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 만큼은 신학이 바르고 신앙생활 잘 한다고 하는
내 자신이라 할지라도
함께
목회에 성공했다고 하는 내 자신이라 할지라도
나는 부족함이 없는 여유로운 내 자신이라 할지라도
내 자신도 모르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 있기에
함께 눈여겨 보기를 원합니다.
시작의 발원점에서 역사의 흐름이
곧 바로 흐르지 않고
방향이 어느 시점에서 꺽여 버렸다면
꺽인 상태에서의 진행된
내 자신의 신학과 신앙이 제 아무리 바르고
옳고 성공했다해도
다음과 같이 정도에서 벗어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기독교회의 시작 출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바른 길로 수정하는
내 자신이어야 하는 시급함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구약성경을
요약해서 말씀드립니다.
위 검은 바탕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으로 가정하고 .....
이 세상 창조시에 지으신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이
이 세상에 속하여
각 나라와 민족을 이루고 있는
인류 세상사회입니다.
이러한 인류 세상에로
아브라함때에
하나님께서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시겠다는 것과
그 생명으로 말미암은 사람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따라
역사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것이 구약성경이고
하나님의 이 언약으로 태어난
한 생명이 이삭이고
이삭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창조시에 지으신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바가 아니고
아브라함때에
하나님의 언약으로 태어난
이삭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에 대한 기록입니다.
창1장부터11장까지만
아담으로 말미암은 이 세상 사람들의 출생의 기원과
타락상을 기록하고 있고
창12장 부터 구약성경 전체 끝까지는
이삭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이삭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 세상 사람들과의 다른 점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태어난
특이점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삭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 많은 위협과
여러 차례 침략을 당하여
고난의 삶이 이어지고
다른 민족의 나라,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 등등으로 부터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함에서
이스라엘에게 싹이 튼 것이
메시아(그리스도) 사상입니다.
다윗과 같은 혹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서
다른 나라의 지배하에 놓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실것을
소망하였고
그 소망은
분명히 성경속에 기록되어 있기에
성취될 것을 믿고 바랐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과 NCCK는
자신들을 2009년도에
이미 로마 카톨릭에 일치 시켜 버렸습니다.
비극적인 현상입니다.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문제는
통합교단과 NCCK. WCC.WEA이들만이 아니고
멸망당한 유대인들만이 만이 문제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으되,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식어지고
예수님은 존귀함을 받지 못하게 되고
업신여김을 당하되,
개밥의 도토리 신세로
업신 여김을 당케 되는 상태가 됩니다.
내 자신에게는
예수만이 주인으로, 생명으로, 왕으로,
하나님으로 계시고
존귀히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내 자신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뜻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나섰지만
그 목적은 자신들이 바라는 뜻을
가지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례요한의 경우도,
정치적인 구원을 바랐었고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그러하였고
예수님의 제자들 까지도
예수님께서 승천하실때 까지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인 뜻을 내려 놓지 못했었고
오병이어 표적을 본자들도
떡을 먹고 배가 불러서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것이고
병든자들은 병을 고치기 위한 뜻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어느 누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때
자신들의 뜻한바를 가지고 나아오지
아니한 사람이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런것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한 것이 표적들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든지
죽은자를 말씀으로 살려낸다든지
물고기 3마리와 보리떡5개로
5천명을 먹이신다든지 하는,
표적을 얼마나 많이 행하셨든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그 많은 표적들을
소돔에 행하셨다면
그 성이 오늘날 까지 있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이 행하셨음을 알게 되고
보게 됩니다.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낱낱히 기록하였다면
이 세상에 두기에도 부족하리 만큼
그 토록 많은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예수님 영접" 입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토록
그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서
행사한다고 몰아서는
예수님을 배척해 버린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이 이토록 어렵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닌 것들이
마음에 자리하고 소중히 여김을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이 아니면
무엇이든지 간에
우상이 될수 있기에 멀리함이 맞습니다.
부모나 형제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는 말씀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경험한
베드로와 여러 많은 제자들이
다시금 옛날로 되돌아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 이 사람들보다 " 나를 더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요21:15)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
교회일을 한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없는 경우도 있고
예수님을 사랑함이 없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는 사실에
누구도 자유로울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른 그 무엇이
예수님 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마음에 있다면
그 마음,
갈아 뒤엎어 버려야 합니다.
거짓된 열정이,
주님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 아닌 것들이
의미가 더하여지고
부각되어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이를 위한 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교회입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늘 영광을 보좌를 떠나
이 낮고 천하고 죽음의 인류 세상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나를 거처 삼고
내 안에 계십니다.
나의 가진 모든 뜻을 접고
나를 거처로 삼으시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뜻하시는지
그 뜻을 따라 행하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시장하여 밥먹는 일이나,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을 하는 일이나 아퍼서 기도하는 일이나 주일날 예배당에 가는 일이나 물 마시고 싶어 물 마시는 일이나 wcc.wea를 남에게 홍보하는 일이나 성경공부 하는 일이나 직장에 가는 일이나 모든걸 다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되는것 아닙니까? 이런뜻도 가지지 말아야 하는지요?
내 자신이 뜻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내게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말씀의 뜻을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