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겨울/한강
(한강 등단시)
어느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 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 하던
강물소리,
들려주겠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날개
그 고속도로의 번호는 모른다
아이오와에서 시카고로 가는 큰길 가장자리에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바람이 불 때
거대한 차가 천둥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잎사귀 같은 날개가 조용히 펄럭인다
십 마일쯤 더 가서
내가 탄 버스가 비에 젖기 시작한다
그 날개가 젖는다
시 "효에게. 2002. 겨울"에서: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시 "괜찮아"에서:
괜찮아
왜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