어떤
점이 나의 눈을 끌었는지, 무엇이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인지 그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 것이 없으면 찍을 수가 없다. 찍어서도 안된다. 그런 내용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찍으면 단순한 그림만 나오지, 남을 감동시키는, 적어도 남의 눈을 끄는 사진은 찍히지
않는다. 그런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일러 '발견의 예술'이라 하는 것이다.
프레이밍은 불필요한 사물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다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빼어 버리는 몇가지 요령은
첫째, 대상으로 한 발 더 다가서기
둘째, 조리개를 열어 줌으로써 심도를 얕게 하여 필요한 요소 이외에는 지워 버리기
셋째, 방해가 되는 요소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원하는 상황이 일어나기까지 기다리기
넷째,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주변정리를 하거나 빼어 버림으로써 필요한 요소만 남기기)
다섯째, 인화할 때 잘라내기 (크로핑)
5. 빛
사진은 빛으로 빗는 예술이기 때문에 사진가는 빛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빛의 표정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빛의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빛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진가의 제일 첫째 조건은 이 능력부터 갖추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을 볼 줄 안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경우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물체에 비추인 빛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광선의 방향, 세기 등이 물체에 어떻게 작용
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광선이 그 소재에 알맞은 것
인가를 올바로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물체에 비추인 빛의 표정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빛에는 빛에 따른 표정이 따로
있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는 말은 빛의 미묘한 표정을 그대로 잡아낼 수 있다는 데에서
하는 말이다. 어느 예술도 사진만큼 빛을 알고, 느끼고, 효과적으로 살려낼 수가 없다.
빛이 빛 자체의 맛으로 그대로 살아나는 예술은 사진뿐이다.
셋째, 빛을 어떻게 재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빛이 인화지 위에서 어떻게 재현될 것
인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6. 사진적 시각
6-1. 사진적 시각.
좋은 사진, 적어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술을 통해서 사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진적 시각이란 바로 이 능력, 즉 사진술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사물
을 사진영상으로 바꾸어 볼 줄 아는 능력을 가르키는 말이다.
사진적 시각이란 현실을 사진영상으로 번역해 낼 때 필요한 사진 문법으로써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가. 평면성
사진적 시각에 대한 이해는 우선 사진이 평면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의 인식에서부터 출발
해야 한다.평면에 어떻게 현실감,입체감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도 필요하게 된다. 반대로 평면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도 사진이 평면이라는 사실에 대한
적극적 활용이다. 요즘의 회화적 사진,실험적 사진에서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나.정지된 움직임
움직이지 않는 사진이 움직임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움직임의 상징화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움직임의 어느 한순간을 고정시킴으로써 그 전후의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눈이 있어야 한다. 움직임의 어디쯤을
잡아야 그 움직임의 앞뒤가 한꺼번에 느껴질 수 있을까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움직임의 상징화의 또 다른 방법은 블러(blur)나 패닝(panning) 기법이다. 이들 기법은
영상 자체는 분명하게 표사되지 않지만 사물의 움직임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움직임을 시각화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다.
다.추상화한 색채
사진은 현실감,운동감 뿐만이 아니라 색채 또한 결여된 예술이다.흑백사진은 물론이고 컬러
사진에서도 실제의 색채화는 비할 수 없을 만큼 모자라는 색채이다. 요즈음 컬러 사진의
색채가 점점 개성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진이 예술인 이상 작가의 개성이 사진영상에
나타나기 마련이고, 개성이 내용에 한하지 않고 형식이나 표현방법에 까지 포함해서의 얘기
이고 보면, 색채에 까지 개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추세다.
이에 반해 흑백사진은 무엇보다도 색채가 추상화한 사진이기 때문에 컬러 사진에 비해 보다
'예술적'이라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 '사진은 역시 흑백사진이라야 해' 라든가 '컬러사진은
깊은 맛이 없어' 하는 등의 말은 바로 흑백사진의 추상성과 컬러 사진의 현실성을 지적한
말로 일리있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각각 나름대로의 뜻과 맛이
있어서,그것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신경을 써야지,무엇이 다른것 보다 낫다고 하는 기준
은 바로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울 필요도 없고, 세워서도 안된다.
라.렌즈의 시각
렌즈의 시각은 다음 세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육안과는 완전히 다른 시야, 즉 보이는 범위와 느낌의 차이(특히 망원렌즈와
광각렌즈의 시야)는 육안의 일상적 시야와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모두 왜곡된 시야요,시각
이다.처음 망원이나 광각의 시각에 맛을 들이면 그 신기한 영상에 현혹되어, 아무것도 아닌
사진에 스스로 도취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시간이 가면 싫증이 나기 쉽다.
렌즈의 왜곡은 신기함을 유발하기도 쉽고, 싫증을 가져오기도 쉽지만 알맞은 경우에 알맞은
렌즈의 왜곡은 거꾸로 사진을 살려내어 볼 때 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둘째, 인간의 시력을 뛰어넘는 초능력, 즉 망원렌즈를 이용해 인간의 시력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의 물체를 찍거나,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찍는다든가 하는 렌즈의 시력이 그것이다.
셋째, 인간의 시각이 전혀 이룰 수 없는 특수한 시간, 이른바 팬 포커스와 아웃포커스의
시각을 생각할 수 있다. 사진의 구석구석이 모두 선명하게 찍히는 팬 포커스는 인간의 눈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렌즈의 시각이다.
마.고정된 틀
인간의 시각은 일정한 범위로 국한되지만 그 대신 눈이나 목을 움직임으로써 사실상 시야
의 한계를 느끼지 않는다.그에 비해 사진은 일정한 범위만 찍히기 때문에 시야가 고정되
고 주위와 분리되기 마련이다. 사진영상의 고립성은 여기에서 온다. 주위 환경과의 관계
에서 파악되던 사물이 틀 안에 갇혀 따로 떼어져 놓여 있을 때 애초의 느낌이나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여기에서 주위 현실과 분리된 영상만으로 어떻게 현실적 느낌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바.빛을 쌓는 힘
사람의 눈은 현재 주어진 빛만으로 사물을 보지만 사진술은 빛을 어느 정도까지 쌓아서
사물을 파악할 수 있다.즉 빛을 오래 주면 그동안의 빛을 쌓아 사물을 묘사할 수 있는것이
카메라의 메커니즘이다. 빛을 쌓는 힘을 이용하면 어두운 밤도 환한 대낮으로, 환한 대낮도
어두운 밤으로 바꿀 수가 있다.
사.단일 감각으로서의 시각
사람의 감각은 오감을 통한 종합적인 느낌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데, 사진은 이 종합적인
느낌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데에 사진가의 어려움이 있다.
시각이라는 단일 감각만으로 표현하려면 소재가 특별할 필요가 있고 표현방법이 색다를
필요가 있다. 시각적 요소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보니
소재주의에 흘러 언제나 신기한 소재을 찾아 헤매게 되고, 신기한 소재를 발견하면 남들
모르게 숨기려 들게되고, 또는 특수기법에 매달리려는 좋지 못한 버릇이 붙기 쉽다, 좋지
못한 버릇이란 사진의 내용보다 외형으로 남의 눈을 끌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사진은 눈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끌어당겨서 놓아 주지 않는, 그러한 깊이가 시각적으로
표현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예술이나 마찬가지지만 사진 역시 소재와
기법에 앞서, 주제, 곧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 깨달음을
받혀주는 소재,기법이라야 비로소 그 가치가 생긴다.
아.앵글에 따른 왜곡
암벽 등반가의 스릴 넘치는 암벽 등반 사진도 그저 평평한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으로 보일
수가 있다. 단일한 사물을 찍을 때에는 그것이 기운것인지 바로 선 것인지, 아니면 선 것인
지 누운 것인지 또는 사물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가 느껴 지도록 묘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특수기법의 시각
사진에는 다순히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묘사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특수한 사진적 기법
이 있어서, 이 기법을 통하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사물이 탈바꿈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별개의 시간과 공간이 한 화면에 몽타주로 나타나는가 하면,솔라리
제이션을 통하여 음양이 바뀌는 한 순간을 고정시킴으로써 사람의 눈으로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미묘한 세계를 뒤집어 보는 듯한 느낌으로 주기도 한다.
이러한 기법은 사진술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 영상이나
자연스러운 시각이 아니기 때문에 외형이 내용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그런 사진은 다만 신기
함을 노린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특수기법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기만 하면 시각적으로
상당히 효과적인,그리하여 성공작으로 높이 평가되면서 잊지 못한 영상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결코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비현실 세계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에게는 경원 당하기도 한다.
6-2. 사진의 거짓
사진은 '진실'이라고 해서, 파이닝거도 사진의 특성의 제일 첫머리에 '진정성'을 내세웠다.
있는 그대로 찍힌다는 것, 있는 것만 찍히고 없는 것은 찍히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찍힌것
은 언제나 있었거나 있는 것이라는 데에서 이 말은 올바른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진실'일 수는 없다. 사실과 진실은 다른 것이다.
진실이란 가치의식이고, 사실이란 가치판단 이전의 한 현상일 뿐이다. 그 현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의식으로, 가치가 부여된 후에야 그 사실은 진실로도 허위로도 귀속
된다.
사진은 사실이지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사진은 거짓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작가가 연출했거나 조작을 했다는 것과는 관계없이 사진자체의 한 특성이다.
사진이 하는 거짓은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앞서 살펴본 '사진적 시각',
곧 메카니즘이 만들어내는 거짓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 즉 사진가가 만들어내는 거짓이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지는 거짓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가.미화의 거짓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사진을 찍기 전에 행하는 여러 행위들, 예를 들면 구도
를 맞추고,김치~를 강요하며 환한 웃음을 강요하거나 머리를 빗고,너그럽거나 아름다운 미
소를 지어가며 먼 구름을 쳐다보는 행위가 모두 미화를 위한 거짓이다.
'수정'이라고 하는 수단이 발견된 지도 이미 백여년이 넘는데, 이 수정이야말로 '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며, 거짓의 대표적 보기이다.
관광명소의 사진도 사진가가 그 장소를 가장 멋지게 찍기위해 가장 알맞은 시기와 장소
를 택해, 결정적이라 생각되는 순간을 기다려 셔터를 누름으로써 멋진 사진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후 그 현장에 간 사람은 그와 같은 결정적 순간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사진과
실제 관광명소의 격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화는 사실상 있었던 것이니까 꼭 거짓이라고 규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
든지 언제나 찍기만 하면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언제 누가 보아도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는데에서 거짓으로 몰리는 것이다. 미화가 반드시 아름답게 만드는 경우만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다. 현실보다 더 더럽거나 보기 싫게 묘사하는 것도 결국은 작가에 의
해 왜곡되었다는 의미에서 '미화'의 일정이라 할 수 있다.
나.선택의 거짓
사진을 찍는 사람은 우선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찍을 대상이
선택되면 어떻게 찍을 것인가 하는 접근방법 또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택이 결국
거짓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수많은 사물중에서 무엇을 고르느냐에 따라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울'을 찍는 경우 서울
어디에 카메라를 대느냐에 따라 서울은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다. 옛 서울의
자취를 더듬어 그 쪽으로 카메라를 향하게 하면 그의 사진은 고전적이고 한국적인 정취에
아늑하게 잠긴 서울이 찍힐 것이고,반대로 서울을 공해와 범죄에 찌든 비인간적 공간으로
보는 이의 눈에 고층빌딩은 마치 묘석처럼 음울하게 보이고, 사람들은 살벌하거나 무표정
한 얼굴이 찍힐 것이다.
선택이란 주관적 관념과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선택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
마다 색이 다른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안경이 소위 패러다임이라는 것으로, 이
패러다임에 의해 사물은 각 다른 의미로 인식이 된다.
흔히들 사진을 일러 '객관적 기록'이라 하지만 실은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객관적
사진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이미 찍혀진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작가의 주관적 통제를
거쳐 선택된 소재와 접근방법으로 영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전형화의 거짓
피아노 앞에서 찍힌 사람을 보면 음악가라 생각하게 되고, 팔레트를 들고 서 있으면 화가
라 짐작된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같은 의도를 갖고 그런 세팅(연출)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화의 거짓의 대표적 경우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찍은 사진중에 갓 쓰고 장죽 문 노인의 사진이 많다거나 신문팔이
소년이나 아이 업은 행상 아주머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 대는 것도 외국인의 뇌리에 박힌
한국적 이미지에 맞춘 전형화의 거짓의 가장 좋은 보기이다.
일본의 후지산,기모노,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스테이스 빌딩을 찍어오는 것
도 전형화의 유형이다. 전형화의 거짓은 창의력이 없는 사진가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의력 있는 사진가라도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안일의 수
렁일 수도 있다.
7. 주제와 소재
주제란 사진의 의미, 곧 사진가가 사진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사물, 즉 피사체가 소재이다.
주제와 소재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를테면 사과를 찍은 사진에서 사과를
가르켜 주제라 하는 경우이다. 그것이 주된 소재라의 말의 준말로 쓴 것이라면 '주재'라야지
'주제'라 쓸 수는 없다. 주제란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중심 사상, 곧 테마를
가르키는 말이다.
작가가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은 그대로 사진의 주제가 된다. 그러나 주제가 될 만한 것 중
에도 사진으로 찍어서 효과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
이를테면 애국심,효도,고뇌,갈등, 선과 악 등은 사진에 알맞지 않은 주제이다.
주제의 시각화 작업에 임해 유의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참고로 들어보면
첫째, 언어의 중독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주로 문제에 의한 정신생활을 영위해 왔기 때문에 모든 현상이 언어로 표현, 전달
되어,언어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사진이나 그림을
감상할 때, 또는 음악을 들을 때 조차도 말로 된 해설을 원한다.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로,멜러디로,색채로 표현한 것인데 그것을 다시 말로 바꿔 해설해 달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다. 화가나 사진가들이 해설을 요구하는 관객에게 그냥 보이는데로 보면 된다
고 회피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주제를 영상화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언어의 개념에 사로잡혀 말이 가르키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사물이 뜻하는 바, 색채나 선이 상징하는 바, 분위기나 환경이
암시하는 바를 같이 관찰해서 그 느낌을 그대로 시각화하도록 연구한 것이 올바른 영상화
작업의 첫 걸음이다.
둘째, 통속적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키스를 하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검정색은 죽음이나 침묵을 상징
한다고 넘겨 버리기 일쑤이다, 그러한 암시나 상징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통속적으로 이미 굳어진 관념을 따른 다는 것은 창작을 포기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진가는 그 사물이 뜻하는 단 하나만의 의미를 찾아 시각화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작가가 어떤 관념이나 개념의 강요해서는 안된다.
대체로 서툰 작가일 수록 제목을 거창하게 단다, 헐리는 낡은 집을 찍어 놓고 '현대문명의
종말'을 외친다. 작가는 사진에 나타나 있는 것만을 말하고, 그 말이 들리도록 찍어야 한다.
사진에 나타나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제목이나 설명으로 보충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
의 무능을 뜻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에 제목을 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제목은 사진에 나타나지 않으 개념을 억지로 부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진에
드러나 개념을 보다 명확히 짚어 주기 위한 길잡이인 것이다.
사진에 알맞은 주제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 않는 것, 곧 구체적이고 시각적이어서 보면
금방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진의 주제로는 가장 알맞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
하면, 시각으로만 전달이 가능한 어떤 느낌이라든지 생각 또는 생각도 느낌도 아닌 무엇이
있다면 그러한 것들이 사진적 주제로 가장 알맞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사진은 나름대로의 영역을 새로이 찾아내었다. 즉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발견, 이를 사진 고유 영역으로 개척한 것이다. 이미 영상언어의 참뜻에서 밝혔듯
사진은 이제 눈에는 보이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언어의 밖에 존재하는 세계로
부터 오는 메시지를 받아 시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에는 구체적이어서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관념으로도 설명, 표현이 불가능한 메시지가 따로 있다. 그러한 메시지는 시각
적인 것이지만 프레임과 셔터찬스가 사진가의 내면과 어울리는 어떤 순간에 문득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사진이 아니고는 잡기 어려운 메시지인 것이다.
사진의 소재로 알맞은 것은 그 존재 자체가 구체적인 것, 외형적인 것, 그리하여 감각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사물의 질감이 생생하다든지, 생긴 모습이 특이하다든지,
벌어지는 사건이 진기하다든지 할 때 그 소재는 극히 사진적이라 해도 좋은 것이다.
결국 사진에 알맞은 소재란 시각적으로 강렬한 것이라고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
아무것이나 사진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것이나 마구 찍어대는 말라. 흔한
소재는 피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나 노인의 사진에 우리는 이제 지칠 지경이 되었다. 단풍과
설화는 '일요사진가들' 그룹전의 단골 메뉴처럼 되었다.
문학적 소재 또한 피해야 한다.(애절한 전설이 얽혀있는 치마바위와 같은 소재). 시인은
한산섬에서 이순신 장군의 인품과 탁월한 전술을 회상하며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한 편의
시를 쓸 수도 있지만 사진가가 찍어 놓으면 어딜가도 흔한 파도나 풀잎일 뿐이다. 사진은
과거를 찍을 수 없는 매체이다.
소재를 찾아낼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눈이다. 사물을 볼 줄 아는 눈이 없는 한,
사물이 지닌 의미를 읽어낼 줄 모르를 한, 황금같은 소재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가 않는 법
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소재를 찾아 한없이 밖으로만 헤맨다. 사진이 잘 안 되면 소재 탓을
하고, 좋은 사진을 찍은 사람을 행운아로 본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 사진가가 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이 눈을 길러야 한다. 사물을 볼 줄 아는 눈, 사물의 의미를 꿰뚫어 볼 줄
아는 날카로운 지성이나 감성이 사진가에게는 중요하다. 이를 일러 소위 소질이라 하기도
한다. 모든 예술애 공통되는 주문이기도 하지만 소질은 사진가가 갖추어야 할 첫번쨰 덕목
이다.다만 소질만 믿고 게으르면 사진에 발전이 없고, 소질이 없다 해도 노력을 하면 개발되
는 것이 또한 사진이다. 사진의 경우 소질은 손재주가 아니라 '눈'으로, 이 눈은 타고 난
감성만이 아니라 지성으로도 길러진다.
8. 작품이란 무엇인가
8-1. 작품
예술사진은 기념사진,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르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진이
예술작품으로 남는 것이다, 예술사진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진이나 예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결국 작품이란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진을 가르키는 말로 이해해서 '작가'라는 말에 대응해
가볍게 쓸 수는 있으나. 일반적 사진에 대해 예술적 사진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쓴
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일 것이다.
8-2. 작품성
무엇이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잘라서 '창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줄 때, 예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볼 만한 사진,
가치있는 사진이 된다.
창의성은 다시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주제가 새로워야 한다. 남들에 의해 아직 거론되지 않은 주제라야 한다, 비록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남다를 경지를 열어 줄 때, 그 주제는 가치를 가지게
되고, 볼 만한 사진,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요즈음 젊은 사진가들이 무슨
유행처럼 장애인, 특히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찍은 사진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데, 그들이
들고 나오는 주제 역시 '장애인도 정상인과 마찬가지 인간이다'하는 남들 다 써먹은 싸구려
휴머니즘인 것이다.
둘째, 소재도 가능하면 새로운 것이 좋다. 생각보다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은 소재가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솜씨, 해석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흔한 소재, 많이 다루
어진 소재라도 그것이 주제의식으로 재해석 되었을 때 소재 자체도 다시 새로워진다.
9.사진과 예술
9-1. 사진과 회화의 공통점
첫째,사물의 형태에 바탕을 둔 외형적인 이미지로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시각예술
이다
둘째,평면으로 나타난다는 점
셋째,물적 이미지, 즉 이미지가 물체화되어 있다는 점 (벽에 걸거나 할 수 있는)
9-2.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
첫째, 사진은 과학을 바탕으로 성립함에 비해, 회화는 과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둘째, 사진이 인식의 예술임에 비해 회화는 창조의 예술이다. 회화는 아무리 현실의 사물에서
동기를 얻은 것이라 해도 그 사물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바탕으로 화가가
그려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진은 현실의 사물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다. 옮기되, 해석을
가해 옮겨 놓는 것, 그로 해서 사진 역시 창조적일 수 있는 그러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둘은
다른 것이다, 사진을 발견의 예술이라고 했지만 그 발견이 외형적 발견이 아니라 이렇게 의미
의 발견, 곧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인식의 예술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같은 사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도 그림과 사진은 다른다, 즉 그림은 작가의 산물이고
사진은 자연의 산물이요,과학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은 들여다보면 볼 수록 대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지만 그림으 들여다보면 볼 수록 화가를 자세히 알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사진이 분석적 매체임에 비해 회화는 종합적 매체라는 것이다.
사진은 시간,공간적으로 어느 일부분이 찍힌다, 즉 시간과 공간이 분석된다. 거기에 비해
회화는 화가의 종합적 판단이 그림위에 종합된다. 설사 순간적 판단을 근거로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순간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반대로 사진은 비록 종합적인 결론을
사진으로 옮긴다 해도 찍히는 순간 그것은 그 사물이나 현실의 일부분의 모습으로 고정된다.
넷째, 사진이 시간예술이라고 한다면, 회화는 공간예술이다.
사진 역시 회화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공간예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사진의 공간은 시간이 형성시켜 주는 것으로, 시간없이 성립될 수 없는 공간임에 비해, 회화
는 단순공간이을 구분해서 한 말이다.
사진이 시간예술이라고 하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있다. 사진은 시간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이란 변하는 시간과 항상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현실을 찍은다는
것은 변하는 시간대의 어느 한 순간을 잘라 낸다는 뜻이다. 이것을 짧게 잘라 놓고 보면 순간
이지만 한데 모아 놓고 보면 역사가 된다. 사진의 기록성은 이런 것으로 사진을 시간예술이라
고 하는 참뜻은 사실상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째, 영상 제작 방식의 차이다.
회화가 빈 공간에 필요한 사물을 하나한 더해 가면서 화면을 구성해 감에 비해, 사진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현실 공간 속에서 작가가 필요호 한 대상만 골라 하나하나 빼 가면서 영상을
정리한다. 회화가 덧셈이라면 사진은 뺄셈인 셈이다.
9-3. 사진의 예술성
사진에 찍힌 것은 현실적 사물 내지는 현실이지만, 그것을 선택한 사진가의 눈이 그 뒤에
있기 때문에 찍혀진 사진은 현실에 대한 해석이거나 현실적 사물에 대한 작가의 이미지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현실이라는 것도 이미 작가 나름대로 인식의 필터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니까 현실에 대한 인식부터가 이미 주관적이 아닐 수가 없다. 주관적 인식의 외형화가
사진이라면, 사진은 객관적 현실에서는 이미 떠난 것이고, 객관에서 떠난 주관적 이미지일 바
에는 사진을 보다 철저하게 주관적으로 밀러붙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뒤를
따르게 된다.
예술로서의 조건을 종합해 보면
첫째,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일 것
둘째, 개성적, 독창적일 것
셋째, 상상의 산물일 것
넷째, 형상화 작업이 이루어질 것
사진가의 개성은 사진가가 즐겨 다루는 소재, 그의 주제와 그 주제에 나타난 사상, 접근방법
등에 의해 드러난다. 때로는 소재를 다루는 분위기(전체적인 톤,콘트라스트)도 한몫을 한다.
회화나 조각처럼 작품 위에 '손자국'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개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손으로 만드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성이 들어있지 않은 사진은 따라서 예술일 수가 없다. 개성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그의
의식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의식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보았으며,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하는 분명한 뜻이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의 삻에 일관된 인생관, 자연
관, 사진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일관된 주제의식 없이, 보여줄 때마다 다른 말,
다른 생각이 나온다면 그런 작품은 믿을 수가 없다. 작품만이 아니라 그런 작품을 내어 놓는
그 주인공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상이면 사상, 감정이면 감정이 일관될 때, 그의 말에
믿음이 가고, 그런 사진에 관심이 가는 법이다. 의식이 들어 있지 않아 분명한 의미를 갖지
않은 사진, 발표할 때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사진을 놓고 작가와 작품을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잠시만 눈을 돌려도 개성의 중요함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예을 들어
앙리 카르테에-브레송의 눈길이 향한 곳은 역사의 뒤안길이었다.역사의 정면에 서서 현장과
씨름을 한 로버트 카파와 대조적인 개성을 보인다. 현대사진을 논하려면 으레 등장하는 로버
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이 있다. 이 둘은 같은 시기에 같은 미국을 찍었고, 그 혁명적
영상으로 함께 사진의 역사를 장식하고 있지만 로버트 프랭크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지적 면모
와 윌리엄 클라인의 정열적이고 적극적인 함성이 서로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